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동서문화사 월드북 27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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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항상, 가끔, 대체로

'모든 오류는 귀결에서 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추리'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또한 그 귀결이 그 해당 근거에서 생긴 것이지 다른 근거에서 생길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에는 타당하지만, 그 밖의 경우에는 타당하지 않은 추리다. 오류를 범하는 사람은 하나의 귀결에 그 귀결이 전혀 가질 수 없는 근거를 설정한다. 이 경우 그에게는 오성이 실제로 부족하다. 말하자면 원인과 결과와의 결합을 직접 인식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또한 더 빈번한 경우이긴 하지만,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귀결에 어떤 근거를 규정하는 경우, 물론 그 근거는 가능하지만, 귀결에서 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추리 전체에 첨가하여, 그 해당 귀결은 '항상' 그가 진술한 근거에서만 생긴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완전한 귀납을 행한 후에 비로소 가능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직 전제만 하고 있다. 따라서 그 '항상'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광범한 개념이며, 그 대신 '가끔'이라든가 또는 '대체로'라고 말하기만 하면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결론은 미결정의 것으로 되며, 그러한 결론으로서는 잘못이 없다. 그런데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상술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추론하는 것은 조급한 탓이 아니면 가능성에 관한 지식이 제한되어 있어서, 그 때문에 행해야 할 귀납의 필연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류는 가상과 유사하다. (5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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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 까치글방 138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이기상 옮김 / 까치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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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


거리를 없앰은 거리를,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의 멂을 사라지게 함을, 가까워지게 함을 말한다.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거리를 없애며 존재한다. 그는 그가 무엇인 그 존재로서 그때마다 존재자를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해준다. 거리를 없앰은 멂을 발견한다. 이 멂은 거리와 마찬가지로 현존재적이지 않은 존재자에 대한 범주적 규정이다. 그에 반해서 거리를 없앰은 실존범주로서 확고하게 견지되어야 한다. 도대체 존재자가 현존재에게 그것의 멂이 발견되는 한에서만 세계내부적인 존재자 자체에서 다른 것과 관련되어서 "거리"와 간격이 접근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존재자들 가운데 어떤 것도 그것의 존재양식상 거리를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지 거리를 없앰에서 발견되는 측정 가능한 간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거리없앰은 우선 대개 둘러보는 가깝게 함, 조달함으로서의 가까이 가져옴, 예비해놓음, 손안에 가짐이다. 그런데 존재자를 순수하게 인식하며 발견하는 특정한 방식들도 가깝게 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존재에는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이 놓여 있다.  우리가 오늘날 다소 강요되듯이 함께 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속도상승은 멂을 극복하도록 몰아세운다.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과 함께 현존재는 오늘날 일상적 주위세계의 확장과 파괴라는 방법으로써 그것의 현존재의 의미를 아직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세계'의 거리를 없애고 있다. (149쪽)



침묵함

말함의 다른 본질적 가능성의 하나인 침묵함도 동일한 실존론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 서로 함께 말하는 가운데 침묵하고 있는 사람이 말을 끝없이 하는 사람보다 더 본래적으로 "이해하게끔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해를 형성할 수 있다. 어떤 것에 대하여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이해가 증진된다는 보장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장황하게 말함은 이해된 것을 은폐하고 거짓 명료성 속으로, 다시 말해서 진부함의 몰이해로 이끈다. 그렇지만 침묵함이 벙어리로 있음은 아니다. 벙어리는 오히려 거꾸로 "말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벙어리는 그가 침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애당초 그런 것을 증명할 가능성조차 없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말수가 적은 사람도, 벙어리와 마찬가지로, 그가 침묵하고 있고 침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은 주어진 [결정적] 순간에 침묵할 줄도 모른다. 오직 진정한 말함에서만 본래적으로 침묵함도 가능한 것이다. 현존재는 침묵할 수 있기 위해서 무엇인가 말할 것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풍부하게 열어밝힐 처지에 있어야 한다. 그때에 과묵함[침묵하고 있음]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잡담"을 눌러버린다. 침묵하고 있음은 말함의 양태로서 현존재의 이해가능성을 근원적으로 분류파악하여, 이 이해가능성에서부터 진정한 들을 수 있음과 투명한 서로 함께 있음이 생기게 한다.(227쪽)


호기심

봄의 근본구성틀은 "보는 것"에 대해서 일상성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존재경향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그것을 호기심이라는 용어로 지칭하도록 한다. 그런데 호기심이라는 용어는 그 특징상 보는 것에 제한되어 있지 않고 세계를 독특하게 감지하며 만나게 하는 경향을 표현한다. 우리는 이 현상을 원칙적으로 실존론적-존재론적인 의도를 가지고 해석하지, 좁게 인식함에 방향을 잡지 않는다. 인식이 이미 일찍부터 그리스 철학에서 "보려는 욕망"에서부터 개념파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존재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글들을 모은 논문집의 첫번째 논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 모든 인간은 본성상 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의 존재에는 본질적으로 보는 것에 대한 염려가 있다. 이 문장으로써 존재자와 그 존재에 대한 학문적 탐구의 근원을 앞에서 언급한 현존재의 존재양식에서 발견하려고 시도하는 연구가 소개되었다. 학문의 실존론적 기원에 대한 이러한 그리스적 해석은 우연이 아니다. 거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파르메니데스의 문장에 앞서 윤곽잡혀 있던 그것이 명시적인 이해에 이른 셈이다 : 왜냐하면 사유와 존재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존재는 순수한 직관하는 받아들임에 자신을 내보이고 있는 그것이며, 오직 이러한 봄만이 존재를 발견한다. 근원적이고 진정한 진리는 순수 직관에 놓여 있다. 이 테제는 그뒤부터 서양철학의 기초가 된다. 그 테제 안에 헤겔 변증법도 그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오직 그 근거 위에서만 헤겔 변증법이 가능하다.

"봄"의 기이한 우위를 누구보다도 아우구스티누스가 욕망에 대한 해석과 관련하여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본디 눈에 딸린 것이 보는 것인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감관으로 무엇을 알려고 할 때에도 "보다"라는 낱말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 '들으라, 얼마나 번쩍이는지', '맡으라, 얼마나 빛나는지', '입을 대라, 얼마나 찬란한지', '만져라, 얼마나 눈부신지.' 그러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보라고 말하고 이 모든 것이 보인다고 말한다. 따라서 눈만이 감각할 수 있는 것을 '보라, 얼마나 빛나는지' 할 뿐 아니라, '소리를 들어보라', '냄새를 맡아보라', '맛을 보라', '얼마나 단단한지 만져보라' 하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체의 감각적 경험을 '눈의 탐욕'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머지 감관들도, 비슷한 점에서 인식함이 문제가 될 때면 눈이 윗자리를 차지하는 봄의 기능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235쪽)


무정주성(無定住性)

그러나 자유롭게 된 호기심은 본 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시 말해서 그것에 대한 존재에 이르기 위하여 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기 위해서 보려고 애쓴다. 호기심이 새로운 것을 찾는 이유는 그 새것에서 다시금 새로운 새것으로 뛰어들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봄의 염려에서 중요한 것은, 파악하여 알면서 진리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세계에 맡겨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러기 때문에 호기심은 특이하게 가까운 것에는 머물지 않는 특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호기심은 또한 고찰하며 머무는 여가도 추구하지 않으며, 언제나 새것과 만나는 것을 계속 바꿈으로써 생기는 동요와 흥분을 찾는다. 호기심은 아무 데도 머무르지 않음으로 해서 부단히 산만함[부산함]의 가능성을 배려한다. 호기심은 존재자를 경탄하면서 고찰하는 것, 즉 타우마체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호기심의 관심사항은 경이에 의해서 이해하지 못함에 인도되는 것이 아니다. 호기심은 앎을 배려하는데, 순전히 안 것으로 간주하기 위해서이다. 호기심을 구성하는 두 계기, 즉 배려된 주위세계에 머물지 않음과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산만함[부산함]은 이 현상의 세번째 본질성격의 기초를 부여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무정주성(無定住性)이라고 이름한다. 호기심은 도처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다. 세계-내-존재의 이러한 양태는 일상적 현존재가 그 안에서 끊임없이 뿌리 뽑히고 있는 그런 새로운 존재양식을 드러낸다.(237쪽)


애매함

누구나 다 무슨 일을 당면하고 있고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또한 누구나 다 이제 일어나야 할 일이 무엇이고, 아직 당면하고 있지는 않지만, "본래" 했어야만 했던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할 줄을 이미 알고 있다. 누구나 다 처음부터 이미, 다른 사람이 무엇을 예감하고 느끼는지를 예감하고 감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흔적을 따라다니는 것, 그것도 풍문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은 - 진짜로 사실의 "흔적을" 찾은 사람은 거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는 법이다 - 애매함이 현존재의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가장 위험한 방식인데, 그렇게 해서 애매함은 이미 현존재의 가능성을 무력화시켜버리기 때문이다. ······

공공적인 해석되어 있음의 애매함은 앞질러 얘기하는 것과 호기심으로 예감하는 것을 본래적인 사건인 것처럼 내놓고 실행과 행위는 추후의 일이며 하찮은 것으로 낙인찍어버린다. 그러기에 '그들' 속에 머물러 있는 현존재의 이해는 자신의 기획투사에서 끊임없이 진정한 존재가능성을 잘못 보고 있다. 현존재는 언제나 애매하게 "거기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서로 함께 있음의 공공의 열어밝혀져 있음 안에, 가장 요란한 잡담과 가장 솜씨 좋은 호기심이 "사업"을 관장하고 있는 곳에, 일상적으로는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무 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 곳인 거기에 존재한다.

이러한 애매함이 호기심에게는 언제나 그것이 찾는 것을 건네주고, 잡담에게는 마치 그 속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듯한 가상을 마련해준다.

이러한 세계-내-존재의 열어밝혀져 있음의 존재양식이 서로 함께 있음 그 자체도 철저히 지배한다. 타인은 우선 사람들이 그에 관해서 들은 것,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말하고 알고 있는 그것을 근거로 "거기에" 존재한다. 잡담은 우선 근원적인 서로 함께 있음 사이로 끼어든다. 누구나 먼저 우선 타인의 눈치를 살펴서,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것에 대하여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본다. '그들' 속에 서로 함께 있음은 절대로 폐쇄되어 무관심하게 옆에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고, 긴장 속에 애매하게 서로를 살피며, 몰래 서로 엿들으며 있는 것이다. 서로를 위한다는 가면 아래 서로를 적대하는 연출을 진행하고 있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애매함이 위장과 왜곡을 명시적으로 의도한 데에서 비로소 생기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 개별 현존재가 애매함을 비로소 야기시켜놓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애매함은 이미 하나의 세계 안내 내던져져 있는 서로 함께 있음인 그런 서로 함께 있음 속에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애매함이 공공적으로는 은폐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이러한 해석이 '그들[자신들]'의 해석되어 있음의 존재양식에 해당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언제나 저항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설명을 '그들'의 동의를 얻어서 확증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오해일 것이다.(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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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2-05-24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께서 밑줄 그어놓으시니 제게 돌올하게 보입니다. 아니 왜 내 책에는 이런 말이 없지? 하고 다시 보니 책이 <존재와 시간>이 아니라 <시간과 존재>네요. 이게 같은 책이 아니라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 무지녀입니다.

oren 2012-05-25 13:06   좋아요 0 | URL
'단순한' 밑줄긋기에 소중한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알라딘에서 검색해봐도 찾기 어려운데) 반딧불이님께서 말씀하신 <시간과 존재>라는 책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과 '같은' 책이겠지요.
 
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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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과학적이고 일견 어려울 수도 있는 이 책이 2007년 5월에 출간되자 말자 '상상 밖의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내가 가진 책은 2007년 10월에 인쇄된 책인데 5개월 만에 1판 11쇄로 나온 책이다.) 대강 짐작해 보자면 누구나 모두 '생각'에 대해 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뭔가 이 책을 읽으면 생각을 잘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실 이 책은 독자들의 그런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 줄만큼 '생각'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을 보여주는 훌륭한 책이다. 다만 독자들의 일반적인 기대 보다는 책이 다루는 내용이 훨씬 더 깊이를 지녔기 때문에 쉽게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내용이 많다는 평가들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이 한창 인기를 끌 때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애독하는 책으로 알려져 더더욱 주목받기도 했던 일도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인데, 누구나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이 13가지 생각도구들을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이런 도구들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생각의 도구들을 얼마만큼 '천재적으로' 쓸 줄 아느냐에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대가가 되고자 한다면 필요한 도구의 용법을 익히고, 정신적 요리법을 배우며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우리에게 '정신적 요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다시 생각하기'를 통해 정신적 요리법은 '무엇을 생각(요리)하는가'에서 '어떻게 생각(요리)하는가'로 초점이 옮겨진다."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첫째, '느낀다'는 것이다. 이해하려는 욕구는 반드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느낌과 한데 어우러져야 하고 지성과 통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상력 넘치는 통찰을 낳을 수 있다. 실제로 생각과 감정, 느낌 사이의 연관성은 <데카르트의 오류>라는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마음(생각)과 몸(존재 혹은 감각)의 분리를 말한 철학자(데카르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 느낌과 직관은 '합리적 사고'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 사고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면역학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샤를 니콜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새로운 사실의 발견, 전진과 도약, 무지의 정복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과 직관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상상력이나 직관은 예술가나 시인들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현실로 이루어지는 꿈과 무엇인가를 창조할 듯한 꿈은 같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생각을 좀 더 창조적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을 살펴볼 수 있고, 또 그런 '도구'들을 너무나 훌륭하게 다룰 줄 알았던 위대한 인물들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훌륭하게 사용했던 '도구들과 그 사용법들'을 배움으로써 우리 역시 좀 더 훌륭한 생각들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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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07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의 글을 인용해서 쓴 글 있었어요. 저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데, 왜 사람들은 안 읽는지 모르겠어요.
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요즘 새롭게 터득한 게 있는데, 뻔한 책도 얻을 게 있다는 것...이에요. ㅋ

이어령님의 <젊음의 탄생>도 좋았어요. 이 책은 제가 서재에 리뷰를 올린 적 있어요. 많은 생각할거리를 주죠.


oren 2012-02-08 00:01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대단한 가치'를 지닌 책이지요. 저도 이 책 속의 '몇몇 구절들'을 다른 분들의 서재글에 대한 제 댓글에서 인용한 적이 몇 번 있었답니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인 박웅현님께서도 '인문학이라는 촉수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이 책에 대해 극찬하는 것을 직접 들었답니다. 저는 그 강연에서 '이 책 속의 몇몇 구절'에 대해 '저자'한테 질문을 좀 던져 볼려고 했는데, 정작 저자는 강연중에 뜬금없이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이 좋다는 얘기만 잔뜩 늘어놓고 난 뒤에 '질문시간'을 주지 않더군요.ㅎㅎ

사마천 2012-02-07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 놓았는데. 막상 자주 못 보게 되네요.. 아쉬움을 많이 느낌닙다. 좋은 리뷰 덕에 다시 도전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oren 2012-02-08 00:03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에 대해서는 정말 여러 사람들이 '극찬'하는 것을 봤는데, 저는 그때마다 그게 이 책의 가치에 걸맞는 '정당한 평가'라고 생각했답니다. 이미 사 놓으신 책이니 만큼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1 - 개정판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 1
나폴레온 힐 지음, 권혁철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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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초판 1쇄가 나온 시기는 1990년 7월이다. 내가 사서 읽은 책은 개정2판 49쇄이고 2004년 1월에 출판된 책이다.

자기계발 서적 가운데 이 책 만큼 많이 팔린 책도 흔치는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의 저자인 나폴레온 힐은 '성공적인 인생' 하면 금새 떠오르는 작가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인 것 같다. 

그는 윌슨 대통령 홍보담당 비서관과 루스벨트 대통령 고문관 등을 역임했으며 성공을 위한 실천 프로그램인 PMA(Positive Mental Attitude)를 완성하여 보급한 인물이다. 88세의 일기로 1970년에 사망할 때까지 집필과 강연활동을 계속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아마도 다음의 인용문이 아닐까 싶다.

생각을 관리하는 것이 인생을 관리하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인 윌리어머 제임스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세계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으로 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세대에도 부합하는 지당한 말이다.
- 보브 컨클린(퍼스널 다이나믹스사 회장)


이 책은 자기계발서 답게 단계별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STEP 1. 모든 것은 열렬한 소망에서 출발한다.
STEP 2. 신념이 나를 움직인다.
STEP 3. 자기암시는 놀라운 힘이 있다.
STEP 4. 전문 지식을 활용한다.
STEP 5. 상상력에서 가능성이 나온다.
STEP 6. 행동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운다.
STEP 7. 결단은 신속하게 한다.
STEP 8. 참고 견디는 마음을 키운다.
STEP 9. 유력한 협력자를 찾는다.
STEP 10. 성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전환시킨다.
STEP 11. 잠재의식을 끌어낸다.
STEP 12. 잠재된 두뇌능력을 계발한다.
STEP 13. 육감을 불러 일으킨다.

워낙 유명한 저자가 쓴 책이고 나름대로 오랜 기간 동안 '시간의 테스트'를 견뎌낸 책인만큼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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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함......
종의 기원 동서문화사 월드북 87
찰스 다윈 지음, 송철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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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즉 생존 투쟁에 있어서 적자생존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Survival of the Fittest in the Struggle for Life』(1859) - 이것은 유명한 제목이다. 이를 읽는 사람은 숨죽이며 읽어 내려간다. 그런데 읽는 사람에게 이처럼 은연중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고전"이 이것 말고 또 있을까? 이토록 겸허한 외관을 쓰고 세상에 나타난 기초 과학 이론이 또 있을까? 이 책의 표현은 대단히 평범한 것이어서 책을 펼쳐 읽으면 마치 자연에서의 자조(自助)에 관한 전도사의 설교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설교단이나 회계부서에서 들을 수 있는 이익과 손실에 관한 잠언이 모두 거기에 있다.

"어떤 생물체나 나쁜 것은 배척하고 좋은 것은 모두 보존하고 축적하며 기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진보를, 묵묵히 그리고 서서히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경쟁을 통한 진보이다. "그러나 성공은 흔히 수컷의 특수한 무기 또는 매력에 달려 있다. 그리고 조그마한 이점이 승리를 결정한다." 이것은 성공에 관한 말이다. "겉모습이 생물에 유익한 경우를 제외하면, 자연은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아름다운 마음씨에 관해서이다. "부지런한 벌이 얼마나 시간을 절약하는지, 많은 사례들을 보여줄 수 있다." 근검절약에 관해서이다.

"생존 투쟁에 관하여 고찰할 때 우리는 다음 사실을 확신해도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다소 위안도 된다. 즉 자연의 싸움은 그칠 새 없이 일어나지는 않으며, 공포가 느껴지지도 않으며, 죽음은 보통 신속하게 이루어지며, 원기 있고 건강하고 행복한 것은 모두 살아남아 증식한다."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얻게 되는 보상에 관한 말이다.

 - 찰스 길리스피, 객관성의 칼날 中에서

 * * *

이 책은 인류 역사를 바꾼 100권의 책 가운데에서도 첫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만큼 중요한 책이다. 다윈은 흔히 뉴턴, 갈릴레이와 함께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3대 과학자로 손꼽힌다.

1962년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은 다윈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극찬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내 어머니보다 더 중요하다. 그가 없었다면 생명과 존재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다윈은 청년기에 의사가 되기 위해 에든버러 대학에 들어갔으나 도중에 그만 두고 박물학만 파고들었는데, 실망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성직자로 만들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연사(自然史)를 평생의 학문으로 선택하였고, 1831년에는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를 타고 5년에 걸친 '역사적인 항해'를 하게 된다. 이 비글호가 갈라파고스 제도와 함께 인류의 역사를 바꾼 가장 유명한 배가 되리라고는 그 당시엔 아무도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다윈은 비글호와 함께 여행하는 동안 남미와 대서양, 태평양과 인도양을 넘나들며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채집하였으며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마침내 '종의 기원'에 대한 극적인 영감을 얻게 된다.

다윈은 그의 자서전에서 '관찰 전에 추리하는 것은 필요하고 관찰 후에 추리하는 것은 유용하지만, 관찰 중에 추리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이다'라고 말했다. 그토록 신중한 그였기에 그는 비글호와 함께 한 오랜 항해 끝에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여행기인 <비글호 항해기>를 출판한 뒤 무려 20여 년 동안, 오로지 진화론을 입증할 방대한 증거와 자료들을 수집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오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마침내 그는 1859년에 인류를 미망에서 깨어나게 만든 <종의 기원>을 출판한다. 다윈의 이론은 비록 일부의 오류는 포함하고 있지만 그의 대부분의 이론은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과학적 발전에 의해서 약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더욱 확고한 이론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종의 기원>의 핵심 내용은 간략하다. 생물은 창조되지 않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으며 생물이 생존하는 동안 생식과 유전을 통해 끊임없는 변이를 일으킨다는 것이고,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를 거친다는 것이다. 한편 자연계의 생물은 제한적인 생존환경 때문에서 서로간의 생존경쟁이 벌어진다는 것이고, 결국 환경에 대하여 유리한 변이를 가진 개체만이 생존하고 그 외에는 도태되는 ‘적자생존’이 일어나며, 이 같은 과정을 거친 생물의 형질변이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축적되어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개체 뿐만 아니라 생물종 자체도 끊임없이 새로운 변종을 낳으며 오랜 기간 동안의 진화를 거치고 나면 결국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다윈이 살던 시대에만 하더라도 세계는 창조의 입김에 의해 생명이 불어넣어 졌으며, 인간은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존재였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다윈은 자연계의 생물의 진화를 '나뭇가지'에 비유해 설명하고, 포유류나 영장류 역시(인간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생물체와 똑같이 나뭇가지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하였다.

다윈의 이론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정도로 단순하고 명쾌하다. 다만 그러한 이론이 기존의 '창조적 세계관'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이론이었기 때문에 그는 평생에 걸쳐 '반박당하지 않을만큼 완벽한' 이론을 세우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에 매달렸으며, 그런 그의 노력이 그를 위대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과학자로서의 나의 성공은, 그것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는 별도로 하고 ······ 복잡한 갖가지 심적 소질과 조건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과학에의 사랑 - 어떤 문제라도 오랫동안 끝까지 생각하는 무제한의 강한 인내심 - 관찰이나 사실 수집에서의 근면함 - 그리고 창안력과 상식이 함께 부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 "
 - 다윈,『자서전』 중에서

<종의 기원>은 생물학은 물론 사상학적으로도 획기적인 기준을 세운 고전이다. 다윈이 생존했던 시기에도 종(種)이 진화한다는 생각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다윈은 자연선택이라는 진화 메커니즘을 주장하고, 나무에서 뻗어가는 가지에 비유해 종의 분화를 설명했던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몰고 온 파장은 대단했으며, 신에 의한 창조설이 일반론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기에 종교계는 물론, 다윈의 진화론에 반대하는 기존 학계로부터도 심한 반박을 받았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못된 궤변”이라는 종교계의 거센 비난은 다윈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다윈의 생각과 주장에 열광하는 옹호자들도 속속 생겨났다. “난 정말 바보다. 이처럼 쉬운 설명을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영국 동물학자 T.H. 헉슬리의 이 탄식은 <종의 기원>의 가치를 단번에 알려준다.

다윈의 ‘혁명’은 이 책이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윈의 '생명은 진화한다'는 사상은 자연과학은 물론 의학.철학.심리학.문학.경제학 등 수많은 잔가지들로 계속 자라나 뻗어나가고 있으며 그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종의 기원』을 읽으면 생명체의 진화와 다양성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우리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든다. 내용이 너무 전문적일 것 같아서 지레 겁먹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온갖 다양한 생명들을 왕성한 호기심으로 관찰하고 그 가운데서 진리를 찾아 내고자 했던 다윈의 열정도 느낄 수 있고, 또 여러 동식물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가득 담겨있다.

‘다윈이 지금까지 살아 있고 6판(1872년)으로 끝난《종의 기원》의 최신판을 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누군가는 했을 수도 있겠다. 바로 그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해서《종의 기원》의 목차를 그대로 따라가며 최신 내용으로 버전업한 책이 몇 해 전에 나왔다. 영국의 유전학자이자 과학 저술가 스티브 존스가 최신의 유전학을 첨가해 다시 쓴 21세기판 《종의 기원》인 셈인데 그 책의 제목은『진화하는 진화론』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부터 먼저 읽었었는데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종의 기원》에 못지 않게 많이 담겨 있어서 무척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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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탄할 만하고 지극히 명백한 유사성
    from Value Investing 2012-09-15 01:53 
    결국 동일종의 변종이라고 생각되는 것과 같은 종족의 유사성현상은 매우 다양하지만, 물자체로서 의지는 하나다. 이것을 인식해야 비로소 자연의 모든 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탄할 만하고 지극히 명백한 유사성과, 동시에 주어지지는 않더라도 결국 동일종의 변종이라고 생각되는 것과 같은 종족의 유사성이 이해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에서 말한 화성, 세계 모든 부분의 본질적인 연관, 방금 고찰한 그들 각 단계의 필연성, 이런 것들을 명백하게 깊이 인식하게
  2. 세상을 바꾼 섬, 갈라파고스
    from Value Investing 2014-02-09 00:47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지구상의 생명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종은 영속하지도 않으며, 지적 창조자의 완벽한 작업도 아니다.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변화할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은 경쟁을 통해 생존해온, 단순히 자연의 맹목적인 힘에 의해 선택된 순간적인 모습이다. 500쪽에 이르는 그 책에서 비록 갈라파고스는 단 한 줌 잠깐 언급되지만, 먼 청춘 시절 한 번 방문했던 매혹적인 작은 섬들에 대한 기억이 희
 
 
라로 2012-02-06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은 리뷰를 올리셔서 다 읽어보진 못할것 같아요,,ㅠㅠ
천천히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oren 2012-02-06 12:57   좋아요 0 | URL
리뷰를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려 죄송해요.

몇 달 전에 1박2일 동안 '부실공사' 하듯이 마구 써 놓은 리뷰가 있어서 (즐찾하시는 분들이 읽지 못하도록) '야심한 밤'에 한꺼번에 몰래 올린 건데, 이웃분들께 '노출되지 않고' 알라딘 상품에만 '등록'시키는 기능이 없어서 안타깝더라구요. ('즐겨찾는 서재 브리핑'에는 노출되지 않고, 알라딘의 해당 상품에만 '노출'되는 기능을 건의해 볼 작정입니다)

페크pek0501 2012-02-07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의 기원, 이 책과 씨름하던 생각이 납니다. 제 것은 홍신문화사 출판이에요.
꼭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줄 알고 어떤 의무감에 사로 잡혀 읽었다는... 명저니까요.
마르크스의 서적과 함께 마치 학생처럼 공부하는 자세로 읽었어요.
옛날엔(30대 초반) 어느 잡지사 자유기고가로 일했는데,
원고 끝나서 팩스로 보내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책과 씨름하며 보냈어요. 종이노트에 메모도 많이 하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가장 부지런떨며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네요. 지금은 게으름뱅이랍니다. ㅋㅋ

oren 2012-02-07 20:19   좋아요 0 | URL
저도 20대 시절에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다가 말았는데(삼성출판사에서 나온 책), 나중에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어요. 제 나름대로 '다위니즘'의 후계자들(E.O.윌슨, 스티븐 제이굴드,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등)이 쓴 몇몇 책들, 그리고 진화심리학이나 현대의 진화생물학 또는 과학철학이나 과학사(『객관성의 칼날』과 같은 책들) 분야에 대한 몇몇 책들을 이래저래 접하고 나서 '비로소'『종의 기원』을 읽으니 훨씬 더 이 책이 흥미롭고 재미있었어요.

예를 하나만 들자면, 다윈의『종의 기원』속에서 애덤 스미스의『도덕감정론』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은 부분(도덕적 감정들의 진화를 설명한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만 해도 정말 남다른 감동을 맛볼 수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