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아이세여, 네 너를 사랑하노라……" 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 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9∼10쪽)

 

 - 안톤 슈낙,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에서

 

 

 * * *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집어들고 여기 저기를 펼쳐 보다가 오늘은 문득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예전에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스쳐 지나갔을 게 분명한 어느 대목에서 갑자기 딱 멈추고 말았다. 안톤 슈낙이 말한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때문이었다. 비록 나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편지를 단 한 통도 간직하고 있진 않지만, 이 대목을 읽으면서 괜시리 울컥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37년생인 아버지의 학력은 국졸이 틀림없다. 중학교까지 다녔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아 본 최초의 편지는 아마도 1978년 봄쯤이었던 듯하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의 품을 떠나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한 한기에 겨우 두 번쯤 고향엘 다녀왔을 뿐이었다. 중간 고사 끝나고 한 번, 기말고사 끝나고 또 한 번. 그 사이사이를 메꿔주는 게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께 드리는 문안 편지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전화기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물론 내가 자취하던 주인댁의 안방에도 떠억하니 전화기가 있었지만, 그래봐야 우리 동네엔 동장댁에만 딸랑 한 대의 전화기가 있을 뿐이었다. 그 당시 전화기는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전보처럼 긴급히 사용하는 비상 통신 수단에 가까웠다. 내가 동장님댁으로 '내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달려갔던 것도 딱 한 번뿐이었다. 고입 시험 합격 통지를 받을 때였다. 내 앞으로 전화가 와 있다는 동장님의 방송을 듣고 그 전화를 받으러 종갓집 못둑 위를 마구 내달릴 때 내 얼굴에 부딪혀 오던 차디찬 겨울 바람의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안동에서 3년을 보낼 동안에 내가 아버님과 주고 받은 그 많은 편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3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 덕분에 어느새 익숙해진 아버님의 필체를 다시 마주한 건 삼척에서 신병 훈련을 받을 때였다. 6주 동안의 신병 훈련은 대체로 견딜 만했지만 생각보다는 몹시 빡센 것도 사실이었다. 하필이면 내 생일이었던 6월 29일에 입대해서 여름 더위가 절정을 넘긴 8월 14일이 되어서야 신병 교육대를 빠져 나올 수 있었으니, 삼복 더위를 온통 거기서 다 보낸 셈이었다.

 

1983년 여름의 어느 밤, 삼척의 바닷가 후진 해수욕장에서는 보니 엠의 <Rivers Of Babylon>이라는 노래가 흥겹게 흘러나오고, 밤바다를 훤히 밝히는 온갖 불빛들이 저 멀리서 산 아래 바닷가에서 아롱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간에 우리 신병들은 이름도 모를 어느 야산의 훈련장에서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아주 가혹한 '얼차례'를 받고 있었다. 야간 각개 훈련의 마지막 훈련이었는데,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철모 위에 원산 폭격'을 무려 1시간 가까이 받았던 것이다.(나는 악으로 깡으로 버텼지만, 결국 머리가 다 짓이겨져 그날 밤 의무대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나중에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야 반창고를 떼어냈고 이내 손바닥만 한 딱지가 앉았는데, 그 여파로 머리카락이 쏙 빠지는 바람에 한동안 발모제를 사다 발라야 했다.) 극한에 가까운 얼차례를 받고 난 뒤에 뒤따르는 카타르시스는 대개 '어머님 은혜'를 부르는 것이었다. 다들 첫 소절도 다 부르지 못하고 목이 메어 꺼이꺼이 울면서 그 노래를 겨우 따라 부르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그 노래를 다 부르고 나면 가슴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훈련소에 있을 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총기 수입까지 다 마치고 나서 잠깐씩 한가한 틈에 주어지는 '편지 쓰기 시간'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다들 효자 심정이 되는지, 볼펜만 붙잡으면 편지지를 너댓장씩 꽉꽉 채우며 온갖 참회의 심정들을 열정적으로 마구 쏟아냈더랬다. 매번 편지의 시작은 똑같았다. '아버님 전상서, 기체후 일향만강하옵신지요? 대소간의 어르신들도 두루 건강하시겠지요? ' 하는 투였다. 그때 부모님과 주고 받은 편지가 얼마나 구구절절했던지는 제대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들은 바로는, 내 편지를 받아보실 때마다 아버님께서 장문의 편지를 손수 어머님께도 읽어 주셨으며, 그 때마다 두 분이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듣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쓴 편지 때문에 부모님께서 눈물까지 흘리셨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더랬다. 군복무때 내가 쓴 편지가 몇 통이었는지, 내가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편지가 또 얼마만큼이었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편지들이 지금 단 한 통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만은 참으로 아쉽게 느껴진다. 그 옛날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고 받는 편지 때문에 우표값도 적잖이 들었던 듯한데, 까마득한 옛날의 소인이 찍힌 그 많은 편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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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12-31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oren 2018-12-31 14:28   좋아요 1 | URL
한 해 동안 겨울호랑이 님 덕분에 서재 생활이 즐거웠습니다.^^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요~~

cyrus 2018-12-31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마지막 날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oren 2018-12-31 14:29   좋아요 0 | URL
cyrus 님께서도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내년에는 더욱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책 이야기>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외

 

페크 님의 글에 적극 공감합니다. 드라마든, 영화든, 책이든, 음악이든, 반복해서 보거나 들을수록 더 자세히 알게 되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는 일견 너무나 당연한 얘기 같지만, 유독 책의 경우에는 반복해서 읽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교과서를 열심히 반복해서 읽는 경우가 아니라면요.)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쉽게 생각하자면 '한 번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책들을 너무나 많이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서 빨리 다른 책을 펼쳐 봐야지 하는 생각을 품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 책을 아주 많이 읽은 사람들이나 소설가 혹은 문학평론가들은 뜻밖에도 '반복해서 읽는 독서'에 대해서 너무나 자주 강조하고 있어서 깜짝깜짝 놀랄 때도 많더군요.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해서 저도 언젠가는 꼭 한 번 글로 써봐야지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품고 있었는데, 페크 님의 글 때문에 오래도록 묵혀 두고 있었던 그 생각이 다시금 꿈틀거리네요.

 

저 또한 반복해서 읽은 책들이라고 해봐야 손으로 겨우 꼽을 정도로 빈약한 터여서, 제 경험담을 담은 글을 쓸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게 안타깝네요. 그 대신, 여태까지 책을 읽다가 우연히 마주쳤던 '반복해서 읽는 독서'에 관한 잊을 수 없는 문장들만이라도 몇몇 찾아서 인용문으로 덧붙여 보고 싶네요.

 

 * * *

 

 

"때로 독서란 독자를 가르친다기보다 그들의 머리를 도리어 산만하게 만든다. 덮어 놓고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몇몇 좋은 저자의 책을 골라 읽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

 - 톨스토이

 

 

 

좋은 책은 좋은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잘 알 수 없듯이 책도 한 번 읽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는 과정에서 그 책을 잘 알게 되고 그리하여 아주 가까운 친구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가 없으면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갖게 된다. 이것을 보여주는 좋은 에피소드가 있다. 독일의 소설가 프란츠 베르펠은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라는 장편소설을 너무 좋아하여 평생 30번 가량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그 소설을 읽은 것은 죽기 한 달 전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0번이라는 횟수가 아니라 죽기 한 달 전의 경황없는 상황에서도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베르펠에게 있어서 죽음은 곧 만의 소설을 읽지 못하는 것이었으리라.(476쪽)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 독서 계획』, <역자 후기> 중에서

 

 

 

나보코프가 말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사람은 책을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좋은 독자, 일류 독자,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는 재독자(再讀者)다."(『문학 강의』 이 말은 어떤 책이든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읽을 때' 비로소 '한 장의 그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책 전체를 바라보며 문장 하나하나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롤리타』를 읽는 독자들에게 이 독서법을 권한다.(545쪽)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옮긴이의 말> 중에서 

 

 

따라서 『롤리타』는 최소한 두 번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한 번은 험버트의 목소리로, 다른 한 번은 나보코프의 목소리로. 실제로 나보코프는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소설은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아니면 읽고 읽고 또 읽든가요." 그것이 소설을 읽는 두 가지 방법이고 『롤리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한 번 더 읽어보자.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535쪽)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해설_시적 에로티시즘과 심미적 희열의 세계> 중에서 

 

 

 

윌리엄 해즐릿이 말한 것처럼 오래된 작품들을 다시 읽는 일은 가장 높은 수준의 즐거움이면서 독자 자신의 열망 깊은 곳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준다. 나는 디킨스의 『픽위크 페이퍼즈』를 일 년에 두 번씩 읽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권의 책이 닳아 없어지기도 했다. 그게 도피라면 난 기꺼이 그 도피에 참여하리라. 비록 『픽위크 페이퍼즈』에 등장하는 누구도 내게 동일화의 즐거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훌륭한 단편은 반복해서 여러 번 읽을수록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93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소설을 처음 읽으면 단순한 즐거움을 느끼지만 『위대한 유산』이나 『파르마의 수도원』 같은 작품을 다시 읽게 되면 전혀 다른, 혹은 보다 나은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 전에는 불가능했던 전망 속으로 들어서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즐거움은 첫 번째 독서보다 더 다양하고 계몽적인 요소가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아도 어떻게, 왜 일어났는가를 이해하는 일은 새로운 인식이다. 무엇이든 한 번 더 본 것에 다가가기가 쉽다.

 

누구나 젊은 날 열정적으로 반복해서 책을 읽고, 소설 속의 마음에 드는 인물과 동질성을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그러한 동일화의 즐거움이 나이에 관계없이 독서라는 경험의 합법적 일부라고 앞서 내 경험을 통해 이야기했다. 그러한 즐거움이 비록 중년 이후에는 단순한 것에서 감상적인 것으로 될지라도 말이다.(296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독자로서 내 경험에 따르면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첫 번째 독서 어딘가에서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다시 읽었을 때 그 의미를 재조립할 수 있었다. 웨스트의 『미스 론리하트』는 그 멋진 부패함에 이끌려 읽자마자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다시 읽었을 때는 우러르고 사모하는 마음에 이해를 덧붙일 수 있었다.

 

반면 『49호 품목의 경매』를 처음 읽었을 때 분노 자체였다. 그러나 두 번째 읽으면서 순식간에 그것에 사로잡혔는데 그 감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런고로 나는 독자들이 이 작품을 두 번 정도는 읽었으면 한다. 처음 짜증나게 했던 것이 '놀라움'이 된다.(326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나는 문학 비평을 비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실 작가로서는 비평의 부재에 직면하는 것보다 더 고약한 일도 없다. 내가 말하는 비평은 명상으로서의 비평, 분석으로서의 문학 비평이다. 논하고 싶은 책을 여러 번 읽을 줄 아는 문학 비평(좋은 음악을 끝없이 반복해서 듣듯, 훌륭한 소설 역시 반복해서 읽히도록 만들어졌다.), 시사성의 무자비한 괘종시계에 귀 기울이는 일 없이, 일 년 전, 삼십 년 전, 삼백 년 전에 탄생한 작품들을 논할 줄 아는 문학 비평, 어떤 작품의 독창성을 파악하여 이를 역사의 기억 속에 기록하고자 하는 문학 비평 말이다. 그런 명상이 소설의 역사를 수반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도스토옙스키, 조이스, 프루스트 등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이 없으면 모든 작품이 자의적인 판단에 내맡겨지고 신속히 잊혀 버린다.(38쪽)

 

 - 밀란 쿤데라, 『배신당한 유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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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1-24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먼댓글 해 주셔서 먼저 감사드립니다.

재독에 관한 글이 이렇게 많군요. 어떻게 이런 글을 다 모아 놓으셨는지 존경스럽습니다. 물론 독서광이어야 가능한 일일 테지요.
덕분에 흥미롭게 읽었어요.
저도 재독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재독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편소설을 일곱 번까지 읽어 본 것이 제 최고 기록입니다. 밑줄을 친 글을 여러 번 읽는 취미가 있을 뿐, 책 전체를 다 읽은 건
몇 권밖에 되지 않아요. 맘에 드는 책은 1년 뒤에 다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서울에 오늘 첫눈이 왔어요. 사진을 올렸으니 감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oren 2018-11-24 14:52   좋아요 5 | URL
재독에 관한 글을 따로 모아둔 게 아니어서, 어젯밤에 이 구절들을 찾느라 시간이 꽤나 걸리더라구요. 특히나 밀란 쿤데라의 문장 ˝좋은 음악을 끝없이 반복해서 듣듯, 훌륭한 소설 역시 반복해서 읽히도록 만들어졌다.˝ 라는 글은 예전에도 한번 생각나서 일부러 찾으려다가 실패했었는데, 이번에 페크 님의 글 덕분에 기어이 찾아 냈고요. 헤럴드 블룸의 『교양인의 책읽기』에는 ‘반복 독서‘를 워낙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어서,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훑어보느라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리더군요.^^

그런데 페크 님은 단편소설을 무려 일곱 번까지 읽으셨다니, 이미 ‘반복 독서의 묘미‘를 깊이 체험하신 듯싶네요. 저는 한 번 읽고 나서 손아귀에 꽉 붙잡히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책들은 ‘필사를 하면서‘ 다시 읽는 고약한 습관이 있답니다. 그게 소설이든 수필이든 역사책이든 상관없이요. 그런 버릇을 들이다 보니, 그렇게 책을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처음에는 어렴풋했지만) 나중에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물론 다른 책들을 읽을 욕심 때문에 ‘두 번째로 읽으면서 주요 대목을 필사하는 작업‘을 건너뛴 책들도 많았지만, 다시 읽으면서 필사한 책들은 결국 제게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책이 되더군요.(예전에 이런 내용에 대해 쓴 글도 있었고요. http://blog.aladin.co.kr/oren/8201971)

제가 반복 독서의 묘미를 가장 최근에 맛 본 경험은 뜻밖에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었답니다. 그 책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 수많은 국가와 도시와 지명과 강과 산들이 무수히 등장하기 때문에 맨 처음 읽을 땐 사건의 윤곽을 붙잡는 것조차 힘들 때도 있었는데, 그 방대한 책을 다 읽고 나자, 다시금 그 책 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은 열망이 생기더라구요. 그 속에 담긴 게 아무튼 어마무지하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곧바로 두 번째로 읽기 시작하자마자 많은 것들이 진짜로 새롭게 드러나더라고요. 숱한 영웅들이 처음 읽을 땐 정말 따로따로 조각난 듯이 움직였는데, 두 번째로 읽기 시작하자 그 수많은 영웅들이 마치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여기저기서 함께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흥분되더라고요. 역사가이기 전에 철학자로 더 유명했던 플루타르코스의 진면목도 그때 뚜렷이 더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고요. 나중에 필사를 하는 동안에 그 인물들에 얽힌 ‘유명한 그림들‘까지 찾아 보고 나니까, 그 책이 얼마나 많은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뿌리깊이 스며 들어 있는가도 알게 되고요.

그런데 나보코프의 놀라운 작품인 『롤리타』와 같은 경우는, 그 책을 금방 읽고 나서 ‘이건 한번 읽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작품이야‘ 라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기어코 그 책을 다시 붙잡지 못하고 다른 책으로 옮겨 간 아픈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네요. 그래서 그 책에 대해서는 ‘어떤 글‘도 도저히 쓰지 못하겠더라구요. 고작 한 번밖에 안 읽었는데 제가 무얼 끄적거릴 수 있었겠어요. 아무튼 ‘반복 독서‘만큼 권장할 만한 독서법도 드문 듯해요.^^

목나무 2018-11-24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 같은 경우는 발췌독도 하고 훑어보기식 독서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몇 번을 다시 읽더라구요.
어서 새로운 책을 빨리 만나기 위해 재독을 거의 안해본 저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올려주신 글 보니 반복해서 읽는 게 오히려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페이퍼 잘 보고 갑니다. ^^

oren 2018-11-24 14:55   좋아요 4 | URL
저는 눈으로만 읽는 반복 독서를 일부러, 그것도 의식적으로 헀던 경우는 아주 드물었던 듯해요. 한번 읽고 나서 ‘이 책 속에는 너무나 풍성한 보물들이 가득하구나. 그런데 나는 고작 그 책 속에서 무얼 얼마나 건졌지?‘ 라는 생각이 드는 책들은 두 번째로 읽으면서, 웬만하면 필사를 하기 시작하게 되더라구요.(‘둔필승총(鈍筆勝聰)이라는 말도 있고, 나중에 얼른 다시 찾아보기 위해서라도 ‘메모‘는 꼭 필요하니까요.) <일리아스>, <오딧세이아>,<변신이야기>도 그랬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몽테뉴 수상록>, <도덕감정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과 같은 철학책에 대해서도 그랬었고요. 그게 나중에는 결국 소설이나 에세이로까지 번져나가더라구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돈키호테>, <마의 산> 등과 같은 방대한 소설들도 그렇게 해서 필사를 하면서 두 번씩은 읽었더랬지요. 그런데 ‘이 책은 분명 다시 읽으면서 필사까지 해 보고 싶어.‘ 했다가도, 잠시 방심하면서 다른 책들을 붙잡는 순간, 그 의지가 순식간에 물러지는 걸 여러 번 경험하기도 했어요. 나보코프의 『롤리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같은 작품이 특히 생각이 나네요. 어차피 그런 작품들은 나중에 꼭 다시 읽게 되리라는 확신이 있긴 합니다만.^^
 


거짓말만이, 그리고 그보다 좀 덜하지만 옹고집은 모든 기회에 억눌러서 나오지도 크지도 못하게 막아야 할 결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그들과 함께 커 간다. 그리고 주둥이에 이런 못된 버릇이 생기는 것을 놓아 두면,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놀라울 만큼 어려운 일이다.
 - 몽테뉴

 

 * * *

 

몽테뉴가 남겨 놓은 '거짓말에 관한 기막힌 진실'은 생각날 때마다 거듭 곱씹으며 읽어 볼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거짓말'을 두고 벌이는 격렬한 싸움에는 거의 언제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매번 똑같은 교훈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사실 몽테뉴의 재치있는 말까지 끌어들일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그 교훈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도 가짓말을 하는 당사자는 '세상 사람들이 제발 속아 주기를 바라는 헛된 욕망' 때문에 한사코 거짓말을 붙들고 몸부림친다. 그리고 그 헛된 모래성을 더욱 높이 쌓아 올린다. 쌓으면 쌓을 수록 더욱 요란스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줄도 모르고. 거짓의 모래성을 쌓으면 쌓을수록 일반 사람들은 더욱 집요하게 진실에 매달린다. 정말로 '그것이 알고 싶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거짓말 만큼 우리의 심령을 자극하는 대상도 드물다.

 

몽테뉴는 진실은 오직 하나뿐이지만 거짓은 무수한 얼굴과 넓은 벌판을 갖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진실의 좁은 문을 외면한 채 거짓의 넓은 벌판으로 허허롭게 도망쳐 봐야 결국 헛수고일 뿐이다. 

 

참으로 이상한 이름이 붙은 '혜경궁 김씨 사건'이 최근에 들어 또다시 폭발적인 관심을 끈다. 지극히 당연하다. 진실은 뻔한데, 아직도 당사자가 한사코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혜경궁 김씨라는 트위터의 계정주가 그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제3의 인물이 그 트위터를 사용했다면? 이토록 혹독한 의심(?)을 받는 당사자는 진작에 자신의 핸드폰을 당당히 증거물로 내세웠을 테고, 그 계정을 사용한 제3의 인물이 따로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하고 진작에 이실직고했을 게 아닌가. 혜경궁 김씨의 트위터를 다른 사람이 도용했다는 주장만큼 반박하기 쉬운 경우가 어디에 있을까. 그토록 쉬운 방법을 한사코 외면하면서까지 궁색한 변명을 자꾸만 내세우니 사람들은 더욱 더 '거짓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을 안쓰럽게 바라보게 된다.

 

작년 2월쯤에도 이와 똑같은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http://blog.aladin.co.kr/oren/9165803) 그 때 내가 겨냥했던 대상들은 탄핵을 코 앞에 두고도 진실을 한사코 외면하고 거짓으로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 막말을 일삼던 대통령 변호인단의 몇몇 변호사들, 우병우, 인명진, 김문수 등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때 쓴 글이 궁금해서 다시 읽어 봤더니, 똑같은 제목의 글을 그대로 베껴 놓아도 좋을 만큼 '오늘날의 상황'에 너무나 잘 들어 맞아서 깜짝 놀랐다. 심지어는 그때 인용했던 마키아벨리의 문장들조차 하나도 버릴 게 없을 정도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라고 하는가 보다. 그때 쓴 인용문을 고스란히 반복해서 재인용한다.(잠시나마 과거를 회상할 겸 인용문에 덧붙였던 '나의 생각' 부분까지 그대로 살렸다.)

 

사람이 취할 현명한 태도의 하나는, 상대에 대해 위협하는 언사를 쓰거나 모욕하는 말은 절대로 삼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다고 해서 적의 힘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협하는 말은 도리어 상대를 더 조심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고, 모욕을 하면 점점 더 분격을 돋구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여러분을 곯려 주려고 마음 먹게 하는 결과가 된다.

 

이에 대한 좋은 예는 …… (중략)

 

이 점에 대해서 아시아에서의 유명한 예를 들기로 하겠다 …… (중략)

 

위의 사실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대개 군대의 명지휘관이라든가 뛰어난 정치가란, 자기네끼리나 적을 향하고 있을 때나, 시민이나 병사들이 이 같은 모욕이나 욕지거리를 내뱉는 일이 없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 두는 법이다. 그것은, 적을 향해 이런 언사를 사용하면 지금 말한 것처럼 터무니없는 변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료끼리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는 이 역시 그 결과가 더 엉뚱한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누군가 뛰어난 인물이 나서서 어떤 수단을 강구해 두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어지게 된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노예로 편성된 군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노예군이란 로마인이 병사들의 부족으로 고민한 결과 노예에게 무기를 들려서 편성한 것이었다. 그가 취임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누구를 막론하고 서로가 상대를 노예 출신이라고 헐뜯는 짓을 하면 사형에 처한다고 명령한 일이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로마인은 남을 헐뜯거나 남의 수치를 비웃는 것은 지극히 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본심을 말할 때는 물론이고 농담할 때라도,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손상시키고 화나게 만드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말(타키투스, 《연대기》XV,68)에 있듯이 '야비한 농담이란 그것이 진실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때는 더욱 가시 돋친 뒷맛을 남기는 법'이다.(406∼408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 《정략론》 제2권, <제26장 경멸, 험구를 일삼으면 미움을 산다>

 

(나의 생각)

 

역사를 살펴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이토록 닮았을까' 싶은 대목을 마주치기 마련이다. 마키아벨리가 쓴 책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략론』제1권 제7장에 나오는 <탄핵권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과 너무나 닮아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또다른 대목에서는 '우병우'를 떠올리게 만들고, 어떤 대목에서는 '인명진' 혹은 '김문수'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도 있다. 다음 대목이 무려 500년 전에 마키아벨리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와 똑같은 현상이 숱한 사람 사이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하게 되었다.

 

"정계에만 들어가면 재야 때의 뜻은 어디로 가 버리는지."(274쪽)


제2권 제26장의 내용을 인용한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대통령 대리인단을 떠맡은 일부 변호사의 '막말'이 생각나서이다. 그들은 그게 자신들한테 얼마나 불리한지조차도 모르는 듯하다. 하기야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장본인 또한 '일찌감치 접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 아직도 아니라고?

 


 * * *

 


 

적을 향해 업신여기는 말을 자꾸 하다 보면 완전히 이긴 듯한 기분이 들거나 헛된 승리의 환상에 도취해 버린다. 그래서 우쭐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수가 흔히 있다. 이렇듯 헛된 승리의 환영에 도취하면 말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환영이 사람의 마음속에 깃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분수를 벗어나게 만들어 버리므로 어쩐지 미지의 훨씬 더 좋은 것이 잡힐 듯한 생각이 들게 된다. 그래서 그것을 추구하다가 모처럼의 확실한 성과조차 놓치게 되어 결국은 이것도 저것도 다 놓치고 마는 결과가 흔히 있다. 이런 환영에 들뜬 사람들은 자기의 국가마저 해치는 일이 매우 많은 것을 보더라도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고금의 실례에 비추어서 상세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론만으로는 명확하게 이것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칸네에서 로마 군을 격파한 한니발은 카르타고로 사절을 파견해서 승리를 보고하고 지원을 구하게 했다. 이에 대한 방침이 카르타고 원로원에서 심의되었다. 개중에서도 나이 많고 현명한 시민인 한논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했다.

 

"이번 승리를 잘 이용해서 로마와 화평을 맺도록 합시다. 싸움에 이겼다는 것을 뒷받침으로 한다면 조건이 좋으므로 화평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깊이 쫓다가 지고 나서 화평을 맺으려 하면 그때는 이미 늦어 버리니까요. 왜냐하면 카르타고가 로마를 충분히 격파할 임이 있다는 것을 로마에 깨닫게만 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카르타고인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승리를 장악한 이 마당에서는 너무 많이 바라다가 결국에 가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티투스 리비우스, 《로마사》XXⅢ,11∼13) 그런데 실제로는 이 제안이 채택되지 않았다. 이렇듯 화평을 맺을 좋은 기회를 놓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카르타고의 원로원은 한논의 제안이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었던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전 오리엔트를 정복했을 때 …… (중략)

 

1512년의 일인데, 에스파냐 군은 피렌체에 미디치 가를 복귀시킨 다음 …… (중략)

 

자기보다 월등하게 강력한 군대에 공격당하는 군주가 저지르는 실수 중 가장 큰 실패는 화목을 거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상대방 쪽에서 신청이 있었을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제시된 내용이 아무리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받아들이는 쪽이 유익한 조건도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리자의 몸의 일부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한니발은 영광과 함께 16년간을 지낸 이탈리아를 뒤로 하고, 카르타고인의 요구에 따라 조국 구제를 위해 귀국해 보니, 눈에 비친 것은 하스드루발과 시파쿠스의 패전이고 누미디아 왕국의 상실이었다. 그리고 카르타고인은 그 성벽 속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겨우 구제의 길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은 한니발 자신과 그 군대밖에 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의 조국이 최후의 막다른 곳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덮어 놓고 모든 것을 결전에 거는 것을 피하고 다른 수단을 써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조국을 구제할 길은 화평에 있지 전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자 순순히 평화를 구했다. 그런데 그의 화평 신청이 로마인에게 거부되자, 패전이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전쟁을 피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도 이길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또 진다 하더라도 적어도 명예로운 패배가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니발같이 기력이 충실하고, 또 무패의 군대를 이끈 명장이라도 패전을 당하면 자기 조국이 노예의 처지로 떨어지고 만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전쟁보다도 우선 화평 공작을 구했던 것이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한니발 정도의 기력도 없고 그의 경험의 발꿈치에도 못 따라가는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런데 사람이란 자기의 희망을 어느 선에다 멈추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 실패해 버리는 법이다. 그리고 제 실력을 냉정하게 측량해 보려고도 하지 않고 한없는 희망에 기대를 걸다가 결국은 파멸하고 마는 것이다.(408∼411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 《정략론》 제2권, <제27장 너무 과하게 바라다가는 본전도 못 찾게 된다>

 

 

(나의 생각)

 

마키아벨리가 달아놓은 제목만 봐도 너무 웃긴다. "너무 과하게 바라다가는 본전도 못 찾게 된다"니. 하기야 지금이라도 너무 늦지는 않지 않을까, 이리저리 재면서 뒤늦게 '본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뭐? 아직도 아니라고?

 

(나의 생각_추가)

 

한니발의 사례를 날카롭게 통찰한 이 대목은 이재명 지사에게는 특히 뼈아프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아직도 이길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판단하거나, 또 설사 진다고 하더라도 도지사직을 유지하거나, 최악의 경우라도 핍박받는 정치인으로서 훗날 재기를 도모할 수 있다'는 오판으로부터 비롯된 듯한 '지금까지의 대응'이 얼마나 한심스럽고 어리석은 짓이었는가를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한니발 정도의 기력도 없고 그의 경험의 발꿈치에도 못 따라가는 '혜경궁 김씨네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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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일이면 히말라야로 간다!
영화 <히말라야>와 '히말라야의 눈물'

 

 

"등산가는 자신이 숙명적인 희생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산에 대한 숭앙을 거의 버리지 못한다."

 - 알버트 머메리(1855∼1895)

 

 * * *

 

저 멀리 히말라야에서 또다시 비보가 날아들었다.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원정 대원들과 현지 가이드를 포함해서 9명이 모두 시신으로 발견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나마 시신 수습은 신속하게 이뤄져 벌써 내일 새벽이면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8000m급 완등에 성공한 김창호 대장(49)을 포함한 한국인 5명의 시신이 지난 13일(현지시간)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발견됐다. 구르자히말은 네팔 히말라야 산맥 다울라기리 산군에 있는 해발 7193m의 산봉우리다. 원정대 가운대는 다큐멘터리 감독 임일진 엑스필름 대표(49)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

 

2015년에는 영화 <히말라야> 특수촬영(VFX) 원정대장으로 참여했다. <히말라야>는 히말라야에서 숨진 후배 대원 박무택(정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엄홍길(황정민)과 휴먼원정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임 대표는 2014년 봄 5주가량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머무르며 눈사태와 크레바스·빙하 등 영화 속 컴퓨터그래픽의 배경이 될 소스 촬영을 이끌었다.

 

히말라야에서 목숨을 잃은 등반가가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이번 사고는 히말라야에서도 워낙에 낯선 곳에서 일어났고, 아직까지도 정확한 사고의 원인조차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채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원정대 전원이 사망한 참사여서 더욱 슬프고 충격적이다.

 

더구나 이번 원정에서 목숨을 잃은 김창호 대장은 '순수 알피니즘'을 고집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산악인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안타깝다. 김 대장은 언제나 모험적 등반을 시도하는 알파인 스타일을 추구했고, 등정의 결과 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등로주의(登路主義)’를 줄곧 실천했던 산악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집에서 집으로(From Home To Home)’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내세울 만큼 '안전한 귀가'를 위해 누구보다 사전 준비에 철저했던 산악인이었다.

 

소위 머메리즘이라고도 불리는 '순수 등로주의'를 개척했던 인물은 19세기의 풍운아로 불렸던 영국인 알버트 머메리(1855∼1895)였다. 그는 위대한 등반가였을 뿐만 아니라 지독한 독서광이었고, 경제학 연구에 몰두하여 <산업생리학>(1891)이라는 저서까지 출판한 지식인이었다. 그 책은 존 메이나드 케인즈가 쓴 불멸의 고전인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도 자세히 인용되어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산악 고전인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를 읽어 보면 그가 얼마나 폭넓은 독서에 몰두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는 물론이고, 셰익스피어, 밀턴, 워즈워스, 테니슨의 여러 작품 속 싯구절들이 셀 수 없이 자주 폭넓게 인용되어 있으니 말이다. 한낱 무모한 등반가인 줄로만 알았던 그가 그토록 탁월한 지식인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머메리는 19세기 말에는 아무도 넘보지 않았던 히말라야의 8,000m급 고봉 낭가파르밧에 도전한 위대한 등반가였다. 그는 두 번의 등정 시도가 좌절된 이후 다른 루트를 찾아보기 위하여 친구들과 헤어져 구르카 병사들과 함께 능선 저편으로 사라졌고, 그것이 그가 지상에서 보인 마지막 모습이었다. 머메리는 그렇게 낭가파르밧 최초의 희생자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낭가파르밧은 머메리가 죽은 후 58년 동안 숱한 실패와 비극과 대참사를 겪은 끝에, 머메리 사후 58년이 흐른 뒤인 1953년 7월 3일 독일·오스트리아 합동 원정대를 이끈 헤르만 불에 의해 초등이 이뤄졌다.

 

 

(낭가파르밧, 높이/8,125m, 출처 : 위키백과)

 

'근대 스포츠 등산의 비조'로 불릴 만큼 위대한 족적을 남긴 희대의 반항아가 남긴 한 마디는 알피니즘의 개념 자체를 송두리째 뒤흔들었고, 알피니스트들은 그 누구도 머메리의 영향권으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없게 되었다. 그가 남긴 말은 이랬다.

 

"길이면 가지 말아라."

 

위험에는 다른 학업에서 발견되지 않는 교육과 정화(淨化)의 힘이 있으며, 사람이 자기가 '완전히 사치와 유약에 흐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값진 일이다. 산은 이따금 일을 좀 지나치게 밀어부쳐서 교수대, 교수틀, 낙하 발판 등의 시설을 다 갖춘 사형 집행인조차 도저히 더 훌륭하기를 바랄 수 없는 절박한 사멸(死滅)의 환영(幻影)을 산의 신봉자들 앞에 펼쳐 보인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그라지는 저녁 노을이 절규하는 바람과 눈에 쫓겨 발걸음을 재촉하고 복수의 여신들이 능선을 따라 미친 듯이 대상을 사냥할 때, 절벽은 흔히 냉혹하고 절망적으로 보일는지 모르나 용감한 동료들과 불굴의 정신은 몰려드는 위난의 거미줄을 잘라 내고, "세월이 지나 옛 일을 회상하는 것도 즐겁노라"는 느낌 또한 언제나 있는 것이다.


- 머메리,『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中에서

 

  

참된 등산가는 하나의 방랑자이다. 내가 방랑자라고하는 것은, 선인들의 발자취를 정확히 따라가면서 산 속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방랑자는 일찍이 인류가 도달하지 않은 곳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 일찍이 인간의 손가락이 닿지 않은 바위를 붙잡거나, 혹은 또 '대지가 혼돈에서 일어난' 이래 안개와 눈사태에 그 음산한 그림자를 비쳐온 얼음으로 가득 찬 걸리를 깎아 올라가는 데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등산가는 새로운 등반을 시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마찬가지로 그 투쟁의 재미와 즐거움에 기쁨을 느낀다. 황량하게 드러난 슬랩, 능선의 모난 깎아지른 발판, 그리고 거멓게 불거진 걸리의 얼음은 그의 존재에 대한 생명의 입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 감정을 분석할 수 있는 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믿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을 분명히 알 수 있게 할 수 있는 체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행복에 대한 강력한 감정이다. 그것은 온 혈관에 욱신거리는 피를 흐르게 하여 모든 냉소의 자국을 파괴하고 비관적인 철학의 뿌리 그 자체를 강타한다.

 

- 머메리,『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中에서 

 

 

이번에 김창호 대장이 원정에 나섰던 구르자히말은 전문 산악인들도 등반하기를 꺼릴 정도로 험산이라고 한다. 특히 남벽은 수직으로 3천 미터가 넘어 아직까지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김창호 대장이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나섰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소식을 들으니 문득 7년 전 이맘때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다가 실종된 박영석 대장이 떠오른다.

 

사실 김창호 대장과 박영석 대장의 죽음은 많은 점에서 서로 닮았다. 두 사람 모두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세계적인 등반가였고, 등정 주의보다는 등로 주의에 집착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박영석 대장은 2011년 10월 세계적 난코스였던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됐으며, 당시 히말라야를 등반하고 있던 김창호 대장은 자원해서 박 대장의 시신 수색조에 합류했다. 밧줄로 몸을 묶고 박 대장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끝내 박 대장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유명 산악인들의 이름은 익히 들어 왔어도 그들과 직접 맞닥뜨린 적은 거의 없었다. 1994년에 코오롱 등산학교에 다닐 때 허영호 대장을 강의실에서 만난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2013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나섰다가 우연히 오은선 대장과 엄홍길 대장을 만났다. 그리고 히말라야에서 하산한 뒤에 '여행자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포카라에 들렀다가, 그곳에 있는 산악박물관에서 또다른 유명 산악인들을 더 많이 만났다. 물론 그들 가운데는 히밀라야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 박영석 대장과 고미영 대장도 있었고, 이번에 비운의 사고를 당한 김창호 대장도 있었다.

 

- 박영석 대장,
   1989년 랑탕리룽(7,225m)에 최연소 원장대장으로 도전해 동계 세계 최초 등반. 
   1991년에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도전했으나 100m 추락후 이틀 동안 의식을 잃는 사고를 당함.
   2001년 K2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한국인 최초 14좌 완등, 세계에서는 8번째 기록.
   2004년과 2005년 남극점과 북극점 정복에 성공하여 세계 최초의 '산악 그랜드 슬램' 달성.
   2011년 안나푸르나(8,091m) 남벽에 신루트 개척을 위해 나섰다가 강기석, 신동민 대원과 함께 실종.

(포카라 산악박물관에 걸린 사진)

 

 

 - 고미영 대장.
    2006년부터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등정에 나서 4년간 11좌를 등정하였으나,
    마지막으로 등정한 낭가파르밧에서 하산하던 중 '칼날능선'에서 실족하여 사망했다.

(포카라 산악박물관에 걸린 사진)


 

 

 - 세계 최단기간 14좌를 완등한 김창호 대장, 촐라체 사고로 두 손을 잃은 박정헌 대장.

(포카라 산악박물관에 걸린 사진) 

 

 

잊을 만하면 반복해서 날아드는 히말라야로부터의 비보는 앞으로도 결코 끊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머메리의 말대로,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숙명적인 희생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결코 히말라야에 대한 숭앙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알프스의 고산을 즐겨 올랐던 독일 철학자 니체는『비극의 탄생』이라는 책의 어느 구절에서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인간의 가치는 자신의 경험에 영원성의 낙인을 찍을 수 있는 정도에 달려있다"고 말이다. 이번에 불의의 사고를 당한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원정 대원들이 구르자히말에서 목숨을 걸고 새기고자 애썼던 '영원성의 낙인' 만큼은 오래도록 깊게 각인되었으리라 믿는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그들의 명복을 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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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7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7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10-19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뉴스를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보기에 따라서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인 것 같지만 어쩌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일 수 있다고요. 자신이 뜨거운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 삶을 살았으니까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oren 2018-10-19 23:15   좋아요 2 | URL
이번 사고는 히말라야 탐험 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희귀한 대참사‘였어요. 특히나 8,000미터급 고봉에서 흔히 발생하는 기상 급변이나 한 두 사람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한 등반 사고도 아니었고요. 베이스캠프에 머물던 등반대가 한꺼번에 9명이나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계곡에 처참하게 내동댕이처진 사고였으니까요. 그 누구보다 모험적이고, 늘 준비에 철저했고, 공부하는 산악인의 상징이었던 김창호 대장의 죽음은 여러모로 애석하고 애통한 면이 많은 듯합니다. 고인의 미망인도 대학때 만난 후배 산악인이라니 ‘등반가의 숙명‘을 넉넉히 이해하리라 믿고, 세 살배기 딸아이도 먼 훗날 언젠가는 아빠의 삶을 이해하리라 맏습니다.
 

 

나는 『율리시스』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 제임스 조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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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세계를 통틀어 싱가포르만큼 뜨거운 도시도 없을 듯하다. 21세기 최대의 난제 가운데 하나인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세기의 회담'이 이제 곧 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훨씬 훗날에 태어날 사람들한테도 과연 '2018년 6월의 싱가포르'가 우리들처럼 그렇게 뜨겁게 느껴질까? 아마도? 아마도!

 

비록 '올해의 싱가포르' 정도는 아니더라도 해마다 6월이 되면 몹시 술렁거리거나 들썩거리는 분위기가 감도는 도시가 하나 있다. 그곳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이다. 거기선 해마다 6월 16일이 되면 '블룸즈데이'라는 이상한 타이틀을 내걸고 온갖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곤 한다. 그날의 그곳이 바로 제임스 조이스가 쓴 악명높은 소설인 『율리시스』의 배경이 된 날짜이자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제 날짜와 장소는 확정되었으니 그걸 채우는 인물들이 등장할 차례다. 소설이 마련한 무대에 나타나는 핵심 인물은 셋이다. 유태계 출신의 광고 세일즈맨인 레오폴드 블룸, 그의 아내이자 오페라 가수인 마리언 블룸(애칭은 '몰리'), 그리고 예술가를 꿈꾸는 문학 청년인 스티븐 데덜러스이다.

 

그날 더블린에서 제임스 조이스라는 민완 기자가 밀착 카메라를 둘러메고 하루 온종일 도심 곳곳을 동분서주한 끝에 끌어모은 동영상이 아직도 유튜브에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걸 몰래 즐감하는 네티즌들은 뜻밖에도 거기서 레오폴드 블룸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밀착 카메라는 주로 제임스 조이스의 어깨 위에서 주인공들을 추적하는 듯하지만, 때로는 갑자기 레오폴드 블룸의 머리 속으로 직접 뛰어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떠메고 다니는 밀착 카메라가 보여주는 가장 신비로운 혁신 기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람들의 머리 속으로 신속히 침투하는 능력이다. 그 기술은 단순히 인물들의 두뇌 상태만 살피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의식의 흐름'까지 추적한다. 그래서 그날 더블린에서 촬영된 유튜브 동영상은 '단 하루, 더블린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매우 흥미롭고도 방대한 분량의 기록물이지만, 그걸 올바로 감상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카메라에 담긴 대부분의 영상들은 아주 뚜렷하지만 일부 영상들은 흐릿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메라가 갑자기 레오폴드 블룸의 머리 속으로, 혹은 마리안 블룸의 머리 속으로 바쁘게 옮겨 다니기 시작하면 도대체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들의 의식이 그려내는 놀라운 요지경을 두루 감상하기 위해서는 <블룸즈데이 동영상 감상법>이라는 아주 방대한 주석집이 필요하고, 그 주석집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따로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느닷없이 블룸즈데이 이야기를 꺼낸 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난해한 소설을 읽는 동안에 끄적거렸던 메모가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소설을 읽고 나서 한참 뒤에 그 메모들을 사진으로 담아 놓은 기억도 떠올랐다. 그런데 그 사진들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몰라서 한참이나 뒤졌다. 다행히 그 사진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컴퓨터에 멀뚱하게 남아 있었다. 혹시나 영영 달아나면 어쩔까 싶어 이번 참에 온라인 공간으로 끄집어 올려 본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북핵 같은 고차 방정식도 다들 서로 풀겠다는 나서는 마당에, 『율리시스』라는 아주 케케묵은 독서 난제 하나조차 못 풀어서야 말이 되느냐는 식의 '뜻밖의 결심'을 세우는 사람이 나타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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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율리시스』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가장 많이 인유하는 작가는 단연코 셰익스피어다. 그런 예비지식이 전혀 없었던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인유한 곳들을 '비교적 좁은 공간'에 적기 시작했다가 아주 큰 낭패를 겪었다.

 

 

<사진 2> 소설의 목차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똑같이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제3판과 <어문학사>에서 나온 제4개역판을 함께 놓고 비교하며 읽었는데, 사실 제4개역판에서 크게 바뀐 내용은 드물었다.(제3역 주석이 4,464개이고 제4개역판 주석이 4,463개로 '딱 1개' 차이가 나는 건 그저 헤프닝일 뿐이다. 제3역 주석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지 제4개역판에서 새로운 주석을 '1개' 추가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3> 『율리시스』에 인유된 작가와 작품은 일일이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단 1회' 인유된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극소수의 걸출한(?) 작가들은 예외적으로 자주 인유된다.

 

 

<사진 4>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인유된 곳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인유된 작품은 단연 『햄릿』이다. 제임스 조이스를 올바로 감상하려면 먼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두루 섭렵할 필요가 있다.

 

 

<사진 5>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제임스 조이스의 드넓은 의식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신비로운 탐험이나 다름없다. 책을 너무 읽어 눈이 멀 정도였던 '독서광'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 편력을 따라가 보는 방법 가운데 『율리시스』를 읽는 것만큼 좋은 방편도 없다.

 

 

<사진 6> 이 책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아주 많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음란서적'으로 내몰려 '금서'로 지정되었다가 한 훌륭한 판사에 의해 마침내 '탁월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는 나보코프의 소설에도 등장한다.

 

 

그런데도 짐짓 요조숙녀인 체하는 모순적인 독자들을 안심시킨답시고 '성욕을 자극한다'는 지적을 받을 만한 몇몇 장면을 희석하거나 생략해야 한다면(이 문제에 대해서는 1933년 12월 6일 존 M. 울시 판사가 훨씬 더 노골적인 다른 책과 관련하여 내린 기념비적인 판결을 참고하라), 차라리 『롤리타』의 출판을 포기하는 편이 나으리라.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 <머릿말> 중에서

 

 

 

<사진 7>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인물이 그리 많지는 않다. 주인공 블룸의 아내인 마리언 블룸(몰리)의 애인 숫자는 꽤나 많다. 레오폴드 블룸은 아내의 '불륜'을 눈치 채고도 정작 모른 체 한다. 그런 '오쟁이진 남편'의 입장이 참으로 묘하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면서 쿨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제대로 화풀이 한 번 못하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속을 끓이기 때문이다. 마리언 블룸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스런 애인의 모습'과 레오폴드 블룸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죽도록 패주고 싶은 마누라의 애인 녀석'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사진 8> 소설이 워낙 난해하고 주석 또한 엄청나게 복잡한 게 『율리시스』의 특징이다. 제3판에서 주석 하나가 불필요하게 끼어드는 바람에 제4개역판에서 수정되었지만, 오탈자는 제4개역판에서도 여전히 심심찮게 발견된다.

 

 

<사진 9> 『율리시스』를 처음 펼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어느 비평가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침투가 불가능한 소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땐 다시 덮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시 펼쳤을 때 '조금 더' 눈에 들어온다면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완독하는 날도 오게 된다.

 

 

<사진 10> 제임스 조이스는 언어, 철학, 문학뿐 아니라 심지어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아일랜드 민족의 삶과 애환이 깃든 민요에 대해 해박한 안목을 지니고 있다.

 

 

<사진 11> 주석의 오류를 찾아 내는 것도 흥미롭다. 가령 '멜랑쥐'를 혼합주의 한 종류로 해석한 건 명백한 오류다. 우리가 흔히 '비엔나 커피'로 부르는 게 바로 '멜랑쥐'이기 때문이다.(예전에 비엔나에 갔을 때 맛봤던 '멜랑쥐' 생각도 나고, 그곳에 사는 원주민이 직접 발음하는 '멜랑쥐'를 유심히 들었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사진 12> 이 작품엔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보다 앞서 발표한 다수의 작품들도 많이 인유한다. 그 가운데 가장 자주 끌어들이는 작품은 <더블린 사람들>이다. 『율리시스』가 '더블린 3부작'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진 13> 이 작품엔 작가 최후의 작품인 『피네간의 경야』와도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나중에 언젠가 그 작품을 읽게 되면 『율리시스』를 읽을 때 메모했던 내용들을 다시 들춰 볼 셈이다.

 

 

<사진 14> 제임스 조이스가 읽은 작가와 작품들이 『율리시스』라는 작품 속에 얼마나 많이 녹아들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건 수많은 영문학자들이 지금도 매달려 씨름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진 15> 『율리시스』는 주석이 없으면 읽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제임스 조이스가 어떤 작품 속의 어떤 인물들의 행동이나 상황을 이 작품에 끌여들여 설명하는지를 파악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 16> 『율리시스』에 담긴 책들 가운데 '나도 읽은 책들'은 너무나 보잘것 없었다. 나로서는 제임스 조이스가 읽고 작품 속에 녹여낸 작가와 작품의 이름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다.

 

 

<사진 17> 제임스 조이스는 이미 중학생 때부터 오뒷세우스(영어로는 율리시스)를 흠모하는 글을 썼을 정도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웅>이라는 수필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따지고 보면 소설 『율리시스』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사진 18> 『율리시스』는 '원서'로 읽는 일도 무척 어렵다고 한다. 영어 말고도 수많은 다른 언어들이 그대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영어 이외에 자주 쓰이는 언어는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게일어, 헤브라이어, 이디시어, 페르시아어, 헝가리어, 폴란드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등인데 모두 합하면 대략 14개 언어나 된다고 한다. 그는 또한 언어유희의 대가였다.

 

 

<사진 19>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더블린 시내로 한정된다. 탑, 학교, 해변, 집, 목욕탕, 공동묘지, 신문사, 도서관, 거리, 주점, 산부인과 병원, 홍등가, 아내의 침실 등등이 주된 배경이다.

 

 

<사진 20> 『율리시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은 <제18장 침실(페넬로페)>이다. 일명 '몰리의 독백'으로도 불리는 이 장은 Yes로 시작해서 Yes로 끝나는데, 보다시피 중간에 쉼표나 마침표 한 번 없이 4만 단어로 나열된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아내 몰리의 의식 속을 여행하는 이 신비롭고 놀라운 대목이야말로 '오뒷세우스 장군이 겪은 온갖 고난'이 그녀의 아내였던 페넬로페의 침실에서 마침내 '평화로운 안식'으로 귀결되는 흐름과 몹시 유사하다. 비록 책의 겉모습만 보면 '숨막힐 듯' 빼곡한 단어들의 연속이지만, 온갖 고초 끝에 마침내 저 텍스트에 다다른 독자들이 맛보는 남모르는 희열은 책의 겉모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특별한 것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사진 21> 제4장 마지막 부분. '인생도 이랬으면' 하는 장면은 레오폴드 블룸이 마침내 시원하게 용변을 보고 내심 안도하는 장면이다. 블룸은 약간의 변비증을 겪고 있다.

 

 

<사진 22> 친구의 장례에 참석한 레오폴드 블룸이 마음 속으로 느끼는 '의식의 흐름'은 몹시 흥미롭다. <햄릿>에 나오는 묘굴인(墓掘人) 이야기도 당연히(!) 나온다. 라틴어 경구 'De Mortuis nil nisi prius(죽은 자에 대해 악담하지 말라)'도 흥미롭다.

 

 

<사진 23> 아내 몰리와의 싱그러운 데이트를 떠올리며 행복해 하면서도, 거의 동시에 몰리의 정부(情夫)인 보일런을 떠올리며 둘과의 관계 때문에 혼란스러운 레오폴드 블룸. 주인공은 아내의 불륜 때문에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아내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5월의 초승달이 비치고 있어요. 사랑. 녀석이 아내의 다른 편에. 팔꿈치, 팔. 그이. 개똥벌레의 불ㅡ똥이 비추고 있어요, 여보. 감촉. 손가락. 질문. 대답. 그래요.

그만. 그만. 만일 그렇다면 그런 거고. 아니면 아닌 거야.(137쪽)

 

주석) 토머스 무어의 노래 <5월의 초승달>에서ㅡ5월의 초승달이 비치고 있어요, 여보 / 개똥벌레의 불똥이 비치고 있어요, 여보 / 산보란 얼마나 달콤한가요 / 모나숲을 지나 / 졸린 꿈을 꿀 때, 여보.

 

주석) 그 녀석ㅡ몰리의 정부, 보일런. Touch Fingersㅡ성교에 대한 속어다. 만일 원하는 자가 상대방의 손바닥을 셋째손가락으로 터치하면, 상대방이 의향이 있을 때 그 응답으로서 같은 손가락의 제스처를 함. 여기서 블룸은 몰리와 보일런의 관계를 의심함.

 

 

 

<사진 24> 이 소설에서 가장 난해하고도 주석이 많이 붙은 부분이다. <제9장, 국립도서관>에 딸린 주석만 613개에 이른다.

 

 

<사진 25> 제12장의 마지막 문장들은 단테의 『신곡』을 모방한 듯하다.

 

 

<사진 26> <제15장 밤의 거리(키르케)> 무대는 더블린의 홍등가이다. 여기서 레오폴드 블룸은 갖가지 잠재 의식이 불러오는 환각을 경험한다.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의 부하들이 키르케의 마법에 빠진 것과 비슷한 분위기다.

 

 

<사진 27> <제17장, 이클레스가 7번지(이타카)>에서는 시종일관 교리문답식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사진 28> 제18장에 딸린 주석 55는 설명이 불충분해 보인다.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에 나오는 내용을 인유한 것인데, 작가와 작품 이름이 둘 다 주석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주석이 붙은 원문은 이렇다. "어떤 사람은 그를 성직자로 생각하지만 저 프랑스와 선생의 작품에는 여인이 탈장(脫腸)을 했기 때문에 귀(耳)로 아기를 낳았다는 거야")

 

 

<사진 29> 작품의 배경이 된 더블린 시내 지도.(<생각의 나무> 제3판 126쪽)

 

 

<사진 30> 조이스의 입상.(<생각의 나무> 제3판, 128쪽)

 

 

<사진 31> 『율리시스』 집필 종반 무렵의 조이스.(<생각의 나무> 제3판, 131쪽)

 

 

<사진 32> 『율리시스』 구상 당시의 조이스.(<생각의 나무> 제3판, 137쪽)

 

 

<사진 33> 데이비드 레빈이 그린 조이스의 초상화.(<생각의 나무> 제3판, 139쪽)

 

 

<사진 34> 『율리시스』 초고 중 한 페이지.(<생각의 나무> 제3판, 140쪽)

 

 

 

<사진 35> 제임스 조이스.(<생각의 나무> 제3판, 145쪽)

 

 

<사진 36> 결혼 신고를 위해서 등기소로 가는 길에서.(<생각의 나무> 제3판, 1,026쪽)

 

 

<사진 37> 마티스가 제작한 『율리시스』의 삽화들 중 하나.(<생각의 나무> 제3판, 1,028쪽)

 

 

<사진 38> 1930년대의 조이스 모습.(<생각의 나무> 제3판, 1,037쪽)

 

 

<사진 39> 작품의 구도.(<어문학사> 제4개역판, 915쪽)

 

나는 이상하게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완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평생 독서 계획』에 담긴 충고를 아주 충실히 따랐을 뿐이었다. 그 책에 담긴 충고 가운데 내게 가장 큰 용기를 불러 일으킨 대목은 뜻밖에도 아주 짧은 두 문장이었다.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어라. 그런 다음 책을 내려놓았다가 1년 뒤에 다시 시작하라."

 

나는 정말 이 지침을 충실히 따랐다. 맨 처음엔 그저 그 책을 아무데나 펼쳐서 몇 줄만 읽고 그냥 책을 덮었었다. 몇 년 후에 다시 펼쳐서는 이곳 저곳을 뒤적거리다가 다시 덮었다. 그 다음엔 첨부터 끝까지 줄곧 내달릴 수 있었다.

 

『율리시스』라는 오래 묵은 독서 난제를 푸는 데 있어서 내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내가 마음 속으로 자주 되뇌었던 그 책 속의 문장들은 지금 다시 읽어 봐도 여전히 옳고 강력하다.

 

 

『율리시스』는 침투하기가 불가능한 소설처럼 보인다. 이 높은 산은 단숨에 걸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올라갈 수는 있다. 이 산의 정상에 오르면 아주 풍요로운 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다음에 다섯 가지 사항을 간단하게 적어 보았다. 이것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율리시스』를 즐겨 감상하게 하거나 이해하게 도와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대한 오해, 가령 한 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아주 외설한 작품이다, 정신이상에 걸린 천재의 작품이다, 컬트의 제단이다 등의 오해는 불식시켜 줄 것이다. 1922년에 이 소설이 출간된 이래 많은 우수한 비평가와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1. 이 작품은 『신곡』  이래 가장 완벽하게 조직된 작품이다.

 

2. 20세기에 발표된 작품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소설이다. 그 영향력은 주로 다른 작가들에게 미친 것이므로 간접적이다.

 

3. 영어로 된 가장 독창적이고 상상력 풍부한 작품들 중 하나이다. 문학의 많은 길을 새롭게 개척했다.

 

4. 약간의 의견 불일치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인 견해로서, 이 작품은 '퇴폐적'이거나 '부도덕'하거나 '비관적'이지 않다. 『평생 독서 계획』에 포함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강력한 정신이 포착한 인생의 비전을 제시한다. 그 정신은 부분적이거나, 감상적이거나, 자기 변명적인 것은 일체 배격한다.

 

5. 그 모태가 되는 『오뒷세이아』와는 다르게, 이 책은 읽으면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곡들이 오래 듣고 연구할수록 그 풍부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듯이, 오로지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비밀스러운 뜻을 드러낸다.(363∼364쪽)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 독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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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8-06-10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트하신 것 굉장합니다. 감명 받았어요. 셰익스피어를 읽고 있는데 다 읽고 나면(아직 읽은 거 4대 비극밖에 없습니다) 율리시즈에 한번 도전하고픈 마음이 생기네요. 과연 그 날이 올지..

oren 2018-06-10 14:17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어느 정도 읽고 나시면 『율리시스』를 읽는 데 분명 큰 힘을 얻게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율리시스』를 다 읽는 동안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은 게 없어서 여간 고생이 심하지 않았답니다. 그나마 저런 메모라도 남겨둔 덕분에 나중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을 때 아주 유용하게 ‘복습‘할 기회를 얻긴 했지만요. 지금 세어 보니 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을 21편 읽었는데, 그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어김없이 『율리시스』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인유했는지 일일이 다 확인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읽지 못한 나머지 작품들을 읽을 때에도 이 메모는 여전히 아주 유용할 듯하고요. 아무튼 메모수첩 님께서도 『율리시스』에 담긴 (셰익스피어 못지 않은) ‘인간 마음의 백과 사전‘을 꼭 한 번 탐구할 수 있길 빕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0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께서 정리하신 노트만 보더라도 <율리시스>가 준비없이 올라갈 수 있는 산이 아니라는 사실이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그 산이 높기 때문에 오른 후에는 더 큰 보람이 있으리라는 기대도 동시에 하게 되네요. 제임스 조이스가 독자들의 손을 친절하게 잡아주고 그 산을 안내해 주지는 않지만, 그 산이 아름다울 것임을 oren님의 글을 통해 확신하게 됩니다.^^:)

oren 2018-06-10 14:58   좋아요 1 | URL
거대한 산봉우리를 오를수록 온갖 다양한 준비물도 필요하고 또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도 필요하다는 걸 히말라야 체르코리(4,984m)를 오를 때 절실히 느꼈었답니다. 함께 등반했던 많은 친구들이 3,800m까지는 다 함께 올랐지만, 4,000m, 4,500m를 지나면서 차츰 나가떨어지더라고요. 평지의 1/3에 불과할 정도로 희박한 공기 속에서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 덮인 너덜지대를 헤치고 올라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되더군요. 그런데, 가장 힘겨운 순간에 가장 큰 힘이 된 건 역시나 ‘최후의 일각‘까지 옆에서 서로 격려해 준 ‘동료‘였답니다. 『율리시스』 또한 숱한 비경들이 숨겨진 높은 산봉우리를 닮은 소설처럼 느껴지는데, 겨울호랑이 님이라면 그 동안의 놀라운 독서 경력으로 보나 닉네임으로 보나 지금 당장이라도 능히 단숨에 오르실 수 있을 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0 14:53   좋아요 0 | URL
oren님께서는 정말 높은 산에도 오르셨군요! oren님의 페이퍼를 통해서 짐작해보면 「율리시스」읽기에는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을 공략하기 전 바깥 해자를 메운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나가야겠습니다^^:)

oren 2018-06-10 15:01   좋아요 1 | URL
저도 한때는 등산 매니아였답니다.^^ 젊을 때 암벽등반도 배웠고요. 그런데 어느새 벌써 노쇠했는지 산보다 책을 더 좋아하게 되었네요. 그나저나 히말라야는 앞으로 한두 번쯤 더 가 볼 생각입니다.
☞ http://blog.aladin.co.kr/oren/6394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