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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와 고양이
김성일 지음, 이영은 그림 / 더드림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동물들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의 눈에 보이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간혹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관점으로 풀어낸 소설이 있다. 바로 이 책 『까치와 고양이』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까치와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고발하고 있다. 물론 까치와 고양이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성경의 선지자적인 모습을 보이는 까마귀 까묘도 등장한다.
아무튼 이들의 눈에 보이는 인간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아니, 도리어 부끄럽고, 안타까운 모습뿐이다. 욕정의 노예노릇하다 잉태된 자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물질의 욕망 때문에 아비를 미치광이로 만들어 정신병원에 버리기도 한다.
뿐인가! 고기를 더 많이 얻고자, 가축들의 최소한의 복지마저 외면한다. 돼지들은 일평생 움직이지도 못할 우리 안에 갇혀 살게 한다. 오직 더 많은 살을 찌우기 위해. 닭 역시 날개 한번 펴보지 못한 채 평생을 닫힌 공간에서 먹고, 배설하고, 알을 낳다가, 산란율이 떨어지면 도축장으로 향하게 된다. 병아리는 부화되면, 암수를 감별하여 수컷은 효용성이 없다 판단하여 곧장 분쇄기로 보내져, 다른 동물의 사료로 전락하게 된다.
가축들만 이처럼 사육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도 사육한다. 자신들의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비뚤어진 욕망에 의해 정자와 난소를 매매하기도 하고, 대리모를 두기도 하며 심지어 장기를 얻기 위해 인간 사육까지 하기도 한다.
보다 맛난 커피를 먹겠다며 커피열매를 루왁 고양이에게 배가 터지게 먹이기도 하며, AI나 구제역을 막아보겠다고 수많은 가축들을 도축해버리곤 한다. 이러한 모습들을 동물들의 입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동물들이 바라보는 인간 세상은 극도로 타락했다. 그리고 이런 타락은 창조주의 징계를 불러올 수밖에 없고, 이런 징계를 통해, 동물들 역시 함께 재난의 대상이 될 것을 동물들은 안다(소설 속의 인간들은 이런 모습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여전히 탐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이처럼 이 작가는 동물들의 눈을 통해, 인간의 더러운 욕망의 그림자를 들춰내고 있다. 자신의 자식이나 부모를 버리는 비윤리적인 모습, 동물의 권리 내지 복지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더 많은 고기를 얻고자 하는 실리에만 매달려 있는 모습,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후세를 이 땅에 내놓고자 하는 비뚤어진 욕망, 여기에 더하여 책임성 없는 모습을 통해 생태계 질서를 파괴하는 모습 등 다양한 내용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작가가 제시하는 대안으로서의 내용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이다. 이 긍휼의 마음을 은혜를 갚은 까치 이야기를 통해 언급하며, ‘호신부’라 칭한다. 긍휼의 마음이 그 사람을 지켜준다는 것.
둘째, 비록 시대가 이러할 지라도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시간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해서 가는 것이다. 이것은 고양이인 누얄이의 고백을 통해 몇 차례 반복된다.
셋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유전자를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 결론을 말하고자 여러 가지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고발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우리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은 후엔 ‘짐승만큼만 되어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가득함을 생각해본다. 때론 너무 내용이 반복되는 느낌이 없진 않지만, 우리의 부끄러운 단면을 잘 그려내고 있다.
또한 기독교작가답게 수많은 성경구절들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같은 성경구절의 빈번한 반복이 아쉬웠으며, 너무나도 많은 성경구절의 언급은 ‘과유불급’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몇몇 적용은 문자적 해석과 접근을 함으로 인해, 도리어 말씀이 공허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 속의 고양이 누얄이는 이처럼 타락한 세상, 미래가 불안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유전자를 남기지 않으려 한다. 암컷 고양이 매기가 수없이 유혹해도. 그만큼 우리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이 고양이의 앞날조차 어둡게 하고 있다는 거다. 이는 오늘날 험한 세상 속에서 자녀 낳길 거리끼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이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낱낱이 들춰내어 깨달았다면, 이젠 그 어두운 단면들을 밝게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얄이도,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녀 갖길 거리끼지 않을 그런 세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