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창 로맨스를 읽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 생각났다. 

일상 로맨스보다는 판타지와 로맨스가 적절히 섞인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작가의 필력이 좋아서 드물게도 재독한 작품이었다. 














이하의 간략한 줄거리는 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정확하지 않다. 

이 책의 주인공은 시작이 매우 불운하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그 후 암투병 끝에 어머니까지 잃은 정연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집에 돌아왔다. 그런 정연의 집에 침입한 이상한 종족의 남자, 태호. 그로 인해 정연은 인간에서 그 이상한 종족으로 변태하게 된다. 

그런데 그 변태라는 것이 무엇이냐, 얼굴이나 몸이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상태로 최적화된다. 거칠어졌던 피부가 매끈해지고, 불균형했던 골격이 재배치 된다. 마치 컴퓨터를 포맷하고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처럼. 더구나 그 효과는 영구적이다. 얼마나 이상적인가?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남주와의 로맨스가 아니라 이 변태의 결과였던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것은 '원판 불변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본래 이 정연이라는 인물은 불행으로 칙칙해져서 그렇지 생김새가 괜찮았던 데다가, 살도 쭉 빠져 마른 상태였다. 그렇다. 어디서든 로맨스의 주인공은 살찌지 않았다. 실제로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 하에서 살이 찌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로맨스의 주인공들은 불행에 처하면 살이 빠진다. 가녀린 어깨와 부러질 듯한 손목으로 처연함을 뿜어 낸다. 

처연함. 그것은 못생기거나 뚱뚱한-아니 사실은 '마르지 않은', 여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정서다.


프리단은 1950년대 여성 문화를 보고 "여성은 계속 아이를 낳는 것 말고는 달리 주인공이 될 길이 없다"라고 한탄했는데, 오늘날에는 주인공이 되려면 "계속 아름다워야 한다."  -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115쪽

여러 연구 결과는 여성의 경우 자기 몸을 터무니없이 부정적으로 곡해하는데 남성은 자기 몸을 터무니없이 긍정적으로 곡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남녀가 같은 비율로(셋에 하나가) 과체중인데, 체중 감량 프로그램에 등록하는 사람은 95퍼센트가 여성이다. 여성은 전국 평균보다 15파운드(약 6.8킬로그램)가 많으면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성은 35파운드(약 16킬로그램)가 많을 때까지 걱정하지 않는다. (...) 이러한 종교는 누구의 몸이 뚱뚱한가가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몸이 잘못되었는가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157쪽


 요즘 생각의 많은 부분이 올리브에게 흘러간다. 

 올리브는 70이 넘은 노년의 여성이고 원래 키가 크고 덩치도 컸지만 나이 들면서 살이 불었다. 그녀는 학교 선생이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그녀를 무서워했다. 그녀는 상냥한 아내도 아니고 자상한 어머니도 아니었으며 이웃들에게 딱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도 못하다.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여성성'과 많이 떨어져 있는 올리브의 노년의 삶을 그려내는 이 책은 전형적이고 납작하게 그려져 온, '헌신적인 엄마'라든가 '회한에 잠긴 노인' 등의 모습에서 벗어난, 진짜 입체적인 한 사람을 보여주기 때문에 인상적이다. 늙은데다 아름답지도 않은 여성이 주인공이 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아름다움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언제라도 해명을 요구받을 수 있고 그래서 부족한 것이 발견되면 암흑으로 내던져질 거라고, 가난한 노년을 보내고 외롭고 사랑받지 못할 거라고 믿게 한다. -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211쪽


 우리 사회는 여성의 늙음을 지워내기에 바쁘다. 늙고 주름지고 배 나온 남성 권력자들의 모습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은 어떤 지위에 있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지" 않으면 실패했다고 여겨진다. 주름을 없애고, 흰머리를 염색하고, 뱃살을 감추며, 단지 성적 매력의 문제라면 이제는 놓아 보내도 될 것들을 놓지 못한 채 시선을 과거로 향하고 있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성적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141쪽)라는 나오미 울프의 지적은 예리하다. 


그들은 어머니가 아름다움과 장식, 유혹에 관해 가르쳐주는 것은 묵살하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어머니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126쪽

이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자유,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고 자신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에 관한 문제다. 에어브러시로 여성의 얼굴에서 나이를 지우는 일은 흑인의 긍정적 이미지를 위해 피부색을 엷게 할 때와 같은 정치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렇게 손질했을 때 검은 피부색에 내리게 되는 가치 판단을 여성 삶의 가치에도 내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적을수록 좋다는 말일 것이다. 에어브러시로 여성의 얼굴에서 나이를 지우는 것은 여성의 정체성과 힘, 역사를 지우는 것이다.  -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139, 140쪽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책을 주문했다. 

사실은 롱머그가 탐나서 주문했다는 건 안 비밀... 

<을들의 당나귀 귀>는 예전에 혼밥생활자의 책장에서 손희정 평론가가 나와서 이야기해서 알고 있던 책인데, 이번에 2권이 나온 모양이다. 김혼비 작가도 들어가 있고, 기대된다! 

2만 원을 넘기기 위해 함께 주문한 책은 소윤경 작가의 그림책 <콤비>.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에서 인터뷰가 너무 인상적이라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작가다. 무척 독특할 것 같아 궁금하다. 
















현재 개표결과가 매우 박빙이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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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10 08: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달에는 책을 좀 더 많이 사셔되 되는거 아닌가요? ㅋ 머그컵 모든 종류를 모으시기를 바랍니다~!!

독서괭 2022-03-11 06:58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제 안의 구매욕 충동질하는 목소리를 대변하시는 듯요 ㅋㅋㅋㅋ

mini74 2022-03-10 08: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들 롱머그에 진심이신 ㅎㅎ 저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독서괭 2022-03-11 06:59   좋아요 1 | URL
참.. 알라딘이 참 굿즈를 잘 만들죠잉. ㅠㅠ 미니님도 아직 완독 전이시라니 다행(?)입니다 ㅋ

거리의화가 2022-03-10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롱머그 보자마자 용량도 크고 디자인도 괜찮아서 혹했다가 집안에 쌓여있는 머그와 텀블러가 잔뜩이라 굳은 마음으로 외면하기로^^; 여성의 날 맞아 사고 싶은 책들이 많았는데 차차 사는걸로...ㅎㅎ

독서괭 2022-03-11 07:01   좋아요 2 | URL
화가님, 저도 집에 머그랑 텀블러 많은데ㅠㅠㅠ 그런데 마침(?) 얼마전에 머그 하나를 깨먹었거든요. 이럴 줄은 몰랐지만 뭔가 이때다 싶은 마음이네요 ㅋㅋ 그냥 머그면 안 샀을텐데 ‘롱‘머그라니..얼마나 롱한지 직접 보고싶은 이 마음 ㅠㅠ

다락방 2022-03-10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가 좋은 이유중에 하나가 독서괭 님이 말씀하신 이유인 것 같아요. 전형적인 여주인공의 모습이 아니죠.
그런데 언급하신 판타지로맨스의 변태 설정은.. 지금 보면 참 욕하기 딱 좋은 설정이네요. 저게 뭐예요 ㅠㅠ

독서괭 2022-03-11 07:06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나오미 울프가 계속 여성들에게는 나이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만한 모델이 없다고 지적하는데, 올리브가 단점이 많지만 그래도 읽다보니 좋은 점이 많이 보여서 저는 하나의 모델을 찾은 것 같아 더 좋더라고요^^
그 변태 설정 ㅋㅋ 좀 특이한데, 로판들(특히 최근작들)의 숱한 설정과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뱀파이어물에서 여주가 뱀파이어남주 따라 뱀파이어 되는 것도 결국 비슷하고, 몇 년 전부터는 빙의물이 유행해서 아예 자기 모습이 아닌 완벽한 책 속의 등장인물이 되어 버려요.. 현재 자기 모습에 만족 못하는 심리를 잘 반영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