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책이 있었다
김희정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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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성향으로 자기개발서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나는 이렇게 혹은 저렇게 했으니 당신들도 한번 해봐라 식의 열거들 때문인지 에세이 만큼이나 손이 가지 않는 장르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연히 자기개발서적 코너에서 눈에 들어온 책을 손에 쥐고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책 제목이 왠지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덩그러니 있을까라는 생각과 그다지 길지 않는 필자의 약력소개(대개의 경우 필자의 약력이 길어지는 경우는 내용이 부실하거나 뻔한 이야기를 각색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죠)에 끌려 시작하게 된 책입니다. 여기에 교직에 몸담고 있는 필자의 책이라 한번 믿고 시작해 봤습니다.

 

      바로 그 책이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책이 있었다> 인데요. 제목도 길고 왠지 자기개발서보다는 필자의 이력에서 엿볼 수 있듯이 굳이 분류하자면 독서코칭계열의 서적으로 판단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네요. 뭐 그렇다고 냉정하게 이번 책이 탁월한 비전을 제시하고 가슴 한켠에서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고 말하기에는 다소의 억측과 무리가 분명히 상존하고 있지만요. 뭐 굳이 그런 서적을 바란다면 문학작품이나 대가들의 지침서를 보는 게 낫겠죠. 하지만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조그마한 동기와 그 동기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정표 역할은 충분히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 지네요. 물론 여기에 더하여 삶의 의미까지 돌아보게 된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이러한 잡설에도 불구하고 일독을 권하는 이유는 이번 책의 유니크한 스트럭쳐와 책을 구성하는 내러티브의 보편타당한 공감대일 것입니다. 기존의 독서코칭 서적들에서 볼 수 있는 식상한 스트럭처들, 어떠한 명저를 제시하고 그 책에 맞추어 끼워맞추기식인 듯 한 내러티브의 나열들은 오히려 책을 멀리하게 되는 역효과를 낳는 폐단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책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구조를 가지고 있죠. 아니 사고의 전환이라는 수준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필자가 살아온 인생의 실재하는 삶과 책이 연동되어 마치 한편의 바이오그래피를 엿보는 느낌마저 들게 하니까요. 왜 그 순간에 그 책이 와 닿았을까? 그 책을 손에 쥔 순간 내 인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읽을수록 상당히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보편타당한 공감대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을 두고 지칭하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문학작품에서 독자들이 받는 공감대와는 또 다른 맛깔스러운 맛을 전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구조로 인해 필자가 제시하는 방법론적 가지들이 필자 삶과 절묘하게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어 그 필연성을 부각시키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의 손길을 던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죠.

 

      물론 필자가 제시해주는 스킬이나 전략이 모든 독자들에게 적절하게 맞아 떨어질 수 는 없는 개인적인 견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이번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안들이 적어도 오컴의 면도날역할은 충분히 하고도 남으리라 여겨집니다. 필자가 제시하는 방법론적 접근 방식은 책과 친근해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에 하나라고 할까요. 새로운 독자층이 늘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 독자들 스스로가 책에 다가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고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이제 걸음마 단계의 독자들 뿐만 아니라 이미 나름의 방식으로 세월을 헤쳐 나가는 이들에게도 한번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라는 필자의 말이 오래토록 잔상에 남는 이유를 독자들 스스로 깨달아 가게 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심리학교수인 김경일 교수가 말한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가 딱 맞아 떨어지는 책이라 여겨집니다. 책이야말로 라이크로 접근해야하고 자신의 라이크에 맞는 만족감을 가져주어야 진정한 책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필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사유가 바로 라이크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합니다.

 

      우리는 현재 미증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별로 사회별로 개인별로 전혀 경험하지 못한 감염병으로 인한 강제 격리와 이격 생활을 강요받고 있는 시대입니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사태에서 우리는 언택트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 받고 있습니다. 언택트라고 하면 가장 먼저 온라인상의 플렛폼을 연상하는게 인지상정이지만 사실은 언택트라는 세상을 우리는 이미 살아왔고 현재도 살고 있죠. 바로 책이라는 플렛폼을 통해서 말이죠. 저자나 작가의 사유를 서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수많은 독자들과의 플렛폼을 형성하면서 말이죠. 그렇기에 이번에 소개하는 책은 이런 시대에 어쩌면 독자들에게 삶의 방향타 하나 정도는 던져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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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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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작품 (사실 문학작품도 유명 작가의 작품이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작품을 제외한다면 주목받지 못하고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는 않죠) 을 제외하고는 왠만한 인문도서나 과학계열의 도서들이 독자들에게 큰 임팩트를 던져주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고 봐도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진화 관련 부분이 가미된 경우에는 가뭄에 콩나듯이 특수한 계층의 독자들외에는 외면 받는 것이 지금의 우리 독서 풍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환경속에서도 유발 하라리 (정말 생소하죠 영미권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도 아니고 변방 정도로 여겨지는 이스라엘 학자인데요) 는 지난해부터 국내 독자들에게 상당히 주목받고 있는 학자 겸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입니다. 전작인『사피엔스』를 통해서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다양하고 신선한 가설과 논거로 딱딱하기 그지없는 진화 역사론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했습니다. 이미 전작에서 확인했듯이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어떻게 수 많은 종 중에서도 지구상의 최고의 정점에 올라설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공감대 형성할 수 있는 가설을 제공하여 상당한 설득력 있는 논거를 펼치고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 즉 인류는 사실상 지구를 접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존 지구상에서 생멸했던 그 어떠한 종보다 빠른 속도로 지구를 독점하고 있는 중이고 향후 별다른 외부적인 요인이 없다는 전제하에 이러한 속도는 점점 더 가속을 받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전작에서 유발 하라리는 이런한 유래없는 점령 속도를 발휘할 수 있었던 근원적인 몇가지의 요인들을 심도 깊은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어필될 수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자연스럽게 풀어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호모 사피엔스에 대적한 그 어떠한 종도 없다는 자부심아닌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인류는 이제 지구를 뛰어 넘어 광활한 우주로 그 시선을 돌리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요. 이 시점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가 향후 미래를 어떻게 개척하고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는데요. 이번에 선보이는 <호모 데우스 ; Homo Deus> 는 바로 우리 인류의 미래와 그리고 그 미래를 어떻게 개척하고 받아 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거리를 공유할때가 되었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미 정상에 올라선 인류가 지향하고 있는 분야 그리고 자신이 지구를 정복했다고 선언한 인류의 현 주소에 대해서 신랄한 자기 비판과 검증을 보여 주고 있죠. 과연 지금 21세기 우리 인류는 진화 생물학적으로는 여전히 호모로 분류되지만 왠지 지금의 인류는 호모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다양한 패턴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유발 하라리는 지금 현생 인류의 정체성은 과연 어느 시점에 도달하여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과연 인류는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할 것인가? 이 두가지 논제를 과학혁명 이후의 시대의 요청사안들을 추론하면서 독자들을 쉼 없이 끌어 가고 있는데요. 냉철하게 아니 약간은 억지 주장 같기도 하지만 이미 인류는 자신들이 창조해 내 '신' 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이 '신' 의 자리에 등극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죠. 바로 '호모 데우스' 라는 새로운 개념의 인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개념의 근간은 종교와 과학 그리고 나아가 여러가지 사회적인 분야의 다양한 논거들을 추론하여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주제들이 어찌보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부분들이기도 한데요. 그 동안 인류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의 기간동안 종교와 과학은 인류를 최정상으로 이끄는 쌍두마차의 역활을 수행했죠. 그런데 이러한 기류가 과학혁명이라는 패러다임을 마주하면서 사실상 한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로 흘러가게 되고, 급기야 저자가 제시하는 미래상에서는 과학이 종교를 대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상 이러한 현상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부지불식간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 역시 이런 부분을 반증하고 있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인류는 현재의 시스템을 창조하기 위해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의 패러다임을 창출했고 이를 기반으로 지금의 시스템을 구축했죠. 그런데 향후 미래의 모습은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그 동안 인류가 살아왔던 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의 빅브라더라는 존재 처럼 또 하나의 신이 등장할 것이고 그 교리는 "데이터" 가 될 것이며 인류는 자신들이 신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데이터교의 일원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논거인데요. 상당히 암울한 디스토피아계열의 소설 작품을 음미하는 느낌을 던져주고 있는 기제들입니다.    


          지구상에 명멸했던 수 많은 종 중에서 유일하게 가장 빠른속도로 지구를 차지한 종은 호모족이 유일무이할 것입니다. 인류는 그런 점에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 한편으로 당위성를 맘껏 발현하고 있죠. 인류외의 그 어떠한 생명체는 오직 인류를 위한 조연의 역활과 하나의 부속물 밖에 안된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하면서요. 인류 나름의 논리대로 인지혁명이니 농업혁명이니 과학혁명을 운운하고 있지만 이 또한 범죄자들의 자기합리화의 일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본 이들은 과연 몇몇이나 있을까요? 그나마 인류는 이러한 면피를 "신" 이라는 존재 (일체의 종교를 포함해서요) 를 창출하면서 자기 반성적인 면모를 보였주었죠. 하지만 이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마지막 보류마저도 흔들리고 있는 상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인류 스스로 "신" 를 끌어내리고 선수 교체를 단행하는 경지에 까지 도달했죠. 그런데 말이죠. 신을 대신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왠지 만루상황에서 대타로 들어선 선수가 더블플레이로 게임을 종결하는 그림이 자꾸 그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런 기시감이 이번 저서에서 큰 그림으로 보입니다. 인류가 창출해낸 시스템속에서 인류는 주연이 아닌 일개 조연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험천만한 현실들과 이를 반증해나가는 사례들이 속속 목격되고 있습니다. 어슬픈 "신" 놀이로 인해 그나마 쌓아온 명성을 잃지 않으려면 차라리 창조해낸 신 속에 일환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더 타당할 수 도 있다는 말이겠죠. 물론 이번 저서가 인류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바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단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이 짙어가고 있다는 점 이제는 더 이상 쉬쉬할 수 없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모든 인류가 한번쯤 고민해봐야할 시기가 아닐까 싶네요. 이번에도 유발 하라리 특유의 소설 같은 스토리텔링은 딱딱한 논거들을 아주 재미있게 그러면서 아주 설득력 높게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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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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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는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새삼 다른 시각에서 인식하게 도와주었던 몇 안되는 인류역사서 이자 인류보고서 였죠. 아주 오래전 출간되었지만 오랜시간이 흘러도 꾸준하게 인문학 서적 코너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기존인식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각이었다는 점인데요. 아마도 우리 인류가 진화해온 과정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에 세계의 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것 아닐까 싶네요. 이런면에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역시 한번의 큰 파고를 넘어서서 한 발짝 나아갔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독자층에게 또 다른 충격파를 선사하는 저서라는 생각이 들 정도 신선한 기제를 던져주고 있는 책입니다. 특히 생물학과 역사학를 접목시켜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인류의 역사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끌어가면서 흥미진진한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저자 자신만의 특유한 가설들을 설파하면서 (물론 상당히 설득력을 겸비하고 있죠) 독자들로 하여금 기존의 인류사와 상호 비교해 볼 수 있는 여지도 남겨놓고 있다는 점이 일방적 주장보다 오히려 더 설득력을 가지게 하는 힘의 원천인 것 같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유니크한 가설속으로 들어가보면 우선 인류진화사 혹은 히스토리 (호모 사피엔스를 기준척으로 볼 경우) 의 과정을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이라는 거대한 세가지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사실 농업혁명이나 과학혁명은 그 동안 독자들이 많이 대해봤던 이론들이죠. 다만 그 첫번째 단계였던 '인지혁명' 를 설명하면서 저자는 이러한 인지혁명이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다름아닌 뒷담화 이론과 허구의 창작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인류에게 인지의 기본 매카니즘틀을 언어와 그 존재가치의 부여로 보고 있는데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두가지 이론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뒷담화이론 (임계치는 대략 150여명내외의 가족과 부족단위 소개념으로 미시적 담론형성을 담당) 과 더불어 허구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 (뒷담화이론의 임계치인 150명을 넘어서는 사회조직의 버팀목으로 거시적 담론의 형성을 담당) 을 논거하는데요 상당히 유니크하면서도 기발한 발상이자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인류에게 인지의 능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고 확대 재생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다름 아닌 '뒷담화이론'과 '허구의 창조' 라는 쌍두마차가 존재했기에 인류는 다른 종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 같은 원시인류등를 포함해서요) 에 비해서 빠른 속도로 진화의 파도를 타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과정속에서 또 다른 어둠의 단면들이 존재했지만요. 특히 집단적 허구와 신화의 창조의 대표적 산물인 화폐, 제국, 종교 라는 세가지의 미시적 패러다임의 대두가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를 제공하는데요. 결국 이들 세가지는 호모족의 통합을 이루어냈고 인지혁명을 거쳐 농업혁명 그리고 과학혁명에 이르는 가장 근본적인 동력원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그외 '게걸스러운 유전자 이론',  '고대 공유 공동체 이론', '영원한 일부일처제 이론', '즐거운 생화학 시스템 이론' 등 처음 접해보는 이론들을 통한 인류역사의 고찰은 그 진위여부를 떠나서 상당한 매력을 담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우선 눈여겨볼 점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내지 신념에 대한 (물론 창조론자나 지적설계론자의 경우는 예외이겠지만) 에 대한 일차 저항선이 흔들린다는 것인데요. 그 동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네안테르탈렌시스, 호모 루돌펜스시, 호모 사피엔스 로 이어지는 인류 진화의 일련 방향을 너무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식해왔던게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각 계층의 상하연결고리가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고 (이러한 잃어버린 연결고리로 인해 창조론자들과 설계론자들의 논박이 거세지고 있고) 있죠. 이번 저서는 이러한 연결고리의 관점을 보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고 있습니다. '인지혁명'(인간의 생각의 혁명/약 7만여년전), '농업혁명'(생활하는 방식의 혁명/약 12,000여년전) 그리고 '과학혁명'(서기 1500년경) 이라는 인류역사학적 시각으로 이들 상호간의 잃어버린 연결고리의 맥을 찾게 해준다는 것인데요. 우리의 직계 조상이라고 볼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이 좀더 효율적이고 객관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듯 영겁을 지난 시간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과학혁명으로 재탈바꿈한 현대의 풍요로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대를 풍요롭다고 규정지을 수 있을까요? 적어도 수천년전 고대 수렵채집인과 비교해서라도 과연 풍요롭다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지워지질 않습니다. 오히려 저자는 고대 수렵채집인들의 노동시간과 발육상태등이 농경 및 산업사회의 사람들보다 여건이 더 낫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즉 이말은 본질은 발전이라는 개념에 대한 우리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죠. 진화와 발전은 또 다른 개념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발전이 모든 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주변만 살짝 들여다봐도 충분히 이해가 가기 때문입니다. 이번 저서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의 진화와 발전에 대한 생각 또한 진지하게 한번즘 해볼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미래란 다름아닌 다른 수 많은 종과의 공진화이겠죠. 그 동안 지구상에 호모족 만큼 지구 생태계를 일순간에 파괴한 종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 잔혹성은 같은 호모족에서도 발생했죠.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에 있습니다. 지구상 생태계의 멸종을 1, 2, 3 의 단계별 물결로 보게되면 인류가 수집채집인에서 농경 그리고 산업혁명이라는 발전의 단계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지구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 바로 인류라는 반증이기도 하죠. 이제 더 이상의 제4의 멸종 물결에 인류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오명은 벗어던져야할 시점이고 이것은 우리 인류 자체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피엔스> 의 장르를 어디라고 봐야할지 독자들은 약간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기존의 역사서와는 분명 다른 스트럭처를 지니고 있고 그 내용들만 들여다 봐도 인류학같은 느낌에다 진화론적 인문학을 접하는 느낌이 강하게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저자인 유발 하라리의 이력이 우선 눈에 들어오는데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할 정도로 이 양반의 주 전공은 다름아닌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저서는 상당히 히스토리컬한 느낌을 강하게 주죠. 전반적인 스토리의 진행자체가 연대기적인 기법의 형식을 취하고 있죠 (뭐 사실 이러한 연대기적 스킬을 동원하지 않을 수도 없겠죠). 하지만 그 연대기 속에 들어있는 논거와 가설들은 인류학, 고고학, 생물학, 사회학, 진화심리학등 다양한 분파의 학문적 논거와 이론 그리고 저자 자신만의 독특하고 참시한 가설들이 공존하고 있어 마치 인류라는 백과사전을 보는 듯한 지적 만족감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일반 독자들이 충분히 소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살짝 가미되어 있고, 논거들과 이론들 자체를 아주 베이직하게 그러면서도 상당히 철학적이고 의미심장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기존의 수 많은 인류학관련 저서와 진화학관련 저서 (인류중심의 진화학) 들과 비교해봐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구미가 확 당기는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다양하고 풍부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피엔스> 는 분명하게 역사서 범주에 들어갑니다. 좀더 확장하자면 인류역사학 정로랄까... 각종 서적과 온라인상에서 접하게 되는 인류의 기원과 그 진화라는 거대한 틀들이 실상은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 조각으로 다가왔던게 현실이었죠.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는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를 한번쯤 리뷰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고,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상을 조심스럽게남아 들여다볼 수 있는 기막힌 타이밍을 잡게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게 되면 크게 동아프리카에서 개별적, 산별적으로 이동한 사피엔스 (현 인류) 가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한 거대한 담론의 틀을 제시하고 있죠.  그 옛날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 수없이 산재해있던 호모족 보다 딱히 우월한 위치를 선점했다고 할 수 없었던 사피엔스족이 어떻게 지구상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흰트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그 동안 인류학에서 제기되었던 몇몇 가설에 대한 반박과 더불어 저자가 주장하는 사피엔스 독자생존설을 제기하면서 그에 대한 구체적인 논거들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이 상당히 설득력을 갖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신뢰성을 높여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저자는 사피엔스족의 기발하면서 강력한 옵션을 거시적인면 3가지와 미시적인면 3가지를 언급합니다.  그 첫번째가 인지혁명이라는 패러다임이고 두번째로 농업혁명, 그리고 과학혁명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인해 인류는 45억년이라는 기나긴 역사를 가진 지구상에 명멸했던 그 어떠한 종보다 빠르고 강한 임펙트를 가지고 화려하게 지구상에 등장했던 유일한 종이라는 점에 대해서 이견이 없을 정도로 막강한 존재감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세차례의 혁명을 통해서 지금의 사피엔스의 위치를 비정하는 한편 미시적인 관점에서 화폐(상업), 제국, 종교라는 집단적인 허구와 상상물의 발명으로 인류가 팽창하고 통합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시적인 패러다임과 마찬가지로 미시적인 시각들 역시 부정적인 면이 수 없이 상존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제의 발명이 결국 지금의 인류 통합을 가져온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고, 미래를 향한 현생 인류의 이정표를 다름아닌 그동안 갈고닦았던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찾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화폐, 제국 그리고 종교를 다루고 있는 챕터만으로도 가히 문화 인류사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인데요. 화폐에서는 경제 및 사회학적으로 접근한 화폐의 역사, 순수 영역의 히스토리를 만끽할 수 있는 제국편 그리고 거의 종교학에 비견해도 뒤지지 않는 서사를 보여주는 종교편 등 미시적 담론에 대한 서사들은 독자들에게 화폐, 제국, 종교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상당히 디테일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핵심코어를 보여주면서도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해서 전혀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근대에 들어서 등장한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등의 이데올로기로 부르는 사유들 역시 큰 범주의 스펙트럼에서는 종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논거가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이 부분의 저자의 논거는 다시한번 여러각도에서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논거로 보입니다. 특히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세번째 혁명이자 가장 파괴력을 가진 과학혁명의 경우 화폐, 제국, 종교라는 삼두마차의 동력이 지원되지 않았다면 달성할 길이 요원한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미시적 담론은 사피엔스족이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권력자로 자리매김하는데 분명히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이고 사피엔스족에게는 또 다른 지구정복의 명분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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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의 힘 - 난세에 깨닫고 기적을 실천하는
김부건 지음 / 부광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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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고 그 사태의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와 그런 위인을 목청껏 높이 부르는 지금, 언제부터인가 태극기란 상징이 초라하고 왠지 거북스럽게 느껴지는 현재, '君舟民水' 라는 사자성어가 이처럼 가슴에 와닿은 적이 있어나 되돌아보게 되는 요즘, 혹자는 그야말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춘추전국시대에 버금가는 난세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상하게 맹자의 왕도정치를 논할 필요성도 없이 혼군으로 인한 시민들의 상처는 그 어떠한 위로도 치유될 수 없는 커다란 흠결을 내었고 시민들은 일제히 그런 혼군을 배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상식과 몰상식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가치관의 판단 자체를 유보케 했던 세월 내내 우리는 그야말로 난세라는 거대한 파도속에서 일촉즉발의 세월을 지내왔다 해도 과언은 아닐것입니다. 그리고 대의민주주이라는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든 작금의 사태에서 자유로울 시민은 과연 또 얼마나 존재할까라는 자문도 해보게 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 불어닥쳤던 인문학 열풍이 사그러들고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엔터테이먼트적인 장르로 독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때 다름아닌 우린 난세라는 바다 한복판으로 내몰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아닌 상상을 하게 되네요. 아마도 너무나 단순하고 평범했고 극히 상식적인 메타포를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라는 자책도 같이 곁들이게 되는 요즘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절묘하다면 절묘할 수 도 있는 그래서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은 책 한권을 우연찮게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김부건의 <동양고전의 힘> 이라는 책인데요. 먼저  책 제목만을 놓고 보면 다소 식상하게 다가올 여지도 충분히 있지만  -난세를 깨닫고 기적을 실천한다- 라는 부제에 눈길이 꽂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약력 또한 주목이 가는데요. 기존 인문학 특히 동양고전과 관련된 서적들은 대부분의 저자들이 이분야의 전공자라 사실 몇권만 읽어봐도 그게 그것 같고 , 비슷비슷한 내용들로 중첩되다보니 일반독자들이 동장고전에 접근하기가 그리 녹녹치 않았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죠. 그런데 이번 책의 저자는 인문학 특히 동양학과는 전혀 연관성 없는 이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왠지 더 독자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만듭니다. 그 만큼 객관성을 갖추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마치 헌정 최초 초유의 사태가 한걸음 뒤에서 살펴 보았다면... 이라는 아쉬움이 남듯이 비전공자의 시각에 비친 동양고전의 가치가 제대로된 힘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공계 기술전문가답게 구구절절한 서사의 향연보다는 일목요연하면서도 간결하게 동양고전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어찌보면 이런 단순한 서사가 그 동안 애매모호하고 난해한 서사에 비해서 그 격(?)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으나 일반 독자들의 눈에 정확하게 들어온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한 층 더 커지는 효과를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 한 쳅터가 비록 몇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구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짧은 공간에 담아내고 있는 뜻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의미는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다가온다고 할 수 있겠네요. 여기에 동양고전에서 겪을 수 있는 거리감을 제거하기 위해 저자의 경험담 (물론 이러한 경험담이라는 것은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애리하게 해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네요) 과 자기계발서를 보는 듯한 명쾌한 해석으로 인해 전혀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팁으로 각 챕터 마다 짧막하게나마 '실전포인트' 라는 핵심코어를 선정하여 챕터와 챕터간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또한 있습니다. 전공자가 아닌 이상 동양고전이 던져주는 핵심적인 의미를 이해하기엔 어쩌면 이러한 방식이 더 울림이 클 것 같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고요.


          물론 그 동안 우리 출판계에서 이런 동양고전 관련 서적들과 자기개발서적은 이미 많이 출간되었고 많은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메세지 역시 명확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이 동양고전이라는 선입관과 자기개발서라는 한계성에 끝까지 완독하는 경우는 미비했으리라 생각되네요. 이번 <동양고전의 힘> 은 엔지니어출신의 저자라는 특색와 와울러 자기개발서와 유사한 스트럭쳐에다 저자의 경험담등이 짧지만 깊은 임펙트를 주고 있기에 가독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문학 전공자가 아닌 이공게 엔지니어의 시각에 비쳐진 동양고전의 해석이라는 점이 더 눈길을 끌고 있다는 것이죠. 저자의 표현대로 지금 우리 시민들은 그야말로 난세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르는 험한 파도의 한 복판에서 우리는 멀리 갈 필요 없이 우리의 가치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동양고전에서 어쩌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 의미에서 이번 <동양고전의 힘> 은 나름의 이정표를 독자들에게 제시해주고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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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헌법
차병직.윤재왕.윤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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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중략 ...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임무를 완수하게 하여... 중략..."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개정된 우리 헌법의 전문 내용입니다. 일반 대중들에게 '憲法' 은 가까이하기엔 왠지 거리감이 있는 법이죠. 가장 기초적인고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 그리고 국가와 국민의 당위성을 명시하고 있는 한 국가의 대들보 역활을 하지만 일반 국민들에게 헌법은 그다지 피부적으로 와닿지 않는 면이 강합니다. 현실의 실생활을 살아가는 모든 국민들속에 면면히 녹아들어 있지만 막상 헌법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죠. 이토록 멀게만 여겨졌던 헌법이 어느날 갑자기 일반 국민들에게 성큼 다가왔습니다. 일개 방송인이 방송에서 헌법을 다 암기하는 모습 자체가 이제는 그렇게 신기하다거나 낯설지 않다는 말이죠. 초중학생에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왠만한 국민들이라면 이제 헌법은 마치 운전자의 도로교통법 만큼이나 친숙하게 다가왔죠. 그것은 다름아닌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문을 활짝 열면서 대한민국의 온 국민들은 이제 헌법을 대하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뜬구름 잡는식의 헌법이 아닌 왠지 헌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안되겠다는 당위성의 표출이라고 해야할까요.   


          사실 '法' 이라는 용어가 들어가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일반대중들의 체감온도는 그리 높지 않죠. 특히나 헌법이라는 대상은 더욱더 일반 국민들의 체감온도를 떨어뜨리는 기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헌번 제1조 의 두가지 항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지만 이 경우도 마치 사문화된 문구의 나열만큼 거리가 먼 요식행위 정도로 비쳐지는게 현실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대한민국에 요상한 현상이 생겨났죠. 최순실과 대통령 박근혜라는 화두가 회자되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헌법에 대한 체감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 온도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헌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막상 헌법조문을 살펴보게 되면 일반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요원한 문구들의 나열뿐이라는게 문제입니다. 비록 각종 미디어매체에서 쏟아져 나온 패널들의 조근조근한 설명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헌번에 대한 제대로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일반대중 국민들은 많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러면에서 차병직외 공저 <지금 다시, 헌법> 이라는 저서는 왠지 제목만 들어봐도 반가운 감정부터 먼저 들게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법학도나 법조계에 몸담고 있지 않는 국민들이 이런 책을 반갑게까지 바라봐야하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이런 실마리를 제공한 대통령 박근혜와 최순실일당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기라도 해야하나라는 일종의 자괴감도 들긴 합니다. 여하튼 간에 <지금 다시, 헌법> 은 일반대중들에게 헌법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갈 수 있게끔 진입장벽을 낮추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그 진입장벽이란 다름아닌 법전이라는 통속적인 개념들(한자 투성이에다 용어자체 역시 어렵게 기술되어있는 등) 을 확 걷어냈다는 점인데요.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법전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옛날 모깃불 앞에서 할머니의 재미있는 이바구를 듣는 것인지 그 경계가 애매모호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요. 아마도 저자들은 법전이라는 것이 몇몇 계층만이 공유하는 특별한 개념이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일반시민 대중들에게 파격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나이브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스토리텔링을 접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정도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헌법' 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개념이 어쩌면 일반시민들에게 가장 잘 이해되어야 정상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지금 다시, 헌법> 에서는 헌법을 이웃집의 아저씨만큼 편안하게 기술하고 있어 법학과 무관한 시민들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헌법이 갖고 있는 고유의 내용이 왜곡되거나 혹은 그 깊이감이 떨어지는 통속적인 서술 또한 아니라는 것인데요. 무엇보다 헌법 조항들이 이제는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작금의 사태와 더불어 회자되고 있는 조항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짓다 보니 책을 읽는 재미가 더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로 가장 주목받는 헌법 조항들을 보게 되면, 제1조의 너무나 많이 언급되고 이제는 왠만한 국민들에겐 친숙한 조항으로 다가오죠 여기에 제46조 (국회의원 의무) 조항은 국조특위 청문회를 보면서 울화통 터지게 하는 몇몇 국회의원들의 면면과 겹쳐지게 되고, 제84,65,66조 (대통령 탄핵및의무) 조항이나 제36조 3항 (국민보건) 은 지난 메르스 사태로 인한 박근혜 정부의 보건행정을 여실히 비교하게 해줍니다. 무엇보다 제10, 34조 6항 (생명권,재난보호) 조항은 세월호 사태와 관련하여 더 공분을 쌓게 하죠. 제126조 (사기업 국,공유화와 통제등 금지) 조항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민간기업의 경영까지 좌지우지한 권력의 안하무인은 그저 평범한 국민들에겐 할말을 없게 하네요. 그리고 아하라는 소리가 나오는 조항도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제88조 3항 (국무회의등) 조항을 보게 되면 왜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정부를 향한 쓴소리를 했는지 이해다 절로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헌법의 몇가지 조항만 제대로 입법이 되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한게 남는 부분도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제97-100 (감사원) 조항이죠. 만약에 감사원이 입법, 사법부처럼 독립된 기관으로 혹은 적어도 감사원장의 임기를  대통령과 같은 5년이상으로만 했어도 오늘날의 국정혼란사태를 막아볼 여지는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거죠. 또한 삼권분립의 원칙면만 보더라도 제103조 (법관의 독립)에서 '양심' 의 기준과 그 동안 독재권력이나 경제권력에 앞에 눈치를 봣던 사법부 전체에 대한 각성과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대통령 탄핵이 온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제111조 (헌법재판소 관장과 구성) 조항의 헌법재판소 자체가 정치와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는 기관으로 지금의 재판관 구성에서부터 다시한번 제고해 필요성이 있는 부분들이 많다는 저자들의 논거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합니다. 어차피 헌법재판소 판단들이 정치적인 사안들과 직결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사안들이라면 재판관의 제청권을 차라리 국회에 주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기본원리과 삼권분리의 원리에 적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최순실게이트라는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에 직면한 현시점에서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등 마치 월드컵 예선을 치루듯이 갖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하는 현실에는 더욱 더 개정되어야 할 조항으로 보입니다. 


          9장 경제편 (119-127조) 는 개인적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새삼 알게된 영역이기도 합니다. 헌법이라는 자체가 주는 무게감도 있겠지만 헌법를 구성하고 있는 세부항목중에 경제편이 들어 있으리라는 생각은 그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요. 이번 기회를 계기로 많은 것을 인지하게 되네요. 특히 경제편은 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대원칙으로 지향하면서 국가의 개입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자본주의 조항들을 수도 없이 보게 되는데요. 바로 이러한 면면들이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이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 갈등이 필요없을 정도로 우리 헌법은 조문 그대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죠. 경제편에서도 지난 정권들의 헌법 농단을 볼 수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제120조 2항의 경우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인 헌법의 자의적 해석으로 인한 국민고통의 원인을 가중시켰다는 점이죠. 이중 제119조 2항 (경제질서의 기본) 의 경우는 시비거리가 많을 수 있는 혹은 현실세상과 괴리된 느낌을 자아내게 합니다. 균형 있는 경제발전과 소득의 재분배에 대한 국가의 책무가 적시되어 있지만 왠지 선전용 문구로만 와닿는게 작금의 우리 실정이기도 해서 자괴감이 들게 하죠.   


          헌법은 어찌보면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규범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헌법 그 자체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국가의 모든 생활 영역을 규율하면서 국민의 일상생활에 의하여 다시 실현되는 규범이라 할 수 있죠. 따라서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역사적인 상황이 바뀌면 그에 맞게 헌법도 현실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 변경이 필요한 것은 명확한 것이고요. 지금 우리는 대통령 탄핵과 더불어 이러한 사태를 불러일으킨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가해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개헌은 필요한 시점이고 이왕 개헌을 단행한다면 제대로된 개헌 (앞에서 언급했던 감사원과 헌법재판소의 독립, 국회의원 주민소환제등), 즉 시대와 국민의 열망에 맞는 개헌이 되었으면 하네요. 정치권의 정치적 계산이 아닌 국민들의 눈높이에 알맞는 개헌이었으면 합니다. 이번 책은 그 동안 막연한 개념의 헌법을 정말 우리들 일상의 삶속으로 녹아들이는 하는 서술로 인해 한층 헌법에 대한 인식를 고조 시켜주는 역활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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