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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 - 장화홍련전 ㅣ 열네살에 다시보는 우리고전 2
고영 지음, 이윤엽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3월
평점 :
고전소설들은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미 구닥다리로 인식되어지거나, 또는 교과서에 실려 있기에 단순히 시험을 치르기 위해 암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우리의 고전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살려낸 책이 있다. 바로 고영 작가의 『장화홍련전』이다. “열네살에 다시 보는 우리 고전”이란 타이틀로 출간되는 두 번째 책이다.
여기 ‘다시 본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이 다시 본다는 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옛 언어로 써진 고전을 오늘 우리의 현대어로 ‘다시’ 읽는다는 의미겠다. 소설이란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언제나 그 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번역되어져야 하며, 읽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현대어로 ‘다시’ 읽을 수 있도록 풀어 쓴 작가의 작업이 고맙다.
둘째, 옛 고정관념을 가지고 그러한 시각으로만 소설의 내용을 접근하는 것이 아닌, 오늘 우리 시대의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다시’ 새롭게 해석해 본다는 의미가 있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소설의 원 내용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원 내용에 더하여 오늘 우리가 새롭게 ‘다시’ 해석해봐야 할 것들에 대해 설명을 저자는 덧붙이고 있다.
저가가 이 책 『장화홍련전』에서 새롭게 다시 해석해야 할 내용들은 무엇보다 가부장의 권위에 대한 접근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부제로는 『아버지의 세계에서 쫓겨난 자들』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장화홍련전』을 접할 때, 대부분 계모만을 욕하지만, 실상은 가정의 절대 권력을 가지고 휘두를 수 있었던 가부장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저가는 이야기한다.
또한 국가 공권력의 무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장화, 홍련이 애매한 죽음을 당한 후, 홍련은 원귀가 되어 그 지방에 부임하는 부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부사는 애매한 죽음에 대해 한을 풀어주기는커녕 귀신을 본 두려움에 죽어나간다. 이것을 작가는 ‘국가 공권력의 무능’이라 해석한다. 여기에 더하여 끝내 장화홍련의 아버지가 아무런 벌을 받지 않고 풀려나는 장면을 통해서는 끝내 공권력이 가부장의 권위를 흔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음으로 해석한다. 어쩌면, ‘가제는 게 편’이라고 가부장의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끝내 자신들의 공권력 역시 위협받을 것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작가는 『장화홍련전』을 통해, 오늘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오늘 한국 사회 역시 이 사회를 움직이는 권위 있고, 힘 있는 자들이 힘이 없기에 애매한 상황에 처해 고통당하는 자들, 절박한 상황에서 하소연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다시 보는’ 시도는 대단히 바람직하다. 단지 노파심에 한 마디 한다면, ‘다시 보는’ 이러한 시도들이 자칫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형성할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얼마 전 tv 모 예능 프로그램에 초등학생들이 나와 이 프로그램의 고정출연자들과 함께 『선녀와 나무꾼』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장면을 잠시 보여준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든 생각은 아이들은 ‘다시 보는’ 훈련을 통해 열린 시각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이미 또 하나의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편협한 시각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 보는’ 훈련들을 시켰을 것이다. 이런 시도는 선한 시도임에 분명하고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그렇게 ‘다시’ 해석되어진 것을 이 아이들은 정답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해석 이외의 것에는 또다시 귀를 닫아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이런 접근은 결코 ‘열린’ 접근이 될 수 없다.
물론, 이 책에서 저자는 편협한 접근을 하지 않는다. 아울러 저가의 접근은 대단히 개연성이 있는 접근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에 나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다시 보는’ 시도가 자칫 당시 시대에서 이 작품이 만들어지며 품었던 작품의 의도, 그 메시지를 우리가 무시해버린다면 이것 역시 우리가 커다란 것을 놓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보는’ 접근과 함께 작품의 1차적 의도, 역시 우리가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노파심에 말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내용은 참 좋다. 계속하여 출간되어질 다음 작품들 역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