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헌터
존 더글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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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병원에 가면 많은 환자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괴로운 모습과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항상 이렇게 아픈 사람들을 대하고, 그들의 아픔을 치료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까? 모든 직업마다 자신들의 고충이 있겠지만, 육신이나 마음이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는 얼마나 강할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다면 경찰관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떨까? 그것도 사진으로라도 범죄현장을 보게 되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끔찍한 연쇄살인범들을 추적하는 경찰관들은 어떨까? [마인드헌터]는 우리가 흔히 프로파일러라고 부르는 심리 수사관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미국 FBI 행동과학부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존 더글러스의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의 성장과장과 FBI에 들어가서 어떻게 프로파일러가 되었는지의 과정과 함께 그가 수사했던 끔찍한 범죄와 살인마들의 심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프로파일러란 범죄현장의 단서를 통해 범죄자의 성향이나 행동, 심리 등을 파악해서 범죄자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사관을 말한다. 주로 연쇄살인범이나 아동 강간살해범과 같이 끔찍한 살인범들을 추적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이런 프로파일러라는 개념이 생소한 1970년대에 FBI의 행동과학부에 들어가서 프로파일러의 기초 개념을 만든 인물이다. 저자인 존 더글러스는 영화 [양들의 침묵]과 [레드 드래곤], [크리미널 마인드]의 주인공의 모델이기도 하다. 물론 저자 이전에도 이런 수사기법은 있었지만, 주로 비주류로 취급되거나 미신, 또는 우연에 기대는 수사기법으로 여겨졌다. 저자가 기존과 다른 방법이 있다면, 바로 감옥에 갇힌 연쇄살인범들을 면담한 것이었다.

간호사 숙소에 들어가 여덟 명의 간호사를 강간하고 죽인 리처드 스펙, 여성들의 절단해서 그 시신을 자신의 창고에 전시해 둔 제리 브루도스, 10대 5명의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한 몬티 리셀, 자신을 샘의 아들이라고 부르며 차 안에서 데이트하는 남녀들에게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한 데이비드 비크위츠 등 그가 인터뷰한 인물들은 모두 미국 사회를 깜짝 놀라게 한 연쇄살인범들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시그너처'라는 개념이다. 이 시그너처를 더 쉽게 이해하고, 비교 설명하기 위해서 만든 개념이 'MO'이다. MO는 범죄자가 순간적인 욕구와 상황에 의해 변하는 범죄의 성향이나 방법이다. 반면 시그너처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범죄자 안에 숨어있는 잠재적 욕구이다. 흔히 말하는 범죄 인자와 비슷한 개념이다. 저자는 프로파일을 할 때 바로 이 시그너처를 발견해서 범죄자를 추정한다. 저자는 FBI 초창기 시절 단순한 도박사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한 도박사와의 대화에서 처음 이 개념을 가지기 시작했다. 왜 도박을 하느냐는 질문에 도박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기, 흘러내리는 빗방울 두 개가 보이지요? 차장의 왼쪽 빗방울이 차장 바닥에 떨어지면 곧이어 오른쪽 빗방울이 아래로 흘러내려요. 우리는 슈퍼볼 때문에 이 짓을 하는 게 아니에요. 아래로 흐르는 빗방울처럼, 우린 이렇게 흐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존, 당신이 무슨 수단을 써서 막으려 해도 우리를 저지할 수는 없어요. 우린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거예요." (P 102)

이 책에서 직접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저자가 수사한 살인범들의 시그너처 중에는 열등감과 여자에 대한 분노가 뒤 썩인 감정들 변태적이고 변태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한 감정이 많다.

앞에서 저자가 수사한 연쇄살인범 중 대부분은 이혼한 가정에서 부모에게 버림을 받거나 학대를 당한 인물들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가진 인물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10대 때 5명의 여성을 강간하고 살해한 몬티 랠프라는 인물이다. 저자는 몬티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묘사하다.

"우리는 몬티 랠프 리셀을 면담하면서 가장 문제라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조각들을 모두 짜 맞출 수 있었다. 몬티는 부모가 이혼할 당시, 세 아이 중 막내였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버지니아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그려는 새 남편 옆에만 있으려 했고 아이들은 거의 돌보지 않았다. 몬티는 어릴 때부터 사고 뭉치였다. 학교 벽에 외설스러운 낙서를 하고, 마약을 하고, 언쟁을 벌이다가 격분한 끝에 사촌에게 BB 탄 총을 쏴댔다. 몬티는 그 총을 양아버지에게 얻었다고 말했다. 양아버지는 충동적으로 그 총을 공중에 쏴대더니 총을 부러뜨려 개머리판으로 몬티를 마구 때렸다. 몬티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의 두 번째 결혼도 실패로 끝나 가족은 다시 버지니아로 돌아왔다. 몬티는 그 결혼이 실패로 끝난 것은 자기와 누나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의 범죄 경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면허, 강도, 차량 절도, 그리고 성폭행까지." (P 207)

그가 수사했던 알래스카의 인간 사냥꾼 로버트 헨슨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주로 매춘부 여성들을 납치해서 숲속에 풀어놓고 사냥을 했다. 저자는 핸슨에 대해서는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는 핸슨의 배경에 대해서 모든 사항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뚜렷한 패턴이 나왔다. 그는 키가 작고 몸이 호리호리한 데다 얼굴이 심하게 얽어 있었다. 그리고 심한 말더듬이였다. 10대 때 심한 피부 염증 문제로 고민했을 것 같았다. 얼굴이 여드름투성이인 데다 말까지 더듬으니 친구들, 특히 여자 친구들의 놀림감이나 기피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되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새로운 변경 지대에 가서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각오로 알래스카로 이사 왔을지도 모른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매춘부들에게 폭행과 고문을 가한 것은 자기를 우습게 보았던 모든 여자를 상대로 보복을 하려는 행위였다." (P 367)

그렇다고 어린 시절 불우한 시절을 보냈거나 내면에 시그너처가 있다고 모두 범죄자나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시그너처를 폭발시키는 환경이 주어졌을 때 범죄자가 된다고 말한다. 몬티 러셀의 경우는 여자친구의 변심이었다. 그가 첫 번째 강간과 살인을 저지른 것은 여자 친구가 변심해서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 장면을 목격한 후였다. 그것이 그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해 그 안의 시그너처를 폭발시켰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인간이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라?'라고 생각되는 끔찍한 범죄들과 범죄자들을 접했다. 과연 이런 범죄자들과 범죄를 연구하는 사람은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그가 범죄자를 연구하고 수사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언급한다. 그리고 결국 그 스트레스로 죽음의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점점 끔찍한 범죄가 늘어나는 시대이다. 과연 이런 범죄에 대해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까? 이 책이 조금의 대안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 책이 시그너처라는 개념에 전부 동의하지 않지만, 만약 그런 시그너처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생성하는 사회적인 문제를 최대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노력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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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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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되어서 더 유명하기도 한 코맥 매카시의 [로드(원제 : The Road)]라는 작품의 배경은 핵 전쟁으로 멸망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길을 걷는다. 세상은 온통 잿빛 폐허이고, 어디를 찾아봐도 희망은 없다. 전쟁으로 인해 세상은 계속 불타고 있다. 남은 사람들은 굶주림 속에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서로를 잡아먹는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길을 아버지는 아들과 걷는다. 세상은 온통 절망뿐이다. 그가 살아서 걷는 이유는 오직 옆에 있는 아들 때뿐이다. 아버지에는 오직 아들만이 희망이고, 그 아들이 있기에 걷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도착하는 곳 어디에서 희망은 없다. 보이는 것은 온통 잿빛 폐허 속의 절망뿐이다.

드디어 요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의 [팬텀]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팬텀]을 읽으며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떠올렸다. 해리 홀레 시리즈는 작가 특유의 거칠고 어두운 스타일로 독특한 해리라는 인물과 배경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는 더 강렬해지고, 더 어두워졌다. [팬텀]의 배경은 현대화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는 동안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핵 전쟁으로 멸망해 절망만 남은 [로드]의 세상을 떠올리게 된다. [로드]를 떠올리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아들이다. [팬텀]에서 절망적인 오슬로의 도시를 해리는 비록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자신을 아버지라고 불렀던 올레그와 함께 걷는다. 마약과 살인, 음모로 인해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틈에서 올레그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 장면들이 너무 애절해 [로드]의 아버지의 몸부림을 연상케 한다.  

소설의 시작은 해리가 다시 오슬로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작가가 그리는 해리의 모습은 예전과는 다르다. 더 마르고, [스노우맨]에서의 상처인 잘린 손가락과 [레오파트]에서의 상차인 얼굴의 짙은 흉터를 간직하고 있다. 오슬로 역시 해리의 몸처럼 망가져 있었다. 비록 겉으로는 예전보다 나아 보이지만 여전히 마약과 범죄가 무방비가 되어 있는 모습니다. 작가가 그리는 오슬로의 마약 거리와 구시가지는 음산함을 넘어 지옥의 절망까지 느낀다.

"이곳은 오슬로에서 마약 주사를 놓는 곳, 약쟁이들의 소굴이었다. 이 도시의 버림받은 아이들이 몸을 다 숨겨주지도 못하는 막사 뒤에서 제 몸에 주사를 놓고 약에 취해 날뛰는 곳이었다. 그 아이들과 멋모르는 선의를 베푸는 그들의 사회 민주주의자 부모들을 가르는 엉성한 칸막이. 장족의 발전이야.  아이들은 더 아름다워진 경관에 둘러싸여 지옥행 여행길을 올랐다." (P 26)

"그는 크바드라투렌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오슬로 최초의 시가지이지만 지금은 25만 명의 일개미들을 위한 관공서와 사무실이 들어선, 아스팔트와 벽돌의 사막이자 네다섯 시에 모두가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야행성 설치류의 세상이 되는 것이었다. 크리스티안 4세가 르네상스 시대의 기하학적 질서라는 이상의 원리에 따라 사각형의 구역 안에 이 도시를 건설하던 당시에는 간간이 화재가 일어나 인구가 유지되었다. 윤년이 들 때마다 밤에 불길에 휩싸여 이 집 저 집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다 타서 바스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P 29)

해리가 다시 오슬로를 찾은 것은 라켈의 아들이자, 한때 자신을 아버지로 불렀던 올레그라는 소년 때문이다. 그가 살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다시 만나 올레그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그 안의 순수함도 사라져 있었다. 이미 마약 중독이 되었고, 중독 속에서 친구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갇혀 있었다. 감옥에서 만나 올레그는 해리에게 왜 자신을 떠났냐고 소리 지른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는 신종 마약이 바이올린을 구해 오라고 말한다. 해리는 오슬로에서 맛보았던 절망을 올레그에게서 똑같은 맛본다. 그럼에도 그는 실낱같은 희망은 올레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오슬로 거리를 뒤지고 다닌다.

온갖 마약과 조직들이 판치는 오슬로는 겉으로 보기는 한결 깨끗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더 강력해진 '바이올린'이란 마약과 그 마약을 통제하는 '두바이'라고 불리는 베일 속에 가려진 범죄자와 조직이 있다. 그리고 두바이와 어두운 커넥션인 정치인과 경찰들이 존재한다. 올레그는 죽은 그의 친구 구스토와 함께 두바이 밑에서 마약을 팔았다. 순수했던 올레그가 왜 구스토를 만났을까? 그리고 왜 마약중독과 마약 상이 되었을까? 그리고 정말 올레그는 구스토를 죽였을까? 해리는 점점 진실로 들어가면서 두바이와 어두운 커넥션의 반격을 당한다. 그럼에도 그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혼자 몸부림친다. 자기 몸을 다 망가뜨리면서라도 구해야 할 아들이기에...

해리 홀레 시리즈는 계속해서 읽어오고 있지만, 이번 소설은 더 절망적이고 어둡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문장이 더 깊어져 그가 묘사하는 오슬로와 해리의 내면이 더 어둡게 느껴진다. 작가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해리를 점점 더 구석으로 몰아붙인다. 그럼에도 올레그를 오슬로의 마약 소굴로부터 끄집어 내려는 해리의 노력은 눈물이 겹다.

여기에 소설의 어둠을 더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올레그가 죽인 구스토라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는 죽은 구스토의 독백을 통해 그가 등장한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해리가 사건을 해결하면서 묘사하는 내용과 함께 이 구스토의 독백이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구스토는 마치 오슬로를 닮았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남성이기에 그를 보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자들까지 다 반한다. 그러나 구스토 안에서 잔인한 자기학대와 절망이 존재한다. 구스토는 어려서 부모님에게 버려져 입양되었다.  그는 양어머니를 망가뜨리고, 이복 여동생까지 망가뜨린다. 그는 자신과 접하는 모든 것을 마약과 성적 타락으로 망가뜨린다. 그리고 올레그는 우연히 구스토와 만나 친구가 된다. 순수했던 올레그는 구스토에 의해 하나씩 무너지고, 결국 구스토를 죽였다는 혐의까지 받는다.  과연 해리는 죽은 구스토의 망령에서 올레그를 구해낼 수 있을까?

소설의 제목 팬텀은 유령이라는 뜻이다. 소설 곳곳에 이런 유령의 이미지가 녹아져 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유령은 단순히 눈에 보여서 사람을 겁을 주는 유령이 아니다. 인간 안에 존재하는 더러운 욕망과 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힘이다. 그 힘은 평소에 인간 내면에 조용히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나타나 술이나 마약, 살인이나 욕망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망가뜨린다. 그리고 놀라운 전파력으로 주변 사람들까지 망가뜨린다. 이번 소설에서는 이 유령이 철저하게 해리를 망가뜨린다. 과연 회생이 가능할까 할 정도로... 그럼에도 아니 출간되지 않은 다음 편이 존재한다니, 해리가 다시 일어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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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1 - 김종광 장편소설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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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좋은 환경에서 평생을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하신 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직장을 퇴직하고 용돈벌이라도 할 겸 건물 청소 일을 하게 되었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러 갔는데, 막상 그곳에 가니 자신이 알지 못하던 세계가 있더라는 것이다. 건물 관리인이 있고, 그 관리인 밑으로 라인들이 있고, 이런 라인들을 잘 타고, 관리인에게 잘 보인 사람은 편안하고 좋은 곳을 청소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험하고 힘든 곳을 청소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나마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사소하게 부딪히는 시비와 갈등들을 견디지 못해 얼마 일하지 못하고 관두게 되었다고 말을 하셨다. 그러면서 결국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고 씁쓸하게 말을 하셨다.

겉에서 보면 화려해 보이는 곳도 막상 들어가서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렇게 얽히고설킨 인간들의 다툼이 있지 않을까? 반면 그런 얽힌 인간들의 모임들에 나름 따스하고 사사로운 정들도 있지 않을까? [조선통신사]라는 소설은 어쩌면 이런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조선통신사로 알고 있는 임진왜란 후 일본으로 건너간 500명의 통신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때는 조선의 중흥기로 불렸던 영조 말년이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고, 금주령을 내리면서 엄한 국법으로 조선을 통치하던 시기이다. 당연히 통신사들 역시 엄한 국법이 존재하고, 기강이 서 있다. 그러나 500명의 무리에는 온갖 잡다한 무리들이 다 모여 있다. 인솔자인 정사 조엄이나 부사 인임배 조사관 김상익과 같은 지도자들이 있는가 하면 주로 서얼 출신의 문사들이나 중인들인 통역관들, 군관들, 그리고 각 사람들의 종, 격군, 군사, 소동들까지 온갖 잡다한 무리들이 모여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잡다한 무리들이 부산에 모여서 일본을 다녀오는 332일의 이야기이다. 얼핏 왕이나 암투, 반란,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 등이 빠진 역사소설이어서 밋밋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위나 아래 없이 그곳만의 세계가 있다. 그곳에서도 권력싸움이 있고, 소소한 정이 있고, 갈등과 화합이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를 매우 해학스럽게 다루고 있다. 읽노라면 어떤 역사소설 못지않게 술술 읽히고 재미가 있다.

소설의 앞부분은 잡다한 사람들을 모으는 이야기이다. 500명의 잡다한 사람들을 모으고 통솔해야 하니 얼마나 일이 많을까? 마치 [주만치]라는 영화에서 하나의 장난감 퍼즐에서 밀림의 수많은 동물들이 튀어나오듯이,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다!'라는 한 문장 속에서 잡다한 일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지도자인 정사 조엄은 한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일행은 갑자기 모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소, 군대 장사들은 마음과 힘을 한 가지로 의지하오, 우리 행차는 명색이 가닥이 많고 지향하는 바가 일정하지 않소, 까마귀 떼와 무엇이 다르겠소? 그 5백인을 통솔하기는 실로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기보다도 벅찰 것이오." (P 18)

조엄의 예언처럼 떠나기 전부터 사건사고가 많다. 사람들을 채우고, 물건을 나르고, 그 과정에서 다툼과 분쟁이 일어난다. 이런 것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것이 조엄의 몫이지만, 역시 벅차 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건은 통신사의 문사인 원중거와 선장의 다툼이다. 조선 후기 문사들을 대부분 서인이었다. 원중거는 작은 벼슬을 한 중인이었다. 나름 자부심과 서인에 대한 열등감이 똘똘 뭉쳐 있다. 그것이 계속해서 분란을 만든다. 역관이 중인들이 무시를 했다고, 이들의 비리를 파헤치려다가 통신사 행령 안에 큰 분란을 만들 뻔한다. 다행히 조엄의 중재로 무마된다. 그러나 또다시 선장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해서 무리를 이탈한다. 함께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다른 문사들까지 움직이면서 일이 커진다. 작은 무리 안에서도 치열한 위치 싸움이 계속된다. 어쩌면 세상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할까?

일본에 가서도 일이 끊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종놈들은 일본인이 선물해서 자신들을 덮고 자게 한 이불을 가져가겠다고 데모를 하고, 지진을 만나기도 하는 둥 크고 작은 일이 계속 벌어진다. 심지어 일행 중에 한 명의 일본인에 의해 암살까지 당한다. 이렇게 온갖 사건들을 담으며 그들은 조선 땅으로 돌아온다. 소설을 읽는 내내 당시의 조선 후기 시대로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그만큼 작가가 당시의 상황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읽는 내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해학이 읽는 내내 웃음을 끊이지 않게 한다. 시대적 분위기를 내기 위해 고문의 말투와 예전의 단어들이 사용되지만, 이 또한 읽다 보면 금세 적응이 된다. 단순한 창작물이 아닌,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읽고, 고심했는지가 소설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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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이우일 지음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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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렸을 때 하던 땅따먹기 놀이가 떠오른다. 마을 공터에서 커다란 원을 그려놓고, 평평한 돌을 골라서, 자기의 땅을 만드는 것이다. 처음엔 조그만 원에서 시작해서 돌을 세 번 튕겨 그려지는 땅까지 모두 자신의 땅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커다란 원이 각자의 땅으로 다 차면, 이제는 남의 땅을 빼앗기 시작한다. 내 땅, 네 땅 하면서 서로의 땅을 빼앗아가는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커서도 사는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좁은 땅에서 내 땅, 네 땅 하면서 서로의 것을 빼앗아가는 모습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렸을 때는 재미로 했지만, 지금은 죽기 살기로 한다는 것이다.

여행이 주는 유익은 잠시 내가 머물던 곳을 떠나면 이런 모든 것이 하찮아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기 살기로 가지려 했던 것이 어쩌면 별거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여유와 낭만을 주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이런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누리게 해 주는 책이 있다. 이 우 일 작가의 여행산문집인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이라는 책이다. 이 책의 그림을 보고 어딘가 익숙하다 싶었다. 알고 보니 내가 재미있게 읽은 올림픽 관람기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와 하가시노 게이고의 [꿈은 토리노를 달리고]라는 책등에서 일러스트를 그렸던 작가였다. 조금 무심한 듯, 그냥 막 그린 듯 느낌이 나지만, 보고 있으면 무언가 정겹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나는 그림들이었다.

이 책은 작가가 '퐅랜'이란 도시에서 아내와 딸과 함게 2년 동안 머물렀던 일기 비슷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퐅랜이란 도시가 너무 생소해서 여러 번 검색을 해 봤는데, 나오지를 않았다. 책을 읽던 중 작가가 머물던 아파트에서 후드 산의 만년설이 보인다고 해서, 다시금 후드산 주변을 검색해 보니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가 검색되었다. 아마 이곳을 현지 발음으로 퐅랜이라고 부르는가 싶었다. 나 같은 영어 무식자를 위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소개하는 퐅랜은 우리가 잘 아는 심슨 가족의 배경이 된 도시라고 한다. 또 비가 많이 내리고, 재즈로 유명하고, 미국에서 가장 긴 자전거 도로가 있어서 자전거를 많이들 탄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는 작가가 퐅랜에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아주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퐅랜에는 워낙 비가 자주 내려서 웬만한 사람들은 우산도 쓰지 않고 그냥 비를 맞고 다닌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익숙지 않은 풍경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도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니고, 딸도 우산을 쓰고 다니지 않더라는 것이다. 결국 우산을 쓰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고, 결국 자신도 우산을 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비를 맞고 속옷이 다 젖도록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한 퐅랜에서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누구나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낯선 장면에 당황해하다가도 어느새 그것을 따라 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이곳에 도착해 버스를 타자마자 퐅랜 사람들의 독특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시내버스에서 앞뒤로 문이 각가 하나씩 있다. 딸 때는 앞문을 이용해 타지만 내릴 때는 앞뒤 문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내릴 때 튼 소리로 인사하는 모습. 앞으로 내리면서 운전사에게 인사를 하는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뒤로 내리는 사람도 다들 큰 소리로 "생큐"를 외치는 것이다. 음 뭐, 처음에는 인사성이 밝으면 그럴 수도 잇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조금 이상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뭘 그렇게까지 큰 소리로 인사를 할까.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우습다고 며칠 우리끼리 낄낄거리고 있었는데, 곧 우리도 내리면서 큰 소리로 "생큐"를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P81)"

낯선 여행지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점점 그곳에 동화되어 가는 것이 매력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여행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딸인 은서와 함께 그림에 대해서 시간을 보낸 장면도 나온다. 아버지와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나중엔 그것이 전공까지 되었다. 결국 이 책은 은서가 미술을 전공하러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면서 끝난다. 작가 역시 2년의 퐅랜의 생활을 접고 태평양의 한 섬으로 떠난다면서 이 책의 기록이 끝난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렇게 머물다 떠남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도 잠시 내 품을 머물다 떠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땅따먹기처럼 모든 것에 치열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본다. 작가처럼 잠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여유가 부럽고, 지금 그렇지 못하는 내 삶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책으로나마 작가가 느꼈던 퐅랜에서의 여유와 낭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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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윗사람과 대화하는 중에 때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조선시대에 가까운 정치관이라든지, 가난하거나 약한 사람들에게 대해 비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말이라든지, 또는 여성에 대한 비하 등의 막말들을 할 때가 있다. 타인들에게 주로 평화주의자로 불리는 나는 대부분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 싫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평화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윗사람의 생각과 말이 틀렸음을 당당히 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해 주는 동료로 인해 대신 가슴이 뚫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지만, 곧 싸늘해진 대화 분위기로 인해 마음이 불편해진다.

[현남 오빠에게]라는 책을 읽으면서 꼭 그런 기분이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틀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어서 넘기고 있던 것들을 이 소설을 들춰낸다. 그리고 읽는 내내 분위기가 불편해진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가부장적인 문화를 너무도 예리하게 끄집어 내는 소설로 인해, 그리고 이런 것들에 침묵했던 나 자신에 대해, 아니, 어쩌면 그런 것에 동조했을지도 모를 나 자신으로 인해...

[현남 오빠에게는] 요즘 인기 있는 7인의 여성작가가 페미니즘 관점에서 쓴 소설이다. 그러나 딱히 페미니즘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집의 첫 번째 소설은 [82년생 김지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조남주 작가의 [현남 오빠에게]이다. 소설은 서른의 한 여성이 10년 동안 연애를 하고 자신에게 청혼을 한 '현남 오빠'라는 사람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편지의 첫 내용은 현남 오빠의 청혼에 대한 거절이다. 현남 오빠는 타인이 볼 때는 자상한 오빠이다. 타지에서 올라와 강의실도 못 찾아 헤매던 주인공을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해 준 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그 후 현남 오빠는 수강신청부터 학점관리, 심지어는 자취방 구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도와주고, 여러 면에서 배려해 준다. 주인공은 그 배려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점점 자신이 생각과 미래까지도 관여하는 현남 오빠에게 끌려다닌다. 계속해서 독단적이고 타인을 자기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현남 오빠에게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그는 현남 오빠를 떠난 삶을 생각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녀는 현 남 오빠의 틀린 주장에도 침묵한다.

"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어요. 오빠가 헤어지자고 할까 봐 겁이 났거든요, 오빠의 도움 없이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내 일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게다가 저는 '강현남 여자친구'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니까요, 아시잖아요, 캠퍼스 커플이 헤어지면 어떤 소문이 도는지, 어떤 시선을 바다야 하는지요, 여자들은 특히 더하죠." (P 21)

결국 그녀는 10년 동안 현남 오빠와 사귀며, 그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그가 원하는 취직을 하고, 그가 원하는 결혼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청혼을 받는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이 현남 오빠에게 종속된 삶을 사고 있다는 것을...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 사람 하나 바보로 만들어 마음대로 휘두르니까 좋았니? 청혼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이제라도 깨달았거든, 강현남, 이 개자식아!" (P 38)

소설을 읽는 내내 강현남이란 인물 속에서 한국 남성의 모습을 보게 딘다. 자신의 울타리를 만들고, 그 울타리 속에 여성을 넣어두고, 자신의 장식품으로 여성을 만들어가는 한국 남성들... 이것이 아마 한국의 가부장적 문화가 만든 남성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가부장적인 폭력은 단지 여성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회사나 사회에서도 자신의 절대적인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 무조건 맡고, 자신의 생각에 틀린 말과 행동을 하며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교때 남성으로서 여성학 수업을 청강한 적이 있는데, 그때 교수님이 가부장적인 문화의 피해자는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는 이해를 못했는데. 오랫동안 사회에서 사람들을 경험해 보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그러나 또한 이런 가부장적인 문화에 순응하는 것은 단지 남성들뿐만이 아님을 느낀다. 여성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남성이 만드는 울타리에 안주하기를 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돌봐주기를 원하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남자 친구가 만들어준 울타리를 과감히 부수고 나오는 자신이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여성들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러기에 소설 속이지만 주인공의 선택에 응원을 보낸다.

결국 이 책을 읽으면서 적은 남성이나 여성 중 하나가 아니라,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게 하는 가부장적 문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가부장적인 문화의 피해자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 두 편의 소설이 [당신의 평화]라는 소설과 [경년]이라는 소설이다.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라는 소설은 유진이라는 여성의 눈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인 정선의 모습을 본다. 평생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밑에서 굴종했으면서, 이제 며느리를 맡으면서 며느리에게 자신이 당한 것을 그대로 하기를 원하는 모습에서 유진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그녀가 보기에 정순은 사람들의 말에 세뇌되어 있었다. 파일럿 남편 둬서 팔자 좋게 산다는 시어머니 말에, 그렇게 능력 있으면서 때리지도, 바람피우지도 않는 남자가 흔하냐는 친정어머니의 말에, 정순은 자기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아무리 자신에게 부당하게 대해서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유진이 정순을 대신해서 아빠와 할머니에게 대거리를 하면 정순은 당황하며 외려 유진을 흔했다. '할머니 말씀치고 틀린 것이 없다' 정순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런 정순을 그녀는 이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퇴직 후 정순은 눈덩이 굴리듯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자기감정을 키워갔다. 정순은 살이 빠져 떼꾼해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작은 일에 크게 화를 냈고 다른 여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하기를 잘했다." (P 58)

김이설 작가의 [경년]이란 소설은 폐경기를 맞은 한 여성의 시각에서 가족과 세상을 다시 보고 있다. 중학생으로 항상 전교 상위권에 드는 아들이 또래 아이들과 성관계를 하고 다닌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렇게 말한다.

"남자애니까 그런 건 허물도 아니고, 지들 사이에서는 난놈 된 거야. 자기 놀 거 다 해가면서 공부도 잘하는데 누가 뭐라 할 거냐고."

주변에서도 남자아이는 괜찮고, 오히려 꼬리를 친 여자아이들이 잘못된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말에 수긍하기가 힘들다. 자신도 딸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볼 세상의 시간이 두려워진다.

이미 작고했지만 오래전 신해철이라는 가수가 방송에서 했던 말들이 기억난다. "한국 엄마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자녀들을 키우면 아들을 괜찮고, 딸은 안 된다는 말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한국의 엄마들도 그렇게 가부장적 문화에 세뇌당한 피해자는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정과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다. 물론 가정과 결혼을 통해 여성들이 억압당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가정과 결혼이 모두 안 좋은 것만은 아닐 텐데... 한 사람의 일방적인 헌신과 희생만이 아닌, 함께 희생하면서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도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일일 텐데... 이렇게 말하면 나 역시 가부장적인 문화의 세뇌된 사람으로 받아들여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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