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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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스또예프스끼, <백야> ; 이별의 정석


도스토예프스키(열린책들에 의하면 '도스또예프스끼'!) 탄생 200주년이라는데, 한 권은 읽어줘야지 싶어 전집 중 <백야>를 선택했다. 도스또선생의 책 중 내가 읽은 거라곤 <죄와 벌>이 전부다. 중학생 때 모종의 허영심의 발로 때문이었는지 뭔지 읽었는데 엄마에게 마구 하소연하며 - "혼자서 두 페이지 세 페이지씩 떠든다니까 글쎄" -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꾸역꾸역 완독했던 기억이 나고, 서른 즈음에 다시 읽었을 때는 좀 힘들긴 했으나 꽤 재미있었다. 

<백야>는 도스또선생의 초창기 작품으로 뒤의 작품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낭만성이 있어 주목 받는다고 해설에 적혀 있다. 말이 많은 건 비슷하지만 <죄와 벌>에 비하면 그야말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즐거운 작품이었다. 


화자인 '나'는 몽상가이다. 그는 혼자 살며 사람과 교류하기보다는 사람을 관찰하고, 한번도 진짜 상대를 사랑한 적 없으나 몽상 속에서는 그 속의 상대를 지극히 사랑한다. 


그의 눈앞에 그토록 매혹적으로, 그토록 변덕스럽게, 그토록 광대무변하게 펼쳐지는 마술 같은 환영들을 보십시오. 그 마술 같은 생생한 화폭에서 전경을 차지하는 중심 인물은 물론 그 자신, 우리의 몽상가, 그 자신의 고귀한 존재입니다. 보세요, 얼마나 다양한 사건들이 펼쳐지는지, 환희에 찬 몽상의 대열이 얼마나 끝없이 이어지는지. 당신은 어쩜 이렇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무엇에 관한 꿈을 꾸느냐고. 그러나 그걸 물을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것에 관해 꿈을 꾸는데......   - 47쪽 


어느 날 밤, 길거리를 배회하던 나는 울고 있는 여성을 발견한다. 우연히 불한당으로부터 그녀를 구해주게 된 나는 그녀가 울고 있던 사연을 듣게 되는데... 

나스쩬까, 눈 먼 할머니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슬픈 운명을 가진 소녀, 그녀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에 하숙한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괴로워하던 그녀는 남자가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날 고백한다. 남자도 나스쩬까를 사랑하고 있었으나 형편이 어려우므로, 1년 뒤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남자는 이곳 뻬쩨르부르그로 돌아왔음에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연을 들은 나는 그녀를 도와주기로 약속한다. 마음대로 외출할 수 없는 그녀를 대신해 편지를 전달해주기로 한 것. 그러나 그 뒤에도 이틀 밤이나 남자는 나타나지 않고, 결국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나스쩬까는 당황하지만 서둘러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그 순간 운명적으로..!! 남자가 찾아온다. 나스쩬까는 그에게 달려간다. 


'백야'는 낮에도 밤처럼 꿈을 꾸던 남자의, 낮처럼 환하게 빛났던 세 번의 밤을 보여 준다. 진짜 현실의 여성과 마음을 나눈 환한 밤(백야)은 지나가고 이제는 밤은 다시 어둡고 낮도 예전같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스쩬까로부터 그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은 '나'의 마음을 들어보자. 


그러나 나스쩬까, 너는 내가 모욕의 응어리를 쌓아 두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화사하고 평화스러운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게 할 것 같은가, 너를 신랄하게 비난하여 너의 심장에 우수의 칼을 꽂을 것 같은가, 너의 가슴이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고통받고 행복의 순간에도 우울하게 고동치도록 만들 것 같은가, 네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제대를 향해 걸어갈 때 너의 검은 고수머리에 꽂힌 저 부드러운 꽃 중에서 단 한 송이라도 나로 인해 구겨져 버리게 할 것 같은가...... 아, 천만에,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 115쪽  


고작 사흘 밤의 인연이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차인 사람이 가져야 할 미덕이라 하겠다. '안전이별'이라는 말까지 생길 만큼 이별 후 각종 스토킹 행위에 시달리는 많은 여성들이 있으니. 제발 이 책 읽고 개과천선 합시다. 떠나는 사람은 곱게 보내 줍시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이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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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1-21 23: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백야 읽고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이 가서 좋았어요 ㅋ 뒷끝없는 도선생님? 적당한 길이에 백야처럼 낭만적인 마무리 ㅎㅎ

독서괭 2021-11-21 23:32   좋아요 3 | URL
정말 뒤끝없어 좋더라구요. 겸허하고 너그러운 마음… 도선생 바람직하다..!!

mini74 2021-11-21 23: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 책 읽고 무턱대고 카리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겁도 없이 읽었지요 ㅎㅎ죄와벌보다 낫다니 저도 한 번 읽어볼까 하는 맘이 드네요 *^^*

독서괭 2021-11-21 23:33   좋아요 4 | URL
와~ 전 카라마조프 본가에 있긴 한데 분량이 겁나서 손을 못대겠어요^^; 죄와벌보다.. 분량면에서 확실히 낫지요 ㅎㅎㅎ 짧습니다.

scott 2021-11-22 16:23   좋아요 1 | URL
역쉬 하루키옹의 추천으로!
불후의 명작 완독을 !!👍

페넬로페 2021-11-22 01: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가 가기전에 ‘백야‘ 읽을 예정입니다.
나와 그 남자^^
어서 읽어야겠어요~~

독서괭 2021-11-22 13:10   좋아요 2 | URL
올해 도스또 한권은 읽어야지~ 하는 분들, 올해가 얼마 안 남았으니 <백야>를 추천드립니다. ㅋㅋ

2021-11-22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22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11-22 16: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어제 밤에 댓글을 분명 달았는뎅 ㅠ.ㅠ

괭님 도끼옹 중편작 중에 <백야> 좋아합니다!!

흑백 영화도 추천 합니다!ㅎㅎ
도끼옹 200주년 백치 완독! 괭님 추카~추카~

독서괭 2021-11-22 23:12   좋아요 1 | URL
앗 그러셨어요? 댓글이 어디 갔을까요 ㅜㅜ
영화도 있군요! 몰랐어요. 이 짧은 글을 영화로 어찌 만들었을지 궁금하네요.
백치는 내년에 읽어볼까봐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