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되고, 세분되고, 모든 면에서 감시받는 이 공간에서 개인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꼼짝 못하고, 아무리 사소한 움직임이라도 통제되며, 모든 사건들은 기록되고, 끊임없는 기록 작업은 중심부와 주변부를 연결시키고, 권력은 끊임없는 위계질서의 형상으로 완벽하게 행사되고, 개인은 줄곧 기록되고 검사되면서, 생존자, 병자, 사망자로 구별된다.(p306)... 벤담(Bentham)의 '판옵티콘(Panopticon)'은 이러한 조합의 건축적 형태이다.(p309)... 수감자에게는 권력의 자동적인 기능을 보장해 주는 가시성의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상태가 만들어진다. 감시작용에 중단이 있더라도 그 효과는 계속되도록 하고, 권력의 완벽한 상태는 권력행사의 현실성이 점차 약화되도록하고, 건축의 장치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권력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기계장치가 되도록 한다.(p311) <감시와 처벌> 中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 ~ 1984)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 Surveiller et punir>속에서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 ~ 1832)가 구상한 판옵티콘에 대한 구상을 언급하고 있다. 중앙에서 수감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도록 하는 '판옵티콘' 구상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 ~ 1950)의 <1984> 속에서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당(黨)이 만들어낸 '빅 브라더(Big Brother)'와 '텔레스크린'의 모습으로 구현되었다.


1. <1984> 감시의 도구 : 텔레스크린


 층계참을 지날 때마다 엘리베이터 맞은편 벅에 붙은 커다란 얼굴의 포스터가 그를 노려보았다. 그 얼굴은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치 눈동자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 아래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p10) <1984> 中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행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한다. 더욱이 그가 이 금속판의 시계(視界) 안에 들어 있는 한, 그의 일거일동은 다 보이고 들린다. 물론 언제 감시를 받고 있는지 알 수는 없다.(p11) <1984> 中


2. <1984> 통제의 도구 : 신어


 어느 한 순간이라도 기호와 의미작용을 대립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착각이다. 의미작용은 기호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기호의 역(逆)경험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들은 정신에 속한 동일 개념의 두 형태들이며, 이는 마치 종이의 앞면과 뒷면에 손상을 입히지 않은 채로 이 종이를 가위로 자를 수 없는 것과도 같다.(p144) <일반언어학 노트> 中


 프랑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 ~ 1913)는 <일반언어학 노트 Ecrits de linguistique generale>에서 언어로 대표되는 기호와 의미작용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의미작용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소쉬르의 이론을 <1984> 속의 오세아니아 지배계급은 받아들인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신어(新語 Newspeak)를 보급하여 대중들을 사상적으로 제약을 가하면서 체제를 유지하는 정책을 택하고 있다.


 신어의 창안 목적은 영사(英社,  영국사회주의 English Socialism)의 신봉자들에게 걸맞은 세계관과 사고 습성에 대한 표현 수단을 제공함과 동시에 영사이외의 다른 사상(思想)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사상이 언어에 의존하는 한, 신어가 전면적으로 사용되고 구어가 완전히 잊혀지게 되면 이단적 사상, 즉 영사의 원칙에 위배되는 사상은 그야말로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무엇보다 비정통적인 의미를 지닌 낱말을 없애고 한 어휘의 제2차적 의미를 삭제함으로써 가능했다... 개념이 없으면 낱말도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p419) <1984> 中


 신어는 사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줄이기' 위해서 창안된 것인 만큼 이것은 신어의 창안 목적을 간접적으로 달성시키는 역할을 했다.(p420) <1984> 中


  이렇게 만들어진 언어가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가. <1984> 속에서 언어가 표현하는 실재(實在)는 우리가 생각하는 실재가 아니다. '현재 당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이 실재하는 것이며, 현재로부터 과거의 기록도 왜곡되고, 미래는 통제된 언어를 통해 제약되면서 역시 당의 지배 아래로 들어오게 된다. 언어를 통한 시간과 공간의 지배. 그것이 빅 브라더에 의해 통제한 디스토피아(Dystopia)의 모습이다.


 실재란 어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네. 그것도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곧 사라져버릴 개인의 마음속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불멸하는 당의 마음속에 있지. 당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건 무엇이든 다 진실일세. 당의 눈을 통해 보지 않고는 실재를 볼 수 없네.(p347) <1984> 中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모든 기록은 폐기되거나 날조되었고, 책이란 책은 모두 다시 쓰여졌으며, 모든 그림도 다시 그려졌어. 또 모든 동상과 거리와 건물에는 새 이름이 붙었고, 역사적인 날짜마저 모두 새롭게 고쳐졌지. 물론 이런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행해지고 있어. 한 마디로 역사는 정지해 버린 거야. 이젠 당이 항상 옳다고 하는 이 끝없는 현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p220) <1984> 中 


  1940년대 한 지식인이 그린 40여년 후의 미래 모습은 이처럼 음울했고, 우리가 피해야할 미래로 생각되어져 왔다. 시간적으로 1984년이 지나가고,  1980년대 말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1984> 속의 미래는 마치 '빗나간 예언'처럼 생각되어져 왔다. 그렇지만, 최근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우리는  <1984> 속의 통제받는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리게 된다.


 <미션 임파서블 Mission Impossible> 같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기술을 중국 기술자들이 이미 만들어낸 것이다. 새로운 감시도구인 보행인식 시스템은 대상과 50m 떨어진 거리에서도 작동하며, 얼굴을 가려도 아무 소용이 없게 한다.(p36)...중국에 디지털 붐이 형성된 것은 최소 5가지 요소가 상호작용을 일으켰다. 국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한 통제, 수년간 쌓인 대기업의 자산, 데이터 수집과 처리에 대한 정부와 대기업의 적극성, 제조업 기반, 서구권에선 회의론이 커지는 새로운 기술을 열정적으로 환영한 대중이다.(p37) <이코노미 인사이트 Economy Insight> 2018. 4월호. <디지털 레닌주의의 빛과 그림자> 中 



 [사진] 5G와 사물인터넷(출처 : 데이터넷)


  5G로 연결된 사물인터넷을 통해서 일상생활이 연결된다면, 어느 특정한 불온한 개인을 감시하고, 그의 생활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물 인터넷'이 과연 편리한 생활을 가져다 주는 도구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최근 Facebook의 개인정보 유출 스캔들을 보면서, 우리는 편리해진 생활만큼 사생활 보호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1984> 속에는 이처럼 미래에 대한 우울한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에 따라 윈스턴과 줄리아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을 통해서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로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소설 속에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큰 그림은 '우울한 미래'가 되겠지만, 독자들이 가진 여러 배경 지식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점과 인류(人類)의 영원한 과제인 '집단-개인'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이 책은 고전(古典)이라 여겨진다.


 PS.<1984>를 읽은 후 드는 의문. 반당(反黨) 단체의 리더인 '골드스타인'이라는 존재 또한 당이 만들어낸 실재(實在)라는 이름의 허상(虛像)은 아닐런지... 골드스타인 속에서 우리 나라의 북풍(北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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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4-23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테크닉의 발전이 과연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네요.

페이스북 사태는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바로 광탈해 버렸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4-23 15:51   좋아요 1 | URL
보이지 않지만 이미 우리를 둘러싼 무수히 많은 전자파들이 마치 오랏줄처럼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는 요즘입니다. 저는 아직 페이스북 탈퇴는 하지 않았습니다만,페이스북만의 문제일까요... 이제는 제도에 대한 규제가 다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8-04-23 15: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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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5: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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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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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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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0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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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0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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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08: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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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08: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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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23: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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