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가는 길 - 고3 아들과 쉰 살 아버지가 함께한 9일간의 도보여행
송언 지음, 김의규 그림 / 우리교육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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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아들과 쉰 살 아버지가 함께한 9일간의 도보여행'이란 문구에 한 눈에 들어온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지 기대되고 설레고, 괜시리 부러움에 책을 읽었다. 머리 굵은 아들이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어찌 흐뭇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 바빠 함께 식사할 여유조차 없는 현실을 보면, 그런 마음만으로도 이미 훈훈한 이야기가 가득할거란 기대를 갖는다. 그리고 충분히 만족했다.
 

국토 순례를 가겠다는 아들 이야기에 일단 반대부터 했던 아버지(물론 어머니도 마찬가지)는 함께 하자는 말에 승낙한다. 그리고 한 달여를 앞두고 걷기 연습을 하며, 외가집으로 예행 연습도 한다. 그리고 12월 31일 국토 순례의 도보 여행을 출발한다. 수원에서 출발하여 해남 까지 부자의 9일 간의 여행이 펼쳐진다. <해남 가는 길>은 선생님인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했던 여행의 추억을 담고 있다. 대학생이 된 아들의 이야기는 끝에서 살짝 맛보기 할 수 있다.

 

추운 겨울, 배낭을 메고 호젓한 길을 걷는 부자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흐뭇한데, 책 속엔 또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다. 반향기 살짝 묻어나는 아들, 아들 발톱 깎아주는 아버지, 그 곳에 묻어나는 부자간의 애뜻한 정을 느끼며,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우리 땅에 숨어있는 옛사람과 역사, 문화유적을 만날 수 있었다. 홍성의 만해 한용운 동상, 예산의 수덕사(요즘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다), 수덕여관 앞 너럭바위에 새겨진 고암 이응로의 그림, 명창 김창진의 이야기, 온 가족이 함께 간 해남 대흥사 대웅전 현판의 원교 이광사추사 김정희의 일화, 똥치는 일을 하는 니다이 등 다양한 이야기들로 풍성하였다.

 

"차를 타고 가는 사람은 길을 따라 달려가며 휙휙 스쳐 가는 주변 풍경을 보지만, 도보순례를 하는 사람은 자신을 밟고 가기 때문에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게 다른 점이 아닐까?" (16)

 

어느 사찰을 며칠 전에 다녀왔다. 차를 타고 '씽~' 하고 다녀온 것이 몸내 아쉬웠던 차에, 그 아쉬움은 더욱 배가 되었다. 배낭 짊어지고 산새소리, 풀내음 맡으며 여유롭게, 다리품 팔아가며 걷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간절해졌다. 또한 '손전화'라 표현하는데, 그 어감이 어찌나 정겹던지~. <해남 가는 길>에 담긴 부자간의 국토 순례이야기는 아주 훈훈하게, 내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부모님과 함께 걸으며 여행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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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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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닉 혼비' 과연 그는 누굴까? 사실 그의 책을 접한 적도 없을 뿐더러 이름마저 아주 생소할 뿐이다. 저자, 그에 대한 호기심은 재쳐두고, 과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사람은 어떤 책을 읽을까? 하는 호기심이 가장 컸다. 어느 작가가 추천한 책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내가 읽었던 책의 저자가 추천한 책은 한 번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선망하는 작가라면 읽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또한 그 책과의 인연, 느낌들에 대해 이야기해준다면, 아직 읽기 않고, 관심도 가지 않던 책이라도, 오래도록 기억해두었다고 손길이 머물기 마련이다. 이런 마음에서 출발하였다. 잘 알지 못하는 영국의 어느 유명작가지만, 그의 책읽기 습관,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의 평은 어떤 것인지 시시콜콜한 책읽기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비교하다보면, 조금은 책과 내가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욕심이 컸다.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는 <빌리버>에 기고한 칼럼을 모아 낸 서평집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서평의 나열이라면,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소개하는 책 중에서 내가 아는 책은 거의 없다. 아니 읽은 책은 없다. 그나마 제목 정도 아는 책, 그래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책이 몇 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생활 속 책읽는 이야기가 풍풍하다. 나의 책읽는 습관, 선호를 생각하면서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축구, 아이가 태어나는 이유로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는 그의 변명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뭔가 계획한 일이 다른 일로 인해 차질을 빗는데 왠지 즐겁다.

  

가장 호기심을 끌었던 것은 각 칼럼마다 이달에 산 책과 읽은 책을 정리하고 있는 점이다. 비교적 나도 산 책, 읽은 책의 목록을 정리하는 편이지만 제멋대로이다. 특히 이처럼 따로 기간을 정해 읽은 책을 다시 정리하는 일은 없기에, 한 달 동안의 책들을 정리한 점이 흥미로웠다. 아이들이 떨어뜨린 책 중에서 눈에 띈 책을 읽고, 더없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이해가 되었다. 내게도 사두고 읽기 않고 짱박아둔 책이 있다. 다른 책에 밀리고, 몇장 읽는데 재미가 없어 그만 둔 책들, 그런 책이 어느날 그 어떤 책보다 재밌게 다가올 날이 있겠지 싶다.

 

책을 읽으면서, '참 재밌게 책을 읽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책 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재밌게 느껴졌다. 그 어떤 문화생활보다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열변을 토하다가도, 다음에는 책보다 더 즐거운 것(영화, 음악 등등)도 있다며, 지난 칼럼의 이야기는 잊어달라 호소하다가도, 결국은 그래도 가장 즐거운 것이 책읽는 것이라 당당히 말한다. 무슨 변덕인가 싶다가도, 이내 수긍하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을까? 전문적이고 학구적인 책보다는 쉽고 재밌는 책만 선호하는 나의 편식적 책읽기 습관을 뒤돌아보면서, 과연 어떤 책이 '양서'일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도 '독서애호가'로 살고 싶다. 그냥 닥치는 대로 마구마구 읽고 싶다.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책 읽는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리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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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 실크로드 1200km 도보횡단기
김준희 글.사진 / 솔지미디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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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이란 낯설기만 한 그 땅을 걸었다니, 마냥 신기하고 호기심이 일었다. 실크로드 1200km의  도보횡단기! - 정말 주변 도움의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걷는 그 모습이 의젓하고 멋졌다 - 익숙하지 않은 나라 속 사막을 횡단했다는 것, 어찌 그런 고행을 자처할 것일까? 그 숭고한 여행에 동행하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들었다. 그런데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기억 속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몽땅 훔쳐오고 싶었다. 고스란히 내 기억으로 옮겨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해진다. 결코 쉽지 않은 여행이었을텐데 끝까지 임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나만 나 역시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어 고마운 책,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였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나라, 그리고 한 번쯤이야 들어본 나라이지만, 그곳에 대한 관심은 다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티무르 제국이 남겨놓은 세계문화유산 '사마르칸트'에 대한 호기심도 일었다. 많은 길과 그 길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 그곳의 현지인들은 정말 너나없이 친철하다는 것을 느꼈다. 괜시리 내가 뿌듯한 이 기분은 뭘까? 1박 2일을 함께 술 마시며 보낸 이야기, 먼저 집에 가자며 잠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해 준 사람들, 한국에서 일했다면 한국말을 하는 두 명의 알리, 다섯 번이나 만난 사막의 운전사 '일홈' 등등 그의 여행 속에 친절하고 소박한 사람들로 가득 넘친다.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김준희, 솔지미디어>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이란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었다. '빨리비나(절반)'라는 음식 문화, 볶음밥을 안주 삼아 마시는 '보드카' 그리고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양한 언어도 공존하고 곳, 우리처럼 나이의 서열을 중시하는 문화, 한국 드라마(가을연가, 대장금, 장보고, 주몽)의 유행하는 나라, 한국을 친구의 나라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였다. 또한 멋지고 광활한 자연 경관도 머리 속에 그려졌다. 목화 생산량이 4위인 나라, 국유지 목화밭과 관개사업으로 말라가는 '아무다리야 강'을 보면서, 보호와 개발 사이의 첨예한 갈등을 여지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다 닳고 헤진 운동화도 인상적이었다. 그 어떤 말보다도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운동화였다. 힘든 여정인만큼, 충분히 행복한 시간들이었으리라 생각하니, 왠지 부럽다. 낯설고 물설은 곳, 메마른 땅을 여행했지만, 그 어떤 곳보다 풍요로웠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이란 나라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면서 더욱 궁금해진다. 또한 그의 다음 여행에 왜 내가 더 설레고 기대될까?

 

"거기에는 오래전에 전성기를 누렸던 실크로드를 직접 걷는다는 기쁨도 있다. 낙타를 몰고 터벅터벅 걸어갔던 상인들처럼 나도 걷는다. 그 길에서 변해가는 풍경과 조금씩 기울어져가는 태양을 바라본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저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상상한다. 그러다보면 하루 이틀 쉰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다. 쉽게 말해서 길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길에서 생기는 호기심이 나를 계속 걷게 만드는 것이다. " (178)

-그의 즐거움을 따라, 그의 호기심을 따라

나 역시 쉼없이 즐기차게 읽어내렸다.

짧은 길일지언정

 걷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홀로 한적한 길 위에 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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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검은 베일
토머스 소웰 지음, 박슬라 옮김 / 살림Biz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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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의 '검은 베일' 속, 어떤 거짓이 숨어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경제학의 숨은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책제목이다. '경제학' 완전 문외한이지만, 경제관련 책을 접하면서, 뉴스를 듣고, 사회를 보는 눈이 좀 커지는 작은 기쁨을 누렸다. 그래서 이 책 <경제학의 검은 베일>을 선택했다. 그런데 오히려 제목에 갇히고 말았다. '그릇된 믿음은 대재앙을 부른다'라며, 엄포를 놓기에, 뭐가 잘못된 것일까?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존의 경제학적 지식-물론 나는 경제학적 지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 거의 없다.-들이 다 '거짓'이라 생각하며 책을 읽다보니, 역효과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즉, 기존의 나의 생각들, 내가 받아들였던 가치들(책의 표현대로라면, 내가 '믿어왔던' 그 진실들)이 모두 부정되고 틀린 거라 말하는 것 같아 거북했다. 물론 그릇된 믿음은 고쳐져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 부정'은 쉽지만은 아는 일이다.

 

원제는 Economic Facts and Fallacies 이다. 제목과 달리, 내용, 특히 각장의 소제목만은 원제에 충실했다. 1장'그릇된 믿음은 대재앙을 부른다'과 달리,  2장과7장 까지는 '도시, 남녀 차별, 대학, 소득, 인종 차별, 제3세계'라는 6가지 부류의 사회현상과 경제학적 접근에 대한 '사실과 오해'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각 장마다 '요약 및 의의' 부분을 두어, 미쳐 알지 못한 내용에 대해 풀이해주고 있다. 8장의 결론 '경제학의 검은 베일을 들추면 진실이 보인다'의 진실은 '거짓'이 아닌, 통계학적 자료를 통해 본 경제학적 인과관계 분석,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오해들을 정리하고 있다. 부분의 확대가 전부가 아니듯, 여러 많은 정치, 사회적 현상들의 원인들을 경제적 잣대를 측정하는 것의 어려움을 익히 알기에, 이런 논리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최대한 책에 집중해보았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하고자 머리 속이 분주했으며, 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했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리송했던 부분은 3장 '남녀 차별에 대한 사실과 오해'였다. 즉 남녀간의 임금의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는데, 역사적 관점,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노동의 변화, 여성의 사회 진출 등의 문제를 경제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흥미로웠다. 다만, "여성이 남성보다 보수가 낮은 직종을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는 말로, 합리화하는 것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회적 역사, 정치적 여건 등을 앞서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스스로의 선택일 뿐'이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처음 들어본 낯선 이론, 자료는 모르기에, 오랜만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책과 마주하였다. 진정 '공부'하는 자세로 참을성 있게 책을 접하다 보니, 많은 실례, 다른 나라의 선례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도시 문제, 인종 문제에 대하여, 지금의 우리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대학 문제은 기본에 갖고 있던 '부정적 이미지'에 대하여 구체화할 수 있었다. 비영리기관, 학문의 장인 '대학'은 이젠 확실히 없는 듯하다. 그리고 7장 '제3세계에 대한 사실과 오해'부분에서는 '제3세계'에 대한 정의와 '해외 원조'의 실체를 재확인하였다. 정말 머리가 '탁' 트이는 순간이었다. 자연 재해와 관련된 인도주의적 원조와 '해외 원조'의 극명한 차이의 비교를 통해, 검은 베일 뒤에 숨겨진 진실, 강요받았던 그 믿음의 실체를 목격하였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길 좋아할 사람은 없다. 물론 그렇다. 그래서 조금은 힘들었다. 하지만 정치 사회적 여러 현상들, 기존의 많은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것에 대한 경제학적 원인 분석은 흥미로웠다. 전혀 깨닫지 못한 부분도 있고, 기존의 이론을 재확인한 부분도 있었다. 또한, 모호하게 알고 있던 것, 갸웃거리게 만들었던 것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주었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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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한 줌 향기 한 줌 - 정목일 에세이집
정목일 지음, 양태석 그림 / 문학수첩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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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음이 머무는 에세이집를 접했다. '햇살 한 줌 향기 한 줌'이란 제목이 한 가득 물씬 따스함을 전해주면서 나를 이끌었다. 그림과 글이 함께 하는 책, 읽으면서 그림도 보고, 글도 읽으며, 편한하게 쉬는 듯한 여유를 나눠주었다. 제목과 표지에서 잔잔하게 자연을 한 가득 담고 있다. 그리고 머리말에서 흙과 물이 햇살 머뭄고 생명을 키워내고 있다는 저수지와 늪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도 정말로 좋았다. 책에 도입부에서 이미 이 책은 자연을 한 가득 품고 있었다. 그리고 쉼터 같은, 어머니 품같은 따스함이 가득한 이야기로 나를 보듬어주었다.

 

<햇살 한 줌 향기 한 줌, 정목일, 문학동네>는 투박하고 거친듯, 다채로운 색감의 '양태석' 그림과 차분하고 따스한 '정목일'의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깊은 산속 사찰의 고적미와 화려한 색채의 단청이 서로 조화를 이루듯(고적의 미), 이 책 또한 그러하다. 첫 이야기는 '벼'이다. 어릴 적 풍경을 떠오르는 황금빛 가을 들녁의 그림과 글 속엔 지나온 삶이 녹아있었다. 저자 자신의 삶, 소소한 일상을 담은 글에 공감하며, 마음이 절로 훈훈해진다.

 

"정결하고 고요하게 아침 빛을 맞아들이고 그 표정을 보여 줌으로써 평화와 맑음을 준다. ...... 드러나지 않고 은근하게, 눈부시지 않고 환하게, 번쩍이지 않고 삼삼하게 마음을 채워 주는 한지 방문. 한지 방문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빛의 표정을 볼 수 있게 하는 지헤의 꽃이 아닐까." (한지 방문 中 51)

-그는 한지 방문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이 한지 방문같다 말하고 싶다. 그의 글은 내게 평화와 안정, 맑음을 주었다. 격정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은은하게 내 마음을 채워주었다.

 

"한번이라도 봄비가 되었으면 해. 따스한 입김,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너의 꽁꽁 언 손과 굳은 몸을 녹여 주고 싶어."(3월 봄비 中 57)

- 이 책은 이미 내게 봄비와 같았다. 꽁꽁 언 내 마음에 단비가 되어준 참으로 따스한 손길 그 자체였다. 

 

"나는 달리고 싶다. 삶의 심장 박동을 느끼고 싶다. 사유를 펼치고, 미지의 세계를 알고 싶다.

새벽 기차는 무료한 내 삶 속으로 밀어닥치는 푸른 바도다." (새벽 기차 188)

- 언제가 새벽 기차를 탔던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여전히 난 새벽이란 그 시간에 깊은 잠에 빠져 지낸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열정이 부족한 듯, 무언가 부족한 갈증을 느끼는 내 삶을 뒤돌아보면, 나도 그처럼 달리고 싶다.

 

"때때로 나는 어머니의 마음과 삶이 젓갈 같다고 생각한다. 멸치나 새우가 젓갈이 되기 위해서는 뼈와 살이 푹 삭아서 흐물흐물해져야 한다. 자신의 육신과 마음을 온통 다 내주어야 소금에 절여져 뼈와 살이 녹고,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썩어 발효되어야 입 안에 가득 고이는 젓갈 맛이 될 수 있다. 자신을 버려야 참맛이 나는 것이다. 어머니의 일생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어머니의 김치 맛 中 243-244)

- 어머니에 대한 애뜻함, 사랑이 '어미니'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치와 젓갈 그리고 어머니는 정말 참으로 닮은 듯하다.

 

자연을 고스란히 옮겨둔 이야기가 한 가득이면서, 우리 주변이 일상의 이야기로 잔잔한 감동도 주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에세이집을 읽었다. 예전에 참으로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들해졌다가 접한 <햇살 한 줌 향기 한 줌>은 내가 잔잔하지만 커다란 감동을 남겨주었다. 두루두루 내 주변의 일상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며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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