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재발견 - 기본만 지켜도 사람을 얻는다
김만기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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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 보면 처음 부분에 '잠용물용(潛龍勿用)라는 말이 나온다. 그 다음 부분에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을 인생에 적용하자면, 인생의 처음은 물에 잠긴 용처럼 드러나지 않은 시기에 있다.

그리고 이런 잠긴 용을 밖으로 나와서 제 실력을 보여주려면 그 용을 꺼내 줄 대인을 만나야 한다.

결국 인생에서 크던 작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도움이 없이는 성공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다.

문제는 우리는 서로 도움만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나에게 도움을 줄 사람에게는 잘 보이려고 하고, 내가 도움을 줘야 할 사람은 부담스러워진다.

그러기에 오랫도록 유지되는 관계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좋은 관계를 오랫도록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을 표지를 보았을 때 눈에 들어왔던 것이 [관계의 재발견]이란 제목 위에 있는 '기본만 지켜도 사람을 얻는다'라는 문구이다.

이 문구처럼 이 책에는 사람과의 관계에 지켜야 할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면 약속, 신뢰, 존중, 진심....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너무나 자주 들어서 조금은 식상하기까지 한 단어들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기본들을 통해 자신이 맺어 온 관계들을 이야기 한다.

즉 단순히 관계의 기본에 대한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경험들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저자의 경험을 통해 교과서적인 인계관계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삶에 담겨져 있었던 인생의 교훈을 배우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던 1992년에 중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를 했다.

다시 빈몸으로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중국학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투자회사와 컨설팅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했다.

낯선 나라에서 유학생으로, 또는 사업가로 일을 하다보니 모든 것에 시행착오가 있었다.

또한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저자가 이렇게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현재에 이르게 된 이유를 '사람과의 관계'에 있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도움만 받는 상대가 아닌 기본에 충실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기본적인 관계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이 깊었던 저자의 관계의 기본을 몇 가지 적어 본다.


1. 관계에서 계속 실패한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봐라!


저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입고 타인을 탓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관계의 실패에는 자기 자신의 책임도 있다. 관계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약점은 무엇인지를 돌아봐라!


2. 관계를 유지하려면 기본을 지켜라!


저자가 이야기하는 기본은 '진심'이다. 그런데 이런 진심과 함께 기본적인 것들을 지켜야 관계가 유지된다. 예를 들면 인사나, 연락, 기본적인 배려와 감사의 표현들이다. 이런 것들이 사소하더라도 이런 것들로 인해 관계가 깨어진다.


3.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되라!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는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가져라!


4. 부정적인 사람보다는 긍정적인 사람과 사귀어라!


5. 배신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


남을 배신하고 내게 오는 사람과도 깊게 사귀지 말라! 남을 배신하는 사람은 나도 배신한다.


6.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보다 적은 사람이라도 깊게 사귀는 것이 중요하다.


7 상대방의 쓴 소리도 들을 줄 알고, 때로는 나도 상대방에게 냉철한 조언을 해 주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내가 가지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 관계에 기본에 충실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를 맺고 있는가?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가 참 힘든 시대이다.

특히 기본을 지키기가 힘든 시대이다.

기본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과의 관계의 기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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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처럼 생각하라
제프 서덜랜드 지음, 김원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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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인기를 얻었던 짐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에서는 기업이 성장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경영인들은 그 한계상황을 뛰어넘기 위해 예전보다 더 많은 금액과 인원을 투입하고, 직원들에게는 열정을 강요하며 그 한계상황을 뛰어넘으라라고 독력한다.

그러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조금 그 상태를 뛰어넘거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금액이나, 인원, 열정 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 기업의 시스템 자체가 시장환경에서 최대의 동력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 이상의 성장은 무리인 것이다.

마치 시속 200K가 한계로 설계된 자동차에게 시속 300KM를 내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

결국 시스템의 변화없이는 기업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나는 이 책이 바로 그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미국에서 유명하고, 우리나라 기업이나 단체에서도 많이 애용하고 있는 '간트차트(폭포수방방식)'라고 불리는 프로젝트 방식에 대한 비판에서 부터 시작한다.

간트차트는 원래 1차세계 대전때 군대에서 군수품 관리에서 시작되었다.

고객의 요구를 받아서 계획을 설계하고, 그 계획대로 제품을 생산하거나 제공하는 과정이다.

문제는 현대로 오면서 고객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환경의 변화가 급변해지는 상황 속에서 이런 계획이 시간과 인력, 금액에 대한 천문학적인 비용을 요구할 뿐 성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FBI 센티넬 프로그램의 제작과정을 든다.

FBI는 구시대적인 운영방법으로 911테러를 예측하는 정보를 가지고도 그것을 판단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3년 동안 1억7천만 달러를 쓰고도 그것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저자는 이런 실패의 원인이 간트차트식의 일하는 방법에 있다고 보았다.

수많은 요구사항과 계약사항을 종합해 계획서 만드는데만 천문학적인 시간과 비용이 든다.

문제는 일이 이런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계획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상황을 반영하느라 일이 점점 더 지체되고 비용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은 '스크럼 방식'이다.

스크럼의 이름은 럭비에서 따온 이름이다.

팀원들이 상대편을 수비할 때 협력해서 촘촘히 그물망을 만들 듯, 프로젝트 진행도 상명하달식의 계획표대로의 진행이 아닌 팀워크를 통한 협력과 신속한 대처 능력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스크럼 방식을 자신이 MIT에서 일할 때 보았던 로봇에서 영감을 받았다.

당시 로봇공학의 발전은 형편없었고...

로봇은 프로그램 된 대로 움직이느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발견했던 로봇은 전원이 새로 들어올 때마다 기존의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새롭게 환경을 인식한다.

그리고 기존의 로봇이 중앙제어 장치를 통해 다리들이 움직이는 것과 달리 이 로봇은 4개의 다리마다 각자의 프로세서가 있어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인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스크럼 방식의 영감을 받는다.


스크럼 방식은 계획대로 움직이는 정형화 된 방식이 아니라...

팀원들이 자율권을 가지고 매 순간 스스로 결정하며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저자는 구체적으로 몇 가지 제시한다.


첫 번째 저자가 먼저 제시하는 것은 일의 우선순위이다.

저자는 현대 기업의 프로젝트에는 수많은 요구사항과 고려사항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고려하 보니 일이 진척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기서 20대80의 법칙을 제시한다.

대부분의 요구사항 중 80퍼센트는 쓸모 없는 것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20퍼센트이다.

저자는 이 20퍼센트를 간추릴 것을 제시한다.

그래야 일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팀워크이다.

많은 인원과 방대한 시스템은 오히려 일의 진행을 느리게 한다.​

저자는 10명이 안 되는 적은 인원으로 팀을 꾸릴 것을 제안한다.

이 팀워크에서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정보의 공개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정보는 윗선에서만 알고 있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일이 어떤 목적으로 진행되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팀원 모두가 똑같이 정보를 알고, 그 정보대로 일하기를 제시한다.

그래야만 바른 목표대로 일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팀원들이 함께 목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행복을 누릴 때 일의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


세 번째는 신속한 의사결정 과정이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진행의 오류를 발견하고도 그것을 수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수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일을 진행하는 사람에게 그 오류를 수정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서 다시 윗선에 보고를 하고 승낙을 받는데 복잡한 절차와 많은 시간이 소유된다.

그러기에 일은 진행되지 않고 오류는 늘어난다.

저자는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생산 방식을 제시한다.

도요타자동차 생산라인에서는 불량이 발생되면 작업자 누구라도 생산라인을 정지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불량을 바로 해결한 후 생산라인을 재가동시킨다.

그러기에 불량제품이 신속이 교체되거나 그 빈도가 낮아진다.

저자는 스크럼 방식에서는 팀원 누구나 정보를 확실히 알고, 진행과정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섯 번째는 프로젝트 오너의 역할과 회의의 중요성이다.

위와 같은 스크럼 방식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회의가 중요하다.

저자는 프로젝트 회의를 '스프린트'라고 부른다.

매 번 회의를 통해 프로그램 진행과정을 공유하고, 프로젝트에 대한 경영진과 고객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너무 늦어지면 경영진이나 고객의 요구와는 전혀 다른 프로젝트가 한 참 진행되고 나서야 수정이 된다.

엄청난 시간과 금액이 낭비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매일같이 스프린터 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 스프린터는 잘못에 대한 지적의 시간이 아니다.

마치 럭비팀의 작전회의처럼 프로젝트 전반의 문제를 보고 취약한 부분을 어떻게 대응할지를 계획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프로젝트 오너이다.

프로젝트 오너는 스프린터 회의를 관리하며 고객의 피드백을 계속해서 팀에게 제시한다.

따라서 프로젝트 오너는 고객의 소리를 50퍼센트를 듣고, 팀원의 소리를 50퍼센트 듣는다.

또한 매 순간의 과정과 변화된 상황을 메모지를 통해 팀 전체가 볼 수 있는 장소에 공유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경험한 기업이나 단체 문화와 주변 상황에 적용을 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는 동안 충격적으로 다가 온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국가가 메르스라는 전염병을 대응하는 태도였다.

국가를 하나의 기업으로 보고...

메르스 대응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보았을 때...

이번 대응은 전형적인 간트차트식의 폭포수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나 정부는 메르스에 대한 나름대로 계획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에 임했다.

그런데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에서 계획과는 전혀 다른 상황들이 속속히 발생했다.

예상 외의 전파력에, 예상 외의 감염인원들이 발생했다.

계획을 수정하려면 윗선의 결제가 있어야 하고...

실무진에서는 그것을 수정하거나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또한 정보 역시 윗선에서 통제가 되고, 실무진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일하는지를 몰랐다.

그러다보니 감염자가 옆에 있어도 무시되고 실무진까지 감염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여기 저기서 요구사항들이 넘쳐나고...

실무진들은 그 요구사항을 수렴할 틈도 없이 다시 새로운 요구사항이 생기며...

주변 환경이 급격이 변해갔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인력과 물질, 시간이 소요되도 프로젝트는 전혀 진척이 되지 않고 오히려 후퇴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적용해 본 문제이다.

실제 메르스 대응이나 기업운영은 이 보다 더 복잡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말했듯이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다.

기업이나 단체, 국가가 예전의 시스템을 고집하면 결국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게 될 뿐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변화에 스크럼 방식이 좋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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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드 카본 1 밀리언셀러 클럽 88
리처드 K. 모건 지음, 유소영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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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밀리언셀러 클럽을 즐겨 읽는다.

주로 아포칼립스적인 종말소설이나 스릴러를 즐겨 읽는다.

우연히 인터넷서점에서 이 소설을 발견했다.

밀리언셀러클럽 목록을 거이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은 낯설었다.

밀리언셀러클럽에서 SF소설은 거이 출판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필립K딕을 기리는 필립K딕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안 읽을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보통 SF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소설의 세계관은 아주 먼 미래이다.

배경은 온 우주로 확장되지만 주 무대는 지구이다.

이 소설의 세계에는 인간의 자아가 (영혼이라는 말을 쓰면 소설의 시각과는 많이 벗어나기에 자아라는 말을 쓴다.) 컴퓨터 하드에 저장되듯이 저장 되었다가 필요에 따라 다른 육체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 시대이다.

인간은 돈만 있으면 자신의 저장된 자아를  다른 사람의 젊은 육체든지, 배양한 육체든지, 합성한 조잡한 육체에 옮길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육체 속에 들어가 있는 자아의 저장소를 스택이라고 한다.

스택이 파괴되지 않는 한 인간은 계속 육체를 바꾸어 가며 영원히 살 수 있다.

물론 부자들은 자신의 스택을 다른 곳에 복사해 둔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클라우드개념처럼 자아를 동기화해서 큰 서버에 보관해 두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더 안전하게 영원한 삶이 가능해 진다.

이렇게 오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메트족(무드셀라의 이름에서 따왔다)이라고 부른다.

오래 전 인기를 끌었던 일본 에니메이션 감독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를 생각하면 이해가 좀 쉽다.



주인공 다케시 코마치는 이런 바뀌어진 육체를 입고 행성간에 전투에 임하는 특파대원이다.

무슨 실수인지가 정확히 나와있지 않지만 그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사살 당하고, 그의 스택은 얼터드카본이란 감옥소에 저장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지구의 부자권력자인 메트족인 로렌스 뱅크로프트에게 소환된다.

그는 코바치에게 우수한 육체를 구입해 주며 자신의 살해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고용한다.

뱅크로프트는 얼마전 스택까지 파괴되는 살해를 당했다.

다행히 자신의 자아를 다른 저장소에 복사해 두었기에 다른 육체로 부활할 수 있었다.

저장 전 24시간의 기억은 알지 못한다.


코마치는 뱅크로프트의 사건을 조사해 가며 여러 가지 복잡한 일에 얽힌다.

우선 그를 쫓아다니는 여자 경찰인 오르테가와 만난다.

그는 코마치에게 게속해서 뱅크로프트는 자살한 것이라고 말하며 사건에 관여하지 말 것을 권한다.

그리고 사건 현장마다 나타나 코마치의 육체를 지켜 준다.

알고보니 코마치가 입은 육체가 오르케가의 애인의 육체였다.

또 뱅크로프트의 관능적인 아내인 미리엄 뱅크로프트 유혹이다.

그녀는 코마치가 사건에 손을 땔 것을 요구하며 그를 유혹한다.

300년 된 자아가 20대의 젊은 육체를 입고 그를 유혹하는 것이다.



일그러진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필립K딕의 일그러진 세계관과 데니스 루헤인이나 마이클코넬리의 묵직한 하드스릴러의 형식이 합쳐진 듯한 느낌을 가진 소설이다.

다분히 매트릭스적인 철학적인 분위기도 품긴다.

'기계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과 함께...

영원히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나온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반복된 질문이 있다.

과연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분리될 수 있느냐는 중세기에 반복되었던 철학적인 질문이다.

자신의 육체를 떠나 다른 육체로 들어간 영혼, 또는 육체를 분리된 자아를 진정 그 자신의 영혼이나 자아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21세기 SF소설이나 영화에서 단골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자아가 컴퓨터의 자료처럼 저장되거나 복사되는 것이 가능하다 해도...

저장되거나 복사된 자아가 전에 가졌던 자아아 동일한 자아일까?

저장되거나 복사된 자아가 자신이 전의 자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그 자아는 영혼이 빠져나간 데이터적인 자료의 가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오래 전에 보았던 게리 시나이즈가 주연한 임포스터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게리 시나이즈가 주연한 주인공 스펜서는 지구의 과학자인데 어느 날 외계인 복제인간으로 오해를 받는다.

당시 지구는 외계인과 전쟁 중이었는데 그 외계인들이 지구의 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실제 지구인과 똑같은 외계인을 만들어 지구로 보낸 것이다.

원래 지구인은 살해를 하고 그 사람의 생각과 기억까지 그대로 복사한 외계인을 만들어서 지구로 보내고 중요한 순간에 폭탄으로 변해서 육체가 폭발한다.

문제는 복제된 인간은 자신이 진짜 인간인지, 복제된 인간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스펜서는 자신이 진짜 스펜서라고 확신을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죽은 진짜 스펜서를 발견하고 폭파장치가 가동되어 폭파되는 끔찍한 결말을 맞는다.

(이미 오래 전에 개봉한 영화이니 스포가 발설되도 상관이 없을테니까...)

영화에서는 복제된 스펜서가 진짜 스펜서인가 하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자아가 저장되고, 육체로 이동되고, 결국 복제까지 된다면... 그 자아는 진정한 자신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그런 질문이 든다.

물론 이 소설은 그런 질문과 무관하게 너무나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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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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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흔히 이야기 하는 셜록홈즈에 정통한 '셜록키언'은 아니다.

셜록 홈즈의 소설들은 주로 어렸을 때 문고판으로 대부분을 읽었고...

최근에는 셜록홈즈를 주인공으로 하는 코난 도일의 책을 읽은 적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아서 도일보다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더 좋아한다.

그러기에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홈즈와 아서 도일의 셜록홈즈를 전문적으로 비교하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추리소설과 스릴러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접근하려 한다.



최근에 100년 만에 다시금 셜록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탄생되었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앤터니 호로비츠의 [모리티어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아서 도일의 후손들이 운영하는 셜록 홈즈 공식 재단에서 유일하게 인정한 셜록 홈즈 작가이고...

그의 전작인 '실크하우스의 비밀'을 읽어 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모리티어의 죽음'이 '실크하우스의 비밀'이란 책에서 이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을 접하고 나서야 이 책이 아서도일의 [최후의 사건]이란 책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이 책에서 아서도일은 셜록홈즈와 이별하기 위해 셜록홈즈와 모리어티교수가 스위스의 라이엔바흐 폭포에서 대결을 하다가 죽은 것으로 결말을 맺었다.

물론 후에 다시금 셜록홈즈를 부활시켰지만 이 부분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앤터니 호로비츠는 셜록홈즈의 죽음이라는 부분에서부터 이 소설을 이어간다.


셜록홈즈가 모리어티 교수와의 대결로 죽은 것으로 신문에 대서 특필하자...

그 셜록홈즈의 죽음을 조사하러 프레더릭 체이스라는 미국 탐정이 스위스까지 찾아온다.

사실 그가 찾는 사람은 셜록홈즈가 아니라 셜록 홈즈와 대결하다가 죽은 모리어티 교수이다.

최근에 모리어티 교수는 미국의 범죄 우두머리인 클래런스 데버루라는 거물과 결탁을 하려 했었다.

체이스는 얼굴을 비롯한 모든 것이 비밀에 감추어져 있는 데버루를 쫓고 있었고...

데버루를 찾기 위해서는 데버루와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모리어티 교수를 찾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모리어티 교수의 죽음을 조사하러 나온 애설리 존스라는 경감을 만난다.

그리고 둘은 모리어티 교수의 시체에서 데버루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가 적혀 있는 암호문을 발견한다.

존스 경감이 이 암호문을 해독하고 둘은 데버루를 잡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간다.

존스 경감과 체이스는 마치 홈즈와 왓스처럼 호흡을 맞추어 데버루의 정체를 파악하고..

결국 그를 잡아내는 과정에 이룬다.

물론 그 결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반전이지만...



나는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존스 경감이 홈즈일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왜냐하면 처음 체이스와 만나는 장면에서 체이스의 모든 것을 보고 그의 이력과 여행 과정을 추리해 내는 부분부터, 모든 사건을 접근하는 방식이 홈즈와 똑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의 의도가 홈즈가 존스 경감으로 위장을 해 데버루를 수사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후에 존스가 체이스에게 같이 영국에서 탐정 사무소를 내자는 부분에서는 거이 내 짐작이 맞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조금씩 내 추리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애설리 존스가 런던 경시청에 사무실이 있었고..

동료들과 아는 사이었고...

심지어는 아내와 자녀까지 있었다.

점차 홈즈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럼 이 책은 셜록 홈즈가 없는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책인가?

이 부분에 대한 대답은 이 책을 다 읽고도 얻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책 뒤에 다른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끝이 허망하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아서 도일의 전작들이 언급되고...

그 소설과 연관되는 내용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서 도일의 셜록 홈즈의 등장 인물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가 얼마나 아서 도일의 책을 탐독 했고, 셜록 홈즈를 연구했는지를 느껴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코난 도일은 코난 도일이고, 앤터니 호로비츠는 앤터니 호로비츠이다.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가 앤터니 호로비츠의 코난도일이 될 수는 없다.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가 무언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면...

호로비츠의 셜록홈즈는 스케일이 남다르다.

정통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스릴러와 추리소설의 결합에 가깝다.

셜록홈즈의 지적인 추리능력은 유지한채 현대 독자들에게 맞는 스릴러적인 요소가 충분히 추가 되어 있다.

데버루라는 범죄자와 그 추종자들은 조직범죄같이 더 잔인하고 흉폭하며...

이에 대항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액션장면도 많이 나온다.

아울러 반전 역시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반전 부분만 보면 마치 제프리디버으 소설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이 책을 읽어 보고...

전작 '실크하우스의 비밀'을 꼭 읽어 보려는 욕구가 생겼고...

코난 도일의 다른 셜록홈즈들도 또 다시 읽어 보려는 마음이 들었다.


끝으로...

스포가 되어서 이 소설의 반전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할 수 없지만...

이 책의 앞 부분...

즉 체이스가 홈즈와 모리어티의 죽음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 하는 부분을 자세히 읽어 보기를 권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반전의 힌트를 어느 정도는 이미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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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정지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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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발표되는 유명 문학상 작품집을 빠지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수상작품집이나 문학 계간지에 실린 단편소설을 읽는 것은 내게는 마치 헌 책방에서 좋은 책을 득탬하는 기분이 든다.

모든 작품이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뛰어난 몇 몇 작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짧은 내용이지만 읽고 나서는 한 참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들을 만나기도 한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처음 대면한다.

사실 읽으면서 조금 충격이었다.

얼마 전 또래 사람들끼리 모여서 대화를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대문을 열어 두는 바람에 순시간에 무서운 중2와 초등학생들이 몰려 들어왔다.

한동안 그들의 대화와 사고를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수상작들은 대부분 내 나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적은 나이들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생소한 구성과 문장,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결말로 인해 당황스러웠다.

내가 김훈 작가나 은희경 작가 같은 서사성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인가 보다.

이런 실험적인 작품은 나를 당황케 한다.



나를 가장 당황케 한 작품은 대상 수상작인 정지돈 작가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라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난관을 만났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이구'라는 구한말 황족에 대한 취재형식, 또는 전기형식의 작품인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이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이구와 관련된 건축학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다시 김중업과 같은 사진작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얽혀 있는 건축과 문예사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수많은 외국인물들과 그들의 저서나 음악 등이 언급된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작가노트와 해설을 읽었지만 이 부분을 읽고나니 더 당황스럽다.

같은 동료가 이야기 하는 '후장사실주의'를 처음 들어보는 용어이기도 했고..

도대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정신없이 글을 써 놓았다.

결국 내가 무식하다는 자학? 비슷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남의 탓?을 하자면 젊은 작가의 과도한 열정이 만들어 낸 지적 허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젊은 교수가 한 번의 강의에 모든 것을 가르치려는 열정 때문에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상황, 또는 신인이 자신의 연기에 모든 것을 담으려 하기에 관중들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상을 시상하는 심사위원 입장에서는 이 작가의 실험적인 이런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대상을 주었을테니 나보다 그들이 더 정확했을 것이다.



사실 이 작품집에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은 김금희 작가의 [조중균의 세계]라는 작품이다.

한 출판사의 수습사원인 주인공이 같은 수습사원이며 경쟁자인 해란씨와 그 출판사에서 거이 왕따를 당한 오랜 경력을 가진 교정부의 일을 하는 조중균씨와의 관계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조중균은 조금 특별한 인물로 나온다.

사회의 부당함에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맞서는 인물로 나온다.

그러기에 회사에서도, 사람들에게도 왕따가 된다.

그런 조중균씨를 해란씨만이 따스하게 대한다.

주인공 역시 그런 조중균씨에 대한 부당함을 알지만 회사측 편에 선다.

결국 주인공은 정사원이 되고...

해란씨는 탈락을 하고...

조중균씨는 퇴사를 한다.


소설보다 더 인상이 깊었던 것은 작가 노트에서 한참 후에 조중균씨를 다시 만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그때 주인공은 작가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 주인공이 김금희 작가일지도 모르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한다.

주인공이자 작가는 작가가 된 것을 축하는 조중균씨의 말에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고 한다.

왜 그녀는 작가가 된 것이 부끄러웠을까?

그리고 왜 계속 눈물란 흘렸을까?

글에는 나와 있지 않다.

마치 조중균씨와 해란씨가 왜 그런 삶을 사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릴 수 없었던 것처럼...

작가나 주인공 역시 자신이 왜 우는지에 대한 대답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소설과 함께 해설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최은미 작가의 [근린]이란 소설을 해설하는 이재형의 [그 여자의 사정]이라는 글이다.

[근린]이라는 소설은 한 공원에 소형 비행체가 추락하면서 한 여자가 죽은 사건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그리고 소설은 사건 전으로 되돌아가 근린공원을 중심으로 세 명의 여성 노인과 몸빼 바지를 입은 중년여인,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와 딸의 일상이 기록된다.

당연히 나같은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 중에서 누가 과연 사고로 인해 죽은 여인이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작가는 떡밥?으로 꿈을 판 노인과 꿈을 산 노인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꿈을 판 노인은 꿈을 판 것을 후회하며 불안해 한다.

그러나 비행체 사고로 죽은 여인이 누구인지는 끝내 소설에서 나와있지 않다.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며 해설을 읽었는데 해설을 읽으며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공원에 무인정찰기가 추락하고, 한 여자가 죽는다. 누군가 말한다. '그 여자가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고, 소설은 추락지점에 새겨진 X, '그 여자'가 누군인지를 추적해보겠다는 듯 한 달 전으로 돌아가 차례 차례 후보군을 소개한다. 젊은 여자, 늙은 여자, 중년 여자, 아이와 엄마, 그리고 이들 사이에 끼어들 적절한 조연인 맥도날드 라이더까지, 하지만 결말은 어떤가. 사고 시각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것은 공교롭게도 그들 전부이고, 사망자가 누구인지는 끝내 묘연하다.

 '그여자가 누구인가'라는 우리의 질문에 소설은 대답을 마련해 두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귀결일 터,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이 지도가 아닌 도면이라면, 설열 그 위에 의뭉스러운 좌표가 하나 찍혀 있더라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문제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그 위에 그려진, 이리저리 움직이며 뒤섞이고 갈라진 선들 - 동선들과 시선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평면도를 읽는 일은 곧 '근린'의 관계도를 읽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P197)



이 외에도 성소수자의 아픔과 그것에 공감하지 못한 사람의 아픔을 다룬 이장욱작가의 [루카]라는 작품이나 다른 계간지에서 이미 읽었던 손보미작가의 [임시교사]라는 작품등이 인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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