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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1 - 김종광 장편소설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꽤 좋은 환경에서 평생을 근무하고 정년퇴직을 하신 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직장을 퇴직하고 용돈벌이라도 할 겸 건물 청소 일을 하게 되었다.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러 갔는데, 막상 그곳에 가니 자신이 알지 못하던 세계가 있더라는 것이다. 건물 관리인이 있고, 그 관리인 밑으로 라인들이 있고, 이런 라인들을 잘 타고, 관리인에게 잘 보인 사람은 편안하고 좋은 곳을 청소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험하고 힘든 곳을 청소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나마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사소하게 부딪히는 시비와 갈등들을 견디지 못해 얼마 일하지 못하고 관두게 되었다고 말을 하셨다. 그러면서 결국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고 씁쓸하게 말을 하셨다.
겉에서 보면 화려해 보이는 곳도 막상 들어가서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렇게 얽히고설킨 인간들의 다툼이 있지 않을까? 반면 그런 얽힌 인간들의 모임들에 나름 따스하고 사사로운 정들도 있지 않을까? [조선통신사]라는 소설은 어쩌면 이런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조선통신사로 알고 있는 임진왜란 후 일본으로 건너간 500명의 통신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때는 조선의 중흥기로 불렸던 영조 말년이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고, 금주령을 내리면서 엄한 국법으로 조선을 통치하던 시기이다. 당연히 통신사들 역시 엄한 국법이 존재하고, 기강이 서 있다. 그러나 500명의 무리에는 온갖 잡다한 무리들이 다 모여 있다. 인솔자인 정사 조엄이나 부사 인임배 조사관 김상익과 같은 지도자들이 있는가 하면 주로 서얼 출신의 문사들이나 중인들인 통역관들, 군관들, 그리고 각 사람들의 종, 격군, 군사, 소동들까지 온갖 잡다한 무리들이 모여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잡다한 무리들이 부산에 모여서 일본을 다녀오는 332일의 이야기이다. 얼핏 왕이나 암투, 반란,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 등이 빠진 역사소설이어서 밋밋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위나 아래 없이 그곳만의 세계가 있다. 그곳에서도 권력싸움이 있고, 소소한 정이 있고, 갈등과 화합이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를 매우 해학스럽게 다루고 있다. 읽노라면 어떤 역사소설 못지않게 술술 읽히고 재미가 있다.
소설의 앞부분은 잡다한 사람들을 모으는 이야기이다. 500명의 잡다한 사람들을 모으고 통솔해야 하니 얼마나 일이 많을까? 마치 [주만치]라는 영화에서 하나의 장난감 퍼즐에서 밀림의 수많은 동물들이 튀어나오듯이,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다!'라는 한 문장 속에서 잡다한 일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지도자인 정사 조엄은 한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일행은 갑자기 모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소, 군대 장사들은 마음과 힘을 한 가지로 의지하오, 우리 행차는 명색이 가닥이 많고 지향하는 바가 일정하지 않소, 까마귀 떼와 무엇이 다르겠소? 그 5백인을 통솔하기는 실로 군사 5천 명을 거느리기보다도 벅찰 것이오." (P 18)
조엄의 예언처럼 떠나기 전부터 사건사고가 많다. 사람들을 채우고, 물건을 나르고, 그 과정에서 다툼과 분쟁이 일어난다. 이런 것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것이 조엄의 몫이지만, 역시 벅차 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건은 통신사의 문사인 원중거와 선장의 다툼이다. 조선 후기 문사들을 대부분 서인이었다. 원중거는 작은 벼슬을 한 중인이었다. 나름 자부심과 서인에 대한 열등감이 똘똘 뭉쳐 있다. 그것이 계속해서 분란을 만든다. 역관이 중인들이 무시를 했다고, 이들의 비리를 파헤치려다가 통신사 행령 안에 큰 분란을 만들 뻔한다. 다행히 조엄의 중재로 무마된다. 그러나 또다시 선장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해서 무리를 이탈한다. 함께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다른 문사들까지 움직이면서 일이 커진다. 작은 무리 안에서도 치열한 위치 싸움이 계속된다. 어쩌면 세상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할까?
일본에 가서도 일이 끊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종놈들은 일본인이 선물해서 자신들을 덮고 자게 한 이불을 가져가겠다고 데모를 하고, 지진을 만나기도 하는 둥 크고 작은 일이 계속 벌어진다. 심지어 일행 중에 한 명의 일본인에 의해 암살까지 당한다. 이렇게 온갖 사건들을 담으며 그들은 조선 땅으로 돌아온다. 소설을 읽는 내내 당시의 조선 후기 시대로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그만큼 작가가 당시의 상황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읽는 내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해학이 읽는 내내 웃음을 끊이지 않게 한다. 시대적 분위기를 내기 위해 고문의 말투와 예전의 단어들이 사용되지만, 이 또한 읽다 보면 금세 적응이 된다. 단순한 창작물이 아닌,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읽고, 고심했는지가 소설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