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자본발전사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반자본 발전사전 - 자본주의의 세계화 흐름을 뒤집는 19가지 개념
볼프강 작스 외 지음, 이희재 옮김 / 아카이브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그다지 멀리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고대국가 형성시기정도 까지만 비교해보면 보통은 지금의 시대를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풍요로운 시대라고 평한다. 인류가 창출해낸 거의 모든 하드웨어적 시스템과 더불어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우리는 장족의 발전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는 틀림없는 사실이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대두된 진화론은 이러한 발전의 의미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현시점이나 고대의 시점보다 변형되어 미래의 어떠한 형태로 진행되는 일련의 현상들을 우리는 송두리채 어림잡아 '발전'으로 명명하기를 한치의 꺼리낌 없이 당연하듯이 받아 들이고 동시에 강요하는 패러다임속에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명명한 '발전'을 조금이라도 저해하는 요소는 이제는 거의 죄악시되고 비도덕시 치부되어 가히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막힘이 없어야 하고 막으려고 해서도 안되는 분위기속에서 국가대 국가, 민족대 민족, 그리고 개인대 개인이라는 제로섬게임의 타이틀매치에 목을 걸고 살아가고 있는 살얼음판 같은 세상에서 과연 이러한 발전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가에 대한 조심스러운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으니 사뭇 한번쯤은 이들의 속셈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반자본 발전 사전>은 그동안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발전,환경,평등,도움,시장,세계화,참여,인구,빈곤,진보,국가등의 용어 속에 숨은 또 다른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보고 이를 통해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한번 바라보자는 의미에 그 촛점을 두고 있다. 디지털 혁명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세계화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가 되기전인 1992년에 초판이 발간되었지만 오히려 지금의 시점에 거의 들어맞을 정도의 대단한 예견력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필자들의 논거가 그저 한쪽귀로 듣고 한쪽으로 흘려 보내정도의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사고의 폭을 넓혀줄 것으로 기대되는 책이다.  

냉전의 시대가 저물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사회주의의 마지막 보루 중국마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면서 우리에겐 자본주의 시시템을 거역할 수 있는 그 어떠한 논거가 남아있지 않다. 특히 발전지상주의라는 정치적인 담론이 가세하면서 재화나 서비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이러한 제도를 창출해낸 인간마저도 대상화가 되면서 발전 아니면 퇴보라는 선악의 구도를 자연스럽게 형성하였고 그리고 강요받기 시작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을 바로보는 시각을 괄호안에서만 찾을것이 아니라 괄호밖의 세상에 대한, 좀더 다른 각도의 시각이 필요할 시점이라는 사실들이 하나둘씩 들어나기 시작했다. 원조(도움)이라는 제도적 장치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뜻이 표방하는 외형적인 의미보다는 그 속에 내제되어 있는 들어내기에 왠지 부담스러운 진실을 알게 되면 과연 누구를 위한 원조이며 도움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으면 이러한 일련의 의구점은 선을 대표하는 것 처럼 포장되었던 발전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하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실날같은 해답을 던져준다.  

칼 폴라니는 "사회가 경제 규칙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규칙이 사회 위에 군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사회와 문화라는 전통적 뿌리에 박혀 있던 경제가 산업시대를 거치면서 떨어져 나왔고 결국 사회가 경제에 종속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고 지적 하듯이 우리는 그동안 경제적인 수치 내지는 성장 그래프의 끝을 쫒으면서 주객이 전도되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라도 경제를 원위치로 돌리자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경제발전과 그 외라는 괄호의 벽을 허물고 괄호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야 할 때가 도래했음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들의 구성성분이 정치적인 프리즘의 잣대로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들의 논조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와닿은 것은 발전이라는 명분아래 하루 하루 고되고 버겁게 살아가는 우리의 현주소를 그대로 투영해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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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 - 중국인의 삶은 왜 여전히 고달픈가
랑셴핑 지음, 이지은 옮김 / 미래의창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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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들 궁궐이 아닌 곳에서 태어나 왕에 등극하게 되면 그 왕이 거처한곳을 잠저라고 칭한다. 예로부터 동양권에서는 왕은 용과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고 이런 왕들은 통칭하여 잠룡이라고도 한다. 기존의 인프라가 완비된 궁궐이라는 특혜를 받지 못하고 등극하는 잠룡들의 공통점은 등극과 동시에 일사천리로 자신의 치세에 드라이브를 끌어가면서 당대나 후대인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바로 잠룡일 것이다. 과학혁명과 민주혁명 여기에 산업혁명이라는 불세출의 대권을 틀어진 서구사회는 그 통치치세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장착하면서 인류역사상 가장 화려한 성장과 더불어 부의 집중화 차별화를 일구어 냈다. 그 이면에 동양권이나 제3세계권의 혹독한 댓가를 요구하면서 단지 하이테크놀러지를 손에 쥔 우월성을 앞세워 수세기를 지배해오고 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특히 그 중심에는 미국이라는 구중궁궐속의 용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국가는 이 질서를 자의든 타이든 그 형태를 불문하고 용인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용의 질서에 경천지동할 변혁이 일어났고 그 중심에 잠룡 중국이 새로이 부상하고 있다. 세칭 선진산업국을 지칭하는 G7, OECD, G20등의 용어는 사실상 의미가 희석되어 가고 있다. 이제 세계는 중국과 미국이라는 쌍두마차와 그외 다수라는 의미의 G2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고 현실적으로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어마어마한 부존자원, 광활한 강역, 그리고 막대한 소비층을 확보한 중국은 매해 경의적인 포인트의 경제성장율을 기록하면서 IMF, 서브프라임사태등 굵직한 세계적 경제위기와는 무관하게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1970년대말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 이후 자본주의 터보엔진을 장착하면서 중국의 저력은 그야말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 이제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올 지경으로 그 영향력이 급부상해버렸다.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으로 냉전종식과 자본주의의 승리를 자축할 틈도 없이 이제 자본진영은 변색된 사회주의 종주국의 비대함을 그저 바라만 봐야할 형국에 이르렀다. 중국의 도약은 개도국과 최빈국에겐 롤모델로 자리잡고 중국따라하기 열풍이 불고 있지만 과연 이 잠룡의 진정한 내막은 어떠할까에 대한 구체적인 실상은 제대로 파악된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잠룡의 내부엔 三十難立, 四十迷惑, 五十聽天由命(나이 30에 뜻을 세우기 어렵고, 40에 유혹에 흔들리며, 50에는 그저 하늘의 명만 따른다)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점점 늘어 나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 외형과 맞지 않는 엊박자를 연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내막을 상세히는 모르지만 왠만한 세계인들은 대충은 인지하고도 있다. <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은 바로 이러한 중국내부의 문제점을 외부인의 시각인 아닌 중국 경제학자의 눈을 통해서 바로 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이다. 삶의 기초적인 의식주에서 교육,시장경제,환경,국제문제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면에서 중국내부의 속사정을 미국을 비롯한 선진사업국의 정책과 비교, 비판하면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저자가 지금의 사태를 파악하는 근본적인 시각에는 서구사회의 착취론이 깔려 있다. 이를 바탕으로 수치적인 부와 실질적인 부의 괴리감을 설명해 나가고 있고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들이 제법 존재한다.

냉정하게 중국을 판단해본다면 아직까지는 미완성의 대기로 봐야할 것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분명 잠재력이 넘처나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사회주의 정치시스템과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라는 불편한 동거를 이처럼 효율적으로 봉합하여 끌고 가고 있는 유일무이의 국가이며 아마도 중국이 연착륙을 하게 된다면 세계사적으로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임은 자명한 일있다. 그러나 저자가 밝혔듯이 내부적으로 산재한 문제들이 과연 어떠한 형태로 진행되게 될지에 대해선 그야말로 미지수이다. 저자는 중국의 발전상황이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저술했지만 어울리지 않은 동거가 성공으로 남을지에 대해선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저자와 같은 솔직담백한 자기인식의 폭이 넓어 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해법을 찾아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전반적으로 중국의 발전상과 그 이면에 곪아가고 있는 내제적인 문제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저자는 선진산업국을 타산지석으로 중국만의 대업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하듯이 우리 역시 이번 책을 통해서 중국의 진면목을 깨닫고 적용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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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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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은 1970-80년대 상아탑속에서 바둥거렸던 세대들에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공산당선언과 더불어 대학 새내기들이 필히 의무적으로 읽어야할 책으로 대학의 교양과목 이상의 덕목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만큼 이들 책에 담겨져 있는 내용은 당시 외부세계와 차단된 지성인들의 갈증을 단숨에 해소하는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그리고 저자인 리영희의 진실과 혼이 담겨져 있었기에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책장을 넘기면 잔잔한 감동으로 와닿는 것이다.

사상의 은사라는 호칭보다 <의식화의 원흉>이라는 대명사로 더 알려진 리영희는 언론의 기능이 무엇이며 이에 종사하는 언론인은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에 대해서 명백한 길을 제시했다. 이러한 길을 그저 글이나 이념의 설파등으로 제시했다면 그를 감히 사상의 은사라 칭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리영희 자신은 언행의 일치를 손수 보여주었고 그 선택에 대해 일말의 후회를 가져본 적 없는 행동으로 움직이는 지성 그 자체였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질곡의 현대사속에서 수많은 인물들의 전향과 배신 그리고 독단을 목격해 왔기 때문에 유독 한길만을 고수한 그에게서 진정한 은사의 향을 맡을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주저없이 "선생"이라는 호칭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절묘한 시간의 조화라고 해야 할지 의도된 기획이라고 해야할지 몰라도 <리영희 평전>은 그가 타계하고 바로 출간됨으로써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해야겠다. 그동안 강준만교수등을 비롯해 리영희에 대한 저작들이 나왔지만 이번 책은 말그대로 평전으로 출간되었다. 한창 일제의 식민정책이 절정을 달하던 1929년 평안북도에서 출생한 그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굵직 굵직한 질곡의 세월을 같이 했다. 항상 현장에서 두눈으로 확인하고 냉철한 머리와 온화한 가슴으로 세월과 사투하면서 살아왔다가 자신이 맡은 1인분의 역활을 완수하고 간다는 변으로 세상과 이별했다. 비록 그가 남긴 물질적인 유산은 변변치 못하지만(그의 삶속에 이런말 자체가 어울릴 수 없지만) 그나마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엄청난 정신적 유산을 남겨 주었다. 그 유산은 세상과 자신을 보는 올바른 눈일 것이다.  

비록 리영희라는 일개 개인의 평전이지만 그와 한국현대사를 논외로 규정하기 힘들듯이 평전이라는 형식보다는 오히려 한편의 역사 다큐처럼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한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일제강점기에서 부터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 이승만의 독재, 4.19혁명, 5.16군사쿠테타와 박정희라는 희대의 유신독재와 광주민중항쟁과 또다시 등장하는 군부독재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들이 리영희와 연계되어 있는 점을 보게 되면 정말 개인으로서 이만큼의 시대적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왔다는 그 자체에서 겸허한 마음을 금할수 없다. 특히 이러한 격동의 시대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바로 리영희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 그 자체이지 않을까 싶다.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를 신념으로 외롭고 고된 길을 걸어왔지만 그런 그가 이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루쉰과 백범을 삶의 지표로 삼았고 모진 차별과 투옥등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변치 않는 자신의 길을 걸었던 그이지만 정작 자신의 가정과 가족들에게 작은 사치하나 해주지 못한 미안함을 표출할땐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가슴이 메이게 한다. 왜 그렇게 살았냐 약간의 타협도 하면서 살아간다고 대수가 되겠느냐라는 자기합리화적인 말을 수 없이 되뇌어 보지만 왠지 이런 어구들은 그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리영희는 모진 눈보라가 치는 눈길을 걸어갈때 앞만 보고 걸어간 것이 아니였다. 자신의 뒷에 따라올 이들을 위해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비록 힘들고 고되더라도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정도와 진실을 향해서 곧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걸어 갔던 길을 수 많은 후학들이 따라 걷게 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고 지금도 그 길은 진행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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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2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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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년전에 쓰여진 사마천의 사기는 동양세계에서는 역사서의 바이블같은 하나의 기준이 되어 면면을 이어왔다. 특히 열전편은 인간군상들의 삶을 집대성하였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듯 동양에 사기열전이 있다면 서양세계를 대표하는 것은 다름아닌 그리스-로마 신화일 것이고, 그중에서도 영웅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야 말로 백미를 장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사마천의 사기열전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쓰여진 시기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연구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동서양이 공통으로 역사의 원동력을 인간 중심에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플루타르코스와 사마천 이전의 역사인식은 신화를 바탕으로한 전설의 시대에 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소리일 것이다. 이런면에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서양세계의 역사적 기원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세계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 소크라테스가 사랑했다는 알키비아데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이 회자되는 '개 같은 인생'을 노래한 디오게네스, 최초로 서민을 위한 개혁에 목숨을 건 호민관 그라쿠스형제,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세기의 대결 그리고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외쳤던 카이사르등 그 이름만으로도 벌써부터 왠만한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 잡고 있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은 그리스-로마신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명사이자 우리 시대 신화 전문가인 故이윤기 선생의 유작이다.  

서양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리스-로마 신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서양문화의 기저엔 항상 그리스-로마 신화가 동반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점이 성경만큼이나 회자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동양권의 독자들에겐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혼용되는 지명이나 인명등 읽을수록 복잡하게 다가오는 내용들로 인해 그 깊이와 재미가 반감되었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이윤기선생은 바로 이런 점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국내 독자들에게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게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출간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이라는 이름으로 재 탄생시켰다. 굳이 재 탄생이라는 표현을 쓰고자 하는 것은 기존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각색/편집하는 차원을 넘어서 저자만의 색깔을 담아내고 있는 새로운 영웅열전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리스-로마 신화와 동시에 이윤기라는 이름 석자를 떠올렸듯이 이번 책 역시 이윤기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할 만큼 군더기 없이 깔름한 설명과 각종 삽화와 사진으로 한층 맛깔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책을 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맛깔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 있기 마련이고 바로 이윤기선생의 책들이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신화나 영웅전은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천차만별로 다가오는 양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윤기의 입담에서 풍겨져 나오는 그리스 로마 영웅들의 모습은 마치 책을 펴든 독자들의 눈앞에 한폭의 서사시처럼 술술 읽히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저자의 전문가적인 지식의 깊이와 폭이 넓은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 맞는 언어의 선택 그리고 감미료를 더하는 듯한 나레이션에서 한층 더 영웅들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저서는 원전인 플로타르코스 영웅전에 충실한 기초를 배경으로 한 그리스-로마 영웅들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배경까지 곁들여 나레이션을 충실히 하고 있어 중복되는 느낌도 들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팁을 선사하고 있다. 테세우스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고구려 유리왕의 설화와 너무나도 유사한 점등이 우리가 이역만리 떨어진 생뚱맞은 문화권의 신화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그만큼 신화나 영웅전은 바로 이렇게 이질적인 문화권을 아우르는 인류 공통의 생각들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마치 겨울밤 화톳불가에서 손자들에게 들여주듯이 맛깔나게 풀어주는 고인의 생동감 넘치는 나레이션이 더해져서 더욱 더 정겹고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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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세트 - 전2권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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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년전에 쓰여진 사마천의 사기는 동양세계에서는 역사서의 바이블같은 하나의 기준이 되어 면면을 이어왔다. 특히 열전편은 인간군상들의 삶을 집대성하였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듯 동양에 사기열전이 있다면 서양세계를 대표하는 것은 다름아닌 그리스-로마 신화일 것이고, 그중에서도 영웅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야 말로 백미를 장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사마천의 사기열전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쓰여진 시기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연구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동서양이 공통으로 역사의 원동력을 인간 중심에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플루타르코스와 사마천 이전의 역사인식은 신화를 바탕으로한 전설의 시대에 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소리일 것이다. 이런면에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서양세계의 역사적 기원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세계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 소크라테스가 사랑했다는 알키비아데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이 회자되는 '개 같은 인생'을 노래한 디오게네스, 최초로 서민을 위한 개혁에 목숨을 건 호민관 그라쿠스형제,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세기의 대결 그리고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외쳤던 카이사르등 그 이름만으로도 벌써부터 왠만한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 잡고 있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은 그리스-로마신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명사이자 우리 시대 신화 전문가인 故이윤기 선생의 유작이다.  

서양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리스-로마 신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서양문화의 기저엔 항상 그리스-로마 신화가 동반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점이 성경만큼이나 회자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동양권의 독자들에겐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혼용되는 지명이나 인명등 읽을수록 복잡하게 다가오는 내용들로 인해 그 깊이와 재미가 반감되었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이윤기선생은 바로 이런 점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국내 독자들에게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게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출간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이라는 이름으로 재 탄생시켰다. 굳이 재 탄생이라는 표현을 쓰고자 하는 것은 기존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각색/편집하는 차원을 넘어서 저자만의 색깔을 담아내고 있는 새로운 영웅열전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리스-로마 신화와 동시에 이윤기라는 이름 석자를 떠올렸듯이 이번 책 역시 이윤기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할 만큼 군더기 없이 깔름한 설명과 각종 삽화와 사진으로 한층 맛깔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책을 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맛깔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 있기 마련이고 바로 이윤기선생의 책들이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신화나 영웅전은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천차만별로 다가오는 양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윤기의 입담에서 풍겨져 나오는 그리스 로마 영웅들의 모습은 마치 책을 펴든 독자들의 눈앞에 한폭의 서사시처럼 술술 읽히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저자의 전문가적인 지식의 깊이와 폭이 넓은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 맞는 언어의 선택 그리고 감미료를 더하는 듯한 나레이션에서 한층 더 영웅들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저서는 원전인 플로타르코스 영웅전에 충실한 기초를 배경으로 한 그리스-로마 영웅들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배경까지 곁들여 나레이션을 충실히 하고 있어 중복되는 느낌도 들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팁을 선사하고 있다. 테세우스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고구려 유리왕의 설화와 너무나도 유사한 점등이 우리가 이역만리 떨어진 생뚱맞은 문화권의 신화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그만큼 신화나 영웅전은 바로 이렇게 이질적인 문화권을 아우르는 인류 공통의 생각들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마치 겨울밤 화톳불가에서 손자들에게 들여주듯이 맛깔나게 풀어주는 고인의 생동감 넘치는 나레이션이 더해져서 더욱 더 정겹고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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