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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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알갱이는 일터 생활 한 달 만에 도통 분노를 모르는 호구알갱이로 변신, 다정한 목소리 다감한 말투의 욕받이로 활동하고 있다. 어디 어디 구는 노인들 마스크 준다는데 왜 우리는 안 주냐 이 오라질 공무원 놈들아 니들이 다 해처먹냐! 하옵시면 syo로서는 그저 네, 선생님 불편하게 해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저희도 관내 어르신들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바, 백방으로 마스크를 구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으나 아직 저희의 정성이 하늘에 닿지는 못하였나 봅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사오니 부디 진노를 가라앉히시고 또한 최대한 외출은 삼가시고 부득이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시고 기침을 할 때는 소매로 가리시고 귀가하시면 우선 손을 꼭 씻으시고 씻으실 땐 30초 이상 꼼꼼하게 씻으시고 이러시고 저러시고할 뿐인데 그쯤 하면 전화는 뚝 끊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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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인데, 이 글을 쓰겠다고 다시 생각해보니 방금 터진 사건처럼 생생하게 빡친다.

 

야근을 마치고 10시 반쯤, 집에 돌아와 현관을 열였더니 김치볶음밥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은 방에 드러누워 있고 싱크대 안에는 저놈이 쳐드신 요리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보아하니 놈은 칼퇴를 했고, 배가 고파 한 끼 대충 찌끄려 봤고, 먹고 나니 배부르고 귀찮아서 그대로 드러누웠고,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퇴근했고, 시간은 10시 반이고, 뭐 그런 상황 같았다. 냄새나니까 니가 먹은 거 빨리 치우라고 요청했으나, , 피곤하다 이ㅈㄹ을 하며 꼼짝 않는다. 방금 일 마치고 먼 길 밟아 집에 돌아온 사람한테. 10분 간격으로 세 번을 더 닦달해도 요지부동이다. 우물도 목마른 놈이 파는 거라고, 결국은 저놈이 먹은 걸 내가 치우기 시작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는지 안방에서 기척이 나는 것 같더니, 대충 설거지를 절반쯤 마쳤을 때, 그러니까 이제는 낙장불입이라 저놈이 내가 할게 하며 나서도 그냥 syo가 마저 하는 게 나은 지점쯤에 도달했을 때, 그제야 슬쩍 방에서 기어나오더니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하고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본다. 꺼지라고, 몸 편한 데다 마음까지 편하고 싶어서 양심 가진 척 개수작부리지 말고, 그냥 얼른 들어가서 다시 아까처럼 보기 싫게 드러 누워라, 이 휴먼쓰레기야- 하고 쏟아부었으나 그런다고 딱히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잘 생각해보니, 이건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딱 그 설정이었다. 하나, 나는 결코 쟤보다 능력이 못하지 않은데 어떤 이유에선가 쟤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 , 게다가 나는 쟤보다 일을 더 많이 하므로 대체로 퇴근이 더 늦다. ,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나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 , 심지어 저놈시끼가 먹고 던져놓은 것까지 치워야 한다.

 

, 나는 남자고, 게다가 결혼도 생각이 없다 보니 이런 진부하다 못해 진저리가 나는 역학 관계로부터 이중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방심이었다. 사람 둘 같이 살면, 그리고 그 안에 남자가 1명이라도 있으면, 이런 일은 어디서나 벌어지고 반드시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법이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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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 여성노동에 의해 그리고 노예들계약직 노동자들식민지 농민들과 같은 무임 노동자들에 의해 주로 수행된삶의 일반적 생산이나 자급적 생산이, “자본주의적 생산노동이 구축될 수 있고 또 착취될 수 있는 영속적 기초를 구성한다는 것이 나의 주요논지다.

마리아 미즈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26

 

하나. 이 책을 한 줄로 줄이면 저것.

 

. 이 책을 읽기 위해 마르크스만큼 푸코도 필요한 듯. 푸코는 짱이다. 적을 불사르기 위해 자기 몸에도 기꺼이 불을 붙이는 남자. 20세기 대머리 중 가장 총명한 남자.

 

. 틈틈이 읽고 있지만 번역 상태가 기름바른 듯 매끄럽지는 않은 듯.

 

. 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 읽는 ---

2020 예산회계실무 기본편 / 강인옥 외 : ~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마리아 미즈 : ~ 132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 김충규 : ~ 55

자본을 넘어선 자본 / 이진경 : ~ 64

로마사론 / 니콜로 마키아벨리 : ~ 41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이현우 : ~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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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3-14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신 와중에도 알뜰하게 읽고 계시네요. 항상 무엇이든 무얼 하시든 응원합니다.

syo 2020-03-15 07:3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반님은 언제나 syo편!

비연 2020-03-1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코에 대해 20세기 대머리 중 가장 총명한 남자라 정의한 대목에서 와인 뿜음 ㅎㅎ;;

syo 2020-03-15 07:38   좋아요 1 | URL
안 되고 싶지만 기왕 대머리가 되고 말 거라면 푸코처럼.....

다락방 2020-03-1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1세기 대머리 중에서는 제이슨 스태덤이 가장 근사하지요? 🙄

syo 2020-03-15 07:3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아는 다락방님 ㅎ

cyrus 2020-03-15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 받이가 된 채 일하시느라 고생하시네요. 잘 챙겨먹고 건강하세요. 그런데 같이 사는 친구 때문에 스트레스 더 생길 것 같은데요... ^^;;

syo 2020-03-15 07:3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이 새끼 이런 놈인 거 다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당할 때마다 딥빡인 건 어쩔 수가 없네요...

하이드 2020-03-15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 저 그린듯한 예는 뭐죠? 제 보살동생 말을 빌리자면, 쇼님이 공부하는 페미니즘에 현실경험을 녹여준 귀인이시네요. ㅎㅎ 한참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곳에서 첫 발을 떼셔서 배로 힘드실 것 같습니다. 다만, 앞에 빡세게 하면, 시간은 지나고 나중에 라떼는 말이야~ 하며 좀 편해집니다. 몸건강 마음건강 늘 유의하시고 모든 스트레스 풀 수 있는 좋은 책들이 함께 하길 바라요!

syo 2020-03-15 07:41   좋아요 0 | URL
초반에 빡세게 시작하면 나중에 나아질 거라는 주변의 말들만 믿고 꿋꿋이 하루하루 해 나가는 날들입니다.
사실 상대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빡센 게 아닐지도 모르는데, 남들 다 이 정도는 하는건데, 그냥 내가 일에 면역이 없어서 이러는 걸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도 요즘 하긴 합니다 ㅎㅎ

하이드님 감사합니다^-^

stella.K 2020-03-15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거 힘들어서 어쩝니까? 이게 웬 난린지 모르겠습니다.
약국은 약국대로 물량이 없으니 나중엔 낫들고 죽인다고 협박해
아예 약국문을 닫는 사례도 있다더군요.
약사한테도 이러는데 공무원은 더 호구로 알겠죠.
스요님처럼 처신하는 게 그나마 낫지 싶기도한데 파김치되서 돌아오면
三이 씨가 도와주질 않는군요. 아무래도 집안 일은 역할 분담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 풀만한 좋아하는 일이나 맛난 거라도 먹고 힘 내십쇼!!!!

syo 2020-03-21 14:10   좋아요 0 | URL
마스크는 좀 구하셨어요?
요즘은 마스크가 많으면 부자된 느낌입니다 ㅎㅎㅎ

스텔라님도 이럴 때일수록 드시는 걸 잘 드셔야 합니다.
사람 많은 데는 어지간하면 피하시구요...
마스크 하시구요....
손소독.... ㅋㅋㅋㅋㅋㅋㅋ 공무원 습관.

2020-03-20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1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