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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 사장이라면 죽어도 잃지 말아야 할 첫 마음
홍의숙 지음 / 다산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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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심 (初心 / Fresh Start)>>

정말 순식간에 읽어내려간 책이다. 책의 내용이 흥미진지하던가 재미가 남달라서 순식간에 읽은게 아니라 정말 지금의 내가 처한 입장에 딱 들어맞는것 같은 느낌으로 빠져서 읽어버린것 같다. 책의 주인공인 최강민사장이 겪었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재기등의 줄거리 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것은 무엇보다도 처음 시작할때의 마음가짐 내지는 그런 초심을 잊지않고 기억할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성과가 아닌가 싶다. 주인공은 신문사 영업사원으로 사회첫출발을 하면서 신었던 낡은 구두를 초심을 일깨우는 물건으로 간직하고 있고 가장 힘든시기에 초심을 다시 둘러보면서 온갖 역경을 딛고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초심을 간직하고 있고, 그런 초심을 담긴 특별한 의미의 물건 내지는 장소, 사람등이 있을것이다.

초심이라는게 글자 뜻대로 처음이 마음가짐을 뜻하듯이 사람은 누구나 무슨일을 시작할때 항상 마음에 새기는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 회사을 경영하는 사람이든, 정치를 하는 사람이든,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이든간에 그 첫 마음을 잊지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한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그 초심이 약간씩 퇴색해지고 언제 그런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를만큼 달라지는게 인지상정일것이다. 그게 어찌보면 인간이란것에 대한 또 다른 매력의 일부분일 수 도 있겠지만. 

인생을 살면서 성공(이렇게 표현해도 될련지 모르겠지만)하는 사람들 중의 공통점은 뭐니뭐니해도 초지일관 처음과 똑 같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대다수인것 같다. 초심이란 어려운게 아니다 단지 우리 스스로가 기역하고 싶지 않을 뿐아니겠는가.

이 책에서 코칭하는 큰 부분은 사람의 신뢰만큼 큰 자산이 없다, 나의 잣대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타인을 존중하라등 흔희 자기개발서적에서 볼수 있는 그런 미사어구보다 '가장 힘들때 처음으로 돌아가라' 라는 말이 아니간 싶다.  

책을 읽는 시간내내 주인공이 겪었던 아픔과 좌절에 대해서 정말 뼈저리게 공감을 했고 아니 지금도 나에게는 진행형이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많은 위안을 받은것도 사실이다. 우린 초심을 잃어서 실패한 사람들을 수없이 지켜보아왔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잘알고 있고, 우리도 그 중에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하는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자체만으로도 초심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고 그럼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해 주는 책인것 같다.

주인공의 낡은 구두 한켤레가 전부였듯이 나에게는 사업시작할때의 가만히 미소만 짖어주던 아내의 얼굴이 초심을 일깨우게 하는 모토가 된다. 우리도 초심을 상기시킬수 있는 나만의 모토를 가져보는건 어떨까 싶다....

가장 중요한건 누구가 지향하고 있는 행복이란 단어에 대한 막연한 꿈보다는 유치할지도 모르지만 좀더 구체적인 개념을 자기 스스로 정립해보는게 초심을 일깨우는 방법이라면 방법이 아닐까 한다.. 모처럼 단비같은 잔잔한 여유를 가져다 주는 책을 읽어서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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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첨론 - 당신이 사랑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 모두에게 써먹고 싶을 128가지 아첨의 아포리즘
윌리스 고스 리기어 외 지음 / 이마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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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아  첨  론  >>

 

아첨의 사전적 의미는 국어사전에는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일려고 알랑거는것'이라 표기하고 있고, 이 책의 원제목을 보면 praise(칭찬,찬미,숭배) / flatter(아첨하다,듣기좋은 칭찬을 하다, 추켜세우다)의미로 광범위하게 아첨을 나타내고 있다. 이 책은 아첨과 칭찬과 좀더 광의의 의미인 찬미, 숭배등을 아울러서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사실은 경계를 확정할 수도 없다고 봐야할것 같지만) 이와 관련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한 유명인사들의 어록과 성경이나 불교, 이슬람교등의 경전의 경구일부를 인용하여 아첨에 관한 백과사전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처음 이책을 접했을땐 소위 말하는 자기개발관련의 대체로 평이한 서적으로 인식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내용이 만만치 않는 책인것 같다. 예전에 읽었던 인간의 7대욕망시리즈엔 빠졌지만 인간의 생활전반에 걸쳐 결코 빠지질수 없는 부분이고 항상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고, 누구나(저자는 신도 아첨을 원한다고 했으니까)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간에 원하는 인간의 욕망중에 한부분임에 틀림없다.

특히 인간의 욕망중에서 칭찬과 아첨을 진정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저자는 "보상을 기대하는 칭찬이 아첨"이다라고 정의하면서도 막상 칭찬과 아첨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성을 크게 역설하지않는다. 이 책을 접하긴 전에 막연히 2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칭찬==선, 아첨==악 이라는 설익은 관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이 책을 접하고 나니 그런 사고자체가 유아적인 발상에 불과하고 칭찬과 아첨을 과연 나의 가치관에서 판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우선 칭찬과 아첨은 둘다 상대방을 즐겁고, 행복하고 자아도취에 빠지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오죽하면 예전에 책제목으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한다라는 책이 있었을까(내용이야 이책과는 상이하겠지만)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또 다른 점은 자아 즉 본인 스스로에게  그동안 너무 인색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작 직장상사에게 아첨을 하고,  연인에게 아첨을 하고, 권력자에게 듣기 좋은 아첨을 하고, 친구에게 아첨을 하고, 거래처에게 아첨을 하고, 심지어는 신에게도 아첨을 하지만, 정작 본인에 대해서 과연 아첨을 하는 이가 몇이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아첨중에서 가장 탁월한 아첨은 본인스스로에게 하는 아첨이라고 했다. 맞는말인것 같다. 

저자는 책을 통해서 아첨의 원인, 적절한 아첨을 행하는 방법과 시기, 그리고 상대등을 유명인사들의 어록을 통해서 적절히 묘사함과 동시에 그 동안 아첨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들을 해소해주는 전개방식을 통하고 있다. 물론 아첨에 대한 폐해 특히 권력과 종교에 대한 아첨의 폐해도 나열하므로서 아첨에 대한 진정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그가 비록 나와 이해관계가 있든 없든간에 칭찬과 아첨사이를 오가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도 그러한 줄다리기를 즐기고 있는 줄도 모른다. 개인적인 견해인지는 모르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첨은 물론 그게 내 마음속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상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철학자, 문학가, 종교인, 정치인이 아첨을 유효적절하게 사용해왔고 지금도 이 세상은 아첨으로 덮여있는게 사실이니까.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첨은 필수불가분한것 같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접하는 광고 또한 소비자들을 대하는 아첨의 일종일 것이고, 이 책 처럼 책들 또한 독자에 대한 아첨의 한 부분인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아첨과 칭찬을 구별하여 좀더 유익하게 대처해야 할까???

나는 칭찬과 아첨을 굳이 구별하여 여기까지가 칭찬이고, 이 선을 넘어서면 아첨이다라는 식의 구별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인간의 수도 없는 욕망 중에서 아첨 또한 식욕과 정욕과 같은 욕망의 한 부분으로 받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하는 아첨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의 표현일 것이고, 존경과 믿음의 다른 표현일 뿐인것 아닐까 싶다. 다만, 권력이나 종교에 대한 아첨의 경우 그 패해는 곧바로 우리들 스스로에게 미친다는 점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권력의 아첨은 최악의 경우 전쟁이라는 형태로 표현될 수 도 있고, 종교에 대한 아첨은 무신론자에 대한 종교적 탄압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랫만에 쉽게 생각했다가 한참을 생각했던 책인것 같다. 너무나 평이해서 그냥 스쳐 지나치던 개념에 대해서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하진 않지만 어느정도 개념정리가 된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아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도 깔끔히 정리된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아첨을 한다. 그리고 그런 아첨을 하고 나선 왠지 뒷맛이 씁슬해지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더 열심히 아첨하고 자주 아첨해야할 것 같다. 하물려 신도 아첨을 원하는데 인간이 나야 그에 비할바 아닌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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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 전3권 겨레고전문학선집
박지원 지음, 리상호 옮김 / 보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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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고미숙교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접하고 완역본을 읽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세월을 지냈다가 이번에 정말 큰 마음 먹고 북한학자 리상호의 <<열하일기 상,중,하>>와 고미숙의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하>>을 읽게 되었다. 처음엔 동시에 다른 역자의 작품을 읽는게 혼란스러울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와

서 생각해보면 기우에 지나지 않고 역시 같이 읽은게 휠씬 한문고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역자에 따란 고문의 해석방식이 다른면에서 참다운 열하일기를 접한것 같아 가슴한켠이 벅차오른다. 5월 한달을 매달리다 시피해서 읽고 또 읽고 옥편 동원하면서 능력도 없는 원문을 찾아보면서 역시 우리 선조들의 해박한 지식과 적재적소에 맞는 애들립구사 능력에 다시금 감탄을 금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말기 권세있는 집안(노론)에서 태어났지만 연암은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시쳇말로 지금의 고시인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홍대용,박제가,이덕무(일명 연암사단)과 교류를 통하여 당시 대세였던 북벌론 내지는 중화사대주의에 철저한 의구심을 가지고 실용주의 학문연구에 정진하였다. 비록 말년에 관직에 나아갔지만 그 역시 지방관직을 거치면서 민중들의 삶에 묻혀서 살아갔다. 연암의 마지막 유언인 "몸만 깨끗이 씻겨달라"는 이 한마디가 그의 생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열하일기는 어쩌면 연암을 위한 하늘이 내린 천조신우의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연암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사 이래 최고의 문장을 후세에 남기게 된다.

현존 하는 열하일기는 당시 연암이 집필했던 내용이 다소 누락되고 삭제된것으로 보고있다. 그도 그럴것이 정조시대에 열하일기는 문체반정의 표적 1순위 대상이었다. 사대부와 조선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문체 또한 정통성리학을 표방하던 당시의 식자들에겐 이단이나 마친가지의 충격파을 준것이다. 그래서 연암 생전은 물론 그의 손자가 영의정에 제수된 뒤에도 출판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자연 세월이 흘러 내용들의 일부가 왜곡이 되었지만 현재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시대에 우리가 봐도 상당한 충격을 추는 작품인데 그 당시의 충격은 일파만파였으리라 짐작코도 남을만 하다.


열하일기의 매력은 제목만 보고 단순한 기행문으로 착각할 수 도 있으나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을 보면 가히 백과사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정치,경제,사회,역사,음악,종교,과학등의 탁월한 식견을 보여주고 있는 역사이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장르로 보자면 기행, 평론, 소설, 시, 르포르타주, 수필등의 다양한 형식을 넘나드면서 자유자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열하일기는 1780년(정조4년) 당시 청나라 건륭황제의 칠순을 하례하는 진하사겸 사은사의 명복으로 사행단을 구성하여 청나라에 파견단 사행단을 삼종형 정사 박명원(금성위)의 군관자제자격으로 따라가면서 시작하게 된다. 한양에서 5월 25일 출발해서 연경과 열하를 걸쳐 다시 한양으로 들어오는 10월 27일까지의 5개월에 걸친 대장정중 의주에서 요양, 심양, 산해관, 북경, 열하, 다시
북경을 거치는 과정을 편년체형식과 그때 그때의 견문 및 식자들과의 필담을 별도의 기로 기록한 방대한 작품이다

열하일기를 크게 일정별로 나누면 아래와 같다

 

원론(사행일자별 작성)

도강록(압록강에서 심양까지 6월 24일 - 7월 9일) 구요동기/요동백탑기/관제묘기/광우사기

성경잡지(요양에서 광녕까지 7월 10일 - 7월 14일) 속재필담/상루필담/고동록/성경가람기/산천기략

일신수필(광녕에서 산해관까지 7월 15일 - 7월 23일) 북진묘기/거제/점사/교량/강녀묘기/장대기/산해관기

관내정사(산해관에서 북경까지 7월 24일 - 8월 4일) 열상화보/이제묘기/난하단주기/사호석기/호질/동악묘기

막북행정록(북경에서 열하까지 8월 5일 - 8월 9일)

태학유관록(열하 태학에서 8월 9일 - 8월 14일)

환연도중록(8월 15일 - 8월 20일)

 

각론(이론/견문/필담별 묶음)

경개록(열하일기 전반에 만난 청나라의 인사의 개인이력)

황교문답/반선시말/찰십륜포(티벳불교(당시 황교)의 수장인 반선(달라이라마)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기록)

행재잡록(연해중의 청나라의 행재소의 공문)/심세편(세상사에 대한 평론으로 북학에 대한 의견 피력)

망양록(중국인사들과의 음악에 대한 기록)/곡정필담(중국학자 윤가전과의 쟁쟁한 토론)

산장잡기(열하까지의 견문기로 특히 야출고북고기와 일야구도하기가 압권이다)

환희기(북경에 체류하면서 본 요술구경)/피서록(열하 피서산장에서 주로 중국과 조선이 시문에 대한 논쟁)

구외이문(북경과 열하에서 들은 기이한 이야기)옥갑야화(옥갑에서 나눈 이야기 허생전)

황도기략(북경성과 자금성등에 대한 기록)/알성퇴술(공자묘 참배에 대한 기록)

양엽기(북경내 있는 사찰에 대한 견문기)동란섭필(수필)/보유금료소초(의학관련 지식에 대한 피력)

- 이 중 고미숙의 작품에서는 각론을 일부 편역하였음.


이렇게 목차만 보더라도 연암의 지식충족욕은 가히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진공청소기처럼 눈에 띄는 모든것을 흡수해버리고 싶은 애절한 마음이 아니였을까 싶다.

열하일기를 읽다 보면 느끼는 점은 작가인 연암의 해박한 지식과 애리한 관찰력 그리고 모든것을 자기꺼로 만들어가는 능력이 어떤 타인에 비해서 탁월하다는것을 알 수있다. 그리고 간간히 독자들을의 지루함을 잊게 해주는 위트와 유머로서 독서의 맛을 한층 더 배려한 정말 조선이 낳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할까...

그리고 연암은 여행에서 견문한 선진문화와 선진산업 시설과 근대 과학이론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민중의 생활에 이바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1. 연암은 조선최고의 과학자였다???

친구인 홍대용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연암은 당시 조선으로서는 감당치 못할 과학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 학자들과의 필담을 통해서 연암의 자기의 과학관과 우주관, 그리고 생명기원에 대한 진화론까지 거침없이 일성하고 있다. 상대가 선진과학과 문명으로 뭉쳐진 중국학자들 앞에서 그리고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등 알았다면 스승을 받을만한 이론을 전개한다.

연암은 지구가 둥글고 자전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명쾌하게 만유인력법칙을 통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모든물질은 티끌에서 시작한다고 인식하여 현대과학으로 보자면 원소내지는 원자의 개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벌레의 한 종족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가히 다윈도 울고갈 진화론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2. 연암은 현실적인 거시경제학자였다???


연암의 생애를 통틀어 이용후생과 실천궁행 이 말을 빼면 남는게 없다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현실적인 경제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에 바로 적용될 수 있고 그리고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경제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중 중국의 수레제도, 성 쌓는법, 가루 찧는 기계, 고치실 뽑는 기계, 온돌 놓는 법, 벽돌이용법등 각양각색의 선진문화를 정말 자세히 기록하면서 조국의 낙후성과 당시 지배층의 무능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허생전을 통해 거시경제의 중요성을 강조 특히 물류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거시경제의 원할한 회전을 강조했다.

결국 만년에 들어서 부자들의 토지를 나누어주라는 부록이 게제된 과농소초라는 농서를 집필하게 된 밑그림이 되었던 것이다.

 

3. 연암은 자주주의적 역사학자였다???

당시의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잊지않고 있으면서 청에 대한 북벌을 주장하는게 일반 사대부들의 공통된 사상이었다.

호란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임진년 명의 은혜를 잊지말자는.... 그러면서 자국이 강역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중국의 고서 기록을 믿고 그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암은 이런 사류을 배척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여행중 철저하게 고구려와 조선의 강역을 중국 고서인 사기나 지리지등의 잘못된 점을 들추어서 제대로 된 강역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열하에서 만난 반선(달라이라마)과 반선에 대한 청의 태도를 오랑캐라 어쩔수 없다는 식이 아닌 청의 제국지배방식을 간파하고 조서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한다고 역설하면서 구체적으로 말의 사육에 대한 문제까지 거론한다. 당시 조선의 통치계급이나 학자들이 소위 춘추대의에 젖어 맹목적인 존화양이만 외치고 있을때 '나라에 유익하고 백성에게 유익한 일이면 비록 오랑캐에게라도 배울것은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었을까 싶다 ㅎㅎ

 

4. 연암은 인본주의자였다???

연암은 사행중 중국의 문물을 보면서 통탄했다. 아니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국이 처한 현실앞에 식자들의 다 스러져가는 성리학이란 학문에 매달려 민생과 후생에 대한 한치의 배려도 없는 지배층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아래 민중들에 대한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같이 호흡을 했던 것이다.  그 일면으로 산해관에서 객주에 들어 상방 정진사와 같이 배겨썼다는 호질(호랑의 꾸중)이란 작품에서 비록 배경은 중국을 그리고 있지만 어쩌면 연암의 조국 조선식자층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5. 연암은 종교학자였다???

연암이 열하에서 경험한것 가장 크게 충격을 준것은 티베트불교와의 만남이었다. 당시로는 정말 충격적인 해후였다. 황제의 강요에 못이겨 반선을 접견하고 반선으로 부터 불상을 하사받고 이에 대한 처리로 골몰하고 있는 삼사(정사,부사.서정관) 그 와중에 황교(티베트불교)에 대한 연암의 철저한 판단 그리고 황교를 받는 청의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인 모략을 간파하고 다시금 청나라에 대한 색다른 면을 보게 된다. 또한 북경에 있는 천주당을 견문하고 야소(예수)나 야소회에 대한 반박등 다양한 종교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6. 연암은 베스트셀러작가였다???

정말 연암은 타고난 작가임에 틀림없다. 장편의 작품을 초록하면서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이렇게 깊을줄이랴... 기행문의 형식을 빌려 군데 군데 자기의 철학, 정치학, 경제학, 음률학, 지리학, 역사학, 우주천문학, 지구과학등의 딱딱한 글과 시, 소설, 견문, 수필, 잡기등의 쉽게 읽을거리를 적절하게 분배해서 독자의 지루함을 한번에 날려버렸다. 거기에다 간간히 들려주는 위트 내지는 유머한마디가 압권이다. 예로 북경에 도착하여 쉴려고 하는게 갑자기 황제가 열하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허둥되는 청나라과 관원을 지켜보면서 불이났냐는 말에 황제가 열하로 가서 비어있는 북경으로 몽고 기병 십만명이 처들어온다가 하여 자중을 웃긴일화가 그것이다. 또한 북경에서 잠도 자지못하고 열하까지 가는 여정중에서도 고북고성벽에 이름 세글자 세겨넣는 여유까지...

이렇게 대충 정리한 연암에 대한 생각들이다. 물론 내가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점인것이지 보편타당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연암의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내내 가졌던 생각은 사물을 보더라도 항상 그 이면을 봐야한다는 생각과 단순히 보고 넘기지 않고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생각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저작이다.

특히 역자가 다른 두책을 읽은것이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한작가는 북한학자이 입장에서 본 연암과 남측에서 본 연암에 대한 생각들과 해석방식 하지만 공통점은 열하일기는 조선최고의 작품이라는 점과 연암에 대한 평가는 일치한다는 것이다.

시와 공간을 넘어서 연암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그가 남긴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중국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장관, 무엇이 장관이라고 떠들지만 나로서는 똥거름 무더기가 장관이고, 깨어진 기와쪽과 버리는 조약돌을 이용하는 법이 장관이더라""

 

그의 생애 철저하면서 일관되게 흐르는 이용후생에 대한 신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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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상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2
박지원 지음, 길진숙.고미숙.김풍기 옮김 / 그린비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03년 고미숙교수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접하고 완역본을 읽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세월을 지냈다가 이번에 정말 큰 마음 먹고 북한학자 리상호의 <<열하일기 상,중,하>>와 고미숙의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하>>을 읽게 되었다. 처음엔 동시에 다른 역자의 작품을 읽는게 혼란스러울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와

서 생각해보면 기우에 지나지 않고 역시 같이 읽은게 휠씬 한문고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역자에 따란 고문의 해석방식이 다른면에서 참다운 열하일기를 접한것 같아 가슴한켠이 벅차오른다. 5월 한달을 매달리다 시피해서 읽고 또 읽고 옥편 동원하면서 능력도 없는 원문을 찾아보면서 역시 우리 선조들의 해박한 지식과 적재적소에 맞는 애들립구사 능력에 다시금 감탄을 금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말기 권세있는 집안(노론)에서 태어났지만 연암은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시쳇말로 지금의 고시인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홍대용,박제가,이덕무(일명 연암사단)과 교류를 통하여 당시 대세였던 북벌론 내지는 중화사대주의에 철저한 의구심을 가지고 실용주의 학문연구에 정진하였다. 비록 말년에 관직에 나아갔지만 그 역시 지방관직을 거치면서 민중들의 삶에 묻혀서 살아갔다. 연암의 마지막 유언인 "몸만 깨끗이 씻겨달라"는 이 한마디가 그의 생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열하일기는 어쩌면 연암을 위한 하늘이 내린 천조신우의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연암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사 이래 최고의 문장을 후세에 남기게 된다.

현존 하는 열하일기는 당시 연암이 집필했던 내용이 다소 누락되고 삭제된것으로 보고있다. 그도 그럴것이 정조시대에 열하일기는 문체반정의 표적 1순위 대상이었다. 사대부와 조선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문체 또한 정통성리학을 표방하던 당시의 식자들에겐 이단이나 마친가지의 충격파을 준것이다. 그래서 연암 생전은 물론 그의 손자가 영의정에 제수된 뒤에도 출판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자연 세월이 흘러 내용들의 일부가 왜곡이 되었지만 현재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시대에 우리가 봐도 상당한 충격을 추는 작품인데 그 당시의 충격은 일파만파였으리라 짐작코도 남을만 하다.


열하일기의 매력은 제목만 보고 단순한 기행문으로 착각할 수 도 있으나 그 안에 담겨진 내용을 보면 가히 백과사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정치,경제,사회,역사,음악,종교,과학등의 탁월한 식견을 보여주고 있는 역사이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장르로 보자면 기행, 평론, 소설, 시, 르포르타주, 수필등의 다양한 형식을 넘나드면서 자유자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열하일기는 1780년(정조4년) 당시 청나라 건륭황제의 칠순을 하례하는 진하사겸 사은사의 명복으로 사행단을 구성하여 청나라에 파견단 사행단을 삼종형 정사 박명원(금성위)의 군관자제자격으로 따라가면서 시작하게 된다. 한양에서 5월 25일 출발해서 연경과 열하를 걸쳐 다시 한양으로 들어오는 10월 27일까지의 5개월에 걸친 대장정중 의주에서 요양, 심양, 산해관, 북경, 열하, 다시
북경을 거치는 과정을 편년체형식과 그때 그때의 견문 및 식자들과의 필담을 별도의 기로 기록한 방대한 작품이다

열하일기를 크게 일정별로 나누면 아래와 같다

 

원론(사행일자별 작성)

도강록(압록강에서 심양까지 6월 24일 - 7월 9일) 구요동기/요동백탑기/관제묘기/광우사기

성경잡지(요양에서 광녕까지 7월 10일 - 7월 14일) 속재필담/상루필담/고동록/성경가람기/산천기략

일신수필(광녕에서 산해관까지 7월 15일 - 7월 23일) 북진묘기/거제/점사/교량/강녀묘기/장대기/산해관기

관내정사(산해관에서 북경까지 7월 24일 - 8월 4일) 열상화보/이제묘기/난하단주기/사호석기/호질/동악묘기

막북행정록(북경에서 열하까지 8월 5일 - 8월 9일)

태학유관록(열하 태학에서 8월 9일 - 8월 14일)

환연도중록(8월 15일 - 8월 20일)

 

각론(이론/견문/필담별 묶음)

경개록(열하일기 전반에 만난 청나라의 인사의 개인이력)

황교문답/반선시말/찰십륜포(티벳불교(당시 황교)의 수장인 반선(달라이라마)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기록)

행재잡록(연해중의 청나라의 행재소의 공문)/심세편(세상사에 대한 평론으로 북학에 대한 의견 피력)

망양록(중국인사들과의 음악에 대한 기록)/곡정필담(중국학자 윤가전과의 쟁쟁한 토론)

산장잡기(열하까지의 견문기로 특히 야출고북고기와 일야구도하기가 압권이다)

환희기(북경에 체류하면서 본 요술구경)/피서록(열하 피서산장에서 주로 중국과 조선이 시문에 대한 논쟁)

구외이문(북경과 열하에서 들은 기이한 이야기)옥갑야화(옥갑에서 나눈 이야기 허생전)

황도기략(북경성과 자금성등에 대한 기록)/알성퇴술(공자묘 참배에 대한 기록)

양엽기(북경내 있는 사찰에 대한 견문기)동란섭필(수필)/보유금료소초(의학관련 지식에 대한 피력)

- 이 중 고미숙의 작품에서는 각론을 일부 편역하였음.


이렇게 목차만 보더라도 연암의 지식충족욕은 가히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진공청소기처럼 눈에 띄는 모든것을 흡수해버리고 싶은 애절한 마음이 아니였을까 싶다.

열하일기를 읽다 보면 느끼는 점은 작가인 연암의 해박한 지식과 애리한 관찰력 그리고 모든것을 자기꺼로 만들어가는 능력이 어떤 타인에 비해서 탁월하다는것을 알 수있다. 그리고 간간히 독자들을의 지루함을 잊게 해주는 위트와 유머로서 독서의 맛을 한층 더 배려한 정말 조선이 낳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할까...

그리고 연암은 여행에서 견문한 선진문화와 선진산업 시설과 근대 과학이론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민중의 생활에 이바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1. 연암은 조선최고의 과학자였다???

친구인 홍대용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연암은 당시 조선으로서는 감당치 못할 과학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 학자들과의 필담을 통해서 연암의 자기의 과학관과 우주관, 그리고 생명기원에 대한 진화론까지 거침없이 일성하고 있다. 상대가 선진과학과 문명으로 뭉쳐진 중국학자들 앞에서 그리고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등 알았다면 스승을 받을만한 이론을 전개한다.

연암은 지구가 둥글고 자전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명쾌하게 만유인력법칙을 통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모든물질은 티끌에서 시작한다고 인식하여 현대과학으로 보자면 원소내지는 원자의 개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벌레의 한 종족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가히 다윈도 울고갈 진화론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2. 연암은 현실적인 거시경제학자였다???


연암의 생애를 통틀어 이용후생과 실천궁행 이 말을 빼면 남는게 없다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현실적인 경제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에 바로 적용될 수 있고 그리고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경제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중 중국의 수레제도, 성 쌓는법, 가루 찧는 기계, 고치실 뽑는 기계, 온돌 놓는 법, 벽돌이용법등 각양각색의 선진문화를 정말 자세히 기록하면서 조국의 낙후성과 당시 지배층의 무능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허생전을 통해 거시경제의 중요성을 강조 특히 물류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거시경제의 원할한 회전을 강조했다.

결국 만년에 들어서 부자들의 토지를 나누어주라는 부록이 게제된 과농소초라는 농서를 집필하게 된 밑그림이 되었던 것이다.

 

3. 연암은 자주주의적 역사학자였다???

당시의 조선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잊지않고 있으면서 청에 대한 북벌을 주장하는게 일반 사대부들의 공통된 사상이었다.

호란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임진년 명의 은혜를 잊지말자는.... 그러면서 자국이 강역이나 역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중국의 고서 기록을 믿고 그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암은 이런 사류을 배척했다. 아니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여행중 철저하게 고구려와 조선의 강역을 중국 고서인 사기나 지리지등의 잘못된 점을 들추어서 제대로 된 강역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열하에서 만난 반선(달라이라마)과 반선에 대한 청의 태도를 오랑캐라 어쩔수 없다는 식이 아닌 청의 제국지배방식을 간파하고 조서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한다고 역설하면서 구체적으로 말의 사육에 대한 문제까지 거론한다. 당시 조선의 통치계급이나 학자들이 소위 춘추대의에 젖어 맹목적인 존화양이만 외치고 있을때 '나라에 유익하고 백성에게 유익한 일이면 비록 오랑캐에게라도 배울것은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었을까 싶다 ㅎㅎ

 

4. 연암은 인본주의자였다???

연암은 사행중 중국의 문물을 보면서 통탄했다. 아니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국이 처한 현실앞에 식자들의 다 스러져가는 성리학이란 학문에 매달려 민생과 후생에 대한 한치의 배려도 없는 지배층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아래 민중들에 대한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고 같이 호흡을 했던 것이다.  그 일면으로 산해관에서 객주에 들어 상방 정진사와 같이 배겨썼다는 호질(호랑의 꾸중)이란 작품에서 비록 배경은 중국을 그리고 있지만 어쩌면 연암의 조국 조선식자층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5. 연암은 종교학자였다???

연암이 열하에서 경험한것 가장 크게 충격을 준것은 티베트불교와의 만남이었다. 당시로는 정말 충격적인 해후였다. 황제의 강요에 못이겨 반선을 접견하고 반선으로 부터 불상을 하사받고 이에 대한 처리로 골몰하고 있는 삼사(정사,부사.서정관) 그 와중에 황교(티베트불교)에 대한 연암의 철저한 판단 그리고 황교를 받는 청의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인 모략을 간파하고 다시금 청나라에 대한 색다른 면을 보게 된다. 또한 북경에 있는 천주당을 견문하고 야소(예수)나 야소회에 대한 반박등 다양한 종교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6. 연암은 베스트셀러작가였다???

정말 연암은 타고난 작가임에 틀림없다. 장편의 작품을 초록하면서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이렇게 깊을줄이랴... 기행문의 형식을 빌려 군데 군데 자기의 철학, 정치학, 경제학, 음률학, 지리학, 역사학, 우주천문학, 지구과학등의 딱딱한 글과 시, 소설, 견문, 수필, 잡기등의 쉽게 읽을거리를 적절하게 분배해서 독자의 지루함을 한번에 날려버렸다. 거기에다 간간히 들려주는 위트 내지는 유머한마디가 압권이다. 예로 북경에 도착하여 쉴려고 하는게 갑자기 황제가 열하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허둥되는 청나라과 관원을 지켜보면서 불이났냐는 말에 황제가 열하로 가서 비어있는 북경으로 몽고 기병 십만명이 처들어온다가 하여 자중을 웃긴일화가 그것이다. 또한 북경에서 잠도 자지못하고 열하까지 가는 여정중에서도 고북고성벽에 이름 세글자 세겨넣는 여유까지...

이렇게 대충 정리한 연암에 대한 생각들이다. 물론 내가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점인것이지 보편타당성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연암의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내내 가졌던 생각은 사물을 보더라도 항상 그 이면을 봐야한다는 생각과 단순히 보고 넘기지 않고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생각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저작이다.

특히 역자가 다른 두책을 읽은것이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한작가는 북한학자이 입장에서 본 연암과 남측에서 본 연암에 대한 생각들과 해석방식 하지만 공통점은 열하일기는 조선최고의 작품이라는 점과 연암에 대한 평가는 일치한다는 것이다.

시와 공간을 넘어서 연암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그가 남긴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중국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장관, 무엇이 장관이라고 떠들지만 나로서는 똥거름 무더기가 장관이고, 깨어진 기와쪽과 버리는 조약돌을 이용하는 법이 장관이더라""

 

그의 생애 철저하면서 일관되게 흐르는 이용후생에 대한 신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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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전방위적 지식인 정약용의 치학治學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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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실학의 완성자...비운의 대학자...정조대왕...

다산은 여러면에서 많은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다. 학문의 깊이, 저술활동, 그리고 과학적 사고(수원성 축조등), 서학에 대한 신념등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몇안되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현재를 살려면 자기가 맡은 한분야에 대해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든데 다산은 여러방면에서 그것도 차원이 다른 학문 이나 실용에서 탁월한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럼 과연 다산은 남들보다 탁월한 능력의 소요자여서 이런 활동이 가능한걸까? 라는 의문이 간다 물론 다산은 범인과는 다른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범인에 비해서 엄청난 자기 성찰과 노력을 경주하여 자신의 학문세계를 완성한 인물이다. 이책을 보면 다신이 그런 업적을 완성할수있엇던 작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수있다

   
 

 총류방통법 - 어린아이들이 그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검을 현자를 칭칭 감는다는 '감을' 전자의 뜻으로 알고, '누르' 황자를 꽉 누른다는 '누를'압자로 풀이한다. 이것은 그 아이들이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다. 능히 종류별로 접촉해서 곁으로 못하기 때문이다

 
   
이책에는 50자기의 다산만의 학문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잇다. 물론 50가지를 다 습득하여 실행한다면 더할 나위가 있겠느냐만 이책을 통하여 경영,공부,독서등에 다양하게 유용할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시한 다산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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