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말 이후 도시의 부유층 사이에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어린이들의 생명을 지키려는 단호한 의지였다.(p404)... 순환적인 생명 주기에 대한 인식은 서서히 인간 존재에 대한 직선적이고 다면적인 사고로 대체되었다.(p407) <사생활의 역사 3> 中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es, 1914 ~ 1984)는 <아동의 탄생 L'enfant et la vie familiale sous l'ancien regime>과 <사생활의 역사 3 Histoire de la vie prive'e: de la Renaissance aux Lumie'res>을 통해 이전과는 달리 서양에서의 '어린이'라는 개념이 근대에서 태어났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중세(中世 Middle age) 이전까지 아이들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을까.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자기 삶을 실제로 살 수 없는 생명의 전달자에 불과했다. 삶의 유일한 의무란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삶과 인간의 몸에 대한 이런 사고 체계에 의하면, 어린이는 가계도를 이루는 새 가지이자 시간을 초월하여 세세대대 이어진 거대한 집단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어린이는 적어도 부모에게 속하는 것만큼이나 가계에도 속했다. 이런 면에서 어린이는 '공적' 존재였다.(p401) <사생활의 역사 3> 中


 중세까지 개인 삶의 목적이 후손을 얻는데 있었기에, 어린이는 '성인 이전의 미숙한 존재'였다. 때문에,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교육(敎育 education)'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다. 중세 이전의 교육이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이루어졌다면, 근대의 교육은 학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가족과 학교는 함께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아이들을 분리시켰다. 학교는 이제까지는 방만했던 아동기를 점점 더 엄격해진 규율 체제 속에 가두었다. 이 규율 체제는 18 ~ 19세기에 아동기를 완전히 기숙사에 감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p648)... 근대의 가족은 공동체 생활로부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대부분의 시간과 관심사를 박탈했다. 그것은 사생활과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주었다. 가족 구성원들은 감성, 습관 그리고 생활양식에 의해 결합되었다.(p649) <아동의 탄생> 中


 아리에스는 <아동의 탄생>에서 근대에 어린이의 개념이 태어나게 된 이유를 건강과 위생 그리고 교육에 대한 관심 증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이들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비어트리스 웹과 시드니 웹(Beatrice Webb, Sidney Webb)은 <산업민주주의 Industrial Democracy>에서 공교육이 강조된 이유를 경제 측면에서 보다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제조 공정은, 가능한 한 그 대부분이, 오로지 하나의 특수한 업무만을 할 수 있는 소년의 능력으로도 할 수 있도록 세분된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일은 하나의 새로운 불만이다... 그들의 불평은, 그러한 자녀가 어떤 숙련 직업을 배우지 않고, 매년 지극히 단순한 업무만을 계속하고, 그들이 성인 노동자의 보통 임금을 요구하기 시작하자마자 그들의 더욱 젋은 형제들에게 이롭게 해고되는 것을 볼 때, 더욱 커지게 된다. 이러한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교육적 봉사 연합의 요구를 포기한 노동 조합은, 단순한 소년 노동의 제한을 강제하고자 시도해왔다.(p244) <산업민주주의 2> 中


 웹 부부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 투입의 증가로 낮은 숙련도의 노동자 투입이 가능하면서, 산업화 시대에 성인남자의 노동을 여성의 노동으로, 여성의 노동을 보다 어린 자녀의 노동이 대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투입되는 노동의 가격, 임금(賃金 wage)이 낮아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자녀들이 자신의 노동을 대체하며 단순노동자로 전락하는 것을 지켜보던 노동자들은 노동 생산성을 높이려는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 노동조합 운동은 노동자의 임금수준 유지와 함께 다음 세대의 노동 질(質) 향상 수단으로 아동 노동의 금지와 아동 의무 교육를 추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공교육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면서 근대 사회의 특징이 더 명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사진] 공장에서 노동하는 어린이들(출처 :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img_pg.aspx?CNTN_CD=IE001293115&atcd=A0001546930)



 부모들이 새로운 교육 제도를 지지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다. 새로운 교육의 성공 비결은 꾸준히 성장하던 개인주의적 욕구에 전적으로 부합하면서 정신을 연마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가족의 범주 내에서 어린이의 '개인화'는 어린이에게 부과되었던 공적인 교육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었다.(p415) <사생활의 역사 3> 中


 산업화 또는 근대화를 통해 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분화되는 과정에서 세대 구성원들은 가족의 일부가 아닌 개인(個人)으로서 자신을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근대사회에서 개인주의(individualism)의 등장과 함께 어린이 역시 개인으로서 자리잡게 되면서, 이른바 '아동'의 개념이 태어났다는 것이 아리에스의 설명이다. 다만, 이 부분에서 마을 공동체의 붕괴와 함께 여성의 지위 약화가 뒤따라온 것은 또다른 근대화의 비극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교육 체제의 성공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교육 체제와 교육 개념,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근대 초의 가장 커다란 사건은 다시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었다.(p646)... 교육에 대한 이처럼 새로운 관심은 점점 사회 중심부에 자리잡아 갔고, 교육을 완전히 변모시켰다. 가족은 단순히 재산과 이름을 전하기 위한 사적 기능만을 하지는 않게 되었다.(p647) <아동의 탄생> 中


 사실상 아기의 출산과 양육이 서로 분리되면서 순환적 생명 주기 속에서의 여성의 위치와 여성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그때까지는 매우 긴밀하게 결합했던 상호 보완적인 이 두 기능의 분리로 말미암아 여성은 단순한 재생산의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여성에게서 단지 수태와 임신 그리고 출산의 역할만을 기대했다.(p412) <사생활의 역사 3> 中


 이처럼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 <사생활의 역사>는 어린이의 개념이 사회의 변화에서 나온 부산물이었음을 밝힌다. 그렇지만, 급속한 사회 변화에 따라 19세기에는 어린이는 가족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받았으며, 20세기에 이르러서는 가족의 중심으로 그 중요도가 급속하게 바뀌게 되었다. 그 결과 사회화의 수단으로 활용되던 교육 역시 가정의 중심이 된 어린이들의 능력을 일깨우기 위한 목적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엘렌 케이(Ellen K.S. Key, 1849 ~ 1926)의 <어린이의 세기 Das Jahrhundert des Kindes>와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 1870 ~ 1952)의 <어린이의 비밀 Il Segreto dell'infanzi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학교가 공통으로 지향하는 유일한 목적은 다음과 같다. 즉 '붉은 피와 맑은 눈, 넓은 가슴을 지닌 신체적/정신적으로 강하고 기민한 존재, 자신감과 온유함으로 채워진 존재, 미적 형상들에 대한 깨어 있는 시각과 신비스러운 것이 스며들도록 갈망하는 영혼, 이런 경이로운 세상의 즐거움과 고통을 감싸 안은 심장을 지닌 존재'를 양성하는 것이다.(p164) <어린이의 세기> 中


 개성적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창조한다. 태아와 어린이가 인간의 창조자, 즉 인간의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린이의 창조자라는 말은 완전히 옳은 말이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건축가는 어린이다. 어린이가 인간의 아버지다.(p55) <어린이의 비밀> 中


 근대화와 산업화가 가져온 변화를 통해 태어난 '어린이'. 어른의 예비 단계가 아닌 그 자체로 가정과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지만, 사회 약자인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 여겨진다. 어린이 날을 맞아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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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9-05-07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대 교육이 단순히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사회조직에 순응하는 존재로 만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족과 학교는 함께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아이들을 분리시켰다. 학교는 이제까지는 방만했던 아동기를 점점 더 엄격해진 규율 체제 속에 가두었다.‘
‘ 부모들이 새로운 교육 제도를 지지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다. 새로운 교육의 성공 비결은 꾸준히 성장하던 개인주의적 욕구에 전적으로 부합하면서 정신을 연마시켰기 때문이다.‘


겨울호랑이 2019-05-07 08:35   좋아요 1 | URL
저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제가 단편적으로 생각해왔던 사건의 배경에는 여러 사정들이 한데 어울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이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위험성도 함께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우향님 감사합니다!

2019-05-07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원 2020-09-30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만약 아이들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바란다면 캠퍼스를 바꿔야 한다고 떠들면서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는 글입니다. 예전에 살던 곳 근처에 대학교가 있었습니다. 광장을 지나 작은 야산을 품고 있어서 고즈넉하고, 개미들이 바스락 대면서 열을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차근히 바라보다, 적어도 다섯 가지의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캠퍼스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보이는 곳이 아이들이 자라는 학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과 초중등학교의 배움터가 바뀌면, 별과 바람과 죽음과 삶이 고스란히 보이는 장소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될 쯤에는 뭔가 다른 시도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상상하곤 했습니다. 문득 감사의 시절 기운에 인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9-30 22:16   좋아요 0 | URL
어쩌면 시대에 따라 아이들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지위가 바뀌는 상황이 비극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의 필요에 따라 바뀌는 일시적인 정책이 아닌 모두가 동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대 위에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초원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