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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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주말의 명화에서 재미있게 보는 영화 중에서 '내 이름은 튜니티'라는 영화가 있었다. 주인공이 테렌스 힐이란 이탈리아 출신의 배우인데, 금발에 초록색 눈과 터프한 수염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시리즈의 원제는  "My name is nobody"이다. 항상 허름한 차림으로 시니컬한 블랙 유머를 구사하는 튜니티이기에 자주 악당들과 시비가 붙는다. 상대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총을 뽑는 순간 튜니티는 전광석과 같은 솜씨로 총을 뽑아 상대방의 총을 떨어뜨리거나 허리띠를 끊어 놓는 듯한 묘기와 같은 총솜씨를 보인다. 그제서야  상대방이 놀라서 이름을 불으면 "My name is nobody"라고 대답합니다. 어렸을 때 가끔은 나도 튜니티와 같은 삶을 살고 싶었다. 매일 학교와 시험, 그리고 경쟁과 좌절이 아닌, 세상을 마음껏 비웃으며 튜니티와 같은 블랙 유머를 던지며 살고 싶었다.

이런 튜니티와 같은 느낌은 유병재의 농담집 [블랙코미디]를 읽으면서 느꼈다. 다른 점은 튜니티가 서부 시대를 낭만적으로 비웃었다면, 저자는 현대의 야박하고 경쟁적인 세상을 더 시니컬하게 비웃는다. 일반 커피보다는 조금 더 진하고 쓴 블랙커피와 비유되는 블랙 유머다.

"명문 사학 대학의 청소노동자 K 씨. 나이대로라면 학생 신분이 더 어울리는 K 씨는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중략- 유능한 교수는 단번에 K 씨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자신의 밑에서 조교로 일할 것을 제안하였죠. - 중략- 어제까지 박봉의 청소하였던 K 씨. 이제 명문 대학원의 조교가 되어 박봉에 교수 집을 청소하고 애도 봐주고 교수 논문도 써주고 교수 장모님 기장도 담가준답니다." (P 31)

"내 인생은 절대자가 연출하는 예능의 미션 같다. 죽을 각오로 별의별 고난을 다 견뎌내고 '우리 돼지 한 돈' 정도의 보상을 받는 것이다." (P 45)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지만 어떤 똥들은 무서울 정도로 더럽다." (P 91)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다. 나는 코미디를 선택하길 정말 잘 했다. 뭐랄까 직업으로서 확신이 든다. 코미디야말로 내 직업으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왜냐면 너~~~무하기 싫을 때가 많다. 하기 싫어야 직업이지, 좋으면 취미니." (p165)

또한 읽다 보면 별거 아닌 유머 같지만, 생각할수록 세상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는 글들도 많다.

"[매트릭스의 네오, 빨간약을 먹고 진실에 눈 뜰 것인가, 파란 약을 먹고 현실에 순응할 것인가.
[달콤한 인생]의 선우. 보스의 명령대로 희수 애인의 목숨을 빼앗을 것인가, 못 본 척할 것인가.
[다크나이트]의 배트맨, 하비 덴트를 구하러 갈 것인가, 레이첼을 구하러 갈 것인가.
[슬램덩크]의 서태웅. 경기 종료 2초 전 정우성, 신현철의 더블마크를 뚫고 슛을 강행할 것인가, 노마크의 강백호에게 패스할 것인가.
이외에도 부지기수.
가만 생각해 보면 위 영화, 만화들처럼 내가 누구인지 정의해줄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 드라마틱한 갈등의 순간들은 내 인생에 잘 일어나니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혹은 어떤 존재인지는,
대부분 담배꽁초 바닥에 버리고, 알바한테 반말하고, 엄마한테 짜증 부리고,
이런 기억에도 남지 않을 미세먼지 같은 작은 순간들이 모여 결정되는 것 같다." (P 148-9)

이 책의 특징이자, 조금 아쉬운 부분은 농담 전반에 자신에 대한 비하적인 유모의 분위기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아무런 존재도 아니라고 말하는 튜니티와는 조금 다른, 자신이 정말 아무런 인정도 못 받는 존재라는 뼈아픈 자각들의 글들이 실려져 있어, 읽는 내내 연민을 느끼면서도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촬영차 시골에 내려갔던 날, 모두 잠든 어두운 밤, 배가 아파 화장실로 향했다. 잠금장치가 고장 난 화장실에 아니나 다를까 문과 변기의 거리마저 멀었다. 행여 누가 들어올까 두려워 나는 계속 입으로 아! 아아! 소리를 냈다. 왠지 모를 기시감, 아, 나는 여태 이렇게 살았구나. 평생 나의 존재를 이렇게 피력하며 살았구나. 나 여기 살아 있노라고, 여기 존재하노라고. 이렇게 유약한 나, 여기 존재하니 나에게 상처 주지 말라고, 나는 이렇게 살았구나." (P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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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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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웠던 초등학교 졸업반 겨울이 기억이 난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다. 우리 가족은 추운 겨울날 좁은 단칸방에 갇혀서 지내야 했다. 형제들은 매일 아침이면 학교에 가져가야 할 준비물 비용이나 차비를 타내기 위해 부모님에게 온갖 투정을 부렸다. 부모님은 민망하다는 표정만 지었을 뿐이었다. 아예 아버지는 아침이면 어디를 가셨는지 보이지를 않으셨다. 그 해 겨울을 생각하면 비루한 기억뿐이었다. 그럼에도 그 기억은 외면할 수 없는 나의 삶의 일부분이었다.

남한산성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왜 계속해서 그 해 겨울이 떠올랐을까? 이 책은 오래전부터 읽기 위해 구입해서 가지고 있었다. 얼마 전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개봉되면서 다시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나 리뷰에서는 계속해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병자호란을 언급한다. 아무런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국가, 무능했던 조정,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임금 등을 이야기한다. 중립외교를 표방했던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이 되었던 인조와 측근들의 한계도 지적한다. 명과 멀어지고 청과 가까워지려는 광해군의 몰아내고 왕이 되었으니, 당연히 광해군의 정책을 반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그러기에 상대가 되지 않는 적을 충(忠)이나 의(義)라는 단어를 내세워 맞섰다. 그 결과가 국토가 유린 당하고 왕은 남한산성에 갇힌 치욕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소설에는 이런 병자호란의 배경이나 주변 상황에 대한 언급이 없다. 소설의 시야는 매우 좁다. 오로지 남한산성에 갇혀서 세상과 주변을 볼 뿐이다. 철저히 남한산성에 갇혀 있는 왕과 신하의 시각이다. 소설을 읽는 사람 역시 같은 시각에 묶인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철저히 왕과 신하들과 함께 남한 산성에 갇혀 있었다. 청군이 어떻게 국토를 유린하는지, 지방의 군사들이 어떻게 도우러 오는지, 중국 대륙의 정세는 어떻게 변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후일의 역사적 판단 같은 것도 관심 밖의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이 비루한 남한산성의 삶에서 버티는 것이었다. 왕과 함께 살아남는 것이 전부였다.

성 안의 삶은 너무도 비루했다. 왕은 행궁에 머물렀다. 군사들과 백성들은 겨울비를 맞으며 성곽을 지켜야 했다. 추위에 백성들이 살던 초가집의 지붕까지 다 뜯어서 거적으로 만들어 깔아야 했다. 신하들은 그것마저 말의 사료로 써야 한다며 빼앗아간다. 백성들은 굶주린다.  군사들은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린다. 무기가 없어서 강가에 얼어붙은 바위를 캐낸다. 그것도 부족해서 적군이 올라올 때 부으려고 똥물까지 모은다. 비루하다 못해 처절하고, 처절하다 못해 잔인한 시간들이었다. 그럴수록 밖에서는 청의 군사가 점점 더 옥죄인다. 백성들과 군사들은 점점 더 말라간다. 왕은 점점 말이 적어진다. 어둠 속으로 숨는다. 점점 더 비루해진다.

왕이 말이 적어질수록 말이 많아지는 사람들은 신하들이다. 그들은 온갖 대책을 내어놓는다. 물론 모두 말뿐이다. 그중에서 가장 첨예한 말의 대림을 하는 사람이 김상헌과 성 안에 활기를 띠는 것이라고는 신하들의 말뿐이다. 이들은 계속해서 말을 한다. 그중 대표적인 두 사람이 김상헌과 최명길이다.

김상헌은 죽기까지 싸우기를 말한다. 그는 치욕적인 삶보다는 의로운 죽음이 더 낫다고 말한다. 삶이 죽음보다 가볍다고 말한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 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P 143)

반면 최명길은 치욕적인 삶이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삶이 있어야 앞 날도 있다고 말한다.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군병들이 기한을 견디듯이 전하께서도 견디고 계시니 종사의 힘이옵니다. 전하, 부디 더 큰 것들도 견디어주소서" (P 249)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상황은 점점 왕의 선택을 강요한다. 선택은 간단하다. 가벼운 죽음을 맞을 것인가, 무겁고 치욕적인 삶을 견딜 것인가?

결국 왕은 치욕적인 삶을 선택한다.  왕은 청의 칸에게 글을 보내 삶을 구걸하려 한다. 김상헌과 신하들에게 항복의 글을 쓰게 한다. 모두들 치욕을 견디기 싫어 핑계를 대거나 죽음을 선택한다. 결국 치욕의 글은 최명길이 감당한다. 그리고 치욕의 무게는 왕이 감당한다. 드디어 왕은 남한산성에서 나와 치욕의 무게를 짊어지고 청의 칸 앞에 절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남한산성의 비루함에 몸을 떨어야 했다. 과연 누구를 비판해야 할까. 왕? 신하? 청의 칸? 아니면 굶주린 백성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결국 누구도 비난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치욕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남은 왕의 비루함을 연민으로 눈으로 볼 뿐이었다. 결국 이 책은 누구를 비판하기 위해서 읽는 책이 아니었다. 비루함을 견디어 낸 시절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 함께 비루했던 그 시절, 그렇게 살 수밖에 없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으면 얼마 전 읽었던 작가의 에세이집의 글이 떠올랐다. 아버지에 대한 글이었다. 무협소설을 쓰며 꽤나 인기를 얻었었다는 그의 아버지, 그러나 인기는 한때 뿐이고 계속해서 무능함을 보여주었던 아버지, 젊은 작가의 혜성같은 등단에 자신의 시대는 갔다며 밤새도록 통곡했다는 아버지, 술 취해 들어온 날이면 어머니의 잔소리에 조용히 구석 방으로 들어갔던 아버지, 작가는 그런 아버지를 위해 밤새 군불을 때었다고 한다.

어쩌면 남한산성에 갇힌 왕은 작가에게 아버지의 또 다른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비루한 삶에서 치욕을 견디면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그는 이 소설의 단 한 단락에서도 왕에 대한 비판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타인의 삶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나의 삶을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남한산성은 그렇게 끌어안고 울 수밖에 없는 우리의 비루한 역사의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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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1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에 제 이름 ‘해성‘이 있어서 당황했어요. ^^;;

가을벚꽃 2017-11-12 22:04   좋아요 1 | URL
이름이 해성이셨군요^^ 덕분에 오타를 잡았네요 ㅎㅎ 몇 번씩 글을 반복해서 읽었는데도 막상 다시 보면 오타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해성님 감사합니다 ㅎㅎ
 
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 - 학력도 스펙도 나이도 필요없는 신왕국의 코어소리영어
신왕국 지음 / 다산4.0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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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학생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어와 씨름하는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 나이 때에는 초등학교 때 영어 조기교육이 없고, 대부분 중학교에서 처음 영어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가 너무 낯설게 느껴지고 거부감까지 생겼었다. 특히 내가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은 무조건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게 하셨다. 뜻도 모르고, 무조건 외우면 영어가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매번 영어 수업시간에는 외우기 테스트가 있었고, 한 단어라도 틀리면 매질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었던 기억이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 당시 유행하던 미드를 보며 영어공부를 했지만, 오히려 미드만 좋아하게 되었던 슬픈 과거? 도 있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고등학교 때 자퇴를 했으면서도 영어 공부를 통해 미국의 버클리 대학까지 진학한 저자가 자신의 영어공부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제목 역시 [근데, 영화 한 편 씹어먹어 봤니?]라는 조금은 자극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제목이다. 저자의 영어 공부 성공 방법은 바로 영화 보기이다.


 


저자 역시 고등학교 시절 영어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쉬면서 다시금 마음을 잡고 공부하기로 결심을 했다. 혼자 공부를 하는 저자가 택한 영어 공부 방법은 영어 영화 보기이다. 먼저 선택한 것이 애니메이션이다. 저자가 선택한 애니메이션 영화는 [라푼젤]이라고 한다.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서 점차 영어가 들리게 되고 해석이 되었다. 그 후에 택한 영화가 [타이타닉]이다. 저자가 즐겨 보던 영화였지만, 막상 보니 애니메이션 발음과 많이 달라고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대사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후 필리핀 어학연수를 거쳐 미국에 진학하고, 버클리에 편입을 하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영화로 영어를 공부하는 팁은 다음과 같다.

먼저 애니메이션부터 보라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비교적 쉬운 영어 단어와 정확한 발음의 대사가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영화로 영어를 볼 때는 교재나 글을 보지 말고 영어 자체만을 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저자가 말리는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해 봤다. 그래서 구입한 교재 가격만 해도 엄청 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세 번째, 영화를 쭉 보기보다는 대사를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그 대사가 들리도록 하라는 것이다.
네 번째, 영화를 다 보고 그 대사를 따라 하기보다는, 들으면서 바로 따라 해 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일 꾸준히 영화를 보며 공부할 것을 권유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영화로 영어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보다 더 값진 것은 영어 공부에 대한 의욕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다. 읽고 있기만 해도 갑자기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쏟는다. 학창 시절 때 이런 책을 읽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얼마 전 해외여행을 가서 영어가 되지 않아, 주변 지인이 계속 통역을 해 준 일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좀 더 노력해서 여행영어 정도는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리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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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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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살던 시골집 뒷마당에는 안 쓰는 가구들이나 농기구들을 쌓아두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집 뒤편에 있어서 항상 그늘이 지고 눅눅한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그곳에 물건 하나를 가지러 간 적이 있었다. 물건을 들었을 때 바닥에는 온갖 벌레들과 지렁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둡고 습하며, 심지어 물건으로 인해 잠시 비치는 햇볕까지 차단된 곳에는 어린 나이의 내가 생각도 못한 끔찍한 벌레들이 우굴거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들었던 물건을 다시 그 자리에 내던져 놓고 도망 나왔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우리의 경험 속에 존재하는 이런 어둡고 습한 곳을 열어봐야 할 때가 있다. 그곳에 온갖 끔찍한 것들이 우굴댈지라도, 결국에는 그곳을 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곳은 계속해서 그렇게 어둡고 습하고, 벌레들이 우굴거리는 끔찍한 곳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그곳을 열고 끔찍하고 잔인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곳을 열어젖히고, 그곳을 세상에 공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곳은 영원히 끔찍하고 추악한 곳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억을 열어젖힌 책이 있다.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기록인 [콜럼바인]이라는 책이다.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은 에릭과 딜런 이라는 학생이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총기를 난사해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 그리고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끔찍한 부상을 입힌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 텔레비전으로 생중계가 되어, 미국인들에게는 거의 충격과 공포를 준 사건이다. 또한 이 사건은 당시 고등학교 학생들과 주변 주민들, 더 나아가 미국 시민 전체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겼다. 미국인들에게는 가장 기억하기 싫은 사건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역사전 사건을 분석하듯이 이 사건의 배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에릭과 딜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리고 이들이 일으킨 사건의 진행과정과 후유증에 대해 너무나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거의 콜롬바인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최종 보고서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의 탁월한 점은 이런 끔찍한 사건과 이 사건의 여파를 감정이나 주관적인 평가를 배제한 체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술 방법 때문에 독자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객관적인 시선으로 인해 읽는 내내 더욱더 오싹한 공포를 느낀다. 특히 사건의 진행과정을 기술하고 있는 과정에서는 페이지는 넘기면서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너무나 치밀하고 현장성 있는 묘사로 인해 마치 내가 사건 현장을 그대로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에릭이 어마어마한 살육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담담히 피해자들을 따라다니며 총기를 난사하는 과정, 피해자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과정, 엉성하고 혼란한 대응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더욱더 늘어나는 사망자들과 중상자들이 늘어가는 과정 등은 읽는 동안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 책을 거의 3일 동안 읽었는데, 읽는 내내 밤마다 묘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이 책의 주인공인 에릭과 딜런을 만나서 그들이 저지를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은 그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무기력하게 목격하면서 꿈을 깨었다. 아마 이 사건을 접한 미국인들이 겪는 공포와 무력감의 일부분을 내가 꿈으로 경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콜롬바인 사건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에릭과 딜런, 특히 이 사건을 주도한 에릭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저지르려고 준비했던 사건이 얼마나 끔찍한 사건임을 알게 되었다. 만약 에릭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최소 500-600명에서 많게는 1000명 이상이 희생되는 대형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심판의 날'이 오리라 생각했다. 콜럼바인 역시 그렇게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에릭은 웹에서 찾은 [무정부주의자의 요리책]을 보고 최소한 일곱 개의 대형 폭탄을 설계했다. 그는 높이 45센티미터, 직경 30센티미터의 불룩한 흰색 프로판탱크를 골랐다. 이 정도면 고성능 폭발가스를 7.5킬로그램이나 담을 수 있었다. 1번 폭탄은 기폭장치로 에어로졸 캔을 사용했고, 둥근 금속 벨이 위에 달린 구식 알람시계와 선으로 연결했다. 첫 단계는 이 폭탄을 학교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에릭의 집 근처 공원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것만으로 수백 명이 능히 죽겠지만, 실은 돌과 나무를 날려 버리기 위함이었다. 진짜 공격은 그 이후였다. 미끼용 폭탄으로 이웃을 놀라게 하고 경찰을 교란시킨 다음에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 수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들은 맥베이의 기록을 두 배, 세배 경신할 생각이었다. 피해 규모를 '수백 명' '500-600명' '최소 400명'등 다양하게 추정했다. 이들이 준비하고 있던 무기의 위력에 생각하면 사실 이 정도도 적게 잡은 수치였다." (P 64)

"2부는 총격 시간이다. 재밌는 시간이 딜 것이다. 딜런은 인트라텍 TEC-DC9과 산탄총으로 사냥하기로 했다. 에릭은 하이포인트 9밀리미터 카빈 라이플과 산탄총을 골랐다. 그들은 옷자락 안에 숨기기 좋게 산탄총의 총신을 잘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휴대용 폭발물인 파이프 폭탄과 이산화탄소 폭탄을 넣었고, 일대일 격투가 벌어질 것에 대비해서 화염병과 소름 끼치게 생긴 칼도 여러 자루 챙겼다. 탄약고 폭발물 대부분을 끈으로 묶어 몸에 부착할 수 있도록 보병용 멜빵을 맸다. 그리고 배낭과 더블 백에 더 많은 무기들을 담아 가져갔다. 파이프 폭탄 공격을 신속하게 실행하려고 화약을 바른 띠를 팔뚝에 테이프로 붙였다. 마지막으로 무기도 감추고 멋지게 보이려고 검은색 더스터 코트를 걸쳤다." (P66)

다행히 이들이 계획한 폭탄은 터지지 않고, 사건을 총기 난사에 그쳤다. 그럼에도 이 사건 자체는 너무 끔찍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 후에 피해자의 부모나 가족의 입장에서 사망자나 피해자를 기다리는 심정은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그들이 느꼈던 분노와 좌절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자녀나 가족이 두 명의 고등학생의 미친 놀이에 갈가리 찢겨서 시체로 건네졌을 때 부모나 가족들이 느꼈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 책에는 그런 심정들이 인터뷰 형식으로 날 것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이 사건에 대한 공권력과 언론의 대응 방식이었다. 사건이 일어나자 지방경찰과 FBI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지를 못했다. 범죄자가 몇 명인 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딜런이 자살하고 사건 발생 49분 만에 에릭까지 자살을 했는데도, 경찰은 엑릭이 자살한 후 3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사건이 종료된 것을 알았다. 그 사이에 고등학교 건물은 경찰에 의해 봉쇄가 되었고, 총을 맞은 피해자들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거나 치명적인 부상이 악화되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심지어 죽은 시체들은 밤새 학교에 그대로 방치되었고, 가족들은 다음날까지 학교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범인을 찾는 과정 속에서도 엉뚱하게 에릭과 딜런의 범죄를 신고한 친구들을 공범으로 몰아 체포하기도 하고, 피해자들의 동기를 찾지 못해 이들은 고스 족이나 신나치족, 마피아 같은 엉뚱한 집단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건 현장에 갇힌 학생들과 무분별하게 통화하고 여러 가지 정제되지 않는 정보들을 보도함으로써 사건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이런 공권력의 무능력과 언론의 취재 경쟁으로 인해 사건 수습은 더 늦어지고, 피해자들만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왜 미국인들에게 그렇게 끔찍한 기억인지를 알게 되었다. 에릭과 딜런의 성장과정에서부터 이미 범죄의 가능성은 노출되었고, 이들이 범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막을 기회가 있었다. 또한 대응 과정에서도 너무나 어리숙하고,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도 엉망이었다. 무엇보다도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폭탄을 터뜨리고 총기를 난사할 수 있는 미국의 총기 제도의 허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이 끔찍한 기억을 조금도 여과 없이 그대로 끄집어 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13명이 죽은 콜롬바인 사건이 미국 사회에 그렇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면, 300명 이상이 죽은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겼을까.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미국인에게 그대로 생중계 되었다면, 한국인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장면을 그대로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그럼에도 세월호 사건 이야기만 나오면 '이제 그만하자!'라는 이야기가 언급된다. 이제 그만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끔찍하고 충격스러워도 마주해야 한다. 그곳을 들출 때마다 어둡고 습한 곳에서 끔찍한 벌레들이 튀어나오더라도 열어젖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건의 기억은 우리에게 영원히 어둡고 습하고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된다.

한편으로 읽는 내내 끔찍하고 몸서리를 쳤지만, 이런 끔찍하고 몸서리를 치는 사건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담담히 책으로 펴낼 수 있는 저자와 미국 사회의 용기에 대해서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으로 인해 이런 사건이 재발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 낸 것만으로도 그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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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문학동네)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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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시대의 유명한 조각상 중에서 '라오콘 상'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라오콘은 포세이돈의 사제였는데, 신의 노여움을 사서 바다에서 나온 거대한 뱀에 두 아들과 함께 칭칭 감겨서 죽었다고 한다. 이 조각상이 유명한 이유는 죽어가는 라오콘의 뒤틀린 육체와 얼굴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뒤틀려 있으면서, 끔찍하고, 애처로우면서도,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모든 요소들이 한 조각상에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 1편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읽으면서도 계속되는 묘한 감정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다가 라오콘 조각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이 이렇다. 모든 게 뒤틀려 있고, 끔찍하고, 애처롭고, 그리고 아름답다.

이 소설에는 크게 두 가지 사건이 등장한다. 소설의 겉을 둘러쌓고 있는 사건은 갑자기 성장한 스웨덴의 재벌 그룹인 '벤네르스트륌' 기업의 비리이다. 이 기업은 국가자본을 투자 받아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 무기 밀매, 마약 거래, 마피아와의 거래 등. 이 사건을 파헤친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오히려 법원으로부터 명예훼손의 판결을 받고 막대한 벌금과 3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기자로서 생활하며 밀레니엄이라는 잡지를 발간하며 얻은 명성과 기자로서의 생명까지 끝장날 위기에 처해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핵심 사건은 벤네르스트륌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다. 소설의 두 번째 사건이자, 핵심 사건은 40여 년 전에 실종된 헨리크의 조카딸인 '하리에트 방에르'를 찾는 것이다.

네르스트륌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미카엘은 은퇴한 방에르 그룹의 전 총수 헨리크로 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듣는다. 방에르 가문의 고향이자, 헨리크가 머물고 있는 헤데뷔섬에 와서 하리에트 실종 사건을 다시 조사해 달라는 것이다. 성공하든 못하든 1년 후에는 파격적인 금액과 함께 자신을 궁지에 몰린 벤네르스트륌의 비리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까지 제공해 준다는 조건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 미카엘은 거대한 방에르 가문의 역사와 가족사에 파고들어간다. 과연 누가 하리에트를 죽였을까. 이 과정에서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천재적인 해커 리스베트의 도움을 만난다. 리스베트는 사회의 학대와 편견 속에 사회적 부적응자로 낙인찍혀있다가 밀톤 시큐리티라는 회사에 들어가 그 능력을 인정받는다. 그래서 그 회사에서 최고의 조사요원으로 활동한다.

미카엘은 리스베트의 도움으로 방에르 가문의 추악하고도 끔찍한 실체에 접근한다. 단순히 하리에트라는 한 여성의 실종 사건으로 알고 접근을 했으나, 사건을 파헤치는 중에 성경의 이미지를 패러디에서 수많은 여성들을 고문하고 죽인 연쇄살인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범인 방에르 가문 안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재벌가와 관련된 스웨덴 역사의 어두운 면들과 나치에 협력하며 유대인과 여성들을 증오하는 방에르 가문의 인물들, 리스베트를 둘러싼 여성을 향한 성적인 학대와 착취 등이 언급되면서 소설은 기묘하게 뒤틀리고, 끔찍한 장면들이 묘사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이것이 단지 스웨덴에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을 해 봤다. 우리나라 재벌들 역시 온갖 일제시대와 군사독재 정권 속에서 그들에게 협조하며 덩치를 키우고, 그 과정에서 온갖 비리와 악행을 저지르면서 성장했었다. 그리고 그 안의 가족사들은 또한 얼마나 추악한가. 어쩌면 뒤틀린 라오콘상의 모습은 스웨덴의 재벌가가 아닌 한국의 재벌가를 상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최근에 우연히 세계 토픽을 보면서 스웨덴에서 다시금 네오 나치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북아프리카 이민들의 유입이 급장하면서 스웨덴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다시금 인종혐오나 극단적인 국수주의가 유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뒤틀린 라오콘 상이 소설에서 현실로 튀어나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이미 오래전에 전 세계적으로 1억 부가 팔려서 인기를 끌었고, 2012년에 데이빗 피처 감독에 의해 다니엘 크레이그와 루니 마라 주연으로 영화화되기까지 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출간되어 인기를 끌었었다. 이 소설은 해성같이 등장한 작가 스타그 라르손에 의해 10편으로 계획되었으나, 아쉽게도 작가가 3편을 완성한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1편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편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3편 [벌집을 발로 찬 소녀]로 끝을 맺을 뻔했으나, 새로운 작가인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라는 작가에 의해서 다시금 4편 [거미줄에 걸린 소녀]라는 작품으로 시리즈가 다시 시작되게 되었다. 그리고 4편의 출간과 함께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4권의 시리즈를 재출간하게 되었다. 재출간된 소설로 이 책을 처음 읽으면서 왜 이 소설이 전 세계적으로 1억 부나 팔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소설이 스웨덴의 역사와 경제의 어두운 면뿐만 아니라, 인간 내부의 가학적인 성적 어두운 면까지 너무나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1부 밖에 읽지를 못했지만, 2부와 3부, 그리고 새로운 작가에 의해 쓰인 4부까지도 기대되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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