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만난 동생의 서재에서 몇 권의 책을 발견하고 챙겨 돌아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인데, 1권이 2011년에 나왔으니 벌써 10년 전에 나온 책이다. 그 사이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던 시기라 선뜻 읽을 새각을 하지 못했다. 처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시작했던 때와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시오노 나나미의 관점에 대해 동의하기 어려워지면서, 이제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버린 듯하다. 가장 큰 문제는 영웅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인 작가의 역사관이라 여겨지지만, 작가의 다른 장점은 허구와 실제 사건의 경계를 허무는 명쾌한 서술은 무더운 여름날 부담없이 읽힐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에 빌려와 읽었고 간략을 정리해본다.
























 <십자군 이야기>는 시대적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소설 중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와 전쟁 3부작 <콘스탄티노플 함락> , <로도스섬 공방전>, <레판토 해전>의 사이에 위치한 작품으로,  제4차 십자군 전쟁과 관련하여 <바다의 도시 이야기>와도 깊은 관련을 갖는다.


 전체 3권으로 구성된 <십자군 이야기>는 제1권에서 성지 탈환이라는 관점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원정인 제1차 십자군 전쟁의 막전막후를 다룬다. 제2권은 제3권 사자심왕 리처드와 라이벌 살라딘의 대결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제3권에서 두 인물의 역사적 대결애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이후  제7차 십자군 원정까지를 서둘러 마무리한다. 이러한 구성은 과거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중 무려 2권에 해당하는 분량을 카이사르에게 할당한 것을 연상시키는데, <로마인 이야기>의 중심이 카이사르에게 있는 것처럼, <십자군 이야기>에서 중심은 리처드 VS 살라딘이다. 또한, <십자군 이야기>에서 대부분 내용이 <로마인 이야기>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제2권 <포에니 전쟁>에서처럼 전사(戰史) 위주로 서술되기에 흥미롭고 빠르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은 <로마인 이야기>는 전체 15권 중 무게중심이 앞에 있어 뒷부분은 늘어진다는 느낌과는 대조적으로 <십자군 이야기>가 독자들을 끝까지 끌어들이는 원동력이 된다.(물론, 3권이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도 흡입력에 한 몫한다.)













 다만, 이러한 구성 덕분에 십자군 전쟁에 대한 의미와 배경등에 대한 설명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십자군 이야기>에는 유럽의 많은 귀족 자제들이(차남 이하의 아들들) 십자군전쟁에 참여해서 열정적으로 전투에 임한 장면에 엄중함을 더해 참여귀족들의 가문 문장까지 소개하며 웅장하게 서술한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제후와 왕 중심의 내용 전개에는 제1차 십자군 당시의 민중 십자군 운동이나, 십자군 운동 후반기의 소년 십자군 운동에 대한 서술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저자는 <십자군 이야기>의 여러 곳에서 일본사를 끌어다가 설명한다. 주로 쇼군(將軍)과 다이묘(大名) 중심의 전국시대 역사관의 연장선상에서 제후들과 왕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이는 흥미를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를 온전하게 바라보는 것에는 제약이 따른다. 그렇다면, <십자군 이야기>를 보다 깊이있게 보기 위해 어떤 책들을 곁들어 읽으면 좋을까. 생각나는 자료 몇 편을 올려본다.


 먼저, 움베르트 에코의 <중세> 시리즈가 다소 방대하지만, 읽을 수 있다면 중세 시대 배경을 이해하는데 훌륭한 조력자가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여력이 된다면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서양의 장원제>까지 읽을 수 있다면, 십자군 전쟁 뿐 아니라 중세 전반을 이해하는데 충분하다 생각된다. 봉건사회와 경제적 기반이 되는 장원제에 성립과 발전, 붕괴 등 전반에 대한 이해는 당시 중세 기사들뿐 아니라 많은 소작인, 부랑인들이 성지탈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를 일깨워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중세인들이 결코 '종교'적인 인간들이 아니었음도 알게 된다.



























 여기에 더해 기존의 관점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십자군 이야기>는 서구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다. 물론, 저자 나름의 노력으로 2권은 이슬람에 조금 더 비중을 두었으나, 이는 살라딘이라는 인물을 설명하기 위한 밑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슬람 쪽 시선은 거의 반영되지 않은 한계를 보완할 필요가 생기는데,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이슬람 진영의 대 십자군 전쟁>, <성찰의 서>등은 새로운 시각을 갖는데 도움을 주는 책으로 여겨진다. 



 물론, 더 좋은 책들이 분명 많겠지만 아는 한도내에서 정리해 본다. 대부분의 역사서가 서구의 관점에서 기록되었긴 하지만, 당대 유럽인의 관점에서 성지 탈환의 의미를 찾는다면, <해방된 예루살렘>이라는 작품이 좋을 듯하다. 다만, 밀턴의 <실락원>에 등장하는 신과 사탄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벌이는 구도로 전개되는 내용은 뚜렷한 선(善) - 악(惡) 구도를 갖추고 있으며, 신의 대리전이라는 양상은 <일리아드>의 재판이라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관심있다면 좋은 책이다.


이제는 좀 더 생생한 현장에 대해 이해를 도울만한 책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십자군 이야기>의 대부분 사건이 전쟁과 전투와 관련한 내용이다. 그래서,당대 무기와 전쟁에 대해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 흥미롭게 읽힌다. 예를 들면, 회전(會戰)과 공성전(攻城戰)에 쓰이는 무기와 전술은 다르고, 유럽의 중무장 기병 중심 전술과 이슬람의 경무장 궁병을 중심으로 한 전술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정리해 둔다면 좋을 것 같다. 


 또한, 영화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은 1187년 하틴(Hattin)전투 이래 예루살렘 공방전까지의 양상을 실감나게 보여주기에 책을 읽기 전 미리 감상하면 책을 보다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십자군 이야기> 2권 후반부를 장식하는 이야기를 영화화했는데, 실제 역사와 다소 차이는 있지만 당대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좋은 영화라 여겨진다. <전쟁의 역사>와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는 십자군 원정의 주요 전투에 대한 전문가의 설명이 담겨있다.


 이미 10년 전에 나온 책을 뒷북으로 읽고서 요란하게 떠든 감이 없진 않지만, <십자군 이야기>만으로 십자군 역사 전반을 읽었다고 보기엔 깊이가 떨어지는 것 같아 페이퍼를 작성해 본다. 이제 <십자군 이야기> 각권을 간략하게나마 리뷰에서 정리해 보도록 하자...


PS.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도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당시 이 작품은 십자군 역사를 조명했다기 보다, 미국과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작품으로 느껴졌다. 이후 개정판이 나왔다고 하나, 읽질 않아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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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8-10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카넷에서 나온 <해방된 예루살렘>도
절판되기 전에 사야 하는 걸까요...

아무래도 시오노 씨의 책은 더 이상
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로마인
이야기>는 정말 죽어라고 읽었었는데
말이죠.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는 정
말 오래 전에 인터넷 연재로 만나게
되었는데, 역사서술 보다는 지적해
주신 대로 새로운 십자군 전쟁에 대한
비판이 주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8-10 15:30   좋아요 1 | URL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사야할 책도 많지만, 능력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서 절판이나 품절되기 전에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출판 즉시 산다면 금방 예산이 거덜나고...ㅜㅜ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시오노 나나미 작가의 책이 인기를 끌었던 것도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이후에는 아무래도 작가의 세계관이 공감받기 힘들기 때문이겠지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당시에는 날카로운 시대비판이 인상적이었지만, 시대가 지난 지금에는 그렇게까지 와닿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작품은 강렬하지만 짧은 생명력을 갖는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님 비가 다시 많이 오네요.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