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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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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다. 프라하의 봄이라는 용어로 유명하다.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이 공산주의의 아름다운 이념을 전파하사 프라하에 철갑천사를 몰고 등장하신 사건이다. 

1960년대만 하여도 공산주의의 이념은 실험 정신이 강했다.
그러다 중국과 소련이 노선 차이를 보이고, 동유럽도 국가마다 색깔이 다른 것을 드러내곤 했는데, 각 국가의 공산당들은 상당한 변화를 보인 모양이다.  

일본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가 체코의 공산당 활동가로 살아가게 되고, 어린 마리는 한 마디 말도 못하는 곳에서 러시아 학교를 다닌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을 어른이 된 마리는 다시 만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무작정 길을 나서게 되는데...
거기서 친구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수다떨면서 옛날을 회상하는 시시한 책일까봐 걱정을 좀 했는데, 역시 요네하라 마리의 이름은 그냥 알려진 것이 아니다. 명불허전이랄까...  

이 책은 3부로 이어져 있다.
1. 리차가 본 그리스 창공
2.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
3. 하얀 도시의 야스나 

창공, 새빨간, 하얀은 3색기의 파랑, 빨강, 하양이고, 곧 자유, 박애, 평등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그 내용이 자유, 박애, 평등과 관련된 것까지는 아니다. 

1960년대의 이념이 횡행하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그리스에 대한 애국심이 대단해 보였던 리차와는 달리 독일에 살고있는 그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대갓집 규수 아냐.
우아한 도시의 우아한 소녀 야스나와의 해후는 정말 극적이었고 많은 고비를 넘기며 이뤄진다. 

이것만이라면 이 이야기는 잡문에 불과할 것이지만,
마리 여사는 친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깊이 생각하는 혜안과 통찰을 가르쳐 준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동창회에서 만나면, 실망하고 돌아서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 발전적인 관계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 마리 여사에게 어린 시절 친구들은 실망과 발전을 모두 던져 주지만, 그것은 역사적 상황에 놓인 어린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는지를 반추하게 하는 좋은 소재가 된다. 

특권이라면 딱 질색인 거짓말쟁이 아냐의 오빠. 미르차.
고귀한 영혼은 이런 사람을 가리킨다.
마치 카멜레온 이인국 박사처럼 친일파, 친소파, 친미파로 부유하게 살아가는 더러운 인간상으로 보이는 아냐의 부모들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잘나가는 부류에 속한다. 

인체의 기관에는 어떤 조건 아래서는 6배로 팽창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이름의 기관이고, 그 조건이란 무엇일까요?
캬, 나도 이건 좀 민망한 답이 나오는 줄 알았다.
그 답은... 홍채란다.
그 민망한 답은... 6배로 팽창한다고 착각하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란다. ㅋㅋ

군인과 축음기의 배경이 되었던 보스니아 내전,
무슬림이었던 야스나의 '공기가 되고 싶어', 보이지 않는 공기가... 이런 탄식은 가슴아픈 과거로 남게 된다.
그들은 세르비아 인이고 나는 무슬림이란 사실을 뒤집을 수 없는 현실이란... 

피로 얼룩지고 눈물로 범벅이 된 해후였지만, 그 속에서 인간은 반 뼘쯤 자라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세상 살이의 고단함이 비록 우리를 속일지라도... 

원작의 원제목은 '우소츠키 아냐노 맛카나 신지츠',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거짓말'이다.
거기 비하면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참 잘 붙인 제목이다.
검색을 하다 보니 일본어 서적도 검색이 되는데, 마리 여사의 문체라면 시간이 나면 일본어로도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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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여사의 좌충우돌 애견애묘기(愛犬愛猫記)
    from 글샘의 샘터 2010-07-04 19:42 
    인간 수컷은 기르지 않는 거?  원래 제목이 이렇게 생겼다.  '기(記)'라는 한문 문체가 있다. 건축물·산수(山水)·서화(書畵) 등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한문 문체인데, 정자를 지으면 정자의 이름을 따서, 서재를 지으면 서재의 이름을 따서 '기'를 짓는다. 에세이 정도가 되겠는데, 자기가 겪은 일에대하여 기념하려고 주제에 따른 자기 소회를 적는 형식이 되겠다.  마리 여사의 이 책은 어떻게 해서 개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살
 
 
혜덕화 2010-01-07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도서관에서 '대단한 책' 빌려 왔습니다.
낮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제목처럼 대단한 책이더군요.
조금 읽었는데도 반해서, 이 책도 꼭 읽어야 할 것 같군요.

글샘님.
작은 아이가 문과를 선택해서 이번 방학 보충 기간에 '근현대사'를 배운다고 합니다.
1학년 때 친하던 아이들이랑 갈려서 학교가 너무 재미없다고 하는데, 근현대사는 재미있다고 오늘 관련 책도 한 권 빌려왔습니다.
공부 못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근현대사 책이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어휘의 수준이 중학생 정도 된다고 생각하시고, 재밌고 쉬운 책 없을까요?
만화책도 좋구요.^^

글샘 2010-01-08 09:22   좋아요 0 | URL
마리 여사가 읽은 책들이 대단하다는 이야기였는데, 결국 이 책이 대단한 책이 되어버린 거죠. ^^
프라하의 소녀시대도 참 재미있는 책입니다. 꼭 읽어 보세요.

아이에게 책 권하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더라구요.
몇 권 찾아봤는데, 잘 살펴보시고 사주시길...
제가 읽어본 게 아니라서 확신하긴 어렵네요. ^^
 
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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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감각이 후각이라던가? 그래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구절을 따라 프루스트 효과라는 말도 생겼다던가. 

이 책에 등장하는 감각은 미각이다.
마리 여사의 미각에 대한 글에 편집자의 직관이 적절하게 결합되어 멋진 책을 한권 이뤘다.
마리 여사의 글이 '감각적'인 편이라면, 이 책의 편집자는 '직관적'인 편이었으리라.
아마도 제 2악장은 편집자가 만들어 내라고 마리 여사에게 권했을 것이다.
아니면, 마리 여사의 글 몇 편이 재미있으니, 좀더 만들어 보라고 권했을 법 하다. 

이 책의 원 제목은 '료코샤노 쵸쇼쿠'다. '여행자의 아침 식사'가 책의 제목인데 물건너 오면서 미식견문록으로 탈바꿈했다. 제목붙이기에서는 한국의 편집자가 이겼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아니면 마리 여사가 굳이 '여행자의 아침 식사'라고 붙이겠다고 우겼을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마치 음악회 한편 감상한 것처럼 가벼이 읽으라는 의도로 기획된 책이다. 서곡으로 시작해서 가벼운 러시안 랩소디, 간주곡, 안단테(2악장), 또 간주, 라르고로 마무리 되는 책은, 마치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깔끔한 코스 요리로 제공되는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러시아 통역관이어서 수백 번 들락거렸을 러시아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아침은 자신을 위해 먹고, 점심은 친구와 나누고, 저녁은 적에게 줘라!
사랑은 위를 거쳐서 온다.

러시아 속담이라는데, 뭐, 세상에 정답인 식사법이 어디 있겠는가.
못말리는 식탐 아줌마 마리 여사의 가족력까지 등장하여 맛집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꼭 <할바>를 한번, 그것도 제대로 된 것을 먹어보고 싶게 되고,
식욕은 식사 중에 샘솟는다는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도 한번 읽어 보고 싶다. 

고향에서 뻗어 나온 가장 질긴 끈은 영혼에, 아니 위에 닿아있는 끈이 아닌, 밧줄, 억센 동아줄이란 이야기는 그미의 대단한 책에서 읽은 구절이다.
마리 여사의 책을 몇 권 읽노라니 겹쳐지는 부분도 등장하지만, 한 가지 주제를 던져 놓고는 온갖 옴니버스식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그미도 찰진 이야기꾼이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맛있는 음식 이야기 좋아하는 이라면, 또 마리 여사 팬이라면 한번쯤 권하는 책. 

맛있는 밤참, 족발... 마리 여사 이야기엔 꼭 로쟈님의 감수가 붙어있다. 러시아어 인명이나 지명, 음식 등에 대한 감수겠지만 익숙한 사람을 만나게 되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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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여사의 좌충우돌 애견애묘기(愛犬愛猫記)
    from 글샘의 샘터 2010-07-04 19:42 
    인간 수컷은 기르지 않는 거?  원래 제목이 이렇게 생겼다.  '기(記)'라는 한문 문체가 있다. 건축물·산수(山水)·서화(書畵) 등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한문 문체인데, 정자를 지으면 정자의 이름을 따서, 서재를 지으면 서재의 이름을 따서 '기'를 짓는다. 에세이 정도가 되겠는데, 자기가 겪은 일에대하여 기념하려고 주제에 따른 자기 소회를 적는 형식이 되겠다.  마리 여사의 이 책은 어떻게 해서 개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살
 
 
 
대단한 책 - 죽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들에 대한 기록 지식여행자 2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언숙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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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종석의 '여자들'에서 요네하라 마리의 글을 읽은 것이 구랍 중순이고,
거기서 대단한 책과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주워 듣고 집에왔더니, 마음산책에서 마침 마리 여사의 문화편력기를 보내주어서 읽었다. 내킨 김에 두툼한 '대단한 책'을 신청해서 야금거리며 읽었다. 

아, 마리 여사를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 참 통탄스럽다. 진작 알았더라면 팬 레터라도 한 편 보냈을 법한 작가다. 일본 작가의 글을 우연히 제법 읽게 되는데,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작가는 드물다. 

마리 여사의 글은 늘 '현상'과 '본질'의 모습을 꿰뚫는 데 서 있다.
한국 독자들이 사랑하는 많은 일본 작가들의 글이 '신선한 시선'의 경쾌한 가벼움이 느껴지는 글들이 많은 편이 아닌가 하는데, 상대적으로 마리 여사의 글은 무게가 있으면서도 재미있다. 

알라딘에서 서평 도서였던 모양인데, 이제 만나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 아닐까 싶다.
관심이란 그렇게 운명처럼 오는 모양이다.
어느 모퉁이에서 만났다면, 그냥 스쳐 지났을 것처럼... 

이 책의 원제목은 '우치노메사레루 요우나 스고이 혼'이다. '압도당할 만큼 대단한 책'이란 뜻인데, 그만큼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소화하고 소개해주는 멋진 서평집이다. 애석한 일은, 한국의 번역 문화는 '돈 번역'이어서 얄팍한 상술 내지 학술적 가치가 없는 책들은 번역의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는 것. 그래서 그이가 소개한 책들을 국내에서 구하긴 어렵다는 것.   

이노우에 히사시란 소설가가 덧붙인 해설에선,
"서평가와 책이 눈부신 접전을 벌이고 격렬하게 충돌하고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식견이 탄생했을 때, 그것이 바로 좋은 서평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마리 여사의 글들이 그렇기 때문에 서평의 독자들도 그 책을 읽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여사는 <통역>을 "A라는 언어와 B라는 언어 사이에 투명하게 자리해야 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서평가>는 그 반대로 "A라는 책과 충돌해 B라는 책을 낳는다. 충돌하기 위해서는 투명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완고한 암석이 되어야 한다."고 했단다.  

독서가와 서평가를 겸한 통역가.
어려서 공산당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말한마디 못하는 프라하에서 소녀 시절을 보낸 사람.
그의 삶 속에서 책은 길이었고, 빛이었으며, 해결사였고, 종교였다.
그는 러시아어를 통하여 세상을 만나고, 통역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지만,
결국 그는 책이라는 입자를 통하여 세상을 만나고 부딪히고, 소통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경쾌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그러면서도 독자를 소외시키지 않는 글을 쓰던 그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새해 벽두부터 상심의 마음을 갖게 된다.

마리 여사의 글들은 많은 잡지들에 연재한 것들을 묶은 것인데, 유고집의 특성상 중첩되는 내용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 그 내용들을 몇 가지로 분류해 보면 이렇다. 

1. 진실을 바로 보고, 독서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글들. 주로 정치, 사회, 역사적인 글.

- 악은 건실함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44) 
-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니 속국의 지혜인 면종복배를 관철시켜야 하나... 고이즈미 수상은 진심으로 복종(72)
- 본래 미국의 속령에 불과한 일본에 외무성이 있는 것은 마치 독립국인 것처럼 국민이 착각하도록 하기 위한 액세서리와 같은 것(98) 

- '비겁한' 이라는 형용사는 다른 사람을 죽이는 데 자신의 죽음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보다도, 당할 염려가 없는 높은 상공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사람에게 더 어울리는 말.(77 - 테러리스트는 비겁한 자들이란 부시의 말에 수전 손택이 비판한 말)
- 바미안 석불은 '그처럼 위엄을 갖추었으면서도 이 끝없는 비극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느끼고 수치스러워 스스로 무너져 내렸던 것' , 부처의 청빈과 안녕 철학은 밥을 찾는 국민 앞에 너무나 부끄러워 용기를 내어 부서져 버렸다는 것. (84 - 모흐센 마흐말바프, 아프가니스탄의 불상은 파괴된 것이 아니라 치욕에 견디다 못해 무너져 내린 것) 

- 남경전, 봉인되었던 기억을 꺼내다 : 전 병사 102인의 증언(127) 이 책이 있다면 읽어보고 싶다.
- 북한 사람들 대부분이 걸린 병은 무시무시한 공포다. ... 유일하게 숨통이 트인 곳은 저자가 감탄해 마지 않는 북한 서민들의 다정함과 선량함이다.(137) 
- 이라크에서 노인, 여자, 아이들에게까지 피해가 미치고 있다.(146 - 그러면 남자들은 괜찮다는 걸까? 괜한 시비. 남보원에 고발하고 싶다. ^^) 

- 일본에서 건강증진법이 시행되어 금연 구역이 대단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담배는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피웠지만, 폐암이 급증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과연 담배가 폐암의 주된 요인일까? 1950년대 도쿄의 폐암 발생률은 런던의 100분의 1이었다. ... 급속한 증가의 원인은 대기오염임이 틀림없다. 자동차한테는 뭐라고 하지 않으면서 담배만 나쁘다고...(197) 그렇다면 누가 언제 담배를 폐암의 요인이라고 규정한 것일까? 그들은 바로 다름 아닌 나치의 역학자들이었다. ㅠㅜ 

- 참사 현장의 발생지 : 과거 사건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교외의 신개발지. 인간이 공동체에서도 과거의 기억에서도 분리되어 가는 과정이 소비사회화가 진행되는 전 세계의 흐름인 이상, 잔인한 사건은 이윽고 분명 역사를 망각해 가는 세계의 우울한 선단(?)(211) 

- 세계는, 특히 유럽도 일본도 미국이 없어도 꾸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역으로 미국은 세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자각하기 시작했다.(215)
-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에 눈을 감으면 그 존재의 내적 역사는 썩기 시작하며, 과거에 대한 탐구를 멈추면 그 존재의 오늘, 그리고 내일을 주시하는 눈은 그 빛을 잃고 만다.(485, 아키노 유타카, 위장 동맹 에서)

2. 러시아 번역가로서의 경험, 프라하의 소녀시대에서 우러난 글들. 유고, 체첸 등에 대한 애정. 

- 체첸 : 인구 70-100만 명, 10만 러시아군 주둔, 20만 넘는 시민이 살육됨. 체첸과 관련된 보도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움.
-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 여사의 눈이 '사법적 해부'를 하는 임상의의 눈이라면, 벚꽃가지(프세볼로트 오프친니코프)의 저자의 눈에는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말할 때와 같은 따뜻한 호의가 느껴진다고 지적(465) 

- 인간이 고국을 떠나도 언제나 고국과 이어져 있는 이유 : 인간을 고향과 잇는 실은 실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위대한 문화, 웅대한 국민, 자부심 높은 역사, 그러나 고향에서 뻗어나온 가장 튼튼한 실은 영혼으로 이어져 있다. 아니, 다시 말해, 위장으로 이어져 있다. 이것은 이미 실이라기보다는 그문, 딴딴한 밧줄이다.(502, 피요트라 바이리, 망명 러시아 요리) 

- 유목민은 악당으로 기록되어왔는데, 사실 유목민 쪽에도 그들의 입장이 있다. 그들에게 생산이란 초원을 푸르름 그대로 두는 것이며, 그것을 황토색으로 만드는 것은 때로 사활이 달린 중대한 문제. 몇 백 년 전부터 이들이 겨울을 났던 초원이 어느 날 동물들을 이끌고 돌아와 보니 황토색으로 변해 있었고... 이렇게 전쟁이 시작된다.(548, 러시아에 관해서)

3. 암 환자로서 건강에 대한 관심.   

- 암에 걸려도 그 전과 그 후의 나 자신을 관통하는 분명한 선이 있다.그것이 분명 바로 나를 나답게 하는 생명선인 것. 재발하면 어떤가.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내가 나이기 위한 한 줄기 선은 꼭 지키고 싶다.
- 산다는 것은 일상의 영위와 발견(576, 기시모토 요코, 암에서 시작되다) 

- 암의 축소보다도 생명 연장, 그보다도 고통 없는 질 높은 생활을, 곤도 이론의 근간을 관통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인간관, 인생관.
치료법이 없었던 옛날에는 위와 자궁의 암이 많았고, 사람들이 노쇠해져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 인간의 몸은 태곳적부터 암과 함께해 왔으므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미 알고 있다. 암은 인간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장치엔데 모두가 암의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를 부르짖는 것은 의료업계가 실적을 올리려는 목적 때문이다.
암세포는 유전자의 변이로 정상 세포가 변화한 것으로 결코 非자기도 이물질도 아니므로 암세포를 림프구가 비자기로 인식하여 배척하기를 바라는 것은 출발부터 무리가 있다.(630)

4. 독서가로서의 즐거움 

- 빨리 걷거나 먹는 일은 상대방과 속도를 맞추어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해 잔소리 들었으나, 책읽는 읽은 아무리 빨리 읽어도 옆에서 아무도 참견하지 않는다. ... 입시 이후 20년 동안 하루 평균 일곱 권을 읽고 있다...(357) 헐~ 대식가 대신 대독가 大讀家다.   

- 공기와 같은 문체. 달리 형용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마지막 339쪽의 마침표까지 전부 읽는 데 1시간 남짓 걸렸다. (403, 버니스 루벤스, 얼굴 없는 소녀) 음, 대단한 속독가다.

5. 동물에 대한 관심... 

- 인간에게 길들여진 개와 달리, "고양이들은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한 그날부터" 스스로 자신을 길들여 왔다.(378) - 아, 상큼한 독서~ 

- 어쨌든 계산된 무관심, 결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지 않는 처세술, 사랑받아도 길들여지지 않는 자립심. - 인간이 고양이에게 끌리는 이유. 이것이야 말로 완전히 길들여져 자신들의 문명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고 싶다고 바라는 성향 아닌가?(고양이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책, 407)

 ''''''''''''''''' 오타 또는 시빗거리

207. 긴장김... 긴장감의 오타
211. 선단(先端)...이란 말은 한국어에서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첨단이나 끄트머리, 가장자리... 등으로 번역해야할 듯.
321. 자궁을 제공하고... 제거하고
443. 환골탈퇴... 환골탈태 換骨脫胎
510. 메부리코... 매부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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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여사의 좌충우돌 애견애묘기(愛犬愛猫記)
    from 글샘의 샘터 2010-07-04 19:42 
    인간 수컷은 기르지 않는 거?  원래 제목이 이렇게 생겼다.  '기(記)'라는 한문 문체가 있다. 건축물·산수(山水)·서화(書畵) 등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한문 문체인데, 정자를 지으면 정자의 이름을 따서, 서재를 지으면 서재의 이름을 따서 '기'를 짓는다. 에세이 정도가 되겠는데, 자기가 겪은 일에대하여 기념하려고 주제에 따른 자기 소회를 적는 형식이 되겠다.  마리 여사의 이 책은 어떻게 해서 개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살
 
 
다크아이즈 2010-01-0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네하라 마리 꼭 읽어 볼게요. 저도 고종석을 통해 알게 된 작가. 선단, 이란 말은 일본어에서 온 것 같은데 그 말을 또 첨단으로 바꾸기엔 무리가 있고...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에도 선단공포증이 나오는데, 그걸 <끄트머리 공포증>으로 번역하기도 그렇고 그냥 선단이란 말을 써야할 것 같아요. 일본어 잔재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대체어가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이게 오타가 아니라 시빗거리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글샘 2010-01-05 13:23   좋아요 0 | URL
공중그네의 선단공포증은 조폭이 뾰족한 걸 무서워한단 말이지요. 번역이란 것이 그래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체어가 없다고 한국어에 없는 말을 그대로 음역하는 건(한자도 없이) 지나치게 무책임한 일이라고 시비를 걸어본 거죠. ^^

마냐 2010-01-0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책 한권에 사실 저랑 안맞는다고 돌아선 분인데.....일단 하루 7권이라니...그 대단한 내공은 인정하겠슴다. 다시 이분 책 볼 생각 별로 없었슴다만 글샘님의 리뷰에 살짝 흔들리긴 하는데...다시 인연이 이어질지는 운명론에 맡겨야할듯요 ㅎ

글샘 2010-01-05 13:24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이셨을까요? ^^ 운명이 되면 다시 인연이 이어지기도 하겠지요.

바람돌이 2010-01-06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프라하의 소녀시대에서 필이 확 꽂혔는데요. 마녀의 한다스도 좋았고...
마냐님은 어떤 책에서 안맞았을까 저도 궁금??? ^^

글샘 2010-01-06 10:00   좋아요 0 | URL
어제 서면 나간 김에 프라하랑 마녀랑 올가랑 빌려왔습니다. 미식견문록은 다 읽었구요. ^^

혜덕화 2010-01-0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쯤 영광도서에 나가볼까 했는데, 날씨가 계속 추워서 나갈 엄두를 못내겠네요.
보관함에 일단 담아두었다가, 나가는 일 있을 때 사봐야겠어요.^^

글샘 2010-01-06 10:01   좋아요 0 | URL
오늘 엄청 춥네요. ^^ 학교는 히터를 때서 좀 따뜻합니다.
틈나면 한번 읽어 보세요. 글이 다정다감하고 유쾌합니다.

페크pek0501 2010-01-0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은 세계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군요.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시각이 놀랍습니다. 전 요즘 사람들의 사고 또는 아이디어에 많이 놀라고 있어요. 어제 TV로 <개그콘서트>를 오랜만에 봤는데-재방송인지 모르겠음- 그 아이디어에 놀랐어요. 개그도 저렇게 진화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춤도 얼마나 진화했습니까. 예전 김추자 가수의 춤과 마이클 잭슨의 춤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죠. 인간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지... 요즘 수전 손택의 저작을 야금야금 읽고 있는데, 그 책 다 읽으면 <대단한 책>을 읽어야겠군요. 흥미로운 책이군요. 그런데 출판사의 교정능력에 문제가 있군요. 개정판에선 고쳐지겠죠.

글샘 2010-01-06 13:26   좋아요 0 | URL
책을 읽는 사람들도, 올바른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입장을 견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지요. 수전 손택처럼 폭넓은 교양이라기보다는, 집중력이 대단한 작가인 것 같아요.

2010-02-16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2-16 23:50   좋아요 0 | URL
지난 겨울에 마리 여사에게 필이 꽂혀서... ㅎㅎ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건 대충 빌려 봤어요. 아, 세 권이 출간 예정이라니... 기대됩니다. 님도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문화편력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문화기행 지식여행자 8
요네하라 마리 지음, 조영렬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心腸に毛が生えている理由
신조니 케가 하에테 이루 와케...
심장에 털이 나있는 이유,.. 이것이 이 책의 원제목이다.
그런데, 한국판을 내면서 <문화 편력기>란 제목으로 바뀌었다. 

그의 전작 <미식견문록>과 운을 맞춘다면 문화 편력기가 좋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칼럼'들을 긁어 모아 편집해낸 책이란 느낌을 가감없이 드러낸 것은 일본어 제목 쪽이다.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처음이지만,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나의 독서 습관에 비추어 보자면, 이런 작가쪽으로는 전작주의자가 되기 쉬울 것 같다.
지금 가장 읽고 싶은 책이 '대단한 책'이고, 그 다음이 '프라하의 소녀시대'와 '미식견문록' 같은 책들이다. 

왜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들은 빨리 죽어버리는 걸까? 미인박명일까? 
그에 대하여 조금 관심을 가지려고 하는 순간, 그가 이미 3년 전에 타계한 인물임을 알게되는 일은 슬픈 일이다. 

이 책에 나온 글들은 가볍다.
칼럼을 모아 만드는 이런 책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요네하라 마리처럼 타계한 인물의 책은 어쩔 수 없이 읽게 된다. 불현듯 왈칵 오주석의 책이 그립다.  

문학이 오래된, 혹은 보편적인 진실을 늘 새로운 방법으로 전달하려 하는 것이라면, 신문은 늘 새로운 진실을 오래된 방법으로 전달하려 한다...는 방식으로 세상을 비틀어 보는 것이 요네하라 마리의 글에서 빛나는 면이다. 

어린 시절 벽장 속에 있던 빙실의 추억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무언가를 태워서 지구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빙하가 녹아 해수면 수위가 올라가고 있다. 역시 빙실이라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고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할 따름이다... 이렇게 뒤집는 글은, 앞에 나왔던 단어 하나하나들이 이 구절을 위하여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면 그의 글을 원문으로 읽고프단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럴 시간에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은 욕심이 더 크지만... 

가축화되면... 야수는 70% 가량 뇌의 무게가 줄어든다. 그런데 자칼의 뇌는 본래부터 가볍기때문에 개의 조상이 될 수 없다. 늑대는 개보다 큰 뇌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개가 늑대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몸의 안전이나 나날의 먹을거리 등 근원적이고 절실한 문제를 자기의 지능과 체력을 다 동원하여 있는 힘껏 살아가고 있는 야생 동물 쪽이, 그 모든 것을 사람에게 맡겨서 머리도 몸도 쓰지 않는 가축보다 뇌가 발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 이런 이야기에서 그것은 사람에게도 해당한다. 과보호로 유순해진 사람보다 홀로 독립하여 자력으로 사는 사람이 머리를 더 쓰기 마련이고, 그만큼 머리도 좋아질 것이다.... 아, 이렇게 발상을 연관시키고 전환하는 그의 머릿속엔 도대체 무엇이 들었던 건지...  

제목에 해당하는 글, 심장에 털이 나있는 이유...란 제목이 궁금하여 읽어보니, 별 재미없는 러시아 번역에 관한 글이다. 그러다가, 번역자는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으니, 대충 해두고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건데, 그래서 털이 나있다는 것이다.  

아, 그의 삶이 여러 곳을 떠돌며 이국 문화를 번역하는 삶이었기에 더 많은 것들을 보았을 수도 있겠지만, 요네하라 마리처럼 보고 생각한 것을 이렇게 상큼한 언어의 당의정 속에 녹여 독자를 현혹하는 매력들 입히는 일도 탁월한 재능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칼럼과 대담으로 짜인 다소 산만한 구성이지만, 뭐, 유작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미 고인이 되어 '미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는 인간들을 화사하게 비웃는 하늘나라로 가버린 이에게 유사한 글들을 묶어서 책으로 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09년 겨울, 우울한 날에 요네하라 마리가 내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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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쪽. 구멍을 파고 묻었습니다...는 구덩이가 더 적합한 번역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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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리 여사의 좌충우돌 애견애묘기(愛犬愛猫記)
    from 글샘의 샘터 2010-07-04 19:42 
    인간 수컷은 기르지 않는 거?  원래 제목이 이렇게 생겼다.  '기(記)'라는 한문 문체가 있다. 건축물·산수(山水)·서화(書畵) 등을 묘사하고 기술하는 한문 문체인데, 정자를 지으면 정자의 이름을 따서, 서재를 지으면 서재의 이름을 따서 '기'를 짓는다. 에세이 정도가 되겠는데, 자기가 겪은 일에대하여 기념하려고 주제에 따른 자기 소회를 적는 형식이 되겠다.  마리 여사의 이 책은 어떻게 해서 개들과 고양이들과 함께 살
 
 
비로그인 2010-01-11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네하라 마리.... 땡깁니다~^^*
요즘 쉬고있어 시간이 나니 가끔 서재 들릅니다. 책 제목만 보는걸루도 버겁네요~
마리... 꼭 만나보고 싶은 작가네요~

글샘 2010-01-12 01:29   좋아요 0 | URL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니, 몇 권 남은 책이라도 읽어야겠구나.
혹시 이 글 보면 주소라도 비밀글로 남겨 주렴.
건축 관련 글이나 책 몇 권 보내 줄까 싶어서...

2010-01-12 0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1-12 22:24   좋아요 0 | URL
으, 나느 진보의 미래, 공무도하 아직 안샀는데... ㅎㅎ 바꿔 보자.
시간 나면 책 부칠게~~~

2010-01-13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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