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의 ‘참된 인격‘에 관해서 다양하고 깊이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책
워렌 버핏이 ‘투자에 관한 책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 단언한 책
현명한 투자자 - 벤저민 그레이엄의, 완전개정판
벤저민 그레이엄 지음, 제이슨 츠바이크 논평, 박진곤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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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쯤에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조금은' 어렵게 느껴져서 책을 완독하지 못했었다. 그 이후 주식시장의 극심한 등락을 경험하고 나니, 다시금 '투자'에 관한 '기본'을 가다듬을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고, 그 시기에 다시 집어든 책이 바로 벤저민 그레이엄의 대표적인 저서인 이 책이었다.

1999년의 극심한 버블과 2000년의 참혹한 버블 붕괴를 겪고 난 이후, 다시금 시장이 (이라크 전쟁과 유가 급등과 북한의 서해안 침범과 SK그룹의 분식회계 등으로) 500포인트대 초반을 가리키고 있던 2003년 봄에, 차분하게 이 책을 집어 들고 집 근처인 일산의 마두도서관에 앉아서 다시금 펼쳐 읽어보니 정말 '마른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책 내용들이 가슴속으로 깊숙히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며칠간 이 책만 붙잡고 숙독과 정독을 하면서 다 읽고 나니 금새 '한번 더' 읽고 싶어졌다. 다시금 처음부터 다시 '정독'을 하면서 중요한 대목들은 꼬박 꼬박 대학노트에 옮겨 적었는데, 지금 그 독서노트을 뒤져보니 빼곡하게 14쪽을 채우는 분량이다.

지금은 그 당시 읽었던 '감명깊은 내용들'을 하도 여러번 되살펴 보고 다른 글에서 '인용'도 했기 때문에 너무 익숙해서 식상할 정도가 되었지만, 그 당시엔 캄캄한 어둠 속의 환한 '등불'처럼 내 가슴 속을 밝게 비춰 주던 '빛'과 같은 글이었다.

이 책에 대해 지난 수십년 동안의 쏟아진 엄청난 '찬사'에 더해 내가 굳이 또다른 찬사를 덧보탤 필요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진정한 '투자'의 핵심을 가르쳐 주는 책 가운데 이 책보다 더 훌륭한 책은 없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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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괴감이 드는 밤......
    from Value Investing 2012-03-16 03:43 
    증시가 연일 오르고 있다.증시가 이렇게 힘차게 솟아 오른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렇게 실컷(?) 상승한 뒤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결과를 놓고 그 원인들을 새삼 되짚어 보는 건 언제나 별 실익은 없는 경우가 많다.다만, 이런 증시의 상승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이 늦은 밤에도 잠 못 이루며 일말의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건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첫째, 외국인은 정말로 짧은 기간 동안에 한국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지분을
 
 
 
독서의 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동서문화사 월드북 27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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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물음에 대해 캠벨이 내놓은 방법, 즉 "제대로 된 사람이 쓴 제대로 된 책을 읽어야 합니다. ······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려도 안 됩니다."라는 대답은 제게도 특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나비님의 글에서도 언급된 '쇼펜하우어'가 쓴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대목이 있어서 '밑줄긋기'해 놓은 부분을 옮겨 봅니다. 나비님의 글과 제가 인용한 쇼펜하우어의 글을 통해 '언제까지나 근원적인 힘을 가진 '참다운 작품'만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새삼 되돌아 보게 됩니다.

 * * *

그런데 모방자, 꾸미는 자, 모조자, 맹목적인 모방자들은 예술을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참된 작품을 보면, 마음에 들거나 효과가 뚜렷한 점에만 관심을 두고, 이것을 명확하게 하여 개념으로서, 즉 추상적으로 파악한 다음에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교활한 생각을 품고 모방한다. 그들은 기생 식물처럼 타인의 작품에서 양분을 섭취하고, 해파리처럼 그 양분의 색깔을 갖는다. 비유를 사용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끌어 넣은 것을 잘게 깨어 혼합시킬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소화할 수 없는 기계와 같다. 따라서 그 혼합물 속에서는 언제나 다른 성분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거기에서 가려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천재는 유기체처럼 동화하고 변화하고 생산한다. 왜냐하면 천재도 선배나 그 작품에 의해 계발되고 교화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에게 직접 직관적인 것의 인상에 의해 예술적으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생활과 세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교양이 높아도 천재의 독창성엔 지장을 주지 않는다. 모방자나 꾸미는 자는 타인의 걸작을 개념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개념은 결코 작품에 내적 생명을 부여할 수 없다. 시대 일반, 즉 그 시대의 다수를 점하는 어리석은 대중은 기교를 부린 작품에 기꺼이 갈채를 보내며 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은 2,3년이 지나면 재미가 없어져 버린다. 왜냐하면 시대정신, 즉 유행의 개념이 변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작품의 유일한 근거는 이 유행의 개념이다.

자연과 인생에서 직접 이끌어 낸 참다운 작품만이 자연이나 인생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젊고 언제까지나 근원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참된 작품은 특정한 시대의 것이 아니라 인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작품은 그 시대에 영합하는 것을 경멸하고 시대로부터는 냉담한 대우를 받으며, 그때그때의 잘못이 그 작품에 의해 간접적이고 소극적으로 발견되기 때문에, 나중엔 진가를 인정받게 된다. 또 이러한 작품은 진부해지지 않고, 시대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신선하고 언제나 새롭게 사람의 마음에 호소한다. 이렇게 인정받은 이상, 이제는 무시되거나 오인받을 염려는 없어진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판단력이 출중한 소수의 사람들의 칭찬으로 영광의 왕관을 쓰고 진가를 인정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 소수의 출중한 사람들은 백 년 동안에 아주 적게 나타나지만,* 그들이 말하는 의견은 점차 권위가 확립되는데, 이 권위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이 작품들의 진가를 후세에 호소하는 유일한 근거가 된다. 잇따라 나타나는 위대한 개인이야말로 이 유일한 전거이다. 왜냐하면 동시대의 대중이 언제나 어리석고 우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세의 대중도 여전히 어리석고 우둔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에나 위인들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한 말을 읽어 보라. 인간은 언제나 같기 때문에 위인들의 탄식도 지금이나 옛날이나 변함이 없다. 어느 시대에나 또 어떠한 예술에서도 작풍이 정신을 대리하며, 정신을 소유하는 것은 언제나 위대한 개인뿐이다. 그러나 작풍이란 모든 시대에 존재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은 정신의 현상이 벗어 버린 낡은 의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후세의 갈채는 동시대의 갈채를 희생하여 얻는 것이며, 또 동시대의 갈채는 후세의 갈채를 희생하여 얻는 것이다.(764쪽)

 * "격랑을 헤엄치는 사람은 드물게 나타난다(Apparent rari, mantes in gurgite vasto)." 출전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이스』1권 118.

(오래 전에 읽었던『아이네이스』(도서출판 '숲'에서 출간한 천병희 번역본)를 펴보니 해당 대목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몇 사람만이 광대한 심연 위에서 남자들의 무구들과 널빤지들과 트로이야의 보물들과 함께 파도 사이로 헤엄치는 것이 보일 뿐이다.")

 -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3권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2고찰:
충족 이유율에 근거하지 않는 표상, 플라톤의 이데아, 예술의 대상'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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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12-01-2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갈수록 고전에 대한 갈망이 커져갑니다. 무수히 쌓인 독서리스트가 실제로 큰 진보를 못 가져왔다는 아쉬움을 갖게 합니다. 그것보다 먼 예전 고전을 읽으며 받았던 추억이 가슴을 움직입니다.. 좋은 독서와 추천 감사드립니다 ^^

oren 2012-01-26 12:09   좋아요 0 | URL
사마천님께서도 고전을 아주 많이 읽으신 걸로 압니다만, 아무래도 '실생활'의 지배를 받다 보면 고전을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양주동 선생님께서 '고칠현삼제'를 권한 적이 있지만, 오랜 시간의 테스트를 견뎌낸 고전들이 그 생명력과 가치에 비해 언제나 외면받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늘 변치 않는 것 같습니다.

라로 2012-01-26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쇼펜하우어를 읽어볼게요~. 하지만 쇼펜하우어를 읽기전에 칸트, 괴테,,,플라톤,,에 이르기까지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요,,,일단 오렌님과 발 맞추기 위해서 단테를 먼저 읽으려고 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oren 2012-01-26 14:06   좋아요 0 | URL
저도 나비님의 글 덕분에 좋은 책과 훌륭한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만나게 될 것 같아 기쁩니다.

그리고, 나비님께서 전해주신 캠벨의 얘기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나는 조이스와 토마스 만과 슈펭글러를 읽었다. 슈펭글러는 니체를 언급했다. 나는 니체도 읽었다. 그러다가 니체를 읽으려면 쇼펜하우어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쇼펜하우어도 읽었다. 그러다가 쇼펜하우어를 읽으려면 칸트를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접하면서 '문헌학이 아니라 철학'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느 한 고서점에서 두 권으로 된『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구입한 즉시 다 읽고, 한동안 이 책에 열광했다고도 합니다. 그가 라이프치히 시절에 쓴 편지나 글에는 거의 종교적 귀의라고 할 정도로 쇼펜하우어 철학에 몰두했다고도 하는데, 니체는 그를 자기 자신보다 더 신뢰하므로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 있는 사람으로까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영웅적인 인물'로 존경했던 이유는 '우리의 삶이 결국은 비극적이고도 무의미한 것이어서 우리를 절망하게 하더라도, 인간의 눈을 가리고 있는 천을 걷어낼 것을 요구해야 하며 쇼펜하우어 스스로가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그런 영웅적인 노력을 계속 했다'는 데 있다고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괴테와도 특별히 인연이 많았던 인물인데, 그가 괴테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내용도 영웅적입니다.

“가슴속에 그 어떤 의문도 품고 지내지 않을 수 있는 용기, 바로 이 용기가 철학자를 만든다. 이러한 이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비슷한데, 그는 자신의 운명의 비밀이 풀리면 자신에게 끔찍한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물이다.”

oren 2012-01-27 22:59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올라온 화제의 서재글 때문에)2001년 여름에 제주도 앞바다에서 잡았던 '만새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찾기 위해 벽장(?) 같은 곳을 뒤적거리다가, 정작 '만새기가 담긴 사진'은 찾지도 못한 채 마침 그해 가을에 가족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갔을 때 '단테가 살던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답니다.

그런데 피렌체에 있는 '단테'의 집에 들렀을 때만 하더라도(2001.10.4) 저는 그의 저작인 '신곡'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터라 괜히 머쓱했는데, 오늘 다시 그 사진을 보니 ('신곡'을 통해 그와 열심히 지옥과 연옥과 천국까지 실컷 돌아다닌 덕분인지 몰라도) '단테'와 제법 많이 가까워진 느낌도 듭니다.





 
사랑만을 이야기해 보다
세상을 보는 지혜 동서문화사 월드북 27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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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님의 멋진 서평글을 다 읽고 나니, 사랑은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마지막 목적'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 * *

연정은 겉보기에는 별나라 같아도, 사실은 성욕이라는 본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니, 이 본능이 특수화된 것이며 개체화된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사랑이 희곡이나 소설에서뿐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거기서는 자기보존 본능과 함께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며, 모든 동작 중에서 가장 활동적이다) 연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관찰하면, 언제나 모든 생애에서 가장 젊은 시절, 즉 청춘시절 뭇사람들의 정력과 사고를 거의 절반쯤 강제로 동원한다. 또한 사랑은 인간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의 마지막 목적으로서, 심지어는 가장 중요한 사건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며, 가장 진실한 과업을 중단시키고, 때로 가장 위대한 정신도 흐리게 하며, 외교적 교섭이나 학술연구에 몰두할 때도 체면불구하고 연출하여 장관의 문서철이며 철학자의 원고 속에 연애편지나 머리카락을 끼워넣게 한다. 또 수많은 나날 시끄러운 사건에 가장 악질적으로 사주한 사람이나 동지끼리 맺은 가장 친밀한 사이도 끊어버리고, 견고한 사슬도 풀며, 허다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생명과 건강과 부와 지위와 행복을 빼앗아갈 뿐더러, 정직한 사람을 철면피로 만들고, 충신을 파멸시키려 한다. 이 모든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토록 소란을 피우고 애쓰고 고민하며 불행에 빠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외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듯 하찮은 일이 그처럼 큰 파문을 일으키며 안정된 생활에 소동을 일으키게 하는 것인가?

진리 탐구 정신이 투철한 사상가라면 이 물음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내릴 수 있다. 즉, 그것은 결코 작은 일에 관련되어 있지 않으며, 그 중대성은 그것을 추구하는 경우 맞닥뜨리게 되는 진지하고 열렬한 모습에 맞먹는다.

정사의 목적은 비극으로 나타나든 희극으로 나타나든 인생의 여러 가지 목적 가운데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것이며, 누구나 끈질기게 추구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기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은 다음 세대의 조정이라는 중대한 일이며, 다음 무대 위에 우리를 대신해 등장할 인원은 이같이 사소한 장난처럼 보이는 정사에 의해 그 존재와 양상이 결정된다.

그리고 이 미래에 인간이 존재하느냐의 문제가 성욕을 절대조건으로 삼고 있는 한편, 그들의 성격적인 특질인 본성(essentia)은 성애의 개체적인 선택을 절대조건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모든 점이 변함없이 결정된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일시적인 사랑에서 가장 뜨거운 정열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모든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진상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랑의 여러 가지 형태는 이성을 선택하는 개인적인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세대의 연애를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크게 보면, 다음 세대의 성립을 숙고하고 그 뒤의 무수한 세대에 대해 배려하는 진지한 일이라고 하겠다. 사실 그것은 다른 정열같이 개인의 불행이나 이익에 관계되는 일이 아니고, 앞으로 돌아올 인류의 존재와 그 특수한 양상에 관한 것으로, 이 경우 개인의 의지는 가장 높은 능력에 도달하여 자신을 종족의 의지로 돌아가게 한다.

연애란 엄숙하고도 뼈아픈 것으로, 큰 환락과 고뇌가 따르는 까닭은 종족에 관한 커다란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 시인은 몇천 년 전부터 수많은 예를 들어 그것을 묘사했다. 이 주제는 종족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으므로 그밖의 어떤 주제도 더 이상의 감흥을 주지 못한다. 즉 개인과 종족의 관계는 물체의 표면과 물체와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사랑은 옛날부터 다루어온 진부한 것임에도 언제까지나 고갈되는 일이 없다.

(중략)

당사자들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정사는 결국 자식을 낳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다. 따라서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의 우여곡절은 부수적인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고결하고 애절한 심정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은 내 주장이 지나친 실재론이라고 반박할 테지만, 이것은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등장할 인류의 외모와 성격을 정밀하게 선정하는 일은 그들의 꿈이나 공상보다 훨씬 고귀한 목적이 아닌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목적들 중에서 이보다 더 중대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 목적을 인정하지 못하면 사랑의 뜨거운 정열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정열이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되고 극히 하찮은 일도 일단 이 목적과 관련 맺으면 중대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래서 연인을 위해 동분서주하거나 서둘러 접근하는 노력이나 노고는 언뜻 보아 결과로 얻을 수 있는 대가보다 커보이는데, 이것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위에서 말한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노고와 투쟁을 거쳐 현재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성적인 성격을 갖고 태어날 다음 세대의 인류다. 아니, 다음 세대의 인류는 벌써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저 사랑이라는 이름의 면밀하고도 끈기 있는 이성의 선택에서도 나타나 있다.

(중략)

이제 문제의 핵심에 대해 언급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심이 깊이 뿌리박혀 개개인에게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하고도 분명한 동기는 이기적인 것 이외에 없다. 종족은 개체에 대해 분명 우선권을 가지며, 보다 직접적이고 큰 권한을 갖고 있다. 종족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개체는 희생되어야 하는데, 개체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욕구에만 쏠려 있으므로 개체에게 이런 희생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해시켜야 한다. 그렇다 해서 개체에게 자신의 이해관계로부터 떠나게 할 수는 없으므로 자연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환상을 심어주어 개체를 기만할 수밖에 없다. 이때 개체는 이 환상에 미혹되어 사실은 종족에 관한 일인데도 자신의 행복이 되는 것처럼 오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개체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믿는 순간, 이미 자연의 무의식적인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의 눈앞에는 곧 탐스러운 환상이 나타나 이를 추구하게 된다. 이 환상이 다름아닌 본능으로, 그 대부분은 개체 의지가 아닌 종족 의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략)

자기 이상에 맞는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하면 남성은 미칠 듯한 정열을 일으키며, 이 여성과 결혼했을 경우 맛볼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 환영으로 눈앞에 나타난다. 그런데 이 정열도 따지고 보면 '종족의 의지'며, 이것이 여성에 대해 스스로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보이며 그녀를 통해 자신을 유지해 나가려고 한다.

(중략)

그런데 사랑을 속삭이던 사람들이 일단 그 정열을 충족시키면, 곧 미궁에서 벗어나 그처럼 열망했던 것이 얼마 안 가 실망을 안겨주는 일시적인 쾌락만 제공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 욕망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른 욕망에 대해 종족과 개체, 무한과 유한 같은 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욕망의 충족으로  종족만이 실제적 이득을 보게 되나, 개체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개체가 종족의 의지에 따르게 되어 지불한 희생은 그 자신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에 사용된 것이다. 모든 연인은 성교라는 큰일을 한 번 치르고 나면 곧 속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종족의 도구가 되게 한 환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성적 쾌락은 최대의 사기꾼"이라는 명언을 남기게 되었다.

(중략)

그러므로 종족의 영혼은 개체의 이익에 관계되는 일보다 월등히 중요한 일을 처리한다고 자부하며, 전쟁의 불바다 속에서건, 분주하게 사무를 집행하는 중이건, 페스트가 창궐하는 중이건, 또는 한적한 절 속이건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히 자기 일을 수행한다.

(중략)

사랑이 어느 유일한 이성에게 쏠리게 되면 굉장한 힘과 열을 내어, 만일 사랑이 맺어지지 못하면 본인에게는 세계의 훌륭한 것들이 시들하게 보이고 나아가 목숨까지도 하찮게 생각되며 이 정열을 불태우기 위해 어떤 희생도 두렵지 않게 된다. 그 격정은 다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으며, 때로 미치거나 자살까지 하게 만든다.

(중략)

질투가 괴롭기 이를 데 없는 정념(情念)인 것도 이런 점에서 이해할 만하고, 또한 자기가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을 단념하는 일이 어떤 희생보다 크게 여겨지는 것도 납득이 된다. 영웅은 일상적인 일로 비탄에 빠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사랑의 비애에 대해서는 비탄을 억누르지 못한다. 이 경우 비탄에 빠지는 것은 본인 자신이 아니라 종족 자체이기 때문이다. 칼데론의 훌륭한 희곡 《위대한 제노비아》제2막에 제노비와 데시우스가 등장하여 데시우스가 말한다.

"아, 하늘이여, 당신이 날 사랑한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나는 백 번이라도 승리를 포기하겠소. 적진에서 도망쳐버리겠소."


여기서는 여러모로 이해타산적인 명예가 무시되고 그 대신 사랑, 즉 종족에 대한 이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명예와 의무, 그리고 충성은 지금까지 유혹이나 심지어 죽음의 협박에도 저항해 왔으나, 종족의 이해 앞에서는 고분고분 양보하고 굴복해 버린다.


(중략)

일단 종족에 대한 이해가 강조되면 개체에게만 관련되는 이해는 다 거기에 순종하며, 때로는 희생이 되기도 한다. 이같이 인간은 자신에게도 종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며, 자기가 개체 안에서보다 종족 가운데에서 더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에 빠진 자는 무엇 때문에 연인에게 완전히 얽매여 애인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무릅쓰려고 하는가? 애인을 그리워하는 건 결국 그 사람 속에 깃든 영구불멸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밖의 것들은 오직 허망하게 생멸하는 일에만 관련되어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열렬한 사모의 감정은 우리 본성이 불멸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광명을 던져주는 것으로, 이를 요약해 말하면 다음과 같다. 성적 욕망에 의한 이성의 선택은 차츰 열기를 더하여 드디어 열렬한 사랑에 이르고, 이것은 앞으로 나타날 인류의 특수한 개성적인 소질이 종족 속에서 존속된다는 것을 입증한다.

(중략)

이 내재적인 본성이야말로 의식의 핵심이고 그 근저에 있으며 의식 자체보다 더욱 직접적인 것, 즉 개개의 원리에서 떠난 물자체(物自體)다. 개체가 시간적·공간적으로 어디에 흩어져 있더라도 영원히 동일한 것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또한 내가 다른 말로 '살려는 의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생명의 존속을 요구하며 죽음이 손대지 않고 남겨두는 힘이다.

 - 쇼펜하우어, 『인생을 생각한다』중 '사랑의 형이상학'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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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 경제학고전선, 개역판
존 메이나드 케인즈 지음, 조순 옮김 / 비봉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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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경제학자가 쓴 불멸의 고전. 경제학원론,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은 물론 화폐금융론까지 수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읽기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지만, 케인즈의 혜안이 도처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불후의 명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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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동서문화사 월드북 87
찰스 다윈 지음, 송철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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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다 금년에 와서야 온전히 다 읽은 `올해 만난` 최고의 과학 고전. 다윈은 이 책을 통해 마침내 창조론을 뒤집었지만, 이 책 속에는 우리 세계에 대한 훨씬 더 근원적이고 심오한 생각들이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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