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냐 추녀냐 -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 이야기 지식여행자 3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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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어 부분을 옮겨 보면,
<부실한 미녀일까, 정숙한 추녀일까> - 일본사상 최강의 러시아어 통역자, 요네하라 마리가 동시통역의 내막을 처음 공개! 

일본어 원본의 그림을 보면, 미녀와 추녀를 비유한 것과도 같아보이는 어딘가 오며한 매력을 가지고 요염한 자세로 두툼한 허벅지를 자랑하는 여인이 앉았다.
반면, 한국어 판의 그림은 어딘가 어색하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번역'의 이미지를 나타내려 한 것 같은데, 아직 태그도 떼어내지 않은 것으로 봐서, 탈의실 비슷하다.
이런 표지의 '번역'조차도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차이를 보여준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와 함께 이해한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번역'하는 과정을 겪어 보면, 두 문화의 차이가 보여주는 거리감과 두 언어의 다름에서 드러나는 차이가 적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한술 더 떠, '통역'의 과정은 '즉시성' 내지 '동시성'이란 시간의 압박이 있기때문에,
특히 통역사로 고용된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거래> 또는 <정치적 입장>이 원만하게 성사되도록 도와줘야 하는 입장이므로 정확한 통역이냐, 원만한 통역이냐를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통역가의 애로사항을 역시 마리여사의 톡톡튀는 입담으로 들려주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한 러시아 문호 개방이 아니었다면 마리 여사가 이렇게 유명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역시 시대를 만나야 훌륭한 사람도 빛을 발한다.
마리 여사의 입담은 통역의 어려움을 '부실한 미녀'와 '정숙한 추녀' 사이의 갈등에 비유한다.
통역가를 매춘부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뭐, 일회용으로 쓰이며, 잘하든 못하든 끝나면 버려진다든가... 과감한 비유다.
그런데, 이 비유가 거칠어 보이지만,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그대로 직역하는 것보다 분위기를 뭉뚱그려 통역하는 편이 훨씬 좋을 때도 있다는데, 그래서 정숙한 추녀보다는 부실한 미녀가 나을 때도 있다는 재미를 느끼게도 한다. 

한국 외대에 통,번역 대학원이 생긴지도 오래 되었지만, 아직 한국의 통번역 문화는 저급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영어 쪽은 그나마 사정이 낫겠지만, 러시아어나 아랍어, 그 외의 약소 언어들에 대한 통번역은 아직 미미하기 그지없다.
일본 정도의 대국과 약소국의 규모의 차이가 뼈저리게 느껴진다. 

외교관의 yes는 maybe이고,
외교관의 maybe는 no이고,
외교관이 no라고 하면 그 사람은 이미 외교관으로서 실격이다.
여자가 no라고 하면 maybe 이고,
여자가 maybe라고 하면 yes의 의미고,
여자가  yes라고 하면 이미 여자로서 실격.
그런데 최근 여자 외교관이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자 외교관이 yes나 no라고 하면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50) 

이런 우스개는 이 글에 가득하다. 

화자의 원 발언이
통역가의 인지(알아 듣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 부분 실종되고,
이해 과정에서 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놓치고,
기억했다가 재생하는 과정에서 또 빼먹고,
자기네 말로 코드화하는 과정에서 코드 전환을 하고,
적당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 번역해 주는 통역가의 말을,
또 청자는 알아들은 부분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72)

아, 통역의 과정은 이렇게 오해의 과정이 연속되는 것이다. 

멋진 통역을 하고 나면 최고의 찬사를 듣기도 한단다.
"정말이지, 저 연사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는데, 당신 통역을 들으니 알겠습니다." 

일본어의 '리듬감'을 이야기하면서 이해하기 힘든 구절이 있었는데, 어디 물어보고 알아둬야겠다.
<일본인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하쿠닌잇슈(100인 1수, 100인의 와카를 한 수씩 골라 모은 것)을 게임으로 즐길 만큼 외우고 있어서 일상 생활에 우연히 잇사의 한 구나 다쿠보쿠의 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하쿠닌 잇슈를 찾아봐야겠다. 

정보의 전달은 귀로 들은 것은 10% 남고, 눈으로 들어온 것은 30% 남고, 직접 체험한 것은 80% 남는다고 한다.
통역에서도 그래서 현장에서 겪은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백문이 불여일견이고, 백견이 불여일체다. 

마리 여사의 섬세함은 그가 8의 통역을 할 때, 2의 번역에 힘쓴다는 점에 있다.
통역이라는 시간 제약의 환경상, 핑계를 대고 끊임없이 타협하는 행위가 조잡하고 허술해질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의 범위 내일지라도 최고의 최상의 번역을 목표로 하는 번역가적 성향을 배우기 위해서란다.
벼락치기와 임시방편이 번갈아 계속되는 인생에 잠시 쉼표를 찍고 조금 더 차분하고 심오한 표현에 빠지는 일.(136)
자기를 다스리지 않는 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앞문의 호랑이, 뒷문의 이리, 에 비유되는 통역가.
문화의 틈을 최대한 메우고 문맥을 첨가하라는 지엄한 호랑이의 명령과,
최개한 단축된 시간에 통역하르는 이리의 독촉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통역가의 좌충우돌 진퇴양난의 상황이 리얼하게 그려지고 있다. 

최근 마리 여사의 '빤쓰 인문학'도 출간되어 읽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리 여사의 책을 읽는 동안에는 풍부한 샘물이 펑펑 솟구치는 노천욕탕에라도 앉아 느긋하게 쉬는 듯한 느낌이어서 독서의 즐거움을 빠듯하지 않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어 좋다.
마리 여사의 매력은 그런 곳에서 솟아난다.
그래서 나는 독서의 계절 가을에 기꺼이 마리 여사의 팬이 되는 것이다. 롯데 야구가 올라가든 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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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가 내게로 왔다
파워 리뷰어, 마리 여사의 '대단한 책'
마리 여사의 맛집 기행, 미식견문록
러시아 학교의 초딩 동창, 그 삼색의 변화
마리 여사의 통역 이야기, 마녀의 한 다스
마리 여사의 '속담 인류학'
마리 여사의 톡톡튀는 사고의 전환법, 발명 마니아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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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컷은 기르지 않는 거? 

원래 제목이 이렇게 생겼다. 

'기(記)'라는 한문 문체가 있다. 건축물·산수(山水)·서화(書畵) 등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한문 문체인데, 정자를 지으면 정자의 이름을 따서, 서재를 지으면 서재의 이름을 따서 '기'를 짓는다. 에세이 정도가 되겠는데, 자기가 겪은 일에대하여 기념하려고 주제에 따른 자기 소회를 적는 형식이 되겠다. 

마리 여사의 이 책은 어떻게 해서 개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가를 톡톡튀는 문체로,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10년 전에 나온 이 책을 지금 읽으면서도 마리 여사의 동물에 대한 사랑이 가득 느껴지는 것은 이 책이 '기'의 정리에 충실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은비 사건'을 마리 여사가 듣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몸서리치게 고통스러워했을지... 상상하기도 싫은 사건이었다. 

독신으로 살아가는 마리 여사에게 '이제 남자 수컷도 길러 보지?' 이렇게 농담을 던지는 사람들도 많았다지만,
마리 여사에게는 사랑스런 충견 겐, 그리고 정말 예쁜 도리와 무리... 나중에 타냐와 소냐까지... 이들 가족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리 여사의 동물에 대한 친화감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주인 잃은 개 겐을 데려오는 이야기나, 회담장에서 통역 업무 수행중 만난 도리와 무리를 어떻게든 구조해 오는 이야기, 러시아에서 일본까지 타냐와 소냐를 공수하는 이야기까지, 동물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내는 마리 여사의 이야기는 '사람살기도 힘든데 웬 동물에 관심을?' 이렇게 치부할 수 없는 경지의 무엇이 있다.  

2살이 된 조카도 못 가리는 대소변을 어린 고양이들이 척척 가리는 걸 볼 때, 인간보다 나은 점을 인정하게 된다.
인간은 너무 인간 중심적인 거다.

그리고 마리 여사의 글이 가진 힘은, 주인으로서 동물에게 느끼는 감정에 머물 뿐 아니라,
자연의 일원인 같은 동물의 하나로서, 동물들에게 감정이입되는 공감과 연민의 마음이 절절한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짖지 않던 개 겐이 어느 날 짖기 시작하는데, 수의사 말로는 이적지 남의 집이라 생각해서 짖지 못했는데, 이제 자기가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짖게된다는 이야기.
또 중성화 수술을 해 준 도리와 무리가 동물의 본능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쉬워 소냐가 길고양이와 합방하는 대목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마리 여사의 마음이 글 밖으로도 절절하게 묻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우게 되는 것 또 하나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리 여사 주변에는 비슷하게 동물에대한 애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보이게 된다는 것. 세상에는 보고 싶은 것과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마리 여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상에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동물에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는 걸 보게 된다. 

이런 점들이 이 책을 매력있는 애묘애견기로 자리잡게 만드는 것일게다.

'無理가 지나가면 道理가 물러간다.' 멋진 말이다. 고양이 이름을 '-리'자 돌림으로 짓겠다고 생각한 마리지만, 무리와 도리의 이름은 의미가 제법 깊다. 무리하게 되면 도리를 지킬 수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숫놈은 무리하고, 암놈이 도리가 되는 이치도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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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7-04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재미있나 봅니다. 출간됐을 때 읽을까 말까 고민했는데...ㅜ

글샘 2010-07-04 19:44   좋아요 0 | URL
동물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기꺼이 일독을 권합니다.
 
발명 마니아 - 유쾌한 지식여행자, 궁극의 상상력! 지식여행자 9
요네하라 마리 지음, 심정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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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늘 '이거 심한 거 아니야?' 이런 일 투성이고,
우리의 마음은 매일 '지금-여기'서 벗어나버리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내일은 또다른 내일의 태양이 뜨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오늘과 똑같은 해가 떠오른 내일에 대한 좌절로 잠못이루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가족은 없고 몇 마리의 고양이와 개를 가족처럼 여기고 사는 마리 여사.
그렇지만 수시로 막히는 자동차와, 짐을 들고다닐 때 꼭 내리는 비...
이렇게 세상은 사소한 것부터 장애물로 다가온다. 

그럴 때, 마리여사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은 즐거운 일일까? 할짓 없는 사람의 뻘짓일까? 

세상은 오늘 그대로 살려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발전이나 진보는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왕의 목을 치는 날도 상상력의 소산이고, 인공위성을 통한 인터넷도 상상력의 소산이다.
마리 여사의 재기발랄한 발명 이야기는 그래서 황당무지개로소이다... 하면서도 웃음기를 머금지 않을 수 없다.
허나... 나는 마리 여사의 글에 대한 또 한 사람의 '마니아'로서, 이미 타계하신 그이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마냥 흐뭇하지만은 않은 것. 

전쟁광 미국에 대한 그의 시선은 여전히 각을 세우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일본 우익의 그것일 수밖에 없다. 

미국군이 지속적으로 무료로 사용하는 공간이 그는 오키나와뿐일 것이라면서 열받고 있지만...
과연 미국군이 무료로 사용하는 공간은 일본이나 한국같은 식민지 이외에도 얼마나 많을 것인지...
그리고 오키나와 후텐마 비행장 문제로 총리가 사임하는 일까지 생겼고, 이 시기와 맞물려 한국의 서해안에서는 원인 불상의 군함 침몰 사태가 발생하였다.
비밀리에 이스라엘 대통령도 방한하였고, 항간에는 이스라엘 잠수함과 천안함이 충돌했을 것이라는 둥, 설이 분분하다.
횡설수설하는 국방부 발표를 고려하면, 카스트로가 이야기한 후텐마 비행장과 천안함 등의 연관성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일본에서도 유괴라든가 하는 강력범죄가 어린이 대상으로 벌어지기도 하니까, 범죄 예방을 위한 아이디어도 등장하고,
에너지 발전을 위한 운동기구 등도 재미있는 발상이다. 

이렇게 신선한 발상으로 머릿속이 가득한 사람이라면... 글쎄, 자유로운 정신이 춤을 추면서 그리는 아이디어들은 세상을 밝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인데...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왜 이런 이는 빨리 데리고 가는 것인지... 

해결책이 없어보일 때, 사고를 전환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해결책을 발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긍정적 마인드로 가득한 마리 여사같은 사람이라면, 굳이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자기 책에 그림까지 그릴 정도로 아이디어로 가득한 즐거운 활력소.
그야말로, 에너지 여사라고 하겠다.

도서관에 마리 여사의 책을 몇 권 구입해 두었는데, 이미 누가 모셔가버렸다.
느긋하게 여사를 만날 날을 또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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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여사의 좌충우돌 애견애묘기(愛犬愛猫記)
    from 글샘의 샘터 2010-07-04 19:42 
    인간 수컷은 기르지 않는 거?  원래 제목이 이렇게 생겼다.  '기(記)'라는 한문 문체가 있다. 건축물·산수(山水)·서화(書畵) 등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한문 문체인데, 정자를 지으면 정자의 이름을 따서, 서재를 지으면 서재의 이름을 따서 '기'를 짓는다. 에세이 정도가 되겠는데, 자기가 겪은 일에대하여 기념하려고 주제에 따른 자기 소회를 적는 형식이 되겠다.  마리 여사의 이 책은 어떻게 해서 개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살
 
 
비로그인 2010-06-28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먹어서까지 동심을 잃지않고 품고살아가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어렸을 땐 나도 기발한 상상들을 하면서 살았더랬는데, 언제, 누가, 왜 훔쳐갔는지 모르겠엉.....ㅠㅠ

글샘 2010-06-28 10: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도, 나이 먹으면 꼰대가 되어버리곤 하죠.
모든 게 가능하던 유연하던 사람이었는데, 저도 제 유연함과 친절함을 누가 훔쳐갔는지...

페크pek0501 2010-06-28 11:25   좋아요 0 | URL
저는 누가 훔쳐 갔는지, 알지요. '세월'이지요.ㅋㅋ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흐린 날엔 제격이죠. 마기님도, 글샘님도 한 잔 하시길...
 
속담인류학 - 속담으로 풀어 본 지구촌 365일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이코노미스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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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 제목은 Tagen no sarani다. 다른 사람의 말에서 '뭔가 닮은 것'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속담을 보면, 그 언어의 문화적 풍토가 잘 드러나 있다.
우리말 속담에도, 우물, 숭늉, 외양간, 굴뚝, 아궁이 등 농경 문화와 쌀로 밥을 지어 먹던 습관이 그대로 담겨 있는 법이다. 

온갖 나라의 속담들이 마리 여사에게 들어가면, 씨줄과 날줄이 마치 거미의 뱃속에서 나오는 실처럼 마법을 부려서 새로운 주제별로 헤쳐모여를 하는 것 같다. 

재능있는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책이다. 

이 글들은 앞부분에서 자연스럽게 '통역'하는 일을 통해서 만나게 된 에피소드,
각 언어들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표현처럼 보이지만 유사한 경우에 쓰이게 되는 말들이 있음을 발견한 경험들이 잘 녹아 있는 반면,
뒷부분으로 가면 마리 여사답게 조금은 농염한 유머들과 각국 속담을 엮어 두기도 해서 좀 억지로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리 여사의 미국 까기는 상당히 신랄하고 통쾌한 면마저도 있다.
가령 "악마는 제 이익을 위해서는 성서도 인용한다"는 속담을 설명하면서, 부시의 이라크 침략은 9.11 이전부터 계획된 것이 아닐까 ... 하는 구절까지도 넣으면서... 

내셔널리즘이라는 유행병은 경제가 정체하거나 사회가 막힌 상황에서 더욱 고양되기 쉽고,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꿈틀거리면 근린 제국과의 영토 교섭이 한층 더 곤란하다...
러시아의 명분은 이해하기 어렵고, 북한은 기막힌 독재국가이며, 한국과 중국의 요구는 내정간섭으로 보인다. 참으로 일본을 둘러싼 나라들은 하나도 변변한 나라가 없고 희한한 나라들뿐이라고 모 지사가 부르짖은 것은 무리가 아니다 싶다...(215) 

이런 구절을 보고 그역시 국수주의적 우익에 불과한가 하고 의심을 갖던 중,
이어지는 글을 보니 역시 시야가 넓다. 

이웃 나라가 이상한 나라로 생각될 때는 자기 나라가 이상한 나라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로 일축. 

마리 여사의 톡톡 튀는 재기 넘치는 글을 가득 읽을 수 없는 일은 독서가에겐 몹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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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여사의 좌충우돌 애견애묘기(愛犬愛猫記)
    from 글샘의 샘터 2010-07-04 19:42 
    인간 수컷은 기르지 않는 거?  원래 제목이 이렇게 생겼다.  '기(記)'라는 한문 문체가 있다. 건축물·산수(山水)·서화(書畵) 등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한문 문체인데, 정자를 지으면 정자의 이름을 따서, 서재를 지으면 서재의 이름을 따서 '기'를 짓는다. 에세이 정도가 되겠는데, 자기가 겪은 일에대하여 기념하려고 주제에 따른 자기 소회를 적는 형식이 되겠다.  마리 여사의 이 책은 어떻게 해서 개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살
 
 
 
마녀의 한 다스 지식여행자 1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통역은... 한 문화를 다른 문화로 번역하는 일인데, 거기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은 사소한 것에서 묵직한 것까지 참으로 많다. 

이 책의 부제가 '정의나 상식에 찬물을 끼얹어라~' 뭐, 이런 말이니,
'절대 절대 외치지만 인간사에 절대라는 것은 절대로 없어'(23)라는 마리 여사 스승님의 외침에 이 책의 주된 논지가 담겨있다. 

외국어로 발음되는 오묘한 뉘앙스가 뜻을 알면 창피한 노릇인 예도 많은데,
한국 아이들이 일본어 배울 때, 게시키(경치), 겟세키(결석) 하면서 놀던 기억도 난다.
중국어 배우면 츠판러마(밥 먹었니?)를 욕으로 변형시키기도 했다.
중국어로 커리엔... 하면 커리언(한국인) 비슷한데, 불쌍하단 뜻이다.
러시아에서 일본어 대사관 터로 모스크바 시 야키만코 거리를 잡아 주었다는데, 그 거리는 영국 대사관도 있는 끝내주는 자리였단다. 그러나... 야키만코가 일본어로는 ('구운 보지')라는 뜻이 되어 할수없이 거절했다는 우스운 실화. ㅋㅋ 

마리 여사의 이야기 속에는 유고 내전 이야기가 왕왕 등장하는데, '유고슬라비아 - 충돌하는 역사와 항전하는 문명', '황금색 구름은 비쳤다(프리스타프킨)' 이런 책을 한번 읽고 싶다.  

야한 이야기도 마다 않는 마리 여사의 이야기에서, 장점은 약점도 되고, 약점은 자기가 약점이라 생각할 때만 약점이란 교훈도 얻게 된다. 

야한 이야기 하나, 

부인 : 선생님, 우리 아들 일로 상담하러 왔어요.
의사 : 무슨 일인지요?
부인 : 글쎄, 열여덟 살 난 우리 아들 말인데요. 그게, 그게 말예요... 고추가 다섯 살 난 아이만 하지 뭐예요.
의사 : 에? 그럼 요정도?? 하고 새끼 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부인 : 아이, 선생님... 그러니까 말씀드렸잖아요. 그 , 그 고추가 다섯 살 난 아이만 하다구요.
하면서 부인은 (   바닥에서 120센티미터 정도의 높이에 손바닥을 펴 보였단다. ) ㅋㅋ 

요네하라 마리의 '유머'에 대한 강연도 유명했던 모양인데,
이런 것들이 그저 우스개에 지나지 않고,
어느 집단에서 나무나 당연한 상식이 다른 집단에서는 너무나 엉뚱한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가진 상식이 곧 어느 세계에서나 통용 가능하다고 쉽게 착각하지 말자!
마녀의 한 다스가 열 두개가 아님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책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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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6쪽의 좇다, 는 쫓다로 바꾸어 써야 한다.
남자를 이쪽에서 좇아다니면 안 되는구나... 나는 도망가는데 상대방이 좇아와줘야 말이지...

 쫓다. 1. 어떤 대상을 잡거나 만나기 위하여 뒤를 따라서 급히 가다.
         2. 어떤 자리에서 떠나도록 내몰다.
         3. 밀려드는 졸음이나 잡념 따위를 물리치다.  

 좇다  1. 목표, 이상, 행복 따위를 추구하다.
         2.  남의 말이나 뜻을 따르다.
         3 규칙이나 관습 따위를 지켜서 그대로 하다. 

232쪽. 어줍잖고...   ‘어쭙잖다’의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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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여사의 좌충우돌 애견애묘기(愛犬愛猫記)
    from 글샘의 샘터 2010-07-04 19:42 
    인간 수컷은 기르지 않는 거?  원래 제목이 이렇게 생겼다.  '기(記)'라는 한문 문체가 있다. 건축물·산수(山水)·서화(書畵) 등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한문 문체인데, 정자를 지으면 정자의 이름을 따서, 서재를 지으면 서재의 이름을 따서 '기'를 짓는다. 에세이 정도가 되겠는데, 자기가 겪은 일에대하여 기념하려고 주제에 따른 자기 소회를 적는 형식이 되겠다.  마리 여사의 이 책은 어떻게 해서 개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살
 
 
2010-01-18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1-19 09:07   좋아요 0 | URL
허걱, 10년 뒤까지 계약을 할 수는 없습니다. ㅎㅎㅎ
아, 리뷰가 당선되었군요. 요즘엔 돈이 얼마 안 돼서... ㅋㅋ
예전엔 리뷰 당선되면 5만원이었거든요. 그러면 이벤트도 하고 했는데...
알라딘의 전략이, 저처럼 오래된 서평자도 좀 뽑아주고 해야 하는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