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한 줌 향기 한 줌 - 정목일 에세이집
정목일 지음, 양태석 그림 / 문학수첩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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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음이 머무는 에세이집를 접했다. '햇살 한 줌 향기 한 줌'이란 제목이 한 가득 물씬 따스함을 전해주면서 나를 이끌었다. 그림과 글이 함께 하는 책, 읽으면서 그림도 보고, 글도 읽으며, 편한하게 쉬는 듯한 여유를 나눠주었다. 제목과 표지에서 잔잔하게 자연을 한 가득 담고 있다. 그리고 머리말에서 흙과 물이 햇살 머뭄고 생명을 키워내고 있다는 저수지와 늪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도 정말로 좋았다. 책에 도입부에서 이미 이 책은 자연을 한 가득 품고 있었다. 그리고 쉼터 같은, 어머니 품같은 따스함이 가득한 이야기로 나를 보듬어주었다.

 

<햇살 한 줌 향기 한 줌, 정목일, 문학동네>는 투박하고 거친듯, 다채로운 색감의 '양태석' 그림과 차분하고 따스한 '정목일'의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깊은 산속 사찰의 고적미와 화려한 색채의 단청이 서로 조화를 이루듯(고적의 미), 이 책 또한 그러하다. 첫 이야기는 '벼'이다. 어릴 적 풍경을 떠오르는 황금빛 가을 들녁의 그림과 글 속엔 지나온 삶이 녹아있었다. 저자 자신의 삶, 소소한 일상을 담은 글에 공감하며, 마음이 절로 훈훈해진다.

 

"정결하고 고요하게 아침 빛을 맞아들이고 그 표정을 보여 줌으로써 평화와 맑음을 준다. ...... 드러나지 않고 은근하게, 눈부시지 않고 환하게, 번쩍이지 않고 삼삼하게 마음을 채워 주는 한지 방문. 한지 방문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빛의 표정을 볼 수 있게 하는 지헤의 꽃이 아닐까." (한지 방문 中 51)

-그는 한지 방문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이 한지 방문같다 말하고 싶다. 그의 글은 내게 평화와 안정, 맑음을 주었다. 격정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은은하게 내 마음을 채워주었다.

 

"한번이라도 봄비가 되었으면 해. 따스한 입김,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너의 꽁꽁 언 손과 굳은 몸을 녹여 주고 싶어."(3월 봄비 中 57)

- 이 책은 이미 내게 봄비와 같았다. 꽁꽁 언 내 마음에 단비가 되어준 참으로 따스한 손길 그 자체였다. 

 

"나는 달리고 싶다. 삶의 심장 박동을 느끼고 싶다. 사유를 펼치고, 미지의 세계를 알고 싶다.

새벽 기차는 무료한 내 삶 속으로 밀어닥치는 푸른 바도다." (새벽 기차 188)

- 언제가 새벽 기차를 탔던 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여전히 난 새벽이란 그 시간에 깊은 잠에 빠져 지낸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의 열정이 부족한 듯, 무언가 부족한 갈증을 느끼는 내 삶을 뒤돌아보면, 나도 그처럼 달리고 싶다.

 

"때때로 나는 어머니의 마음과 삶이 젓갈 같다고 생각한다. 멸치나 새우가 젓갈이 되기 위해서는 뼈와 살이 푹 삭아서 흐물흐물해져야 한다. 자신의 육신과 마음을 온통 다 내주어야 소금에 절여져 뼈와 살이 녹고,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썩어 발효되어야 입 안에 가득 고이는 젓갈 맛이 될 수 있다. 자신을 버려야 참맛이 나는 것이다. 어머니의 일생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어머니의 김치 맛 中 243-244)

- 어머니에 대한 애뜻함, 사랑이 '어미니'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치와 젓갈 그리고 어머니는 정말 참으로 닮은 듯하다.

 

자연을 고스란히 옮겨둔 이야기가 한 가득이면서, 우리 주변이 일상의 이야기로 잔잔한 감동도 주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에세이집을 읽었다. 예전에 참으로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들해졌다가 접한 <햇살 한 줌 향기 한 줌>은 내가 잔잔하지만 커다란 감동을 남겨주었다. 두루두루 내 주변의 일상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며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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