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9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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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화되어서 더 유명하기도 한 코맥 매카시의 [로드(원제 : The Road)]라는 작품의 배경은 핵 전쟁으로 멸망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길을 걷는다. 세상은 온통 잿빛 폐허이고, 어디를 찾아봐도 희망은 없다. 전쟁으로 인해 세상은 계속 불타고 있다. 남은 사람들은 굶주림 속에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서로를 잡아먹는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길을 아버지는 아들과 걷는다. 세상은 온통 절망뿐이다. 그가 살아서 걷는 이유는 오직 옆에 있는 아들 때뿐이다. 아버지에는 오직 아들만이 희망이고, 그 아들이 있기에 걷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도착하는 곳 어디에서 희망은 없다. 보이는 것은 온통 잿빛 폐허 속의 절망뿐이다.

드디어 요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의 [팬텀]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팬텀]을 읽으며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떠올렸다. 해리 홀레 시리즈는 작가 특유의 거칠고 어두운 스타일로 독특한 해리라는 인물과 배경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는 더 강렬해지고, 더 어두워졌다. [팬텀]의 배경은 현대화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는 동안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핵 전쟁으로 멸망해 절망만 남은 [로드]의 세상을 떠올리게 된다. [로드]를 떠올리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아들이다. [팬텀]에서 절망적인 오슬로의 도시를 해리는 비록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자신을 아버지라고 불렀던 올레그와 함께 걷는다. 마약과 살인, 음모로 인해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틈에서 올레그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 장면들이 너무 애절해 [로드]의 아버지의 몸부림을 연상케 한다.  

소설의 시작은 해리가 다시 오슬로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작가가 그리는 해리의 모습은 예전과는 다르다. 더 마르고, [스노우맨]에서의 상처인 잘린 손가락과 [레오파트]에서의 상차인 얼굴의 짙은 흉터를 간직하고 있다. 오슬로 역시 해리의 몸처럼 망가져 있었다. 비록 겉으로는 예전보다 나아 보이지만 여전히 마약과 범죄가 무방비가 되어 있는 모습니다. 작가가 그리는 오슬로의 마약 거리와 구시가지는 음산함을 넘어 지옥의 절망까지 느낀다.

"이곳은 오슬로에서 마약 주사를 놓는 곳, 약쟁이들의 소굴이었다. 이 도시의 버림받은 아이들이 몸을 다 숨겨주지도 못하는 막사 뒤에서 제 몸에 주사를 놓고 약에 취해 날뛰는 곳이었다. 그 아이들과 멋모르는 선의를 베푸는 그들의 사회 민주주의자 부모들을 가르는 엉성한 칸막이. 장족의 발전이야.  아이들은 더 아름다워진 경관에 둘러싸여 지옥행 여행길을 올랐다." (P 26)

"그는 크바드라투렌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오슬로 최초의 시가지이지만 지금은 25만 명의 일개미들을 위한 관공서와 사무실이 들어선, 아스팔트와 벽돌의 사막이자 네다섯 시에 모두가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야행성 설치류의 세상이 되는 것이었다. 크리스티안 4세가 르네상스 시대의 기하학적 질서라는 이상의 원리에 따라 사각형의 구역 안에 이 도시를 건설하던 당시에는 간간이 화재가 일어나 인구가 유지되었다. 윤년이 들 때마다 밤에 불길에 휩싸여 이 집 저 집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보이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다 타서 바스러지는 모습을 보였다." (P 29)

해리가 다시 오슬로를 찾은 것은 라켈의 아들이자, 한때 자신을 아버지로 불렀던 올레그라는 소년 때문이다. 그가 살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다시 만나 올레그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그 안의 순수함도 사라져 있었다. 이미 마약 중독이 되었고, 중독 속에서 친구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갇혀 있었다. 감옥에서 만나 올레그는 해리에게 왜 자신을 떠났냐고 소리 지른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는 신종 마약이 바이올린을 구해 오라고 말한다. 해리는 오슬로에서 맛보았던 절망을 올레그에게서 똑같은 맛본다. 그럼에도 그는 실낱같은 희망은 올레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오슬로 거리를 뒤지고 다닌다.

온갖 마약과 조직들이 판치는 오슬로는 겉으로 보기는 한결 깨끗해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더 강력해진 '바이올린'이란 마약과 그 마약을 통제하는 '두바이'라고 불리는 베일 속에 가려진 범죄자와 조직이 있다. 그리고 두바이와 어두운 커넥션인 정치인과 경찰들이 존재한다. 올레그는 죽은 그의 친구 구스토와 함께 두바이 밑에서 마약을 팔았다. 순수했던 올레그가 왜 구스토를 만났을까? 그리고 왜 마약중독과 마약 상이 되었을까? 그리고 정말 올레그는 구스토를 죽였을까? 해리는 점점 진실로 들어가면서 두바이와 어두운 커넥션의 반격을 당한다. 그럼에도 그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혼자 몸부림친다. 자기 몸을 다 망가뜨리면서라도 구해야 할 아들이기에...

해리 홀레 시리즈는 계속해서 읽어오고 있지만, 이번 소설은 더 절망적이고 어둡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문장이 더 깊어져 그가 묘사하는 오슬로와 해리의 내면이 더 어둡게 느껴진다. 작가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해리를 점점 더 구석으로 몰아붙인다. 그럼에도 올레그를 오슬로의 마약 소굴로부터 끄집어 내려는 해리의 노력은 눈물이 겹다.

여기에 소설의 어둠을 더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올레그가 죽인 구스토라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는 죽은 구스토의 독백을 통해 그가 등장한다.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해리가 사건을 해결하면서 묘사하는 내용과 함께 이 구스토의 독백이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구스토는 마치 오슬로를 닮았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운 남성이기에 그를 보는 여성뿐만 아니라 남자들까지 다 반한다. 그러나 구스토 안에서 잔인한 자기학대와 절망이 존재한다. 구스토는 어려서 부모님에게 버려져 입양되었다.  그는 양어머니를 망가뜨리고, 이복 여동생까지 망가뜨린다. 그는 자신과 접하는 모든 것을 마약과 성적 타락으로 망가뜨린다. 그리고 올레그는 우연히 구스토와 만나 친구가 된다. 순수했던 올레그는 구스토에 의해 하나씩 무너지고, 결국 구스토를 죽였다는 혐의까지 받는다.  과연 해리는 죽은 구스토의 망령에서 올레그를 구해낼 수 있을까?

소설의 제목 팬텀은 유령이라는 뜻이다. 소설 곳곳에 이런 유령의 이미지가 녹아져 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유령은 단순히 눈에 보여서 사람을 겁을 주는 유령이 아니다. 인간 안에 존재하는 더러운 욕망과 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힘이다. 그 힘은 평소에 인간 내면에 조용히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나타나 술이나 마약, 살인이나 욕망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망가뜨린다. 그리고 놀라운 전파력으로 주변 사람들까지 망가뜨린다. 이번 소설에서는 이 유령이 철저하게 해리를 망가뜨린다. 과연 회생이 가능할까 할 정도로... 그럼에도 아니 출간되지 않은 다음 편이 존재한다니, 해리가 다시 일어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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