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율리시스』 속에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에, 앞으로 수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 제임스 조이스

 

 * * *

 

지금 전세계를 통틀어 싱가포르만큼 뜨거운 도시도 없을 듯하다. 21세기 최대의 난제 가운데 하나인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세기의 회담'이 이제 곧 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훨씬 훗날에 태어날 사람들한테도 과연 '2018년 6월의 싱가포르'가 우리들처럼 그렇게 뜨겁게 느껴질까? 아마도? 아마도!

 

비록 '올해의 싱가포르' 정도는 아니더라도 해마다 6월이 되면 몹시 술렁거리거나 들썩거리는 분위기가 감도는 도시가 하나 있다. 그곳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이다. 거기선 해마다 6월 16일이 되면 '블룸즈데이'라는 이상한 타이틀을 내걸고 온갖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곤 한다. 그날의 그곳이 바로 제임스 조이스가 쓴 악명높은 소설인 『율리시스』의 배경이 된 날짜이자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제 날짜와 장소는 확정되었으니 그걸 채우는 인물들이 등장할 차례다. 소설이 마련한 무대에 나타나는 핵심 인물은 셋이다. 유태계 출신의 광고 세일즈맨인 레오폴드 블룸, 그의 아내이자 오페라 가수인 마리언 블룸(애칭은 '몰리'), 그리고 예술가를 꿈꾸는 문학 청년인 스티븐 데덜러스이다.

 

그날 더블린에서 제임스 조이스라는 민완 기자가 밀착 카메라를 둘러메고 하루 온종일 도심 곳곳을 동분서주한 끝에 끌어모은 동영상이 아직도 유튜브에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걸 몰래 즐감하는 네티즌들은 뜻밖에도 거기서 레오폴드 블룸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밀착 카메라는 주로 제임스 조이스의 어깨 위에서 주인공들을 추적하는 듯하지만, 때로는 갑자기 레오폴드 블룸의 머리 속으로 직접 뛰어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떠메고 다니는 밀착 카메라가 보여주는 가장 신비로운 혁신 기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람들의 머리 속으로 신속히 침투하는 능력이다. 그 기술은 단순히 인물들의 두뇌 상태만 살피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의식의 흐름'까지 추적한다. 그래서 그날 더블린에서 촬영된 유튜브 동영상은 '단 하루, 더블린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매우 흥미롭고도 방대한 분량의 기록물이지만, 그걸 올바로 감상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카메라에 담긴 대부분의 영상들은 아주 뚜렷하지만 일부 영상들은 흐릿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메라가 갑자기 레오폴드 블룸의 머리 속으로, 혹은 마리안 블룸의 머리 속으로 바쁘게 옮겨 다니기 시작하면 도대체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들의 의식이 그려내는 놀라운 요지경을 두루 감상하기 위해서는 <블룸즈데이 동영상 감상법>이라는 아주 방대한 주석집이 필요하고, 그 주석집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따로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느닷없이 블룸즈데이 이야기를 꺼낸 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난해한 소설을 읽는 동안에 끄적거렸던 메모가 불현듯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소설을 읽고 나서 한참 뒤에 그 메모들을 사진으로 담아 놓은 기억도 떠올랐다. 그런데 그 사진들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몰라서 한참이나 뒤졌다. 다행히 그 사진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컴퓨터에 멀뚱하게 남아 있었다. 혹시나 영영 달아나면 어쩔까 싶어 이번 참에 온라인 공간으로 끄집어 올려 본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북핵 같은 고차 방정식도 다들 서로 풀겠다는 나서는 마당에, 『율리시스』라는 아주 케케묵은 독서 난제 하나조차 못 풀어서야 말이 되느냐는 식의 '뜻밖의 결심'을 세우는 사람이 나타날 지.

 

  * * *

 

 

<사진 1> 『율리시스』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가장 많이 인유하는 작가는 단연코 셰익스피어다. 그런 예비지식이 전혀 없었던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인유한 곳들을 '비교적 좁은 공간'에 적기 시작했다가 아주 큰 낭패를 겪었다.

 

 

<사진 2> 소설의 목차는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똑같이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제3판과 <어문학사>에서 나온 제4개역판을 함께 놓고 비교하며 읽었는데, 사실 제4개역판에서 크게 바뀐 내용은 드물었다.(제3역 주석이 4,464개이고 제4개역판 주석이 4,463개로 '딱 1개' 차이가 나는 건 그저 헤프닝일 뿐이다. 제3역 주석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지 제4개역판에서 새로운 주석을 '1개' 추가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3> 『율리시스』에 인유된 작가와 작품은 일일이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단 1회' 인유된다는 게 특징이다. 물론 극소수의 걸출한(?) 작가들은 예외적으로 자주 인유된다.

 

 

<사진 4>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인유된 곳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인유된 작품은 단연 『햄릿』이다. 제임스 조이스를 올바로 감상하려면 먼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두루 섭렵할 필요가 있다.

 

 

<사진 5>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제임스 조이스의 드넓은 의식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신비로운 탐험이나 다름없다. 책을 너무 읽어 눈이 멀 정도였던 '독서광'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 편력을 따라가 보는 방법 가운데 『율리시스』를 읽는 것만큼 좋은 방편도 없다.

 

 

<사진 6> 이 책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아주 많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음란서적'으로 내몰려 '금서'로 지정되었다가 한 훌륭한 판사에 의해 마침내 '탁월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는 나보코프의 소설에도 등장한다.

 

 

그런데도 짐짓 요조숙녀인 체하는 모순적인 독자들을 안심시킨답시고 '성욕을 자극한다'는 지적을 받을 만한 몇몇 장면을 희석하거나 생략해야 한다면(이 문제에 대해서는 1933년 12월 6일 존 M. 울시 판사가 훨씬 더 노골적인 다른 책과 관련하여 내린 기념비적인 판결을 참고하라), 차라리 『롤리타』의 출판을 포기하는 편이 나으리라.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 <머릿말> 중에서

 

 

 

<사진 7> 『율리시스』에 등장하는 인물이 그리 많지는 않다. 주인공 블룸의 아내인 마리언 블룸(몰리)의 애인 숫자는 꽤나 많다. 레오폴드 블룸은 아내의 '불륜'을 눈치 채고도 정작 모른 체 한다. 그런 '오쟁이진 남편'의 입장이 참으로 묘하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면서 쿨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제대로 화풀이 한 번 못하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속을 끓이기 때문이다. 마리언 블룸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스런 애인의 모습'과 레오폴드 블룸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죽도록 패주고 싶은 마누라의 애인 녀석'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사진 8> 소설이 워낙 난해하고 주석 또한 엄청나게 복잡한 게 『율리시스』의 특징이다. 제3판에서 주석 하나가 불필요하게 끼어드는 바람에 제4개역판에서 수정되었지만, 오탈자는 제4개역판에서도 여전히 심심찮게 발견된다.

 

 

<사진 9> 『율리시스』를 처음 펼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어느 비평가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침투가 불가능한 소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땐 다시 덮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시 펼쳤을 때 '조금 더' 눈에 들어온다면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완독하는 날도 오게 된다.

 

 

<사진 10> 제임스 조이스는 언어, 철학, 문학뿐 아니라 심지어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아일랜드 민족의 삶과 애환이 깃든 민요에 대해 해박한 안목을 지니고 있다.

 

 

<사진 11> 주석의 오류를 찾아 내는 것도 흥미롭다. 가령 '멜랑쥐'를 혼합주의 한 종류로 해석한 건 명백한 오류다. 우리가 흔히 '비엔나 커피'로 부르는 게 바로 '멜랑쥐'이기 때문이다.(예전에 비엔나에 갔을 때 맛봤던 '멜랑쥐' 생각도 나고, 그곳에 사는 원주민이 직접 발음하는 '멜랑쥐'를 유심히 들었던 기억도 새삼스럽다.)

 

 

<사진 12> 이 작품엔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보다 앞서 발표한 다수의 작품들도 많이 인유한다. 그 가운데 가장 자주 끌어들이는 작품은 <더블린 사람들>이다. 『율리시스』가 '더블린 3부작'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진 13> 이 작품엔 작가 최후의 작품인 『피네간의 경야』와도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나중에 언젠가 그 작품을 읽게 되면 『율리시스』를 읽을 때 메모했던 내용들을 다시 들춰 볼 셈이다.

 

 

<사진 14> 제임스 조이스가 읽은 작가와 작품들이 『율리시스』라는 작품 속에 얼마나 많이 녹아들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건 수많은 영문학자들이 지금도 매달려 씨름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진 15> 『율리시스』는 주석이 없으면 읽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제임스 조이스가 어떤 작품 속의 어떤 인물들의 행동이나 상황을 이 작품에 끌여들여 설명하는지를 파악하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 16> 『율리시스』에 담긴 책들 가운데 '나도 읽은 책들'은 너무나 보잘것 없었다. 나로서는 제임스 조이스가 읽고 작품 속에 녹여낸 작가와 작품의 이름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다.

 

 

<사진 17> 제임스 조이스는 이미 중학생 때부터 오뒷세우스(영어로는 율리시스)를 흠모하는 글을 썼을 정도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웅>이라는 수필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따지고 보면 소설 『율리시스』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사진 18> 『율리시스』는 '원서'로 읽는 일도 무척 어렵다고 한다. 영어 말고도 수많은 다른 언어들이 그대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영어 이외에 자주 쓰이는 언어는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게일어, 헤브라이어, 이디시어, 페르시아어, 헝가리어, 폴란드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등인데 모두 합하면 대략 14개 언어나 된다고 한다. 그는 또한 언어유희의 대가였다.

 

 

<사진 19>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더블린 시내로 한정된다. 탑, 학교, 해변, 집, 목욕탕, 공동묘지, 신문사, 도서관, 거리, 주점, 산부인과 병원, 홍등가, 아내의 침실 등등이 주된 배경이다.

 

 

<사진 20> 『율리시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은 <제18장 침실(페넬로페)>이다. 일명 '몰리의 독백'으로도 불리는 이 장은 Yes로 시작해서 Yes로 끝나는데, 보다시피 중간에 쉼표나 마침표 한 번 없이 4만 단어로 나열된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아내 몰리의 의식 속을 여행하는 이 신비롭고 놀라운 대목이야말로 '오뒷세우스 장군이 겪은 온갖 고난'이 그녀의 아내였던 페넬로페의 침실에서 마침내 '평화로운 안식'으로 귀결되는 흐름과 몹시 유사하다. 비록 책의 겉모습만 보면 '숨막힐 듯' 빼곡한 단어들의 연속이지만, 온갖 고초 끝에 마침내 저 텍스트에 다다른 독자들이 맛보는 남모르는 희열은 책의 겉모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특별한 것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사진 21> 제4장 마지막 부분. '인생도 이랬으면' 하는 장면은 레오폴드 블룸이 마침내 시원하게 용변을 보고 내심 안도하는 장면이다. 블룸은 약간의 변비증을 겪고 있다.

 

 

<사진 22> 친구의 장례에 참석한 레오폴드 블룸이 마음 속으로 느끼는 '의식의 흐름'은 몹시 흥미롭다. <햄릿>에 나오는 묘굴인(墓掘人) 이야기도 당연히(!) 나온다. 라틴어 경구 'De Mortuis nil nisi prius(죽은 자에 대해 악담하지 말라)'도 흥미롭다.

 

 

<사진 23> 아내 몰리와의 싱그러운 데이트를 떠올리며 행복해 하면서도, 거의 동시에 몰리의 정부(情夫)인 보일런을 떠올리며 둘과의 관계 때문에 혼란스러운 레오폴드 블룸. 주인공은 아내의 불륜 때문에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아내는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5월의 초승달이 비치고 있어요. 사랑. 녀석이 아내의 다른 편에. 팔꿈치, 팔. 그이. 개똥벌레의 불ㅡ똥이 비추고 있어요, 여보. 감촉. 손가락. 질문. 대답. 그래요.

그만. 그만. 만일 그렇다면 그런 거고. 아니면 아닌 거야.(137쪽)

 

주석) 토머스 무어의 노래 <5월의 초승달>에서ㅡ5월의 초승달이 비치고 있어요, 여보 / 개똥벌레의 불똥이 비치고 있어요, 여보 / 산보란 얼마나 달콤한가요 / 모나숲을 지나 / 졸린 꿈을 꿀 때, 여보.

 

주석) 그 녀석ㅡ몰리의 정부, 보일런. Touch Fingersㅡ성교에 대한 속어다. 만일 원하는 자가 상대방의 손바닥을 셋째손가락으로 터치하면, 상대방이 의향이 있을 때 그 응답으로서 같은 손가락의 제스처를 함. 여기서 블룸은 몰리와 보일런의 관계를 의심함.

 

 

 

<사진 24> 이 소설에서 가장 난해하고도 주석이 많이 붙은 부분이다. <제9장, 국립도서관>에 딸린 주석만 613개에 이른다.

 

 

<사진 25> 제12장의 마지막 문장들은 단테의 『신곡』을 모방한 듯하다.

 

 

<사진 26> <제15장 밤의 거리(키르케)> 무대는 더블린의 홍등가이다. 여기서 레오폴드 블룸은 갖가지 잠재 의식이 불러오는 환각을 경험한다.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의 부하들이 키르케의 마법에 빠진 것과 비슷한 분위기다.

 

 

<사진 27> <제17장, 이클레스가 7번지(이타카)>에서는 시종일관 교리문답식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사진 28> 제18장에 딸린 주석 55는 설명이 불충분해 보인다. 프랑수아 라블레가 쓴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에 나오는 내용을 인유한 것인데, 작가와 작품 이름이 둘 다 주석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주석이 붙은 원문은 이렇다. "어떤 사람은 그를 성직자로 생각하지만 저 프랑스와 선생의 작품에는 여인이 탈장(脫腸)을 했기 때문에 귀(耳)로 아기를 낳았다는 거야")

 

 

<사진 29> 작품의 배경이 된 더블린 시내 지도.(<생각의 나무> 제3판 126쪽)

 

 

<사진 30> 조이스의 입상.(<생각의 나무> 제3판, 128쪽)

 

 

<사진 31> 『율리시스』 집필 종반 무렵의 조이스.(<생각의 나무> 제3판, 131쪽)

 

 

<사진 32> 『율리시스』 구상 당시의 조이스.(<생각의 나무> 제3판, 137쪽)

 

 

<사진 33> 데이비드 레빈이 그린 조이스의 초상화.(<생각의 나무> 제3판, 139쪽)

 

 

<사진 34> 『율리시스』 초고 중 한 페이지.(<생각의 나무> 제3판, 140쪽)

 

 

 

<사진 35> 제임스 조이스.(<생각의 나무> 제3판, 145쪽)

 

 

<사진 36> 결혼 신고를 위해서 등기소로 가는 길에서.(<생각의 나무> 제3판, 1,026쪽)

 

 

<사진 37> 마티스가 제작한 『율리시스』의 삽화들 중 하나.(<생각의 나무> 제3판, 1,028쪽)

 

 

<사진 38> 1930년대의 조이스 모습.(<생각의 나무> 제3판, 1,037쪽)

 

 

<사진 39> 작품의 구도.(<어문학사> 제4개역판, 915쪽)

 

나는 이상하게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완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평생 독서 계획』에 담긴 충고를 아주 충실히 따랐을 뿐이었다. 그 책에 담긴 충고 가운데 내게 가장 큰 용기를 불러 일으킨 대목은 뜻밖에도 아주 짧은 두 문장이었다.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어라. 그런 다음 책을 내려놓았다가 1년 뒤에 다시 시작하라."

 

나는 정말 이 지침을 충실히 따랐다. 맨 처음엔 그저 그 책을 아무데나 펼쳐서 몇 줄만 읽고 그냥 책을 덮었었다. 몇 년 후에 다시 펼쳐서는 이곳 저곳을 뒤적거리다가 다시 덮었다. 그 다음엔 첨부터 끝까지 줄곧 내달릴 수 있었다.

 

『율리시스』라는 오래 묵은 독서 난제를 푸는 데 있어서 내게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내가 마음 속으로 자주 되뇌었던 그 책 속의 문장들은 지금 다시 읽어 봐도 여전히 옳고 강력하다.

 

 

『율리시스』는 침투하기가 불가능한 소설처럼 보인다. 이 높은 산은 단숨에 걸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올라갈 수는 있다. 이 산의 정상에 오르면 아주 풍요로운 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다음에 다섯 가지 사항을 간단하게 적어 보았다. 이것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율리시스』를 즐겨 감상하게 하거나 이해하게 도와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대한 오해, 가령 한 마디로 웃기는 얘기다, 아주 외설한 작품이다, 정신이상에 걸린 천재의 작품이다, 컬트의 제단이다 등의 오해는 불식시켜 줄 것이다. 1922년에 이 소설이 출간된 이래 많은 우수한 비평가와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1. 이 작품은 『신곡』  이래 가장 완벽하게 조직된 작품이다.

 

2. 20세기에 발표된 작품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소설이다. 그 영향력은 주로 다른 작가들에게 미친 것이므로 간접적이다.

 

3. 영어로 된 가장 독창적이고 상상력 풍부한 작품들 중 하나이다. 문학의 많은 길을 새롭게 개척했다.

 

4. 약간의 의견 불일치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인 견해로서, 이 작품은 '퇴폐적'이거나 '부도덕'하거나 '비관적'이지 않다. 『평생 독서 계획』에 포함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강력한 정신이 포착한 인생의 비전을 제시한다. 그 정신은 부분적이거나, 감상적이거나, 자기 변명적인 것은 일체 배격한다.

 

5. 그 모태가 되는 『오뒷세이아』와는 다르게, 이 책은 읽으면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곡들이 오래 듣고 연구할수록 그 풍부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듯이, 오로지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만 그 비밀스러운 뜻을 드러낸다.(363∼364쪽)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 독서 계획』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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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8-06-10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트하신 것 굉장합니다. 감명 받았어요. 셰익스피어를 읽고 있는데 다 읽고 나면(아직 읽은 거 4대 비극밖에 없습니다) 율리시즈에 한번 도전하고픈 마음이 생기네요. 과연 그 날이 올지..

oren 2018-06-10 14:17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어느 정도 읽고 나시면 『율리시스』를 읽는 데 분명 큰 힘을 얻게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율리시스』를 다 읽는 동안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은 게 없어서 여간 고생이 심하지 않았답니다. 그나마 저런 메모라도 남겨둔 덕분에 나중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을 때 아주 유용하게 ‘복습‘할 기회를 얻긴 했지만요. 지금 세어 보니 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을 21편 읽었는데, 그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어김없이 『율리시스』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인유했는지 일일이 다 확인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읽지 못한 나머지 작품들을 읽을 때에도 이 메모는 여전히 아주 유용할 듯하고요. 아무튼 메모수첩 님께서도 『율리시스』에 담긴 (셰익스피어 못지 않은) ‘인간 마음의 백과 사전‘을 꼭 한 번 탐구할 수 있길 빕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0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께서 정리하신 노트만 보더라도 <율리시스>가 준비없이 올라갈 수 있는 산이 아니라는 사실이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그 산이 높기 때문에 오른 후에는 더 큰 보람이 있으리라는 기대도 동시에 하게 되네요. 제임스 조이스가 독자들의 손을 친절하게 잡아주고 그 산을 안내해 주지는 않지만, 그 산이 아름다울 것임을 oren님의 글을 통해 확신하게 됩니다.^^:)

oren 2018-06-10 14:58   좋아요 1 | URL
거대한 산봉우리를 오를수록 온갖 다양한 준비물도 필요하고 또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도 필요하다는 걸 히말라야 체르코리(4,984m)를 오를 때 절실히 느꼈었답니다. 함께 등반했던 많은 친구들이 3,800m까지는 다 함께 올랐지만, 4,000m, 4,500m를 지나면서 차츰 나가떨어지더라고요. 평지의 1/3에 불과할 정도로 희박한 공기 속에서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 덮인 너덜지대를 헤치고 올라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되더군요. 그런데, 가장 힘겨운 순간에 가장 큰 힘이 된 건 역시나 ‘최후의 일각‘까지 옆에서 서로 격려해 준 ‘동료‘였답니다. 『율리시스』 또한 숱한 비경들이 숨겨진 높은 산봉우리를 닮은 소설처럼 느껴지는데, 겨울호랑이 님이라면 그 동안의 놀라운 독서 경력으로 보나 닉네임으로 보나 지금 당장이라도 능히 단숨에 오르실 수 있을 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0 14:53   좋아요 0 | URL
oren님께서는 정말 높은 산에도 오르셨군요! oren님의 페이퍼를 통해서 짐작해보면 「율리시스」읽기에는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을 공략하기 전 바깥 해자를 메운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나가야겠습니다^^:)

oren 2018-06-10 15:01   좋아요 1 | URL
저도 한때는 등산 매니아였답니다.^^ 젊을 때 암벽등반도 배웠고요. 그런데 어느새 벌써 노쇠했는지 산보다 책을 더 좋아하게 되었네요. 그나저나 히말라야는 앞으로 한두 번쯤 더 가 볼 생각입니다.
☞ http://blog.aladin.co.kr/oren/6394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