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연인은 동시에 똑같이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

출근 길에 이 말을 읽는 순간

잠이 확~ 깼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 항상 이게 문제였어!

그래서......항상 연애는 어렵다.

 피아노,  외국어, 테니스, 서예....

어렸을 때부터 많은 걸 배워 왔지만

이렇게 해도해도 늘지 않는,

이렇게 학습효과가 젬병인 건 정말.....연애 밖에 없다. ㅠㅠ

==========================================

[동무와연인] 정사(情死)로써 사랑의 열정을 구원

당대 최고 가수와 지식인 유부남은
열정적 일탈로 기존 체제를 먼저 공격했고
사회는 도덕을 들먹이며 신경증적으로 응전했다
이에 동반투신한 것은 비정치적 정치일 수밖에

한겨레
» 윤심덕
동무와 연인/⑭ 윤심덕과 김우진

플로베르였던가, ‘두 연인은 동시에 똑같이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고 했던 사람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롤랑 바르트)는 연애의 진실은 연인들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 만고의 고민처럼 보이지만, 플로베르처럼 돌이켜 생각하면 바로 그 고민의 형식이야말로 연애의 유일한 가능성이다. 내가 연애를 ‘물매’의 효과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체제와 더불어 굴러가는 대중은 혼인 제도로써 그 중층적 모순의 속살을 가린다. 그리고 관습 속에 순치되며, 종교나 이데올로기로써 그 제도를 정당화한다. 제주도 유채꽃의 신화는 그렇게 쉼없이 재생산된다. 이것은 아무런 냉소가 아니다. 만일 제도와 관습이 연애의 자기모순적 진실을 숨기지 못할 경우, 그리고 ‘제도라는 매듭’(알랭 바디우)이 풀린 채로 갑순이와 갑돌이가 정직하게 상대를 대면할 경우, 연애의 종말은 총알보다 빠르게 다가온다. 우주 만상의 이치가 그러하듯이, 사랑 속의 평형(equilibrium)은 곧 현상유지(status quo)에 다름 아니며 현상의 평화는 곧 권태로 이어진다. (그런데,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권태가 아닌 것’!) 니체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나태한 평화’인 셈인데, 말할 것도 없이 평화가 모든 부분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정사(情死)는 묘한 위상을 갖는다. 영원한 평화를 향한 상상적 도약이면서도, 한편 그것은 권태로운 체제의 평화로부터 사랑의 열정을 구원한다. 그러므로 기존의 체제를 먼저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연인들의 열정적 일탈이다. 물론 체제는 관습과 이데올로기, 도덕과 종교를 들먹이면서 신경증적으로, 혹은 폭력적으로 응전한다. 윤심덕이 애인 김우진과 정사하기 15개월 전인 1925년 3월호 <신여성>에는 그녀의 애정 행각을 비난하는 ‘윤심덕 사건에 대하여’(박신애)라는 글이 실린다: “윤씨의 이번 행동은 타락한 행동이다. 예술가이면 예술가, 사업가이면 사업가, 가정부인이면 가정부인, 교육가이면 교육가, 직업부인이면 직업부인으로 똑똑히 사람이 좀 되어 갑시다. 윤씨야! 기왕 국외로 갔다는 소문이 있으니 거기서 태평연월이나 노래하면서 건강히 일생을 지내라. 누구나 그대 보기를 원치 않을 테니.” 여기에서도, ‘예술가답게… 그리고 가정부인답게’라는 체제수호의 동일성 윤리는 연애라는 물매와 그 변신 욕망과 절망적으로 대치한다. 그러므로 윤심덕이 1926년 8월 5일 새벽, 그녀의 애인을 부둥켜 안고 현해탄에 몸을 던진 일은 결국 비정치적 정치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권태로운 체제의 평화와 그 평화의 폭력으로부터 사랑의 열정을 치명적으로 구원하는 일이다.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1999)에서도 1920~30년대 조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의 변동에 따른 ‘주체의 격심한 변동’을 말한다. 역시 그의 표현처럼, 이로 인한 신구 여성들 사이의 갈등은 세대 갈등에 앞질러 적대적 관계로 치닫는다. 통속적인 해석처럼 윤심덕의 비극은 봉건적 사회 구조를 뚫고 막 태동하던 신여성들의 좌절된 사회적 정체성을 극명하게 보이는 ‘자살적 몸짓’이다.

최초의 여류성악가, 당대 최다의 음반판매량을 보유한 최초의 대중 가수, 방송국 사회자, 그리고 패션모델이었던 윤심덕은 매력적인 외모에 맵시있는 스타일의 선구적인 신여성이었다. 특히 내게 흥미로웠던 부분은 쾌활하다 못해 당돌하고 일견 무례해 보였다는 그녀의 성격이다. 이것은 힘겹게 미래를 선구하려는 사회적 약자의 징후적 태도로서 주의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약자가 꼭 무례한 것도 아니고 무례한 자가 반드시 약자도 아니지만, 총명한 약자의 무례함 속에는 종종 중요한 사회적 징후가 담긴다. 가령, ‘자신보다 예쁘고 명석하고 말까지 빠른 여자(샤틀레 부인)를 애인으로 두는 일’에 볼테르는 비교적 성공적이었을 뿐 아니라 극히 생산적이기도 했지만, 김우진은 ‘자신보다 예쁘고 명석하고 당돌했던 여자(윤심덕)’와 더불어 현해탄에 몸을 던져 서른 살 젊은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러나 1926년 8월 5일의 새벽에 관부연락선의 선미를 박차고 현해탄의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지게 한 그 절망은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 물론 그것이 (‘구’남성 이문열씨의 ‘시대와의 불화’와는 완전히 다른 뜻에서) ‘신’여성 윤심덕이 겪어야 했던 ‘시대와의 불화’와 그로 인한 절망의 몫이라는 데에는 아마도 이견이 크지 않을 테다.

» 김영민/전주한일대 교수·철학
하지만 그 불화와 절망이 온전히 그의 유부남 애인이었던 김우진의 것이기도 했을까? 연정의 일심동체라는 그 완벽한 거짓말을 잠시 믿어두더라도, 이 두 연인들을 대마도 앞바다에 투신하게 만든 어느 먼 신새벽의 절망은 대체 어느 정도의 공감과 합의에 의해 조형되었을까? 두 사람을 치명적 결정으로 내몰아간 그 절망의 내용은 서로간에 평등한 것이었을까? 가령, 윤심덕이 ‘김우진보다 예쁘고 명석하고 당돌했던 여자’라고 한다면, 바로 그 편차만큼 그 죽음에 이른 절망의 내용 역시 둘 사이에서 어긋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내와 자식을 가진 유부남과의 정사라면 그 결행 속에 개입하는 수없이 복합적인 감정의 난반사와 태도의 빗금(偏倚)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드팀전 2007-01-26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는 하다 보면 늘어요.맘 편하게 먹고-뭐 꼭 사랑해봐야겠다-이런 맘을 좀 내려놓고 접근하면--언제나 연애하는 맘이쥐.^^
저도 오늘 한겨레 봤는데...몇 권의 책이 눈에 띄더군요.윤대녕의 새소설집<제비를 기르다>새로 번역한 장자,..그리고 <오늘의 세계적 가치>

글샘 2007-01-2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는요... 학습 효과, 반복 학습으로 실현되는 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연애는 '잠재적 양태'가 '현실적 양태'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느끼는 심리적 감정이 아닐까 합니다. 봄이 여름이 되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오늘부터 여름! 이런 거 없잖아요. 봄 속에 여름이 있었고, 그렇게 봄과 여름은 몸을 섞어 자연스러운거죠. 주역에 보면 태양과 소양이 있는데, 봄이 태양일까요? 여름이 태양일까요?
봄이 태양이에요, 여름이 소양이고. 뜨거운 열기를 '잠재적 가능태'로 안에 품고 있는 사람이 훨씬 뜨거운 사람이지요. '현실적 실현태'로 이미 드러난 열기는 주체하기 힘든 법 아닐까요?(아침부터 무슨 삽질하는 소린지...) 즐건 하루 보내세요^^

2007-01-26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7-01-26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드팀전 2007-01-2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퇴근하기전에 글샘님의 글을 보니까... 정답이 하나는 보입니다.
저런 이야기하면 연애하기 힘들다..^^

로드무비 2007-01-29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이 서로를 사랑한다면 재미없지요.
아시면서......^^

2007-01-29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29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어젯밤은 정말...."wonderful"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Eric Clapton의 공연.
평일 공연이라 걱정이 많았다.
갑자기 일이 생겨 못가면 어쩌지?

다행히...아무 일도 없었고
6시 30분에 퇴근해 바람을 날리며 달려갔다.

올림픽공원역에서 부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Eric의 공연을 보기 위해 만명이 모였으니!
연령대도 다양했다.

부모님 손을 잡은 초등학생부터
퇴근하고 막 달려온 넥타이 부대,
외모만 보면 rock을 좋아할 것 같지 않은 새침한 외모의 여자들,
Eric과 같은 연배인 60대 초반 어르신들,
게다 외국인 집회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될 만큼 수많은 외국인들.

올림픽공원역에서 부터 수많은 인파가
행진을 하듯이 체조경기장으로 삼삼오오 걸어갔다.

그때부터... 설레이기 시작했다.
공연 시작은 8시!

일찍 퇴근하느라 저녁을 못먹고 갔는데
다들 부리나케 달려 왔는지
올림픽 공원내 편의점은 길고 긴 줄로 터져나갈 것 같았다.

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입장하다 보니
공연 시작은 다소 늦어졌다.

드디어...8시 30분경 Eric과 그의 밴드가 등장,
그~냥 처음부터 한마디 말도 없이
"Tell The Truth"를 연주했다.

가슴이...터질 것 같았다.
너무 얼얼해서 박수도 함부로 칠 수 없었다.

45년생 Eric(울 아빠랑 동갑이다!)은
신들린 듯, 꿈꾸는 듯 기타를 연주했다.

아니, 기타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기타가 몸의 일부 같았다.
몸을 흔들어 영혼을 공명시키는 것 같았다.

3대의 기타와 2대의 키보드,
드럼과 베이스, 2명의 코러스로 구성된 밴드는
진정....powerful했다.

에릭의 2001년 LA 공연 "One More Car One More Rider"에 비해
밴드 구성원의 평균나이가 최소 20살은 젊은 것 같았다.

젊고 에너지 넘치는 기타리스트들의 즉흥 연주를 들을 땐
몇번 씩이나 소름이 돋았고(듣다 신음까지 토했다!),
키보드 연주자는 키보드를 부수듯이
마치 편집증 환자처럼 키보드를 두드렸는데
그의 연주는 art로 승화된 광기였으며,
귀엽게 생긴 흑인 드러머의 넘치는 에너지는
체조경기장 지붕을 뚫고 밤하늘로 솟을 것 같았다.

에릭과 그의 젊고 아름다운 밴드는
통기타를 둘러매고 앉아 언플러그 연주도 들려 줬는데,
통기타로도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Layla"를 끝으로 본공연이 끝나고,
앵콜 공연 때는 "Cocaine"과 "Crossroads"를 연주했는데
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 일어나 춤을 쳤다.
아....정말이지...wonderful night!

Eric의 공연을 4자 한자성어로 표현하라면?
명불허전(名不虛傳)!

몇몇 신문들의 공연리뷰를 읽어보니
eric이 "Thank you very much!" 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걸
"옥의 티"라고 했는데,
말이 없어서 공연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더 좋았다.

음악으로 다 보여줄 수 있다면 말이 필요 없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자신의 "진정성"을 국민들이 몰라준다고 안달하는 사람이나
말을 많이 하는거지!

Eric의 공연을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까?
London에서건 아님 Tokyo에서라도?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p.s) Eric의 공연, 남자랑 같이 봤다. 음하하
근데 그 남자가... "Wonderful Tonight"을 듣다가 눈물을 흘렸다.

어젠 정말....."Wonderful night"이었다.
공연도, 공연을 함께 한 사람도 너무도...감동이었어!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07-01-24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정말 멋진 하루를 보내셨군요!!!

프레이야 2007-01-24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좋은 시간이었겠어요. Wonderful Tonight... ^^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왔었군요.

BRINY 2007-01-24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우와~ 우와! 좋으시겠어요!

엔리꼬 2007-01-24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절대 안부른다던 tears in heaven은 결국 안불렀다면서요? 제 사무실 옆방 사람(아줌마)도 갔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롹이 강해 썰렁했다던데, 님은 정말 좋으셨나봐요. 다행이예요.. 저도 올해는 꼭 콘서트 가보고 싶어요.. 폴 매카트니가 올지도 모른다는데 말이죠..

kleinsusun 2007-01-24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네...어젯밤은 정말... wonderful!!! soooooo happy!^^

혜경님, 네...두번째 내한공연이예요. 10년 전, 그리고 올해!
Eric의 나이로 봐서 아마도....한국 공연은 마지막일 것 같아요.

BRINY님, 네......넘 좋았어요. 아직도 가슴이 뛰어요.^^

서림님, 네...tears in heaven은 끝내 안불렀어요.
tears in heaven 같은 pop에 가까운 노랠 좋아하는 사람, 그니깐 rock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쩜 힘든(?) 공연이었죠. ㅋㅋ
근데...폴 매카트니가 온데요??? 와....몰랐네요.
오게 되면 콘서트장에서 만나요!^^

바람돌이 2007-01-24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마지막에 눈물흘린 남자 얘기가 전 더와닿는데요. 그런데서 눈물을 흘릴수 있는 남자 멋있잖아요. ^^

kleinsusun 2007-01-24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그죠그죠? 멋있죠? 호홋
역시, 바람돌이님은 센스쟁이!^^

드팀전 2007-01-24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언제올지모르니 저도 한번 가고 싶었으나..ㅜㅜ
좋은 공연이었을거라 생각됩니다..부럽삼.

moonnight 2007-01-2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흑 부럽부럽 ㅠㅠ; 원더풀 투나잇에 눈물 흘릴 수 있는 남자. 정말 멋지네요. 수선님과 함께 에릭클랩튼 콘서트를 가는 영광을 누리다니. 그 분도 너무 행복한 밤이었겠어요. 아아아아아아아~~~-_-; (이럴 땐 정말!) 서울 살고 싶어요. ㅠㅠ;;;

혜덕화 2007-01-2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행복한 마음이 그대로 저에게도 전달되어 저도 행복해지네요. 꼬리글이 더 좋아요. 그 행복이 계속 계~~~~속 이어지기를...

kleinsusun 2007-01-25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도 공연에 오셨으면 좋았을텐데.......DVD로 보는 공연실황 보다 100배는 더 감동적이었어요.^^

달밤님, 그 남자가요.....태어나서 "wonderful tonight"을 1,000번도 넘게 들었는데
이상하게.....알 수 없이....그날 눈물이 났데요. 처음으로! 달밤님, Chick Corea 좋아하세요? 3월 10일! 그날은 토욜 공연이니 서울 오시면 좋을텐데...^^

혜덕화님, 축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릴케 현상 2007-01-2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얼스 인 헤븐을 부른 사람이었군요^^ 공연을 보며 공감하는 모습이 부럽네요. 저는 조금 '정서적'인 곡들이 끼어 있어야 좋은 것 같아요. 신파에는 잘 우는데 락을 들으며 우는 건 어떤 건지 궁금하네요^^

kleinsusun 2007-01-26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책님, Good morning!^^
rock도 가사 들으면 "신파"가 많아요. 특히 "Layla" 같은 노래는.
저도...신파에 약해요. 그래서...아.직.도 사랑 "타령"한다고 핀잔 들어요.ㅋㅋ

잉크냄새 2007-01-26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에릭 클랩튼의 나이가 환갑을 넘었다니....ㅎㅎ
참 의미깊은 시간을 보낸듯 싶네요...

kleinsusun 2007-01-26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릭 클랩튼도 벌써 60대예요!
아..Time flies! 근무시간만 빨리 가고 퇴근 후 시간은 아~주 더.디.게 갔으면 좋겠네요.ㅋㅋ

2007-01-29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속옷은....아무한테나 선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즘이야 "빨간 내복"을 입는 사람도 없지만
첫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선물하는 관습(?)은
혈연적으로 가장 가까운 존재인 부모님을 향한
"친밀함"의 상징일 것이다.

이성에게 속옷을 선물한다는 것은
친밀함에 더해 상대방의 몸에 대한 "소유"의 상징일 수도 있겠다.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블랙데이, 로즈데이, 빼빼로 데이로도 모자라
작년에 보니 "브라데이"라는 것도 있던데,
(11월 8일이 사랑하는 그녀에게 브라를 선물하는 날이라나?
어떤 란제리 회사에서 만들어 냈는지 참으로 신선하지 못한 마케팅 전략이다.)
속옷을 선물하려면 당근 싸이즈를 알아야 하고(그만큼 친밀해야 한다!),
선물한 속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다" 또는 "나만 보여줘!"라는
의미 또한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월급을 받았을 때(헉! 벌써 10년 전이다!)
나도 부모님께 속옷을 선물했다.
부모님 뿐이랴?
외할머니랑 고모 할머니께도 내복을 선물했다.

뭐..."효도"라기 보다는
"저 이제 돈 벌어요!" 라고 자랑질을 하고 싶었을 꺼다.

보통 엄마들은 엄청 아낀다.
아무리 추워도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수도 없이 지나가는 빈택시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당신을 위해서는 천원짜리 한장 함부로 쓰지 않는 게
많은 엄마들의 모습이다. 돈이 많건 없건!

그래서 god는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러니....레이스 달린 예쁜 속옷을 선물할 수 있는 건
딸들만의 특권 아닐까?

난 오늘 앙징 맞은 레이스가 달린 고운 분홍색 속옷을 선물했다.
사랑하는 S교수님에게.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항상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출장을 가면 아무리 가방이 무겁고 피곤해도
뭐 하나 작은 선물이라도 하고 싶어 면세점을 둘러보게 하는 사람,
서점에 갔다가 좋은 책을 보면
"이 책 읽으셨을까?" 혼잣말을 하게 하는 사람,
맛있는 거 먹을 때
"나중에 같이 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

내게 S교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다.

내가 힘들 때 같이 울어 주시는,
내 글 하나하나 애정을 갖고 읽어 주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문자를 보내 주시는
가슴 짜~안 하다 못해 눈물이 나게 만드는 S교수님.

엄마는 올해도 결혼을 하지 못하면
이제는 정말로 방을 빼라고 퇴각 명령을 내렸다.
"자식이 웬수"라는 말을 3일에 한번 듣고 사는 주제에
S교수님께 효도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교수님의 "딸래미"가 되기로 했다.

일어나기 힘든 아침이면
뽕빨 브라더스의 노래 <나는 문제 없어>를 크게 틀어 놓고
미친 척 하며 춤을 춘다.

이 세상 위에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그 때 마다 떠올랐던 S교수님의 얼굴!

제가 앞으로 효도(?)도 많이 하고 속도 많~이 썩여 드릴께요.
후회 되시면 저희 부모님께 A/S를 요청하세요!^^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RINY 2007-01-2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효도하고 싶은 교수님이 한분 계신데...제가 효도를 조금이라도 하기 전에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셨네요. 사모님께 안부편지라도 보내야겠습니다. 사모님 뵌지도 2년이 다 되가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2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 교수님이 어머님 아니시죠? 읽으면서 막 헷갈렸어요. ^^;

마늘빵 2007-01-2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월 8일 기억해야겠군요. ^^

2007-01-22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1-2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이 반, 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 말. 좋습니다^^

잉크냄새 2007-01-2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싯구가 떠오릅니다.^^

2007-01-22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23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24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세상을 향해 "조까라마이싱"을 외치지만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남자라....

이 남자의 정체는 뭘까?

한국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살기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참선을 하는 것 못지 않게 어려운 일인데.....(아닌가? 적어도 내게는...ㅋ)

 

어쩌면...이 남자, 박민규는 "범생이"일지도 몰라!

그래서 매일.... 일탈을 꿈꾸는? 

============================================================================

[작가와 문학 사이](3)박민규-우주에서 ‘지구의 일상’을 보다

입력: 2007년 01월 19일 15:23:55
박민규에게 소설가란 이를테면 ‘딴따라’에 가깝다. 진지한 예술가의 이미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는 좋아하는 포르노스타와 프로레슬러의 이름 열 두 개 정도는 기본으로 외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순살까지만 소설을 쓰다가 그 다음부터는 전직 소설가 기타리스트로 살고 싶어 하는 소설가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세상을 향해 “조까라마이싱”이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그는 포르노스타처럼 대범하지도 프로레슬러처럼 폭력적이지도 않다. 그는 지나치게 수줍어하고 온순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는 성실하다. “술, 마시지 않는다. 담배, 피우지 않는다. 인간, 가까이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내를 도와 집안일도 잘한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무규칙 이종 소설가’가 된 것일까. 어쩌자고.

그는 “멸망한 인류의 문명을 발견한 한 마리의 침팬지가 된 마음으로 글쓰기에 임한다”고 한다. 그렇다. 그에게는 침팬지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침팬지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박민규가 애호하는 영화 ‘혹성탈출’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인류와 지구의 멸망 이후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때 인간은 더 이상 사유의, 행위의 주체가 아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에는 유독 인간 아닌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목록을 열거해보면 대충 다음과 같다. 냉장고(‘카스테라’), 대왕오징어(‘대왕오징어의 습격’), 개복치(‘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너구리(‘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기린(‘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핑퐁(‘핑퐁’). 심지어 화성인, 금성인도 등장한다. 박민규는 이렇게 무생물계, 동물계, 탁구계, 그리고 우주계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인간계를 낯설고 기이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방법론을 우리는 통칭 우주론적 전략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탐사선 보이저 1호가 명왕성 부근에서 촬영한 사진에서 지구는 단지 희미한 빛을 내는 ‘창백한 푸른 점’처럼 보인다. 우주인의 시각에서 봤을 때 지구는 그저 하찮은, 없어져도 그만인, 선도 아니고 면도 아닌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핑퐁’의 결말처럼 이 지구가 언인스톨되거나 소멸된다 한들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주인이 보기에 말이다. 이러한 우주론적 시각은 당연한 말씀이지만, 우리 지구인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상대적으로 축소시키고 약화시킨다. 악다구니 같은 일상을 뛰어넘는 무한광대한, 그래서 순결한 우주적인 것을 일상적, 속물적 삶과 견줌으로써 지금, 현실은 순간적이나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박민규의 인간혐오증(그는 ‘핑퐁’에서 “인간은 싫다. 차라리 양이라면 나는 즐거이 관계를 맺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은 크게 보면 세계전복의 망상으로까지 이어지지만, 작게 보면 비참하고 힘든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자기위안의 방법론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반전은 지구내적인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박민규 소설에서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은 하찮게 다루어지거나 반대로 하찮은 것들은 오타쿠적 탐구를 통해 우주에 맞먹는 의미를 부여 받는다. 흔한 사물인 냉장고는 오사리잡탕의 세계를 쓸어 담는 거대한 그릇으로 팽창하거나 반대로 그렇게 뒤섞인 세계는 카스테라로 압축되기도 한다.(‘카스테라’) 냉장고와 카스테라라니. 초현실주의자들의 ‘우산과 재봉틀의 만남’에 비견될 만한 이 기이한 조우를 통해 우리가 자못 거대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는 작은 중고 냉장고의 세계 속에서 카스테라로 포맷된다.

그러니 낡아빠지고 물빠진 스웨터를 입었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냉장고와 카스테라만 있으면 될지니. 아니면 탁구대와 라켓, 공만 있으면 될지도. 그것도 아니면 쿨 앤 더 갱의 셀러브레이션을 들으면 될까. 그러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게 될까. 어쨌든 박민규는 고시원과 아르바이트와 왕따와 꼴찌들에게 행복이란 ‘놀랍게도 따뜻한’ 카스테라 맛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다. 박민규는 카스테라를 좋아한다.

〈심진경|문학평론가·서울예대 강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근대에 왜 집착했느뇨, 하면?
한겨레
»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김윤식 교수의 문학산책-60년대 근대화와 우리 근대문학 연구

지난해 모 대학 대학원에 강의할 기회가 주어졌소. 소금기둥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뒤돌아보아서는 안 되었을 터인데 첫 시간부터 이 터부에 부딪히고 말았소. 밑천이라고는 내가 그동안 해온 공부의 성격을 말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던 탓이오. 비트겐슈타인의 어법으로 하면 체험(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이니까. 60년대에 들어서 인문학에 입문한 우리 세대의 성격은 어떠했던가. 이 물음에는 다음과 같이 말해질 수 있소. ‘독립운동하기다!’라고. ‘독립운동이란 만주벌판에서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아해하는 세대 앞에서 이 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적절할까. 그 방도를 알지 못하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겠으나, 만일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두 가지 점을 말해볼 수 있겠소.

식민지사관 극복이 그 하나. 조선후기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자체의 힘으로 극복할 힘이 없었기에 식민지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 식민지사관은 과연 과학(학문)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만일 있다면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단연 극복되어야 하겠지요. 극복방식이란 어떠해야 할까. 일목요연한 해답이 주어지오. 학문적으로 증명되어야 함이 그것.

학문이라 했거니와, 조선후기 사회를 문제삼을진댄 근대 곧 자본주의화의 근거를 밝힘이 아닐 수 없지요. 이 점에서 제일 유력한 쪽이 당시로서는 이른바 과학 중의 과학이라 말해지는 사회경제사 분야였지요. 북한에서는 광산 조직과 그 운용 방식에서 자본주의적 맹아를 찾아냈다면, 남한에서의 그것은 양안(量案, 토지대장)의 분석에서 얻어낸 김용섭 교수의 ‘경영형 부농’ 개념(1970)이었습니다. 근대화의 맹아가 18세기 후반에까지 이끌어올려진다는 이러한 학문적 성과만큼 60년대 인문 사회학의 거대담론이 없었다고 해도 큰 망발은 아닐 터. 고 김현 씨와 밤을 새며 토론하고 함께 18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한국문학사>(1973)를 쓴 것이 그 한 증거.

다른 하나는, 이 점이 중요하거니와, 근대화란 냉전(양극) 체제의 산물이었다는 점. 근대화라는 용어가 19세기에 등장했다고는 하나, 이 용어가 적극적 의미를 갖고 사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입니다. 봉건제에서 자본제로, 그리하여 사회주의로 인류사가 나아간다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역사적 필연론’에 대해 그 반론으로 제시된 것이 산업화 근대화론이지요. 러시아 혁명에서 이룬 러시아사의 과정을 산업화 근대화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는 이 논리를 ‘이데올로기의 끝장’이 잘 말해놓았소. 혁명 없이도 사회의 점진적 개혁이 가능하다는 역사인식이 그것. 이러한 새 역사 인식의 학문적 사례의 하나가 로스토의 <경제성장의 제 단계>(1960)입니다. 선진, 후진국을 막론하고 ‘이륙’(테이크 오프)을 겪어 산업사회로 이행한다는 이 이론이 제3세계의 근대화를 내세운 미국의 대외정책이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그 ‘근대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자본제 국민국가로 요약될 성질의 것이지요. 구체적으로는 (1)사회구성원의 이동의 활성화, (2)신분에서 계약으로 나아가기, (3)세속화로 말해지는 경제적 합리성 등등.

사람들은 내게 자주 묻더군요. 어째서 그토록 ‘근대’에 집착했는가, 입만 벌리면 근대문학, 또 한국근대문학이라 떠드는가, 라고. 그럴 적마다 번번이 샛별처럼 눈을 뜰 수밖에요. 어째서? 내 경험의 세대적 한계인 까닭. 혁명 없이도 근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이것만큼 주어진 여건 내의 가슴 벅찬 확실한 일이 당시로서는 없었으니까. 혁명으로라야 인류사가 바람직하게 나아간다는 생각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사회 속에서 내가 살았기 때문이오. 러시아어 사전 갖는 것도 안 되는, 국시(國是)가 반공으로 된 그런 사회였으니까. 헤겔 투로 하면 ‘여기가 로도스(장미)다, 여기서 춤춰라’였소. 그러기에 내 시야엔 일제하에서 악전고투하는 우리의 ‘근대화’만이 크게 보이고 나머지는 아주 사소하게 보일 수밖에요. 근대문학이란 무엇이뇨. 국민국가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국어(국가어)로써 하는 문학인 것. 한국의 근대문학이란 새삼 무엇이뇨. 임시정부 및 그 대행기관인 조선어학회가 관장한 조선의 언어여야 하는 문학. 일제가 한국 근대문학을 식민화한 것이 조선어학회 사건(1942. 10)에서 광복까지라 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말 탄 자여, 지나가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마천 2007-01-20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평천하를 보면 의병들과 양반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중인출신 부자가 나옵니다. 사민평등이 바로 근대의 가치인데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못해내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법을 통한 보편적 공동체의 설정이라는 근대화의 명분이 그냥 거부되기는 어려웠습니다. 더우기 청연에 나온 여주인공을 쉽게 비난할 수 있을까요?
가난한 농부의 딸에서 첨단기술의 최고봉인 비행기를 몰게 되는 여자.
근대화는 한쪽에서 김구와 윤봉길의 의거를 볼 수 있지만 반대편에서 기술에 매료된 친일파를 훨씬 많이 만들었습니다. 친일군인,관료 박정희,최규하를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는 나라가 과거에 대해 공정하게 보지 못한다는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신 분이 김교수님의 근대에 대한 강의였죠.

kleinsusun 2007-01-2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은 늘, 항상 공부를 열씨미 하시는 것 같아요.
경제/경영 관련만 주로 읽으시는지 알았는데.... 존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