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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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래된 영화이지만, 가족 안의 어머니와 아들의 지나친 집착과 사랑을 다룬 [올가미]라는 영화가 있다. 지금은 한류스타로 '지우히메'로 불리는 최지우가 신인 때 연기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수진은 귀공자 타입의 멋진 남성인 동우와 결혼을 한다. 동우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시어머니 역시 수진에게 매우 따스하게 대해 준다. 다만 너무나 친근한 어머니와 아들 사이가 조금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결혼 얼마 후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목욕탕에서 시어머니가 벌거벗은 남편을 목욕을 시켜 주는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서 남편에게 따지지만 남편은 엄마와 아들 사이에 뭐가 문제냐며 오히려 따지는 수진을 이상하게 여긴다. 영화는 점점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사랑의 집착이 드러나고, 결국 극단적인 파국의 상황으로 결말이 난다. 오래전에 보았지만 시어머니가 수진에게 했던 충격적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넌 내 아들에게 사 준 장난감에 불과해!"

 

물론 영화의 스토리는 매우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이렇게 부모와 자식 간에 미분화된 상태인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아들의 삶을 간섭하는 어머니, 딸의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아버지... 그로 인해 자녀가 결혼을 해서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가족의 두 얼굴]이란 책에서 저자인 최광현 교수는 이런 한국 가정들의 어두운 면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의 유명한 가족 상담 학자들의 이론을 인용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자신이 상담을 한 한국 가정의 사례별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한국 가정의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저자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가족의 건강한 자아분화이다. 자아분화라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에게서 감정적으로 독립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태가 되었을 때 아이가 책임감 있게 잘 자라서,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이런 감정분화가 되지 않았을 때는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가족 상담의 선구적 학자인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은 정신분열을 유발하는 가족은 가족 자아(undirrerentiated family ego)가 미분화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았다. 이런 상태의 가족은 개별 구성원들의 자아가 서로 건강하게 분리되어 있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뒤엉켜 있으며, 서로를 구속하는 애증관계에 얽혀 있다, 가족 자아가 미분화된 가족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종의 가족 최면(family trance)에 빠진다." P 55

저자는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또는 부부 사이에 가지고 있는 문제, 부모와 자녀가 가지고 있는 문제 등은 원래의 가정에서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던 아이는 커서도 이런 행동을 그대로 반복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미워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행동을 자신이 부모가 되어서 자녀에게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증상을 어린 시절에 부정적인 패턴이 고착화되어 이를 반복하려는 성향이라고 말한다. 이로 인해 어린 시절의 상처가 계속해서 대를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저자는 이를 끊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직면하고 이를 끊어버리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감정의 실체를 보는 것이다. 자신이 왜 배우자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 자녀에게 왜 분노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단순히 배우자나 아이의 잘못 때문인지, 아니면 내 안에 있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족에게 배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래 가족에서 받았던 상처를 지금의 가족에게로 가져오는 일을 끊어야 한다. 저자는 이것을 자아분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아분화란 정서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자아분화가 건강할수록 건강한 가족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자아분화가 발달한 사람은 감정을 이성적으로 잘 통제하고 조절한다. 가족은 감정의 덩어리다.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 밖에서보다 가족 안에서 더 감정 반사적으로 행동한다.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화를 내고, 이유도 없이 아내와 남편에게 분노를 느끼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정을 떠나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라면 설령 분노의 감정을 느껴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살아가면서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 곳 또한 가정이다. 사랑의 둥지인 가정 안에서 큰 상처를 입는다. 가족 간 감정 반사적인 행동이 자주 일어나기에 이런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 P 247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흉폭해질수록 우리가 마지막 안식처는 가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가정이 점점 안식처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게 된다. 그로 인해 점점 세상의 벼랑으로 몰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상처 입고, 찢기었을 때 마지막으로 가서 쉬고 안식을 누릴 곳은 가정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가정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나 자신의 내면이 변화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분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면, 상처와 분노를 그대로 지금의 가정 안으로 끌고 들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정과 개인의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아주 좋은 책이다. 이 책으로 자신의 가정과 내면의 모습을 본 후, 결단은 개인의 몫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끊고 가정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지막 글에서 가정은 노력한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의 상처 입은 가정들에게 권하고 싶은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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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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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언론의 뜨거운 감자였던,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의 구속 적부심 판결이 오늘 기각되었다. 이로 인해 방송과 인터넷이 온통 난리이다. 서민들은 단 돈 몇 천원 때문에 감옥에 가는데, 몇 백억 원을 제공한 사람은 왜 멀쩡하느냐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판사가 자신의 판결에 불복해 행패를 부린 피고인에게 1년 징역에서 3년 징역을 선고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판사가 자신의 감정대로 피고를 판결한다는 비판이 뜨겁다. 이로 인해 법조계의 판결이 국민의 법감정과 거리가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럴 때면 가끔 영화에서 컴퓨터가 통제하는 미래사회를 생각해 본다. 영화에서는 인간이 하는 일은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하고 실수가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컴퓨터가 인간의 일을 대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컴퓨터가 인간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재판까지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더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현직 판사인 문유석 작가가 지은 [미스 함무라비]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깨어졌다. 이 소설에는 신임 판사인 박차오름이라는 여판사가 44호 법정의 좌배석판사로 배정받으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박 판사는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과외 교사에서 성추행까지 당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폭력적인 남성이나 성추행범을 보면 참지를 못한다.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야 사건에서도 감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로 인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미스 함무라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박 판사는 이런 좌충우돌의 경험을 통해 점점 판사의 역할을 배워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죽일 놈이지만, 그 사람의 살아 온 환경과 상황을 보면 동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다. 또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동정이 가는 피고인이지만, 속에는 매우 사악한 의도로 재판장과 주변 사람들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박 판사는 동표 판사의 도움으로 이런 사건들을 접해가면서 판사로서의 시각을 키워간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객관적인 시각이 아닌, 감정으로 사람을 재판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자책하는 박 판사에서 선배 판사는 이렇게 말해 준다.

"박 판사님,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박 판사님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어서 누구보다도 더 좋은 판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남의 상처를 누구보다 더 예민하게 느낄 줄 아니까요." (P 194)


 

 

 

어쩌면 우리는 판사가 컴퓨터와 같은 인간이 되기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외부적인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온갖 데이터를 종합해 정확하고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판사를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될 때만이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쩌면 감정이 있는 사람이 하는 판결이기에 그 판결이 더 정의로운 판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무조건 정해진 잣대를 통해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컴퓨터보다는 그 다른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기에 더 정의로운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경우 판사가 자신의 감정에 이끌려 주관적인 판단을 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부분까지도 판사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의 박 판사처럼, 단순히 사법시험을 통과해서 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과 싸워 정의를 추구하는 판사가 되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판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대하는 정치인, 종교인, 기업인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다. 비록 지금 우리는 여러가지 사건으로 인해 사람에게 실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마지막까지 희망을 가져야 할 대상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동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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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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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세대에 걸친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는 소설들을 좋아한다. 이런 소설에는 어김없이 주인공의 광적인 사랑이 등장한다. 가문의 번영과 쇠락의 과정 속에서 주인공의 집착적인 사랑이 대를 이어가며 전개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문 소설인 박경리 작가의 [토지]에서 최 참판 댁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면서도 길상에 대한 서희의 집착적인 사랑이 등장한다. 칠레의 대표적인 작가의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에서도 4대에 걸친 투루예바 가문의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하며 에스테판이라는 남성이 자신의 아내 클라라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이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폭풍의 언덕]에서 웨더링 하우스라는 황량한 건물을 배경으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와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둘의 사랑은 집착적인 사랑을 뛰어넘어 광적인 사랑으로 표현된다. 소설에 등장하는 히스클리프의 광기적인 사랑으로 인해 읽는 동안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열세 번째 이야기]는 소설에 대한 미스터리를 다루는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영국의 명망 있는 가문인 앤젤필드 가문의 3대에 걸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랑도 결코 평범한 사랑이 아니다. [폭풍의 언덕]처럼 집착적이기도 하며 광기적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 마거릿은 헌책방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많은 책을 읽으며 자랐다. 그녀는 몇 사람의 전기를 작성하는 것으로 소일을 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당대 최고의 작가인 비다 윈터라는 작가로부터 편지가 온다. 자신의 전기를 써 달라고 초청하는 것이다. 마거릿은 비다 윈터의 전기를 쓰기 전, 그녀의 소설을 읽다가 [열세 번째 이야기라]는 책을 읽게 된다. 그곳에는 12개의 소설만 등장할 뿐, 13번째 소설은 등장하지 않는다. 과연 그녀가 숨겨 둔 13번째 이야기는 무엇일까?

마거릿은 비다 윈터의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중, 그녀의 본명이 에덜린이며, 에멀린이라는 쌍둥이 자매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둘은 유명 귀족인 앤젤필드 가문의 자손이었다. 그때부터 마것릿은 비다 윈터의 이야기를 통해 쇠락하는 앤젤필드 가문의 3대에 걸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광기적으로 변한 조지 앤젤필드, 그는 아들 찰리와 딸 이사벨을 두지만 오로지 이사벨만을 집착적으로 사랑한다. 그것은 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사벨이 떠나자 아버지 조지는 죽고, 찰리만이 집착적으로 이사벨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사벨이 데리고 온 것은 제대로 양육을 받지 못한 거친 쌍둥이 자매인 에덜린과 에멀린이다. 이 둘은 쌍둥이이면서도 서로에 대한 광기적인 집착으로, 오로지 둘만의 세계에 산다. 그리 외부의 사람들이 둘을 떼어 놓으려 할 때 엘젤필드 가문의 재앙이 시작된다.

과연 비다 윈터는 정말 에덜린 앤젤필드였을까? 그렇다면 에멀린에 대한 에덜린의 광기 어린 집착으로 어디로 갔을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스터리가 점점 더 결론을 기다리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다만 너무나 뜸을 들인 만큼 결론은 그리 충격적이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운 소설이었다. 마치 폭풍의 언덕의 광기 어린 사랑을 다시 보는 듯한 현대 작가 다이앤 세터필드의 엔젤필드 가문의 쇠락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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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감옥 모중석 스릴러 클럽 41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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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난히 깊은 물 속을 싫어한다. 아마 어릴 적에 물에 빠진 기억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와 함께 공원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분수대 난간에서 놀다가 분수 물에 빠졌다. 어린 기억에 분수물이 상당히 깊게 느껴졌다. 내가 물 속에 다 잠기었던 것 같은데, 외할아버지가 순간 손을 내밀어 건져 주셨다. 조작된 기억일지 몰라도, 그때 물 속에서 수면을 뚫고 내려오던 외할아버지의 손이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바닷가든, 수영장이든 발이 바닥에 닫지 않으면 순간적이 오싹함을 느낀다.


이런 물에 대한 공포는 영상을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가끔 영상을 통해 바다 깊은 곳에서 잠수하는 영상이나, 깊은 심해에 대한 영상을 볼 때면 무언가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공포를 느낀다. 이런 나의 공포를 더 자극하는 소설을 읽었다. 독일 작가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소설 [물의 감옥]의 처음은 죽음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전작 [지옥계곡]에서는 눈보라가 치는 절벽의 산에서 한 여성이 떨어지는 장면을 너무나 생생하며 묘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의 감옥]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서 물 속에서 익사하는 장면이다. 너무나 생생해서 내가 마치 물 속에 갇힌 듯한 오싹함을 느낄 정도이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여자의 몸을 에워쌌다. 뒤통수를 세게 맞아 몽롱해졌던 의식이 서서히 돌아왔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입을 꼭 다물고 눈을 크게 떴다. 물이 눈동자에 닻자 부이 붙는 느낌이었다. - 중략 - 어떤 두 손이 그녀를 물속으로 세차게 밀로 있었다. 한 손은 목덜미를 눌렀고, 다른 손은 쇠칼퀴처럼 엉덩이 근육을 파고들었다. 여자는 다리를 버둥거리며 양손으로 욕조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그러나 매끄러운 에나멜이 칠해진 데다 물기가 어린 탓에 잡을 곳을 찾지 못하고 손이 계속 미끄러졌다. 긴 손톱이 욕조를 끍으며 끔찍하게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P 9-10)"




소설은 물의 정령이라는 숨겨진 연쇄살인마가 여성들은 살해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물의 정령이 살해하는 여성들은 모두 에렉 슈티플러라는 형사와 관련된 여성들이다. 처음에는 에릭과 관계한 창녀가, 그 다음에는 에릭의 전처가 모두 익사한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자신을 물의 정령이라고 소개한 살인자가 계속해서 에릭을 협박한다. 에릭은 수사팀을 이끌면서도 물의 정령이 자신과 관련된 것은 의도적으로 숨긴다.


에릭의 수사팀에 함류한 신참 여형사인 마누엘라는 이런 에릭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다. 그녀는 에릭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고, 무언가에 쫓기고 있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여성들이 익사하는 사건이 에릭과 연관이 되어 있음을 추적한다.


소설의 초반부는 에릭에 대한 동정심이 유발하는 분위기이다. 에릭은 아내와도 이혼을 하고 혼자 고독하게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물의 정령이라는 살인마는 그를 협박하며, 그의 주변의 여성들을 죽인다. 에릭은 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권총으로 자살을 하려는 시도까지 한다. 이러니 어찌 동정심이 들지 않겠는가. 그런데 후반부에 가면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에릭이 물의 정령으로 불리는 뢰구르라는 남성에게 저지른 끔찍한 일들의 전모가 밝혀진다. 뢰구르라는 남성을 물의 정령이라는 끔찍한 악마로 변하게 된 것이 사실은 에릭의 잔인함 때문이었다. 과연 누가 범죄자일까? 작가의 놀라운 반전과 뛰어난 묘사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스릴러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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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칠웅
리산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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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CCTV의 백가강단은 중국에서도 매우 알려져 있는 강연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역사나 인문학의 전문지식을 대중들에게 전달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어 유명한 강사들을 배출했다대표적인 강사가 삼국지 강의의 자오위핑이다. 고대 삼국지의 인물들의 통치와 전략을 현대 경영에 접목시켜 강의를 해 매우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서서 위즈덤 하우스라는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런 백가강단의 또 한 명의 인기있는 강사인 리산 교수의 [전국칠웅]이란 강의가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강의는 [춘추오패]라는 강의 뒤에 이어진 강의로 춘추전국시대 중 후반기인 전국시대 20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나라가 멸망 후 중국은 약 450년 간의 춘추전국시대가 이어진다. 이 시대에는 수많은 제후들과 귀족들이 스스로 왕으로 지칭하며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던 시기였다. 특히 전기의 춘추시대에 비해 후기의 전국시대에는 주나라의 황제를 섬기는 최소한의 규율마저 사라지고, 오로지 강자가 약자를 집어 삼키는 끔찍한 약육강식의 시대가 벌어진다. 이 중 가장 강대한 패권을 가진 7나라를 전국칠웅이라고 부른다.


전국칠웅의 나라의 왕들은 자기 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 유명한 인재들을 모으기도 하고, 정치나 군사제도를 정비하여 강대국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자기독선과 욕심에 빠진 어리석은 왕들로 인해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전국시대에 최초의 강대국인 된 나라는 위(魏)나라였다. 위나라를 처음 강성하게 한 위문후는 인재들을 모으고, 군사조직을 정비해서 주변 나라들을 정비하며 강대국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의 가장 뛰어난 점을 인재들을 등용하고, 그 인재를 믿고 일을 맡기는 부분을 이야기한다. 그 예로 악양장군과의 일화를 든다. 위문후의 명령을 받아 중산국을 정벌하러 간 악양장군의 3년간의 전투 끝에 승리를 거두고, 위나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멋진 전공을 자랑한다. 그러자 위문후는 곁에 있던 신하에게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오게 한다. 그곳에는 3년간 악양을 비난한 수많은 글들이 쌓여 있었다. 결국 전방의 장군이 공적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를 믿고 후원해 주는 후방의 왕의 역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아랫 사람을 믿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기도 하다. 이런 위문후의 리더십으로 위나라는 전국칠웅 중 초기에 가장 강력한 강대국이 되고, 주변 나라들을 위협한다. 그러나 뒤의 위무후와 양혜왕을 거치면서 위나라는 세력을 잃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왕이기도 한 양혜왕은 전국시대의 패왕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부모님대의 영광을 모두 사라지게 한다. 요즘말하면 경험이나 실력도 없으면서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사업을 말아먹는 재벌 3세 정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 시대에는 주요 3대 전쟁이 있었다. 계릉전쟁, 마릉전쟁, 장평대전이다. 이 중 계릉전쟁과 마릉전쟁은 주로 위나라와 제나라간의 싸움이었고, 모두 양혜왕때의 전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패전으로 위나라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위나라의 양혜왕은 전국시대의 패자가 되겠다는 야먕으로 같은 위나라와 함께 같은 3진으로 불리는 형제국가인 조나라와 한나라와이 연합을 깬다. 그리고 동쪽으로 눈을 돌려 약소국인 동쪽 나라들을 점령해 간다. 이 과정에서 조나라와의 갈등이 생기고, 결국 조나라의 구원 요청으로 당시 힘을 키우고 있던 제나라가 참전을 한다.


당시 제나라에는 우리가 손자병법으로 잘 아는 손빈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계략으로 두 커다란 전쟁에서 승리하고, 마릉전쟁에서는 위나라 장군 방연과 위나라 태자의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그로 인해 위나라는 멸망의 길을 걷는다.


그후 잠시 제나라가 위세를 떨치다가 동쪽의 진나라가 법가 사상가인 상앙의 개혁을 통해 강대국이 된다. 그리고 제나라가 한나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진나라와 조나라가 장평이라는 곳에서 전국시대 최대의 전투를 벌인다. 후에 장평대전이라고 불리는 이 전쟁에서 조나라 왕 조효성왕은 무리한 승리 욕심에 전장에 있는 노장인 염파를 불러들이고, 전공에 대한 욕심으로만 가득찬 조필을 내보낸다. 조필은 승리의 욕심에 염파가 2년 동안 공들여 구축한 방어진을 나가서 진나라를 공격하다가 포위를 당해 전사한다. 그리고 진나라는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명을 생매장 시킨다. 이 장평전쟁을 통해 진나라를 전국시대의 패자가 되고 후에 전국을 통일한다.



왕이 통치하는 고대국가에서 제왕의 리더십은 국가의 흥망성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뛰어난 재상이나 장군이 있었도, 그 재상이나 장군을 믿어주고 사용하는 왕이 없다면 그들은 재능을 발휘 할 수가 없다. 뛰어난 염파 장군을 불러들인 조나라의 조효성왕의 경우가 이것이다. 결국 이렇게 옹졸한 왕의 잘못된 리더십의 피해는 백성들이 그대로 지게 된다. 장평대전에서의 희생된 40만 군사와 백성들은 한 사람의 잘못된 리더의 오판으로 인한 희생양이기도 하다. 결국 예전이나 지금이나 허황된 욕심과 간신들의 감언이설에 빠진 지도자들의 실정은 모두 백성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다.


이 책은 전국시대의 흐름과 왕들의 통치과정, 전쟁의 진행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딱딱한 인문서나 경영서와는 달리 흥미로운 전국시대의 역사와 전쟁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선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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