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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ㅣ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心腸に毛が生えている理由
신조니 케가 하에테 이루 와케...
심장에 털이 나있는 이유,.. 이것이 이 책의 원제목이다.
그런데, 한국판을 내면서 <문화 편력기>란 제목으로 바뀌었다.
그의 전작 <미식견문록>과 운을 맞춘다면 문화 편력기가 좋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칼럼'들을 긁어 모아 편집해낸 책이란 느낌을 가감없이 드러낸 것은 일본어 제목 쪽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처음이지만,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나의 독서 습관에 비추어 보자면, 이런 작가쪽으로는 전작주의자가 되기 쉬울 것 같다.
지금 가장 읽고 싶은 책이 '대단한 책'이고, 그 다음이 '프라하의 소녀시대'와 '미식견문록' 같은 책들이다.
왜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들은 빨리 죽어버리는 걸까? 미인박명일까?
그에 대하여 조금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 순간, 그가 이미 3년 전에 타계한 인물임을 알게되는 일은 슬픈 일이다.
이 책에 나온 글들은 가볍다.
칼럼을 모아 만드는 이런 책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요네하라 마리처럼 타계한 인물의 책은 어쩔 수 없이 읽게 된다. 불현듯 왈칵 오주석의 책이 그립다.
문학이 오래된, 혹은 보편적인 진실을 늘 새로운 방법으로 전달하려 하는 것이라면, 신문은 늘 새로운 진실을 오래된 방법으로 전달하려 한다...는 방식으로 세상을 비틀어 보는 것이 요네하라 마리의 글에서 빛나는 면이다.
어린 시절 벽장 속에 있던 빙실의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무언가를 태워서 지구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빙하가 녹아 해수면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역시 빙실이라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고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할 따름이다... 이렇게 뒤집는 글은, 앞에 나왔던 단어 하나하나들이 이 구절을 위하여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면 그의 글을 원문으로 읽고프단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럴 시간에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은 욕심이 더 크지만...
가축화되면... 야수는 70% 가량 뇌의 무게가 줄어든다. 그런데 자칼의 뇌는 본래부터 가볍기때문에 개의 조상이 될 수 없다. 늑대는 개보다 큰 뇌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개가 늑대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몸의 안전이나 나날의 먹을거리 등 근원적이고 절실한 문제를 자기의 지능과 체력을 다 동원하여 있는 힘껏 살아가고 있는 야생 동물 쪽이, 그 모든 것을 사람에게 맡겨서 머리도 몸도 쓰지 않는 가축보다 뇌가 발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 이런 이야기에서 그것은 사람에게도 해당한다. 과보호로 유순해진 사람보다 홀로 독립하여 자력으로 사는 사람이 머리를 더 쓰기 마련이고, 그만큼 머리도 좋아질 것이다.... 아, 이렇게 발상을 연관시키고 전환하는 그의 머릿속엔 도대체 무엇이 들었던 건지...
제목에 해당하는 글, 심장에 털이 나있는 이유...란 제목이 궁금하여 읽어보니, 별 재미없는 러시아 번역에 관한 글이다. 그러다가, 번역자는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으니, 대충 해두고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건데, 그래서 털이 나있다는 것이다.
아, 그의 삶이 여러 곳을 떠돌며 이국 문화를 번역하는 삶이었기에 더 많은 것들을 보았을 수도 있겠지만, 요네하라 마리처럼 보고 생각한 것을 이렇게 상큼한 언어의 당의정 속에 녹여 독자를 현혹하는 매력들 입히는 일도 탁월한 재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칼럼과 대담으로 짜인 다소 산만한 구성이지만, 뭐, 유작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미 고인이 되어 '미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인간들을 화사하게 비웃는 하늘나라로 가버린 이에게 유사한 글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09년 겨울, 우울한 날에 요네하라 마리가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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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쪽. 구멍을 파고 묻었습니다...는 구덩이가 더 적합한 번역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