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나리 가지에 눈 밑을 긁혔다. 노랗게 봄이 할퀴니 차마 성을 낼 수가 없었다. 꽃이 피었으니 바람이 불 것이다.

 

 

 

2

 

요 며칠, 컨디션이 무진장 좋지 않았다. 코로나에 걸린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일찍 퇴근해서 8시간 정도 자고 났더니 많이 괜찮아졌다. 그냥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져서 근무 시간조차 견디지 못하는 약골이 된 모양. 허허…….

 

 

 

3


봄을 담는 빈 병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창밖이 너무 아름다워 지나가는 시간이 아깝다. 한 움큼만 병에 담아 집에 가져갈 수 있었으면. 소분하여 조용히 방 안에 봄을 풀어놓거나, 아끼는 사람에게 봄 한 병 선물하면 얼마나 멋질까. 꽃은 꽃대로 꽃의 일을 하는데 사람은 사람대로 사람의 일만 하느라 꽃은 사람이 그립고 사람은 꽃이 그리운 봄이다.

 

벚꽃이 한창일 석촌호수는 막아 놓았다고.

 

 

 

4

 

피곤하나 안 피곤하나 한결같이 코를 고는 때문에 깊은 잠을 잘 수 없어서 컨디션이 곱빼기로 나쁜 듯하다. 이어플러그를 하고 자보지만 그런다고 안 들리는 것도 아닌 데다가, 뒤척이다 보면 하나씩 빠지는데 너무 어두운 새벽이라 빠진 녀석을 찾아내는 것은 요행에 가깝다. 귀에 남아 있는 녀석은 땡큐긴 한데, 밤새 꽂아놓고 자면 아침에 귀가 좀 아프다.

 

같이 살면서 느끼는 건데, 우리는 그냥 같이 살며 생기는 불편함이나 꼴보기 싫음 같은 감정들을 참고 넘어갈 만큼 오랜 친구라서 같이 사는 것이지, 같이 살기에 충분하게 잘 맞는 사이라서 같이 사는 것은 아니다. 진짜 얘는 나랑 안 맞긴 안 맞다.

 

 

 

5

 

저녁에도 외투가 필요 없으니 비로소 봄이라 하겠는데, 오늘 낮은 여름 같았다. 벚꽃도 더워서 땀처럼 떨어지겠다. 벚나무가 헐벗기 전에 어딘가로 가서 파도 소리라도 듣고 오고 싶은데, 마음 같지 않다.

 

 

 

6

 

이 야근을 하고 돌아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다. 그리고 지금 이 문장을 보더니 방으로 들어가며 궁시렁댄다. 알라딘 한번 들어가 봐야 되겠네. 그러나 그가 들어오지 않을 것을 나는 안다. 코로나가 터지고 난 이후 하루에 한두 번꼴로,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부터 씻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삼십 번쯤 말하고 나니까 비로소 손씻기라는 걸 시작했는데, 오늘은 어떻게 하는지 보겠다. 아직 낌새가 없다.

 

 

 

7

 

봄밤과 가을밤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syo가 터득한 바는 간단하다. 어쩐지 따뜻한데 싶으면 봄밤이고 어쩐지 시원한데 싶으면 가을밤이다. 아직은 그래도 좀 춥다 싶으면 봄밤이고 아직은 그래도 좀 덥다 싶으면 가을밤이다. 봄밤을 봄밤으로 만드는 것은 어젯밤이 겨울밤이었다는 사실이고, 가을밤 역시 여름밤이 지나간 덕분으로 가을밤이 된다.

 

집단 내에서 사람의 정체성도 그런 식이다. 난 자리에 든 사람은 여러 특성 중, 난 사람의 정체성과 보색을 이루는 부분을 과평가 받게 된다.

 

봄이 겨울의 끝이나 여름의 시작이 아닌 봄 그 자체로 사랑받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꽃도 피고 향기도 퍼지도록 봄은 최선을 다해 봄 색깔을 보여야 한다.

 

 

 

8

 

이 손을 씼었다. 참 다행이다.

 

  

--- 읽은 ---

33. 나는 무조건 합격하는 공부만 한다 / 이운규 : 81 ~ 304


: 나는 나보다 잘난 사람이 좋다. 다종한 어려움을 너끈히(혹은 지독한 노력으로) 돌파하고 나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들을 해내는 이들 앞에서 종종 작아지고, 그들의 거드름이나 라떼는 말이야 어택에도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그들이 성공을 일구기 위해 만들거나 채택한 방법론을 수용하는 일은 또 별개의 문제다. 박수치되 흉내내지 않는 것. 하지만 그런 식이면 대체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뭘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면서. 해보지 않아서 나는 이 책의 가치를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도 박수나 실컷 치고 말았다. , 짝짝짝.

 

34.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 김충규 : 55 ~ 106


: 다른 사람이 쓴 시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는데, 그런 생각이 점차로 흔들리는 요즘이다. 남의 시는 배울 수 없는 것 같다. 그저 흉내 낼 수 있을 뿐.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 세상의 장점은, 남의 시를 흉내 내어 글을 써도 사람들이 이게 흉낸지 글인지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가도,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다 싶어서 시를 읽는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싶다가도, 의미를 아예 모르겠는 건 또 아니다 보니.

  

 

--- 읽는 ---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 정희진 : 96 ~ 177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이현우 : 173 ~ 300

칸트 철학에의 초대 / 한자경 : 58 ~ 137

마르크스 캐피탈 리딩 인트로 / 에르네스트 만델 : ~ 40

파이썬 코딩 도장 / 남재윤 : ~ 80

라캉 대 라캉 / 무까이 마사아끼 :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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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01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와 함께 산다고 해서 누구나 다 거기서 뭔가를 깨닫지는 않겠죠. 저는 오늘 이 페이퍼를 읽고서 제가 쇼님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았어요. 대체로 제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가진 바로 그 특성이 쇼님에게도 있다는걸요. 가만있지 않는다는 것. 그건 몸을 가만히 둔다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비롯하여 주변의 모든 것들의 변화로부터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한다는 거에요. 친구와 동거하면서 얻게 되는 작은 깨달음 같은거 말예요. 아 우리는 잘 안맞는구나 그런데 우리는 오래된 친구라서 이나마 할 수 있구나, 같은 것들. 저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게 필요하지만 특히나 이런 관계에서 오는 깨달음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제 일찍 자려고 드러누웠는데 오후에 마신 커피탓인지 잠이 오질 않아서 지금 너무 피곤해요. 수요일 잘 보냅시다, 쇼님.

syo 2020-04-01 20:28   좋아요 0 | URL
애정의 관계보다 애증의 관계가 더 많은 생각거리를 남기는 법이지요... 어떤 불편함이나 부적합 같은 것들을 깨닫게 되나 마나 어쨌든 이제는 낙장불입인 관계 같은 것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더라구요.

봄이 가기 전에 코로나가 가서 봄이랑 어우렁더우렁 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쟝쟝 2020-04-01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을 한사발 떠가지고 막 휙휙 저어서 카푸치노 거품 내듯 해서 한모금 두모금 성질에 안맞아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은 글이여라~ 즐거운 수요일 되소서!

syo 2020-04-01 20:28   좋아요 0 | URL
역시 쟝쟝님은 벌컥벌컥이죠. 장비익덕 스타일....

공쟝쟝 2020-04-01 21:50   좋아요 1 | URL
장비... .... ㅋㅋㅋ 봄에 취한다~~|

비연 2020-04-01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출근하고부터 너무 무리한다 싶었는데... 그래도 며칠 쉬어 괜챦다 하니 다행입니다.
가족 이외에 타인과 동거를 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그래서 앞으로도 함께 할 사람이 혹시나 있다면 두려움이 엄습하곤 하는데 혼자 사는 생활에 익숙해져서 누군가의 존재, 행동, 이런 것들을 견딜 수 있을까 싶어서요. 쇼님 글 보니 다시한번 그런 생활은 어떤 것일까 싶네요. 바쁜 와중에도 올리는 다정한 쇼님 글을 보며 수요일 아침, 따뜻한 커피와 함께 조금은 더 다정해진 마음으로 수요일을 시작해봅니다.

syo 2020-04-01 20:30   좋아요 0 | URL
몸이 일에 익숙해질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하는 통증들과 싸우는 중입니다. 금방 나아지겠지요.

여유만 되면 혼자 사는 것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2020-04-01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01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4-0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 글 읽으니 정말 봄이 오기는 오나봐요. 저희 집앞에도 벚꽃이 피었던데 그 곳에는 개나리가 만발하나보네요.
많이 힘드시겠지만 체력 보강 야무지게 잘 하시어 나라일에 힘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syo 2020-04-01 20:33   좋아요 0 | URL
봄만 먹고 배부르면 좋겠어요. 봄살도 찌고.... 어쨌든 얼른 컨디션 100 되어서 나라일 씹어삼킬게요. 감사합니다^-^

추풍오장원 2020-04-01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나19 덕에 야근은 좀 덜 하시지 않는지요? 건강관리 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라캉 대 라캉 저도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년에 읽었는데 라캉 재진입에 큰 도움을 준 책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합격 어쩌구 같은 책은 저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차마 그런짓거리는 못하겠습니다.
합격수기류 책에 나오는 공부 비법은 합격한 ‘후‘에 발명해낸 합격방법이기 때문이지요...

syo 2020-04-01 20:35   좋아요 0 | URL
일 자체가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보니 자기관리 실패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가 봐요. 이래서 아마는 서럽다....

스타브로긴님도 전수할 만한 꿀팁 있으시면 대방출하시죠. 어차피 저한테는 물 건너 간 이야기지만ㅎㅎㅎ

블랙겟타 2020-04-03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는 누구와 같이 살아본 적은 없었었는데요. 대학생때 기숙사에 1년 있었지만 그건 또 다르니깐요 ^^;; 함께 산다는 것.. 쉬운건 아니네요.
 

겠다면

 

 

1

 

은둔공무원에게도 소식이 들어오는 걸 보면, 요즘 츄렌드는 <리뷰대회>인 모양이다. 지복의 성자리뷰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읽는 중이었는데 갑작스런 일폭탄 낙하에 그냥 궤멸되었다. 서재이웃님들 쓰신 걸 훑어보았는데, 마지막까지 읽고 썼다 한들 뭐가 되진 않았겠구나 싶다.

 

 

 

2

 

금주의 이 소식.

 

뒤늦게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빠진 은 어제 야심한 밤, 정확히 말하면 오늘 새벽 1230syo가 잠자리에 들고자 컴퓨터 전원을 끄고 일어날 때, 맞은편에 고고히 앉아 사랑의 불시착6편을 보는 중이었다. syo는 고개를 젓고, 잠시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준 다음,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워 한자경 선생님의 칸트 책을 펼쳐 들었다. 두 페이지쯤 봤을까, “칸트에 따르면 초월적 구상력의 작용은 사유형식인 범주에 따라 직관형식인 시간을 규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통일성에 기반한 범주에 따라 시간 형식을 규정함으로써 초월적 도식을 형성하는 것이 초월적 구상력의 작용이다.”라는 대목을 만났다. ? 뭐지? ? 칸트는 왜 저랬지? 누가 칸트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그리고 한자경 선생님은 저렇게 말하실 거면서 뭘 또 굳이 다시 말했? ? 한 선생님한테는 또 누가 잘못했지? 난 아닌데??

 

칸트에 따르면 그렇다기에 칸트에 따랐는데 눈떠보니 어쩐지 아침이었다. 놀라웠다. 역시 칸트. 같은 하늘 아래 숨 쉴 수 없는 두 존재, 칸트와 불면.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왼쪽을 쳐다보니 의 매트리스 위 이 있어야 할 자리에 허공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얘가 나보다 일찍 일어났다고? syo가 토끼눈(크기/모양)을 하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더니 토끼눈(색깔)을 한 이 헤헤 웃으며 스리슬쩍 들어와 지 자리에 눕는다. , 니 설마……. 부끄러움은 아는지, 이불을 뒤집어 쓰며 이 말한다.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어…….

 

12편까지 봤다는 후문이다.



오늘날 인간사가 한심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물론 이는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과거를 슬쩍 돌이켜보기만 해도 인간사가 늘 한심한 상태로 흘러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개인으로서든 조직사회의 구성원으로서든 인간존재들이 감당해야 했던 과중한 양의 온갖 곤란함과 비참함은처음부터 삶이 극도로 믿기 힘든 방식으로(나로서는 감히 어리석은 방식이라고 말하고 싶은조직될 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_ 카를로 M. 치폴라,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법칙』

 

 

 

3

 

코로나가 왔는데도 봄은 오고, 어쩐지 이번 봄은 작년 봄보다 날씨가 좋고 대기 상태도 괜찮은 것 같아서 기묘하게 착잡하다. 주말에는 그래도 여유가 좀 있어서 어딜 가려면 갈 수는 있는데 갈 수가 없으니 갈 데까지 간 상황인지 오갈 데 없는 상황인지 갈피를 못 잡는 중이다. 산의 몸통은 하루 지나면 하루만큼 더 초록인데, 벚꽃 축제는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얼마 안 가 봄 코트도 더울 것이다.


 

 

4



 잠이 참 많은 당신이지 마부가 석탄 같은 어둠을 마차에 싣고

 뚜벅뚜벅 서쪽으로 사라지는 관경을 보지 못하지만

 꼭 봐야 할 건 아니지

 잠자면서 잠꼬대를 종달새처럼 지저귈 때

 바람 매운 날 이파리와 이파리가 서로 입술을 부비듯

 한껏 내 입술도 부풀지

 더 깊은 잠을 자도 돼요 당신

김충규잠이 참 많은 당신이지부분 

 

사랑하는 사람의 잠든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면 좋았다. 그렇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매일 보고 싶은 얼굴을 하고 사람은 잠이 들었고, 그 얼굴을 아마 나는 매일 볼 수는 없는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머리를 쓸어주거나, 콧대를 천천히 훑어보거나, 그러다가 몰래 입술을 훔치거나 하면서, 한 손은 단정한 리듬으로 잠든 이의 가슴을 톡톡 두드려주면서, 그렇게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지겹지 않은 사람을 사랑해서 좋았다. 사람이 고된 낮의 흉터처럼 사나운 잠을 잘 때도, 펑펑 쏟은 눈물로 축축한 베개 위에서 멍든 꿈을 헤매고 있을 때도, 나는 나대로 어떤 다짐을 하거나 계획을 세우거나 하면서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었지만, 슬프면서 좋았다. 아리면서도 좋았다.

 

나는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의 잠든 얼굴을 사랑하는 취향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잠의 형태가 어떻든, 내가 만질 수 있는 거리에서 만질 수 있는 몸을 하고 만질 수 있는 꿈을 꾸며 자는 사람은 사랑스럽다.

 

그런 밤이 매일 밤일 필요는 없겠지만,

가끔씩은 곁에 와 깊은 잠을 자 주는 사람이 있겠다면,

 

 

 

 

--- 읽은 ---


32. 바람의 무늬 / 강미옥 : ~ 160

: 시가 있는 사진과 사진이 있는 시는 자기가 모든 이야기를 다 해버리겠다고 다투면 안 된다. 걔네들은 각자 자기에게 맡겨진 일, 자기가 잘하는 일들에 집중해야 하고 나머지 것들은 그냥 서로에게 맡기고 비워야 한다. 그 신묘한 배합 비율을 맞추는 것은 어렵고, 시를 잘 쓰거나 사진을 잘 찍는 것 외의 추가적인 노고를 투입해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syo는 아직 모르겠다.

 

 

--- 읽는 ---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 정희진 : ~ 96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이현우 : 79 ~ 172

칸트 철학에의 초대 / 한자경 : ~58

지복의 성자 / 아룬다티 로이

나는 무조건 합격하는 공부만 한다 / 이윤규 : ~ 81

 

 

--- 갖춘 ---

마르크스 캐피탈 리딩 인트로 / 에르네스트 만델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 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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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3-21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엔 스요님 취직은 언제하실까? 뭐 워낙에 추직하기가 어려운 시대니 말입니다.
그런데 취직하셨으니 좋은 느낌이어야 하는데 왜 자꾸 짠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ㅎ
저는 리뷰대회 참가는 접은지 오래 됐습니다. 아웃사이더 기질도 있고,
되면 되는 거고 말면 마는 거지 쿨해야 하는데 그게 좀 안 되더라구요.
발표 때까지 심장이 쫄깃거려서 편치가 않더군요.
참가자들이 일순간 나의 적 같기도하고. 이렇게 알흠다운 사람을 적으로 돌려야 하나 싶기도 하고.ㅎㅎ
암튼 <사랑의 불시착>은 괜찮은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전 <스토브리그> 야구 드라마 어제 겨우 다 봤는데 괜찮더군요.
바쁜 중에도 스요님 책 사랑은 여전하시군요.^^

syo 2020-03-23 07:40   좋아요 0 | URL
직장인이 기본적으로 짠한 게 있잖아요.. 백수도 짠하고 직장인도 짠하고 아 짠한 세상ㅠ_ㅜ
스토브리그 저도 봤어요 ㅎㅎㅎ 요즘 드라마들 참 재밌어.... 책 안 봐도 되겠어요(?)

봄밤 2020-03-21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쇼님의 글은 정말 좋네요. 때로는 제가 읽은 어떤 책보다도 좋아요. 글쓰는 직업을 생각해본 적은 없으신가요?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남기고 싶은 까닭인가요? 궁금하네요.

syo 2020-03-23 07:4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가끔 등장하셔서 이렇게 과찬 댓글 달아주시고 총총총 사라지시는 especially_you님 ㅎㅎ
십만 년 전쯤에 글쓰는 직업을 꿈꾸긴 했었는데, 오만 년 전에 포기했답니다 ㅎ

봄밤 2020-03-21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또 궁금한 게 있어요. 쇼님은 이런 리뷰를 쓰는데 얼마나 시간을 쓰세요?

syo 2020-03-23 07:43   좋아요 0 | URL
우선, 이 글은 리뷰도 뭣도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이 함량 이 분량의 글을 쓰는데 두 시간 가까이 소진했답니다....
왜 글쓰는 직업을 포기했는지 아시겠죠? ㅎㅎㅎ

봄밤 2020-03-24 00:01   좋아요 0 | URL
역시나 꿈꾸셨던 적이 있었군요! ㅎㅎ 이렇게라도 쇼님의 글을 읽을 수 있으니 좋네요 :D 평생 써주세요 재밌어요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0-03-23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감은 눈의 사람은 곁에 있어도 부재한 거 같아 쓸쓸해요. 눈 똥그랗게 뜨고 마주 보는 게 좋아라. 삼이님도 집중력이 어마어마하네요. 그 집중력을 공부하는데 쓰자...저는 드라마 꾸준히 보는 것도 되게 신기함...한 편으로 완결되지 않고 쪼개진 이야기 기다리는 게 너무 감질나고 늘어지는 게 답답해서 잘 못 봐요 ㅎㅎ

syo 2020-03-23 07:46   좋아요 1 | URL
눈 감아도 사랑 눈 떠도 사랑이죠.... 반님은 내가 보고 있는 것만으로는 쓸쓸하시구나. 나를 봐 줘야 쓸쓸하지 않은 타입!!
삼은 원래 끈기가 있는 편입니다. 한참 공부할 때는 한달 내내 하루 넷타임 15시간도 찍고 그러더라구요... 징그럽다.

추풍오장원 2020-03-23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격 어쩌구 하는 책은 굳이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인가 싶네요. 책이라고 부를수나 있을지.. 그책 논리라면 반년만에 고시패스한사람들이 부지기수일겁니다.

syo 2020-03-23 22:52   좋아요 1 | URL
누구신가 했더니 닉네임을 바꾸셨네요 ㅎㅎㅎㅎ
반년 아니라 반만년이더라도 저한테 고시 붙은 사람은 자체로 배울 바 있는 신기한 사람들이랍니다.
이런 류의 책들이 다 그렇듯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뭐, 아무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으하하하..
 


분노와 분노

 

 

1

 

분노의 포도알갱이는 일터 생활 한 달 만에 도통 분노를 모르는 호구알갱이로 변신, 다정한 목소리 다감한 말투의 욕받이로 활동하고 있다. 어디 어디 구는 노인들 마스크 준다는데 왜 우리는 안 주냐 이 오라질 공무원 놈들아 니들이 다 해처먹냐! 하옵시면 syo로서는 그저 네, 선생님 불편하게 해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저희도 관내 어르신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바, 백방으로 마스크를 구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으나 아직 저희의 정성이 하늘에 닿지는 못하였나 봅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사오니 부디 진노를 가라앉히시고 또한 최대한 외출은 삼가시고 부득이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시고 기침을 할 때는 소매로 가리시고 귀가하시면 우선 손을 꼭 씻으시고 씻으실 땐 30초 이상 꼼꼼하게 씻으시고 이러시고 저러시고할 뿐인데 그쯤 하면 전화는 뚝 끊긴다.

 

1.

 

 

 

2

 

며칠 전 일인데, 이 글을 쓰겠다고 다시 생각해보니 방금 터진 사건처럼 생생하게 빡친다.

 

야근을 마치고 10시 반쯤, 집에 돌아와 현관을 열였더니 김치볶음밥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은 방에 드러누워 있고 싱크대 안에는 저놈이 쳐드신 요리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보아하니 놈은 칼퇴를 했고, 배가 고파 한 끼 대충 찌끄려 봤고, 먹고 나니 배부르고 귀찮아서 그대로 드러누웠고,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퇴근했고, 시간은 10시 반이고, 뭐 그런 상황 같았다. 냄새나니까 니가 먹은 거 빨리 치우라고 요청했으나, , 피곤하다 이ㅈㄹ을 하며 꼼짝 않는다. 방금 일 마치고 먼 길 밟아 집에 돌아온 사람한테. 10분 간격으로 세 번을 더 닦달해도 요지부동이다. 우물도 목마른 놈이 파는 거라고, 결국은 저놈이 먹은 걸 내가 치우기 시작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지 안방에서 기척이 나는 것 같더니, 대충 설거지를 절반쯤 마쳤을 때, 그러니까 이제는 낙장불입이라 저놈이 내가 할게 하며 나서도 그냥 syo가 마저 하는 게 나은 지점쯤에 도달했을 때, 그제야 슬쩍 방에서 기어나오더니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하고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본다. 꺼지라고, 몸 편한 데다 마음까지 편하고 싶어서 양심 가진 척 개수작부리지 말고, 그냥 얼른 들어가서 다시 아까처럼 보기 싫게 드러 누워라, 이 휴먼쓰레기야- 하고 쏟아부었으나 그런다고 딱히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잘 생각해보니, 이건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딱 그 설정이었다. 하나, 나는 결코 쟤보다 능력이 못하지 않은데 어떤 이유에선가 쟤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 , 게다가 나는 쟤보다 일을 더 많이 하므로 대체로 퇴근이 더 늦다. ,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나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 , 심지어 저놈시끼가 먹고 던져놓은 것까지 치워야 한다.

 

, 나는 남자고, 게다가 결혼도 생각이 없다 보니 이런 진부하다 못해 진저리가 나는 역학 관계로부터 이중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심이었다. 사람 둘 같이 살면, 그리고 그 안에 남자가 1명이라도 있으면, 이런 일은 어디서나 벌어지고 반드시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법이었던 것이었다…….

 

 

 

3



무임 여성노동에 의해 그리고 노예들계약직 노동자들식민지 농민들과 같은 무임 노동자들에 의해 주로 수행된삶의 일반적 생산이나 자급적 생산이, “자본주의적 생산노동이 구축될 수 있고 또 착취될 수 있는 영속적 기초를 구성한다는 것이 나의 주요논지다.

마리아 미즈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26

 

하나. 이 책을 한 줄로 줄이면 저것.

 

. 이 책을 읽기 위해 마르크스만큼 푸코도 필요한 듯. 푸코는 짱이다. 적을 불사르기 위해 자기 몸에도 기꺼이 불을 붙이는 남자. 20세기 대머리 중 가장 총명한 남자.

 

. 틈틈이 읽고 있지만 번역 상태가 기름바른 듯 매끄럽지는 않은 듯.

 

. 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 읽는 ---

2020 예산회계실무 기본편 / 강인옥 외 : ~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마리아 미즈 : ~ 132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 김충규 : ~ 55

자본을 넘어선 자본 / 이진경 : ~ 64

로마사론 / 니콜로 마키아벨리 : ~ 41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이현우 :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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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3-14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신 와중에도 알뜰하게 읽고 계시네요. 항상 무엇이든 무얼 하시든 응원합니다.

syo 2020-03-15 07:3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반님은 언제나 syo편!

비연 2020-03-1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코에 대해 20세기 대머리 중 가장 총명한 남자라 정의한 대목에서 와인 뿜음 ㅎㅎ;;

syo 2020-03-15 07:38   좋아요 1 | URL
안 되고 싶지만 기왕 대머리가 되고 말 거라면 푸코처럼.....

다락방 2020-03-1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1세기 대머리 중에서는 제이슨 스태덤이 가장 근사하지요? 🙄

syo 2020-03-15 07:3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아는 다락방님 ㅎ

cyrus 2020-03-15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 받이가 된 채 일하시느라 고생하시네요. 잘 챙겨먹고 건강하세요. 그런데 같이 사는 친구 때문에 스트레스 더 생길 것 같은데요... ^^;;

syo 2020-03-15 07:3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이 새끼 이런 놈인 거 다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당할 때마다 딥빡인 건 어쩔 수가 없네요...

하이드 2020-03-15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 저 그린듯한 예는 뭐죠? 제 보살동생 말을 빌리자면, 쇼님이 공부하는 페미니즘에 현실경험을 녹여준 귀인이시네요. ㅎㅎ 한참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곳에서 첫 발을 떼셔서 배로 힘드실 것 같습니다. 다만, 앞에 빡세게 하면, 시간은 지나고 나중에 라떼는 말이야~ 하며 좀 편해집니다. 몸건강 마음건강 늘 유의하시고 모든 스트레스 풀 수 있는 좋은 책들이 함께 하길 바라요!

syo 2020-03-15 07:41   좋아요 0 | URL
초반에 빡세게 시작하면 나중에 나아질 거라는 주변의 말들만 믿고 꿋꿋이 하루하루 해 나가는 날들입니다.
사실 상대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빡센 게 아닐지도 모르는데, 남들 다 이 정도는 하는건데, 그냥 내가 일에 면역이 없어서 이러는 걸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도 요즘 하긴 합니다 ㅎㅎ

하이드님 감사합니다^-^

stella.K 2020-03-15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거 힘들어서 어쩝니까? 이게 웬 난린지 모르겠습니다.
약국은 약국대로 물량이 없으니 나중엔 낫들고 죽인다고 협박해
아예 약국문을 닫는 사례도 있다더군요.
약사한테도 이러는데 공무원은 더 호구로 알겠죠.
스요님처럼 처신하는 게 그나마 낫지 싶기도한데 파김치되서 돌아오면
三이 씨가 도와주질 않는군요. 아무래도 집안 일은 역할 분담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 풀만한 좋아하는 일이나 맛난 거라도 먹고 힘 내십쇼!!!!

syo 2020-03-21 14:10   좋아요 0 | URL
마스크는 좀 구하셨어요?
요즘은 마스크가 많으면 부자된 느낌입니다 ㅎㅎㅎ

스텔라님도 이럴 때일수록 드시는 걸 잘 드셔야 합니다.
사람 많은 데는 어지간하면 피하시구요...
마스크 하시구요....
손소독.... ㅋㅋㅋㅋㅋㅋㅋ 공무원 습관.

2020-03-20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1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옥상에서

 

 

1

 

달그림자 머리에 이고 뚜벅뚜벅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오며 왼편으로 마을버스 몇 대를 스쳐 보내고 나면 부지런히 숨이 차오르다가 마침내 잊어야 할 것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도 가팔라지는 호흡에 젖어 마음 뒤꼍으로 뿌옇게 물러나고 나는 그저 시익시익 숨 고르기만도 바빠지는데, 바로 그때쯤 바람막이 지퍼를 내리고 이마에 맺힌 땀을 한 번 훔치면 오른쪽으로 슬며시 나타나는 좁은 골목 속에 우리 집이 있다-

 

우리 집 약도를 이렇게 그릴 거라면 우선 달빛을 짜서 잉크를 만들어야겠다. 나는 요즘도 이 오르막의 밤 얼굴을 만나는 중이다.

  



 흐르는 별들의 음악이 들릴 때까지 기다리겠다


 사라지는 별의 꼬리 쪽으로

 한 뼘 더 가까워지는 어둠 사이

 귀가 아프도록아름다운 별의 사운드 트랙

이은규별의 사운드 트랙부분

 

 

 

2

 

집의 등 뒤로 산이 있다. 산을 휘감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남한산성에 닿는다고 한다. 옅은 바람이 불 때마다 밤의 앞머리를 빗질하는 나무들이 늘어서서, 옥상에 오르면 나는 바람이 불어줄 때까지 하염없이 나무들을 바라보고 마주 선다. 흔들흔들 좌우로 몸을 흔들며 선다. 나무들이 보면 바람이 부는 줄 알 것이다. 지금 바람이 불어서 저기 저 키 작은 인간이 흔들리고 있는 줄 알 것이다.

 

바람이 불어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늘 흔들리는 것이 있는 줄 모를 것이다.

 


가끔은 나 자신과도 헤어지고 싶다과거의 나내 타고난 것이 원망스럽다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자신과 헤어질 수는 없다그리고 아무도 없이 살아갈 수도 없다어차피 날씨가 추워지면시련이 닥치면누군가는 떠나갈 거라 해도 늘 추위만 생각하며 살 수는 없다아니 추위가 와도 내 곁에 있어줄 사람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누군가와는 함께 지내야 한다.

서한겸여자와 소인배가 논어를 읽는다고

 

 


3

 

봄이 오고 비가 오고 휴일도 오면, 오후에 옥상에 올라 비를 맞아보고 싶어졌다. 한번쯤은.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린다고들 해서 언젠가부터 나는 비를 맞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감기에 걸릴까 봐 겁나서는 아니었고,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린다는 데도 굳이 비를 맞는 이상한 사람이 될까 봐 겁이 나서였다. 그러니까 나는 비를 맞지 않는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상한 사람이 될까 봐 겁내는 사람이 된 것이다.

 

기억하는바,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비를 맞아서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

 



사람은 점차로 자기 운명의 모습과 뒤섞여 닮아 간다따라서 길게 보면 사람은 자신의 상황들 자체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신의 글

 

 

 

4

 

욕창을 막기 위해 몸을 굴리는 것과 비슷한 심정으로, 시집을/시집이라도/시집만큼은 읽어야겠다. 모니터 안에 깔린 하얀 백지가 요즘 좀 광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바쁘고 새로 익힐 것이 많아도, syo는 그런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인간이 되어서는 syo가 안 된다. 책 밖에 나 있는 수많은 길 가운데 한 길을 갈 것이었다면, 그냥 지나쳐온 더 넓고 잘 닦여진 그 많은 길 가운데 하나를 골라 올라탔었어야지.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잘 참다가 조급해지고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그게 쉬운 일이었다면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빈센트 반 고흐반 고흐영혼의 편지 1


늘 더 잘 쓰고 싶어요제가 가지고 있는 문장이라든지어떤 평범한 것들을 더 윤을 내서 빛나게 해야 하는데더 잘해야 하는데그런 생각을 계속해요그렇지만 잘하지는 못하고현상을 유지하는 것도 힘에 부쳐서 늘 헉헉거려요더 잘 쓰고 싶고예전에 안 썼던 것도 써보고 싶고요한데 늘 시간에 쫓기고 마감에 쫓기느라.

최은영소설가의 마음


우리가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을 비난하며 스스로 기쁨을 망쳐놓고 있다면 이런 아름다운 오후천상의 오후는 생겨나지 않는다자신의 가련한 처지나 잘못한 행동 따위를 생각한다면 나를 찾아온 이런 영예로운 나날에서 기쁨을 누리기 어려워진다젊음의 시절이 지나고 나면 나 자신에 대한 지식이 나의 만족을 망쳐놓는 불순물이 되기 쉽다나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온전히 끊을 수만 있다면나의 나날들이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소로의 일기

 

 

--- 갖춘 ---


바람의 무늬 / 강미옥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이현우

타인의 얼굴 / 강영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마리아 미즈

어떤 양형 이유 / 박주영

나는 무조건 합격하는 공부만 한다 / 이윤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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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0-03-08 0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 달빛을 짜서 만든 잉크는 크림수프처럼 걸쭉한가요?^^

2. 바람이 불어서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나를 흔드는 거, 바람이 불지 않아도 흔들리는 건 내가 바람을 흔드는 거

3. 물속에 발을 담그면 다리가 굵어보이듯이 세상에 나를 담그면 내가 보는 나와 실제의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조금씩 다르겠죠. 그 중 어떤 나로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선택의 문제에 접근하면 생각만큼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아집니다.

4. 직장에 다니면서 책읽고 글쓰기를 놓지 않는다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고 자주 생각합니다. 육신은 일의 바다에 푹 담가져 노곤한데, 정신은 삭막하고 점점 텅 비어버리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쉽게 떨쳐버리지도 못하는 지긋지긋한 관절염에 걸린 인간에 빙의하여 삐그덕거리며 흔들려요. ‘시집을/시집이라도/시집만큼은‘의 어미에 담긴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아서 짧은 댓글을 남깁니다.

5. syo님의 글은 햇살같은 마음에서도 비를 맞는 마음에서도 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에서도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풍경을 묘사하는 글에 감성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따라가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syo님만의 독보적인 아우라가 뿜뿜~^^*

syo 2020-03-14 21:50   좋아요 1 | URL
나비종님 오랜만입니다.
징징대느라 막 쓴 글에 넘치게 좋은 말씀 하나하나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일주일만에 와 보니, 막상 제가 뭘 썼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ㅎㅎㅎ

당최 알라딘 들락거릴 짬이 안 나서 슬프네요. 가끔 나비종님 시 읽고 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반유행열반인 2020-03-08 0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요일에 비가 온대요. 옥상의 나무가 비를 맞겠구나.

syo 2020-03-14 21:52   좋아요 1 | URL
으아... 그 화요일보다 다음 주 화요일이 더 가까운 시점에서야 댓글을 달게 되네요...
다음 주 화요일에는 뭐가 온대요??
아니다, 이렇게 여쭤봐 놓고 또 다음주 토요일에나 확인하게 되려나.....

비연 2020-03-08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열심히 읽는 쇼님. 멋지심~

syo 2020-03-14 21:53   좋아요 0 | URL
일하며 읽으며 치고 나가는 더덕단 여러분 존경합니다 ㅠㅠ
 


도둑눈

 

 

1

 

낮에 잠깐 눈이 나렸는데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을 전했더니 그 사람이 말했다. 입술과 입술 사이의 거리가 이십 킬로미터라고. 말은 아름다움과 슬픔 사이 어디쯤 와서 꽂혔다. 잠시 가슴을 매만졌고, 밤이었고, 그사이 눈이 그쳤다.

 

 


2

 

마르크스라는 활자를 읽지 못한 기간이 이렇게까지 오래였던 경우는 처음인 듯하다. 더덕단 미션 도서는 1월 것도 읽지 못했는데 2월 지나 벌써 3월이다. 알라딘은 일주일에 한 번쯤 들어오는 것 같은데, 쓰지도 못하는 마당에 괜히 읽느라 기웃거리다보면 이런 스스로의 처지가 더 불쌍하게 여겨질까봐 일부러 발걸음을 안하는 중. 그래도 가끔 와서 읽보면 syo 하나 없어도 세상은 쌩쌩 잘만 돌아가고. , 역시 사람은 겸손해야지, 겸손 겸손.

 

 

 

3

 

읽지 않으니 쓰지 않는다. 쓰지 않으면 쓸 줄 모르게 되는데, 이런 퇴보의 과정을 지켜볼 때면 과연 글쓰기도 예술의 일종이긴 하구나 싶다. 손이 굳고 문장이 입안에서 손끝에서 텁석거릴 때, 수사가 경직되고 리듬이 불규칙할 때, 그럴 때 연마하고 담금질하기 위해 교범으로 마련해 둔 책들이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잠시 멈췄다 가도, 뭐 괜찮을 것 같다.

 

 뇌를 후려치는 문장



심장을 간지럽히는 문장



 

서늘한 가운데 뜨거운 문장

 


뜨거운 가운데 서늘한 문장



 

찔린 자리조차 아름다워질 것 같은 문장



 

따라 에두르다 보면 어느새 가운데 와 있는 문장



 

그리고, 문장

 

 

 

4

 

읽고 싶은 것은 있고 읽고 싶지 않은 것이 없다.

잃고 싶은 것은 없고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재밌게도,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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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3-05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닥칠 못 읽고 못 쓰는 날을 syo님 일상글 보며 간접 체험하는데...왜 이리 슬프죠. 난 아직 저 썸네일 속 예쁜 문장 한 줄도 못 읽었는데. 예쁜 문장 비슷한 거 가질 날 한참 멀었는데. 잠시 잠깐 줄어든 없어진 거리라도 위안이 되길 빕니다.

syo 2020-03-07 23:08   좋아요 1 | URL
늘 응원해주시는 반님ㅠㅠ 덕분에 힘 많이 난답니다.
게다가 저 ‘호기‘라는 애는 볼수록 귀여워서 몇 배 더 힘이 납니다.

공쟝쟝 2020-03-05 0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님 글 보고 싶당 ㅠㅡㅠ 코로나 아웃

반유행열반인 2020-03-05 09:17   좋아요 2 | URL
2222아웃아웃ㅠㅠ

syo 2020-03-07 23:08   좋아요 1 | URL
코로나가 끝나면 그간 미뤄놨던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일순간 더 바빠질 듯.... 으으아아아

2020-03-05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7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20-03-0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멈췄다 가도, 뭐 괜찮을 것 같다...
그래도 빨리 돌아오시면 좋겠네요~

syo 2020-03-07 23:10   좋아요 0 | URL
저도 빨리 돌아오고 싶어요.....
더덕단 활동도 열심히 하고 싶다.....
아무것도 못해서 요즘은 좀 민망해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