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의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 여태껏 내가 읽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 정말? 정말!

 

그런데 이렇게 내 독서 경험의 좁고 얕음을 빤히 드러내도 괜찮을까. 물론이다. 괜찮고 말고! 내 마음이 불편했다면 이런 글을 애시당초에 쓰지도 않았을 터. 그런데 이런 뻔뻔함이 다 나이 탓이라는 걸 소세키는 이렇게 표현한다.

 

"간단히 말하면 늙어빠졌다는 거네."

 

"선생님은 왜 예전처럼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없는 거죠?"

 

"딱히 이유는 없지만……. 말하자면 아무리 책을 읽어도 그만큼 훌륭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탓이겠지. 그리고……."

 

"그리고 또 있습니까?"

 

"또 있다고 할 만한 이유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사람들 앞에 나선다거나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모르면 수치인 것 같아서 거북했는데 요즘에는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다 보니 무리해서라도 책을 읽어보려는 마음이 안 생기는 거겠지. 간단히 말하면 늙어빠졌다는 거네."(75∼76쪽)

 

 

나쓰메 소세키의 특징들은 『마음』 하나만 읽어도 금세 알 것만 같은 착각도 든다. 그의 글이 독자들의 마음에 아주 쉽게 와닿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형체도 없는 사람의 마음을 참 잘도 건드리고 다독이고 어루만진다. 그가 왜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지 알 것도 같다. 비록 그가 셰익스피어처럼 기가 막힌 대사들을 시적으로 화려하게 펼쳐놓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의 작품의 또다른 특징 하나는 책 뒷면에 커다랗게 박힌 글씨 대로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들린다는 점이다. 그런 느낌을 나는 『마음』을 읽는 동안에 너무 자주 맛보고 있다. 가령, 다음의 대목 하나만 읽어도 그렇다.(그 대목을 잠시 뒤에 인용하는 점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소세키의 문장을 인용하기 전에 이쯤에서 뭔가 끼워넣어야 할 것만 같은 우리들의 현재 사정들에 관한 얘기가 있어서 그렇다.)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각한 때가 도대체 언제였던가. 젊은이들의 취업난은 너무나 심각해서 차마 글로 옮기기가 두려울 정도다. 주변에서 매일같이 들리는 이야기가 '청년들이 취업이 안 된다.'는 얘기 뿐이다. 뉴스에 보도되는 취준생들과 공시생들의 규모만 봐도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옛날엔 이런 적이 없었다.

 

중장년층들의 어려움도 사정이 좀 다르긴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만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50대에 평생 직장인 줄로만 알고 다니던 회사에서 짤리는 순간, 특별한 능력과 스펙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일자리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공인중개사니 공동주택관리사니 온갖 자격증을 따놓은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파트 관리소장 한 사람 뽑는데 4,50 명씩 지원한다니, 도대체 무슨 수로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내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자식들은 거의 다 컸지만 그네들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니, 다니던 직장에서 밀려난 늙은 애비라도 일자리를 얻어 딸린 식구들을 부양해야 할 처지인데, 그것조차 도통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사정이 나빠도 옛날엔 이 정도로 나쁘진 않았던 듯하다.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조혼 풍습도 한몫 했던 터여서 50대에 설사 은퇴를 하더라도 30대의 자녀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부모를 부양했었다. 물론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가. 50대가 아니라 70대, 80대가 되어도 자식들에게 부양의 의무를 지우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노후는 노인들이 알아서 해결하는게 보편적 상식이 되었다.

 

많이 꾸물거렸다. 다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로 돌아오자. 작가의 말대로, 『마음』은 1914년 4월부터 8월까지 도쿄와 오사카의 《아사히 신문》에 동시에 연재한 소설이다. 지금으로보터 무려 105년 전에 일간지에 연재된 소설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어떻게 된 게 요즘은'으로 시작되는 옛 어른들의 푸념섞인 말투가 요즘 사람들이 들어도 어쩌면 그토록 생생하게 들어맞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정말? 정말!

 

9월 초가 되어 나는 드디어 도쿄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당분간 지금까지처럼 학자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서 이렇게 있어봐야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나는 아버지가 바라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도쿄로 가겠다고 말했다.

 

"물론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만요." 하고도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일자리가 아무래도 내 머리 위에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버지는 어디까지나 그 반대로 믿고 있었다.

 

"그야 얼마 안 되는 기간일 테니까 어떻게든 마련해보마. 그 대신 길어지면 안 된다. 적당한 일자리를 얻는 대로 독립해야지. 원래 학교를 졸업한 이상 다음 날부터는 남의 신세 같은 걸 지면 안 되는 거니까. 요즘 젊은 사람은 돈을 쓰는 것만 알지 버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구나."

 

아버지는 그 밖에도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옛날에는 자식이 부모를 부양했는데 어떻게 된 게 요즘은 부모가 자식을 먹여 살린다니까" 하는 말도 했다.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121∼122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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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2-15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재밌게 읽었어요. 유머가 있고 짠하게 만드는 게 있고 통쾌한 부분도 있고
교훈도 있어요. 무엇보다도 도련님의 따뜻한 마음이 감동으로 전해 와서 좋았어요.

oren 2019-02-15 21:44   좋아요 0 | URL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와 『도련님』(1906)이 워낙 유명한 덕분에 그 작품부터 읽은 분들이 많을 듯해요. 그런데 어떤 평론가는 ‘전작은 재기가 너무 과다하게 발휘되고 있고, 후작은 감상이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평을 남겼더라구요. 자신으로서는 『마음』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나요. 그래서, 저도 『마음』부터 읽어보기로 마음먹고 그 책부터 읽어보고 있어요.^^

겨울호랑이 2019-02-17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많이 접하질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사실, 다른 작가들 작품도 마찬가지긴 합니다만.ㅜㅜ) 작가의 글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oren님께서 소개해주신 글을 통해 느껴 봅니다.^^:)

oren 2019-02-17 23:32   좋아요 1 | URL
저도 나쓰메의 작품들을 읽어본 게 없어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탁월한 문장가임엔 틀림없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