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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시대 - 생존을 위한 통찰과 해법
기디언 래치먼 지음, 안세민 옮김 / 아카이브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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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날 갑자기 난데없이 "흑묘백묘론"이라는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한 회색분자적인 뉘양스를 풍기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덩샤오핑의 연설에서 시작되어 또 다시 어느날 갑자기 난데없이 터져버린 미국발 경제위기는 세상사람들을 어리둥정하게 만들어 버렸다. 지난 30년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변화와 굴곡의 시대라고 단정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변화무쌍한 시간대를 보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 30년전만 하더라도 세계는 어느정도 예측가능한 범주내에서 미래를 예측하며 나름의 대응방식을 고안해 앞으로 달려갔지만 30년이라는 길지 않는 시기를 거치면서 세계는 이제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불확정의 시대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지금의 시대를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의 시대니 불안의 시대니등으로 명시하고 있는 이유도 다름아닌 예측불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번 <불안의 시대>는 바로 예측하기 힘든 시대의 정점에서 선 우리에게 지난 30년의 변화를 통해서 향후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과 더불어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면서 반면교사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담론을 정리해 보는 기회로 다가오게 한다. 저자는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면서 그동안 30년간 격동의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확인한 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전환의 시대> <낙관의 시대> <불안의 시대>로 구분하면서 지난 세월을 되새김질 해 볼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정치 전반을 다루면서 짦은 시기이지만 심도 깊게 접근하여 한 시대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물론 전체적인 정량적인 개념에서 지난 30년이라는 수량적인 의미는 미비하게 다가오지만 그 내용적인 측면에서 지난 30년만큼이나 세계사를 뒤흔든 시기도 없음을 저자의 논리에 따라가보면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의미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저널리스트의 시각에서 바라본 지난 세월에 대한 접근방식(주요 사건과 주요 인물들의 등장과 그 내막을 인터뷰등의 르포형식을 통해서 학문적으로 심도깊게 고찰함으로써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스토리텔링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있다는 점등)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오게 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저자의 시각은 극히 서구중심적인 시각에서 출발했다는 단점 또한 보이지만 나름의 명확한 시대구분과 그에 합당한 일련의 사건들을 파일링했다는 점에서 일견 수긍이 가는 점이 많다는 의미에서 각 시대구분별 결정 요소를 음미해 보는데 무리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세계양차대전이후 미국과 소련을 양대축으로 진행된 냉전시대가 소련의 붕괴로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로 전환되면서 세계는 자유무역, 세계화, 민주주의의 전파라는 3대 전략의 장으로 전환되었고 그 중심에는 미국이 자리잡고 있었고 사실상 다른 대안 또한 존재하질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단극체제에 대한 믿음은 그 중심인 미국에서부터 허물어 지면서 지금은 다양한 팩트가 상존하고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축', "구심점"을 중심으로 시대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는 어쩌면 극히 서구적인 발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일반적인 현상에 대해서 전적으로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구심점을 상실한 지금의 시대가 마치 선장을 잃고 망망대해를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 처럼 불안의 시대의 근원적인 요소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의 등장과 성장에 대한 시각등에서는 동의하기 힘든 점들도 분명 상당한 부분 존재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서구중심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그에 맞게 제단된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지만 지난 30년을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정의했다는 점과 향후 논쟁의 요소에 대한 고찰에 대해서 그 심각성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의 시대>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와 더불어 또 다른 희망적인 요소를 동시에 전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잡고 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 그리고 민주주의의 확대는 앞으로도 그 엔진의 힘이 가속될 것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에서 그동안 제로섬게임에 주력한 세계가 어떻게 포지트브섬게임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공통적이고 합의적인 접근이 시도되지 않는다면 정말 우리는 살얼음판을 걷게 되는 형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이다. 지난 30년이 인류사에 있어 비록 짧았지만 가장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면 향후 30년는 아마도 더 많은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접근은 그동안의 사태에서 보여주었듯이 일개인이나 일국가만의 대처로는 의미가 없게 될 것이고 전세계적인 합의만이 효과적인 대응책을 제시해 줄 거이라는 점을 <불안의 시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점에서 여러모로 많은 화두를 던져주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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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자본주의 - 현대 세계의 거대한 전환과 사회적 삶의 재구성 아우또노미아총서 27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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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등을 일컫는 자본주의의 개념에 익숙해져 있는 서평자에게 사실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은 상당한 곤혹은 가져다 준다. 그 개념의 인지에서부터 책의 내용의 인지에 이르기까지 솔직한 표현으로 선뜻 인지하기가 힘든 담론을 담고 있다. 우선 저자는 지금의 시대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자유주의나 금융자본주의 내지는 소비자본주의라는 정의보다 인지자본주의로 명명하고 있다. 그 근거에 인지노동이라는 개념이 들어있고 결국 맑스가 주창한대로 노동에 대한 착취 과정에서 노동을 인지노동을 대체한 개념 정도로 이해된다. 즉 그동안 노동이라는 개념이 물질적인 재화의 생산에 주력하고 기여하는 형태로 인식되었다면 인지노동은 이러한 물질적인 형태가 아닌 비물질적인 형태의 노동을 일컫는 말이다. 비행기 승무원의 억지미소에서 부터 작가의 창작과정에 이르기 까지의 일련의 노동형태에 대한 착취과정이 지금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현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출발점에서 시작된 저자의 담론은 기본적으로 맑스의 자본론에 그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지자본에 대한 담론을 펼쳐나가고 있다. 

맑스의 자본론이나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등 그리고 열거되고 참고되고 용인되는 일련의 학자들의 저작들이나 이론체계에 대한 기초적인 선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독자들에겐 상당한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책이다. 사실 이러한 선험적인 지적 담보를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읽어보더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인문학적 소양의 심도를 떠나서도 만만치 않은 이론서임에 틀림없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면 챕터 끝부분에 수록된 도판들을 통해서 저자가 펼쳐가는 담론의 희미하지만 어렴풋한 개념을 시각화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위안을 찾고 싶어진다. 그만큼 인지자본주의에 대한 결정적인 포커스를 너무 많은 곳에 너무 많은 형태로 흩뿌려 놓아서 오히려 몇장의 사진에서 오는 감흥보다 이론적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이러한 느낌은 책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서평자의 지적 무지함에 근거를 둔말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해석에 대한 담론들은 맑스를 비롯해서 그동안 많은 부분에서 논의되어 왔고 그에 대한 진보 역시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진척되어 왔다. 하지만 그 이념적 근간에는 항상 맑스의 자본이 존재했고 이를 기반으로 수많은 이론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지대,상품,노동,토지,자본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에서 인지노동이라는 개념에 대한 접근으로 새롭게 해석되는 자본주의의 접근이라는 측면에서 인지자본주의는 상당한 반향을 가져 올 것으로 보이며 현재 처해진 상황을 해석하고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다만 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내용의 간결화와 분량의 간소화를 통한 서브형식의 핵심서를 통해 일반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개론서 형식의 저작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된다. 

흔히들 자본주의를 물질만능의 시대라고 한다. 자본(돈)과 물질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세상 그리고 그러한 사유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는 강요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비물질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종속되어 가는 지금의 상태는 오히려 물질만능의 시대보다 더 암울하고 무서운 세상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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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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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바쁜일과를 대충 정리할때인 오후 5시경이면 어김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애국가와 동시에 확성기에서 사정없이 울려퍼지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충성을 다할것을 맹세합니다" 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더불어 진행되었던 "국기 하강식"을 겪은 세대로서 '국가'라는 개념은 머리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일종의 트라우마와 같은 현상으로 국가를 떠올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경건해지고 절로 바른자세를 취하게 된다. 지금도 가끔 야구장에서 국민의례가 있을때도 역시 그 자연스운 분위기가 갑자기 실종되면서 시민들은 그저 태극기를 바로보면서 정적에 휩쌓이게 된다. 그나마 국기하강식이나 교련수업 세대가 아닌 요즘 세대들에겐 의식이라기 보다는 참여하고 즐긴다는 유희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아직까지도 '국가'라는 개념 정의에 정확한 답변을 내려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인식되었던 세대들에겐 국가라는 개념은 상당한 형이상학적인 개념과 더불어 세세한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각인되어있다.  

사실 '국가'라는 개념이 저변에 확대되어 지금처럼 인식되었던 시기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민족이라는 강력한 메타포의 출현과 동시에 민족 = 국가라는 이데올로기가 성립되면서 국가주의에 대한 연구와 이해 그리고 이러한 이론적인 형틀이 핏줄에 호소하는 민족주의 발호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던 것이 국가라고 해도 그렇게 빗나간 지적은 아닐 것이다. 그럼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이며 또한 '무엇'인가에 대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는 다양한 각도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저자는 '국가'에 대한 접근을 국가주의 국가론, 자유주의 국가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라는 세가지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국가주의 국가론자을 전형적인 이념형 보수, 자유주의 국가론자은 시장형 보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자들은 진보의 국가론이라는 어느 정도 도식화된 틀에 맞추어 이를 주창했던 이론가들의 주장과 지금 현대 특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왕설래의 과정에 비추어 설득력 있게 호소하고 있다. 특히 사회혁명과 사회개량이라는 개념을 유토피아적 공학과 점진적 공학이라는 단어로 치환하여 국가와 국가를 형성하는 구성원에 대한 이념적인 개량을 저울질 해볼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저자의 국가론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적인 편차가 존재할 것으로 보이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국가'라는 개념을 학문적인 잣대로 세가지의 범주로 획일적으로 구분하기란 그다지 녹녹치 않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이나 안건에 대해서 추구하게 되는 국가론은 한가지만이 아니라 세가지 범주의 혼합적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저서를 통해서 '국가' 그리고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이념적 성향 그리고 향후 발전해 나가가야 하는 국가론에 대한 세설적인 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프리즘은 다양한 무지개빛을 띠게 마련이다. 이러한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체가 어쩌면 상당히 위험한 국가론으로 변질되기 싶다는 것을 우리는 히틀러의 예를 통해서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면서 익히 배운바 있다.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국가론이 과연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그 만큼 현대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구분없는 경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회색분자라고 폄하할 수 도 있지만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오히려 위험하고 왜곡된 국가론을 주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전반적으로 '국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사고력을 키우면서 자신의 국가관은 어디쯤일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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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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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바쁜일과를 대충 정리할때인 오후 5시경이면 어김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애국가와 동시에 확성기에서 사정없이 울려퍼지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충성을 다할것을 맹세합니다" 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더불어 진행되었던 "국기 하강식"을 겪은 세대로서 '국가'라는 개념은 머리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일종의 트라우마와 같은 현상으로 국가를 떠올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경건해지고 절로 바른자세를 취하게 된다. 지금도 가끔 야구장에서 국민의례가 있을때도 역시 그 자연스운 분위기가 갑자기 실종되면서 시민들은 그저 태극기를 바로보면서 정적에 휩쌓이게 된다. 그나마 국기하강식이나 교련수업 세대가 아닌 요즘 세대들에겐 의식이라기 보다는 참여하고 즐긴다는 유희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아직까지도 '국가'라는 개념 정의에 정확한 답변을 내려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인식되었던 세대들에겐 국가라는 개념은 상당한 형이상학적인 개념과 더불어 세세한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각인되어있다.  

사실 '국가'라는 개념이 저변에 확대되어 지금처럼 인식되었던 시기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민족이라는 강력한 메타포의 출현과 동시에 민족 = 국가라는 이데올로기가 성립되면서 국가주의에 대한 연구와 이해 그리고 이러한 이론적인 형틀이 핏줄에 호소하는 민족주의 발호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던 것이 국가라고 해도 그렇게 빗나간 지적은 아닐 것이다. 그럼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이며 또한 '무엇'인가에 대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는 다양한 각도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저자는 '국가'에 대한 접근을 국가주의 국가론, 자유주의 국가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라는 세가지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국가주의 국가론자을 전형적인 이념형 보수, 자유주의 국가론자은 시장형 보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자들은 진보의 국가론이라는 어느 정도 도식화된 틀에 맞추어 이를 주창했던 이론가들의 주장과 지금 현대 특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설왕설래의 과정에 비추어 설득력 있게 호소하고 있다. 특히 사회혁명과 사회개량이라는 개념을 유토피아적 공학과 점진적 공학이라는 단어로 치환하여 국가와 국가를 형성하는 구성원에 대한 이념적인 개량을 저울질 해볼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저자의 국가론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적인 편차가 존재할 것으로 보이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국가'라는 개념을 학문적인 잣대로 세가지의 범주로 획일적으로 구분하기란 그다지 녹녹치 않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이나 안건에 대해서 추구하게 되는 국가론은 한가지만이 아니라 세가지 범주의 혼합적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저서를 통해서 '국가' 그리고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이념적 성향 그리고 향후 발전해 나가가야 하는 국가론에 대한 세설적인 담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의 프리즘은 다양한 무지개빛을 띠게 마련이다. 이러한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체가 어쩌면 상당히 위험한 국가론으로 변질되기 싶다는 것을 우리는 히틀러의 예를 통해서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면서 익히 배운바 있다.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국가론이 과연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그 만큼 현대사회는 보수와 진보가 구분없는 경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물론 회색분자라고 폄하할 수 도 있지만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오히려 위험하고 왜곡된 국가론을 주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된다. 전반적으로 '국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사고력을 키우면서 자신의 국가관은 어디쯤일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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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연습 - 서동욱의 현대철학 에세이
서동욱 지음 / 반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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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인 분화가 일어나기 전인 중세만 하더라도 인류에게 존재했던 학문이라는 것은 신학과 철학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원이고 우리 인간들의 삶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철학은 더 이상 근원도 되지 못할뿐더러 속된말로 밥벌이 조차 하기 힘든 천시받는 존재로 퇴화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형이상학적인 상념에 대한 갈구보다는 보다 눈에 보이고 바로 손에 잡히는 실용적인 인센티브가 가져다 주는 효용의 가치가 더 달콤하고 안락하게 느껴진다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철학은 기회비용을 상실해 버렸고, 이에 대한 절반의 책임은 철학 그 자체에 있다고 하면 어불성설일까? 그리스철학사상으로부터 시작하여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철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것은 암기하기조차 힘든 철학자의 이름들과 그들이 주창한 무슨무슨주의 그리고 무슨무슨이론들로 부터 철학은 일반대중에게서 스스로 격리되는 길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고대서양철학이나 중세 르네상스이후의 철학들은 학창시절의 학업성적의 성취라는 목표와 성장해서는 식자층에서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의 일환으로 그 무늬라도 알고 있지만 정작 시대적 연관성이 가장 높은 현대철학에 이르서는 그저 손을 놓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현대인들이 너무 세속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는 탓으로만 돌리기엔 뭔가 엇박자 같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이는 무엇보다 철학자는 철학이라는 세계로 들어가 버렸고 이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일반대중과의 괴리감이 날로 깊어가면서 철학과 현실은 동상이몽을 꿈꾸는 서로 다른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괴리감을 좁히려는 의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 소정의 목적을 이루었다고는 평가할 수 없을 것이고 항상 고민거리로 남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서동욱 교수의 철학 에세이인 <철학 연습>은 그동안 고민거리로 남겨 졌던 과제에 대해서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양측의 거리감을 좁히면서 현대철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좋은 계기로 다가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기존의 철학서(가벼운 에세이류를 포함해서)와는 상당히 다른 편집과 뷰주얼을 가미함으로서 독자들의 의심의 눈길을 일단 비켜갈 수 있고, 2부에 다루는 주제영역들에 대한 담론이 1부의 개개인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리플레이(철학 연습)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기초적이고 선험적인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 어느정도의 체계를 잡아주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온다. 특히 존재, 무, 진리등 일반독자들이 단어자체만 떠올려도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질 담론과 돈, 노마디즘, 사랑, 관상등 현실적인 주제에 이르기까지 현대철학과 현실세계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거부감 없는 터치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또하나의 팁은 1부에 열거된 철학자들과 그들의 이론을 서브노트(쪽집게 과외라고 표현하는게 걸맞을듯 하다)형식으로 그 정곡을 추려추려 독자들의 입맛에 알맞게 차려놓았다는 것이다.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사르트르나 들뢰즈의 방대한 저서를 접하면서 그 촛점을 잡지못했던 독자들(물론 대부분의 독자들이라면 다들 공감하는 바이겠지만)이라면 1부가 가져다 주는 희열을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굳이 개개 담론이나 사유에 대한 적확한 인식이나 용어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물흘러가듯이 큰맥을 잡아가는데는 더할나위없이 좋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철학자들의 고뇌와 우수에 젖은 사진과 간략적인 평전까지 더해져서 현대철학사 전반을 개괄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전반적으로 그동안 철학 특히 현대철학에 대한 선입관을 제거하는데 일조할 수 있는 기획으로 생각된다. 물론 그렇다고 일반대중을 위한 에세이이지만 그 내용만을 들여다 보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가 서문에 밝혔듯이 웹서핑을 하듯이 자신이 알고 있는 철학자와 이론부터 골라 읽어봐도 좋구 2부의 철학 연습부터 읽어봐도 크게 지장이 없을 정도로 상호간의 교차설명이 잘 되어 있어 현대철학 골격을 잡아보는데 이만한 지침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책을 통해서 본격적인 현대철학의 세계에 빠져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독자라면 필히 일독을 권하고 싶은 현대철학의 길라잡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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