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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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서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의 원작 소설인 아사다 지로의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을 읽어봤다. 이 소설은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야 하겠다. 죽은 영혼이 다시 잠시 돌아와 못다 한 일들을 해결하게 된다는 설정이니 말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49일 동안 머무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곳을 중유(中有)라고 하는데, 소설 속에서 주인공 쓰바키야마 과장은 어느 날 갑자기 죽어 이곳 중유에 도착하게 된다(사실 과도한 백화점 업무로 인한 과로사다.). 이곳에서 죽은 영혼들은 극락과 지옥행을 결정 받게 되는데, 극락에 가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죽은 자들에게 죄를 이야기하고 각기 해당되는 죄의 방에 들어가 교육을 받게 되는데, 그곳에서 자신들의 죄에 대해 잘못했다는 버튼을 누르면 쉽게 극락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참 천국가기 쉽다^^).

 

하지만, 쉽게 잘못했다는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현세에 대한 미련이 너무 많은 자들이다.

 

당신들은 정말로 현세에 미련이 없는가? 그렇게 간단한 인생이었나? 자기만 그렇게 극락으로 가 버리면 끝이란 말인가!(69쪽)

 

이런 자들은 심사를 거쳐 합당하다고 여겨지면 다시 현세로 돌아가게 되고, 주어진 시간동안 자신의 볼 일을 보게 된다. 이들이 지켜야 할 것은 단 세 가지. 제한시간엄수(죽은 지 7일 안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복수 금지, 정체의 비밀 유지(이게 제일 어려운 항목이다.)가 그것.

 

죽는 순간까지 백화점 할인행사 실적을 걱정한 쓰바키야마 과장. 청부살인자가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여 쏜 총에 죽은 야쿠샤 두목. 그리고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부잣집에 입양되었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소년. 이렇게 세 사람은 각자 현세에서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과연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사제이자 독일 대학의 교수인 신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죽음 이후의 심판이란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었음에도 하지 못한 일을 떠오르게 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 심판이라 말했다. 그만큼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에도 하지 못한 것은 죽어서도 한이 된다는 말일게다. 이 소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은 바로 이런 모티브에서 출발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마치지 못한 한, 미련으로 인해 3명의 주인공들은 잘못했다는 버튼(극락, 천국행 티켓과 같은 버튼)을 쉽게 누르지 못한다. 특히 현세에 남은 자들을 향한 걱정과 미련이 이들을 다시 현세로 돌아오게 한다.

 

그렇게 돌아온 이들이 만들어가는 좌충우돌 활약이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주어진 시간은 짧고 해결해야 할 것은 많다. 회사일, 집안일, 갚아야 할 대출금 문제, 게다가 자신이 범했다는 음행죄가 무엇인지 궁금한 쓰바키야마 과장. 자신을 착각하여 죽인 자는 누구이며, 누구 대신 자신이 죽게 된 것인지도 알아야 하며 남겨진 고붕들의 미래가 걱정되는 정의파 야쿠샤 두목. 아울러 자신을 버린 부모님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부모님들께 후회하지 말라고, 용서한다고 전해줘야만 하는 소년. 이들이 펼쳐나가는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재미나고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이들의 히스토리는 서로 이리저리 엮여 있기도 하다.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이렇게 실타래처럼 엮인 그 사연들을 주인공들이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때론 웃음 짓고, 때론 분하기도 하고, 때론 아쉬움의 한숨을 짓기도 하며, 때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도 된다.

 

소설 속에서 사자(死者)들은 다시 현세로 돌아옴으로 그전에 알지 못했던 감춰진 진실들을 직면하게 된다. 이 진실들은 알고 싶지 않은 내용들도 있고, 미처 알지 못했던 후회스러운 내용들도 있다. 이렇게 감춰진 진실을 알아가는 장면들을 통해 과연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좋은 것인가도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소설은 밝혀지는 감춰진 진실들을 알아감으로 궁극적 화해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작가는 비록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 원치 않는 진실도 뛰어넘을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소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참 재미 난 마치 종합선물과 같은 소설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인가. 자신은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몸이 가루가 되도록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정의라고 믿어왔다. 그리고 말 그대로 몸이 가루가 되고 나서 겨우 깨달았다. 일을 핑계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들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피와 살을 물려받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피와 살을 물려준 자식의 고통도 눈치 채지 못했다. 즉, 자신은 돈을 버는 기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174쪽)

 

몸이 불편한 사람도, 나이가 많은 노인도, 또는 나이가 적은 어린아이도, 그들은 모두 사회적인 약자이긴 하지만 결코 인간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 인간들 사이에 강약은 있어도 우열은 없단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돌봐주는 사람의 의사가 아니라 본인의 의사야. 내 말을 이해하겠니?(25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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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소설 무 1 - 신이 선택한 아이
문성실 지음 / 달빛정원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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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난 소설을 만났다. 『신비소설 무(巫)』란 소설인데, 2000년에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다시 출간되고 있는 소설이다(아마도 당시 완결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완결하나보다.). 그 첫 번째 책은 「신이 선택한 아이」란 제목으로 이 책의 주인공인 낙빈이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 박수무당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을 그려내고 있다.

 

낙빈이 살고 있는 시골마을의 초등학교 선생님인 최 선생은 입학예정자 가운데 한 친구가 입학 후 한 번도 학교에 나오지 않아 의아해 한다. 알고 보니, 이 아이는 무당의 아들이란다. 최 선생은 낙빈이 살고 있는 마을로 찾아가 낙빈의 엄마를 설득하여 낙빈을 학교에 다니게 하는데, 낙빈에게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무엇을 하든 낙빈이 속한 편이 게임에서 이기게 되는 것. 아이들은 이것이 낙빈의 특별한 능력 때문이라 믿고, 낙빈과 항상 같은 편이 되길 원한다(아울러 낙빈을 향한 두려운 마음 역시 품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이런 일로 인해 낙빈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배척된다. 낙빈이 4학년 형을 다치게 했다는 누명을 씌우며 말이다. 하지만, 이 일은 낙빈과는 무관한 일. 이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낙빈을 향한 두려움은 도리어 낙빈을 공격하고 배척하며 상처를 주게 된다.

 

이렇게 낙빈은 상처뿐인 짧은 학창시절을 뒤로 한 채, 천신이란 분이 계신 암자를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승덕, 정희, 정현 등의 형과 누나를 만나게 되어 함께 수련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앞에 여러 사건들이 생김으로 이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어떤 활약을 하게 될까?

 

첫 번째 책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다. 물론 때론 무섭고 오싹한 분위기도 없지 않지만. 마치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고, 결국엔 신의 선택에 의해 그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의 낙빈. 심리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준비하던 가운데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천신의 암자에 칩거하지만, 그럼에도 사건사고에 대한 관심을 갖고 조사하는 승덕. 희생보살의 능력이 입혀져 아픈 사람들의 아픔, 상처, 고통을 대신 아파하며 상대를 치료해줄 수 있는 정희. 정희의 쌍둥이 남동생이자 무예 고수인 정현. 이렇게 네 사람이 함께 초자연적 사건을 해결해나간다는 설정의 소설이다.

 

한국형 판타지 소설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소설은 영적 존재들의 등장으로 우리가 알지 못할 세상, 그 미지의 영역에 대한 신비로움을 독자들에게 선물한다. 뿐 아니라, 많은 사건 사고를 만들어 가는 영적 존재 특히 원령들의 경우 이 땅에서 너무나도 큰 억울함으로 인해 그 원망이 죽어서도 한을 품게 된다는 전개를 통해, 이 땅에서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원망을 쌓아가는 행위가 얼마나 끔찍한 행위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아울러 많은 이들이 폄하하는 무당의 길이란 것이 결국엔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아픔을 감내해야만 하는 희생적 존재들임도 생각하게 한다.

 

물론 한을 품은 영을 안으로 불러들여 고통을 대신 껴안고 보듬어주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뼈를 깎는 고통을 치러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낙빈 어머니는 그렇게 돕는 것이 무당의 일임을 잊지 않았다.(145쪽)

 

이는 사실,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종교인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내용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고통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자신은 뼈를 깎는 고통도 감내할 각오. 이런 각오가 오늘 이 땅의 수많은 종교 안에서 살아가는 종교인들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낙빈과 승덕, 정희, 정현. 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하게 될지도 궁금할뿐더러, 이들은 또 어떤 사연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그리고 이들 앞에 놓이게 될 수많은 사건들, 그 위기를 어떻게 해쳐나가게 될지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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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떡아빠
김세호 지음 / 단한권의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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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난 이름의 책을 만났다. 『개떡아빠』라니. 괜스레 날 지칭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과연 개떡아빠는 어떤 아빠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개떡이란 게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지만, 그럼에도 참 맛난 음식임에도 분명한데, 과연 무슨 의미로 사용되는지도 궁금하고. 『개떡아빠』는 두 편의 중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사실 소설과 동화의 구분이 모호하다.). 같은 제목의 「개떡아빠」와 「철갑똥파리」란 중편소설이다.

 

「개떡아빠」는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쓴 성장소설로서 참 개떡 같은 가족, 여섯 가족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배고픔의 서러움에 사무친 할머니. 그래서인지 식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할머니. 먹는 것 앞에서는 손주들도 전혀 고려치 않는 참 개떡 같은 할머니다. 술에 취해 자는 아이들을 깨워 꺼칠한 수염으로 아이들을 고문하곤 하는 아빠. 언제나 간식거리를 사오지만, 이 모든 것은 할머니를 위해 사오는 효심 가득한 아빠 역시 할머니를 챙기는 효자임에 분명하지만, 자식들과 아내를 챙기지 못하는 개떡 같은 아빠다. 자신의 입만 챙기는 할머니의 모습과 아빠의 효심 가득한 만행을 감당할 수 없는 엄마. 생활전선의 힘겨움까지 더하여 안으로 썩어들어 가다 폭발하고 마는 엄마. 똑똑하지만 딸이라는 서러움과 참 다양한 캐릭터의 가족들로 인해 더욱 까칠해지기만 하는 누나. 백일 되는 날 술 취한 아빠가 무등을 태운 상태로 넘어지는 뒤론 마냥 웃고 좋기만 한 약간 부족한 형. 그리고 선데이 서울을 통해 여성을 알아가고, 할머니의 돈을 훔쳐서라도 자신의 통장에 저금을 하는 ‘나’. 이렇게 여섯 가족이 만들어 가는 개떡 가족 이야기. 각기 아픔도 있고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지만, 이런 이들이 하나도 버무려질 때, 일견 볼품없지만 맛있기만 한 개떡처럼 이 가족만이 전해주는 독특한 맛이 있다. 그 맛을 느껴보길.

 

「철갑똥파리」는 똥파리와 꿀벌, 말벌, 무당벌레, 거미, 베짱이, 개미 등 곤충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우리 인간세상을 풍자할뿐더러,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보여준다. 먼저, 작가가 꿈꾸는 세상은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이다. 거미가 붙잡은 똥파리를 놓아주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하루살이들이 남(달팽이)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것에서 삶의 목적을 찾는 모습. 폭군 말벌이 꿀벌들을 배려하고, 빼앗기보다는 함께 일하기를 꿈꾸는 세상. 서로 다른 똥파리, 무당벌레, 베짱이, 말벌이 서로의 다름에도 함께 친구가 되어 어우러지는 세상. 베짱이가 개미처럼 일하고 남을 위하기도 하는 세상. 이런 세상이 바로 작가가 꿈꾸는 세상이다. 똥파리와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처럼 잘 어우러지는 세상인지를 질문한다. 아니, 그런 어우러지는 세상이 되길 꿈꾼다.

 

또한 똥파리는 자신이 먹는 똥을 하찮게 여기고 부끄럽게 여긴다. 그래서 꿀벌과의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에게 똥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닌, 너무나도 귀한 양식임을 깨닫게 되는 모습을 통해, 과연 오늘 우리 세상에서 하찮은 것은 무엇이며, 누가 규정한 정의인지를 묻는다. 아울러 그토록 똥을 먹고 사는 똥파리이지만, 이 똥파리가 어느 누구도 꿈꾸지 못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통해, 똥파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임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역시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는 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다 귀한 존재임을 생각하게 한다. 단지,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몇 군데 있어 작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너무나도 귀한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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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치미교 1960
문병욱 지음 / 리오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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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일보 의학전문기자인 진수는 어느 날 고교동창 상원에게서 급박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게 된다. 자신은 <치미교>라는 사이비종교의 추격을 받고 있으며, 이 <치미교>가 얼마나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집단인지를 고발함과 동시에 도와줄 것을 바라는 내용의 전화. 이에 진수는 마치 비밀 첩보원이 접선을 하듯 춘천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상원을 무사히 만나 돌아오게 되는데. 상원이 알려주는 <치미교>의 만행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끔찍한 병균 VPF 역시 <치미교>의 음모였으며, 그 백신이라 알려져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테미란 역시 치료제가 아닌 증상 완화제에 불과하며 테미란을 생산하는 제약회사 역시 <치미교> 였음을 밝힌다. 뿐 아니라, 이곳 <치미교>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였으며, 상당수의 경찰, 검찰까지 매수하고 있다는 것. 과연 이런 엄청난 일이 실제 벌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진수와 상원은 이들 어마어마한 <치미교>의 진면목을 무사히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을까?

 

소설 『사건 치미교 1960』은 일제시절 발흥하였다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사라진 사이비종교인 <백백교>를 모티브로 창작한 픽션이라고 책은 설명한다. 찾아보니 <백백교>는 1920년에 발흥하여 1940년에 사라진 사이비종교로, 놀랍게도 핵심세력에 의해 신도 314명을 살해하기도 한 끔찍한 집단이다. 이러한 혐의로 관련자들이 모두 체포되어 12명이 사형을 당하였고, 나머지는 무기징역 및 징역을 당한 사건이라고 한다.

 

반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치미교>는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시작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으니, 무엇보다 그 시대적 배경에 차이가 있다. 이처럼 작가는 <백백교>의 모티브를 통해, 사이비종교가 행한 끔찍한 폭력행위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그 시대적 배경을 바꾸었다는 것은 이러한 1960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통해, 작가는 오늘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음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36년간의 일제치하 그 통곡의 시간을 견뎌낸 조선은 해방의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좌우의 분열과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끔찍한 시간을 겪게 된다. 이런 사건들을 통해, 그 시대는 희망보다는 암울함이 온통 만연하던 시대였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치미교는 비록 실체는 교묘한 책략의 성공에 불과했지만 일제강점기 36년, 한국전쟁 3년의 발광에 가까운 혼돈의 세월을 겪는 동안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민심에 나라가 주지 못한 마음의 안식을, 기댈 곳을, 결국 도피처를 제공한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그러했는지 모른다.(403쪽)

 

작가는 오늘 우리 시대 역시 국가가 국민들의 기댈 곳이 되지 못하며, 신뢰와 위로를 주지 못한다면, 나라에서 희망을 읽어낼 수 없다면, <치미교>와 같은 폭주하는 집단들이 발흥하게 될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또한 정통적인 종교가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많은 이단 사이비종교가 발흥하여 국민들을 현혹하는 것 아니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우선 그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하며 재미있다. 때론 긴박감에 독자들의 가슴을 졸이게도 한다. 아울러 인간성이 메말라 버린 거짓 종교인들의 폭주가 얼마나 큰 폐해를 낳게 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종교라는 명목으로 거짓을 붙잡게 될 때, 그 피해가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를. 종교는 언제나 참 진리를 좇고 붙잡아야 할 것이며, 타락하지 않고 바로 서도록 끊임없는 쇄신을 감행하지 못할 때, 사이비종교처럼 폭주할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거짓 평안, 거짓 위로, 거짓 안식이 아닌, 참 평안을 주는 종교는 종교적 교리의 문제를 떠나 결코 도덕적 삶을 벗어나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종교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도 이처럼 흥미진진한 소설로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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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의 소개팅과 다섯 번의 퇴사
규영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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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잔잔한 소설을 만났다. 『백 번의 소개팅과 다섯 번의 퇴사』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소설인데, 제목과는 다르게 소설의 전개는 대단히 잔잔하다(사실 처음 이 제목을 접하며, 뭔가 극적이거나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을 기대하고 책을 펼쳤지만, 끝내 이런 내용은 만나지 못해 실망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편안한 책읽기에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작가의 의도를 알고 책을 펼친다면 괜한 실망이 아닌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소설 속에 상당수 녹아들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소설인데, 실제 회사를 퇴사하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작가의 첫 소설이다.

 

작가는 편안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정말 소설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분량마저 짧아 금세 읽혀지기도 하니 편안한 책읽기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제목을 보면, 뭔가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할 것 같다. 뿐 아니라, 이들에게 뭔가 남들이 모를 아픔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백 번을 넘게 소개팅을 해도 자신의 짝을 만나지 못하는 아가씨의 고민과 눈물, 한숨. 여기에 일자리를 얻기 힘겨운 시대에 힘겹게 취직을 하지만, 자신의 꿈과의 괴리감으로 인해 그 힘겹게 들어간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만 하는 아가씨가 만들어 가는 그 방황과 꿈을 소설은 담담한 어투로 그려내고 있다. 담담한 어투, 잔잔한 분위기, 편안한 책읽기, 이런 내용이 아마 이 소설을 가장 잘 표현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물론, 어떤 독자들에게는 단지 편안함을 넘어 너무나도 잔잔한 전개가 자칫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소설에는 분명 젊음의 고민과 눈물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그 고민을 품기에는 왠지 치열함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이는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읽혀지는 소설이 되기 위해 자칫 독자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을 배제시키거나 약화시켜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짧은 소설이지만, 편안함을 얻은 대신 독자의 몰입을 높여주는 그런 요소들은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영과 구월은 고교친구사이로 함께 동거하는 사이다. 우영은 네 차례 회사에서 퇴사한 전력이 있는 아가씨로 이제 막 자신의 꿈인 전업작가가 되기 위해 다섯 번째 퇴사를 앞두고 있는 아가씨다. 우영과 함께 살고 있는 구월은 소개팅을 백 회 이상 한 아가씨로 미술을 전공했다. 미술에 대한 꿈이 있지만, 그 꿈을 이루려하기보다는 기간제 교사로 점차 눌러 앉아가는 아가씨. 참한 매력적인 아가씨여서 소개팅을 하면 언제나 남자들이 당장 프러포즈를 할 듯 안달복달하지만, 두어 달만 만나면 이상하게 남자들에게 차이고 마는 아가씨다.

 

소설은 이 둘이 만들어가는 잔잔한 일상들. 그녀들의 눈물과 아픔, 그리고 그녀들의 좌절과 꿈 등을 그려내고 있다. 과연 구월은 사랑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영은 힘겨운 직장 생활을 뒤로 하고 전업작가가 될 수 있을까?

 

꼭지꼭지는 날짜와 함께 그날 먹게 된 음식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어찌 보면, 소설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 그 일기를 엿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같게도 한다. 과연 극적 전개가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지만, 끝내 잔잔함으로 끝을 맺게 되는 소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 이처럼 극적인 듯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맹맹한 나날이며, 수많은 고민과 갈등이 존재함에도 또 한편으로는 잔잔한 평안을 누릴 수도 있는 것임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고 있는 서른 즈음의 아가씨들의 파란만장한 일상의 스토리들이 잔잔한 분위기 가운데 전개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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