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벨룽엔의 반지 -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된 판타지의 고전
볼프강 홀바인, 토르스텐 데비 지음, 이미옥 옮김 / 예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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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판타지 소설은 이번에 처음이었다. 그런데 판타지 소설의 매력을 홀딱 빠져버린 것 같다. 기존의 역사소설만큼이나 흥미롭고 '신화'가 갖는 탄탄한 이야깃거리가 더위를 한 순간 잊게 해주었다. <니벨룽엔의 반지>만의 독특함인지 아리송할 정도로 다른 판타지 소설들도 조금씩 섭렵하고 싶은 마음이다. 실제 영화 『반지의 제왕』을 아주 긴장감 속에서 재밌게 본 기억이 생생하다. 약간의 '억지'스러움에 투덜거렸지만, 대단히 흡입력을 가진 영화였다. 그런데 <니벨룽엔의 반지>가 영화 『반지의 제왕』의 모티브가 된 판타지의 고전이라 하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여러 북유럽 신화 중에 대표적인 것이라 하니, 새롭게 신화를 만나는 기분도 쏠쏠했다.

 

크산텐 왕국과 덴마크의 전쟁 중, 크산텐 왕국은 덴마크의 왕 '할마'에 패하고 왕비 '지그린테'는 '레긴'이란 대장장이에게 은신하는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바로 주인공인 14살의 사내아이 '지그프리트'가 등장한다. '레긴'은 '지그프리트'의 신분을 숨긴채, 조용히 대장장이의 삶을 살아가길 소원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크산텐이 아닌, '부르군트'왕국의 웜즈로 방향을 정한다. 이상한 기운이 가득한 웜즈에서, 우연히 '기젤헤어' 황태자와 싸움을 하게 되고, 왕자 '군터'의 비호아래  부르군트 왕국에 머물게 되고, 공주 '크림힐트'를 사랑하게 되는 '지그프리트'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 속『반지의 제왕』의 떠올리면서, '반지'의 이야기에 주목하였다. '반지'엔 어떤 힘이 숨겨져 있는지, 그리고 늙지 않는 '레긴'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니벨룽엔족'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지그프리트'의 사랑은 어떻게 전개될지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부르군트'왕국의 셋째 왕자 '게르노'와 '하겐'의 딸 '엘자'의 이야기였다. 탐욕과 전쟁으로 얼룩진 인간과 그런 세상에서 올곧게 '평화'와 '순수'을 이야기하는 게르노와 엘자는 전체 이야기에서 작은 부분이지만, 니벨룽엔의 반지나 크산텐의 비밀검 '노퉁', 지그프리트의 사랑보다 더 크고 빛났다. 순수한 사랑의 열망에서 시작하였지만, 언제나 인간의 욕망은 끝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그프리트'와 '군터'의 이야기, 그리고 두 여인 '크림힐트'와 '부룬힐데'의 안타까운 사랑과 복수의 과정은 흥미롭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잔혹함, 어리석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였다.

 

처음으로 읽은 판타지 소설 <니벨룽엔의 반지>는 아주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빠른 전개와, 하나하나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던 등장인물들이 점차 탐욕에 서서히 젖어드는 과정은 단순한 재미만으로 읽기엔,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하였다. 순간, 영화로는 느끼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실제 영화는 눈요기하기에 바빴다) 각각의 인물들 모두가 내 머릿속에서 살아 숨쉰다. 한 번 읽기 시작했더니,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다.

한편으론,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갖는 '신화'에 주목하였다.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를 읽을 때, 우리나라 '신화'에 주목했던 안타까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미 이야기의 틀이 갖춰진 신화를 재밌고 흥미롭게 재창조한 <니벨룽엔의 반지>를 읽으면서, 우리들의 설화, 신화도 이처럼 많이 재창조되고 더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찾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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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집없는 부자로 살자 - 통계로 본 아파트의 미래
박홍균 지음 / 이비락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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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집없는 부자'라는 문구가 시선을 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일단, 재테크, 아파트에 사실 많이 무지하다. 하지만 나이와 함께 조금씩 관심을 갖게되는 것이 또한 재테크다. 괜시리 압박감도 느끼면서,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하는 조바심도 들고. 조금씩 귀동냥한 이야기로 들은 '아파트'의 이야기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의 놀라움과 함께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제목을 보면서 과연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할까? 어떻게 집없는 부자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이 책은 손에 쥐었다. 일단 새롭고 재미있다. 경제니, 부동산이니 그런 걸 접어두고, 예측 가능한 아니, 이미 통계로 나와 있는 '인구와 그 생애 주기'에 따라 집값, 아파트값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아파트'는 언제나 '거품'과 함께 이야기된다. 가격 상승과 하락에 가장 중요한 것은 '거품'이 꺼지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저자는 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거품'이 아닌,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른 결정이라고. 자본주의 국가에선 너무도 당연한 논리인데, 그 인과관계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은 앞서 이야기했듯, 수요공급은 인구수와 그 생애 주기에 따라 좌우됨을 이야기하는 2장'수요공급의 법칙과 아파트값'는 나의 머리를 아주 명쾌하게 해주었다.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 정년기(1차 집 구입 시기인 30대 초반)가 되었던 80년대말의 아파트 폭등, 그리고 중장년층(2차 집 구입 시기, 40대 중후반)이 되면서 '중대형 평수'만의 아파트 폭등 등은 순수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이는 바로 예측 가능한 것이기에, 발빠른 정부의 대책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현재도 진행중이라며, 오늘의 문제와 연결하여 풀이한다. 요즈음, 뉴타운 재개발과 관련, 전세대란, 소형아파트 값의 상승 등등도 인구와 생애 주기로 또다시 풀면서, 앞으로의 대책을 이야기한다. 고령화사회의 문제, 낮은 출산율의 문제와 '두바이'와 우리의 현주소(우후죽순 초고층 빌등의 건설), 일본과의 비교,  신도시 문제 등등 더 많은 이야기들도 흥미롭게 전개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신문 기사로 이제는 1·2인용 아파트를 짓을 시기라 생각한다는 건설사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냥 단순하게 '아~ 그런가보군'하고 지나쳤던 것이 이 책을 통해 이해되었다. 통계로 본 대한민국의 미래는 너무도 확실했다. 물론 몇 가지 변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인구와 생애주기로 본 아파트 값은 아주 명백하게 수요공급의 법칙으로 설명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집없는 부자로 살자>는 아주 쉽고 구체적으로 대한민국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한다. 전혀 생각지 못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내 머리 속에 맹쾌하게, 지금껏 풀지 못한 많은 숙제를 한 번에 해버린 듯하다. 세상속 이야기가 좀 더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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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
김용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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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관련 책이 봇물 터지는 밀려오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에 휩쓸려 마냥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즐거운 선덕여왕과의 만남이었다. 붉은 책 표지가 내 눈을 사로잡으면서 '상처 입은' 봉황이란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역사상 아직 풀리지 않은 많은 미스테리가 많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선덕여왕'일 것이다. 생물연대 조차 정확하지 않으면서, 최초의 '여왕'이란 굴레 속 많은 지탄을 받으며, 홀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처음 '선덕여왕'에 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신라인 이야기, 서영교, 살림>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남성중심의 역사 속, 김춘추, 김유신을 중심으로 신라 격변기를 이해해왔다. 하지만 그 시대를 이끈 주역은 바로 '선덕여왕'임에도 그의 성과는 빛을 바라고 퇴색된 실정이었다. 그러한 역사적 충격이 이처럼 '선덕여왕'에 빠져들게 하였다. 과연 그는 어떤 삶을 살았고, 그의 최후에 관한 미스테리를 어떻게 풀고 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들, 내가 결코 풀 수 없는 많은 의문들을 여러 책을 통해 풀고자 한다.

 

이번에 읽은 <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은 국문학은 전공한 한 여학자의 책이다. 저자는 한 명의 여성이자 어머니로 살면서 역사 속 많은 여성들(황진이, 이매창 등)에 대해 관심을 쏟던 중, '선덕여왕'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이다. 저자의 이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역사학자의 관점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한 사료와 유물사진을 통해, 그리고 여성다운 섬세함으로 '선덕여왕'이 진실에 다가가고자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13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소제목들도 나의 흥미를 이끌어냈다. 각각의 목차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괜시리 기대되면서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화랑세기>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충분한 역사적 사료로 가치있다고, 그래서일까? 필사본 <화랑세기>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며 전개되었다. 진평왕의 딸 덕만, 천명 그리고 선화공주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잠시 선화공주를 잊고 있었다. 진평왕의 셋째 딸이였다니! 물론 선화공주의 실존 여부조차 많은 논란의 와중, 얼마 전에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의 내용까지 다루고 있어, 더욱 흥미진진하고 참신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속 폄하된 선덕여왕의 많은 업적들 - 대민 구휼 활동, 불교 진흥 정책, 각종 문화 정책(사찰 건립)-의 정치, 사회, 역사적 의도를 명쾌하고 규명하고 있다. 

 

" 선덕여왕 대의 사찰 건립은 씨족· 부족 사회가 국가 사회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질감을 막는 자연스러운 통치 행위임과 동시에 시장을 활성화시켜 신라 백성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수단이 되었다." (190)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선덕여왕'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다. '비담과 염종의 난' 와중에 선덕여왕은 세상을 떠났다. 실제 어떤 암살기도에 의한 것인지? 지병에 의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김유신과 김춘추의 숨겨진 정치적 의도를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유폐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선덕의 최측근 용춘, 자장, 염장의 최후, 그리고 진덕여왕의 즉위와 관련하여 많은 의문점을 제시하였다. 선덕의 최후의 이야기가 가장 궁금하던 중에 전혀 새로운 논의에 깜짝 놀라고 다른 책들과 달리 단연 인상적이었다.

 

"나라나 임금을 배반하여 군사를 일으켰던 사람은 비담과 염종이 아니다. 그들이 주장한 여주불능선리의 여주는 선덕여왕이 아니라 느닷없이 나타난 진덕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비담의 모반 운운은 역사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260)

 

지난 책들과 비교를 하면서 어떤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지가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뜻밖의 가능성에 놀라면서,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선덕여왕'을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 다음의 또다른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되고 설렌다. 국문학자인 여성에 비친 선덕여왕은 다부진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었다.  이 작은 책 <상처입은 봉황 선덕여왕>은 화려하게 신라 부흥기를 이끈 위대한 지도자였으며, 그녀의 삶의 이면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의 주류에서 벗어나, 오랜 시간 방황했을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진흥왕은 .... 고구려와 연합하여 한강 이남을 차지했으며 불교를 진흥시켰다."(236)란 내용에서 '고구려'와 연합하였다는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백제와 연합해서 한강 이남을 차지하고 배신하지 않았던가? 그 배신의 배후에 '고구려'와의 연합이 있었나? 오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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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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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일단 표지가 매력적이다. 가늘게 반쯤 뜬 파란 눈을 제외하고는 딱히 '악녀'적 인상은 없는 듯하고, 분홍색 치마, 파란 스타킹, 노란 색 구두의 화려함이 눈길을 끈다. 제목의 '악녀'와 '악녀일기'라는 단어 또한 '어떤 이야기일까?'하고 나의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과연 '악녀'란 정의가 어떻게 내려질까? 제목과 표지만으로도 일단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책이다. 책을 받자마자 얇은 두께에 놀라며, 살짝 책 안을 살펴보고는 당황스러웠다. 시(읽고 보니, 한 편의 서사시!)처럼 간결하게, 글자가 듬성듬성 배열되어 있는 것이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을까?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내용은 아주 참신하면서 잠깐이지만 너무도 경악스러워 입을 담을 수가 없었다. 

 

일단 '악녀'란 무엇일까? 누구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과연 나는 악녀에 속할까? 책을 읽기 전까지 내 스스로 '나는 악녀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라고 자만했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남을 해하려는 의도를 가지며 행동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비난받아 마땅한 커다란 악행을 저지른 적도 없다고 생각했으니. 그런데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부끄러웠다. 저자 '돌프 페르로엔'이 이야기하는 '악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표현하는 방식은 단연 획기적이었고, 극히 짧은 이야기 속에 너무도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14살 생일을 맞은 주인공 '마리아'는 아빠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바로 그 선물은 흑인 노예 소년 '꼬꼬'였다. 처음으로 자기 소유의 노예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친척 아줌마에게선 채찍을 선물 받는다. 서서히 노예를 다룰 줄 알게 되고, 여자 노예 '울라'를 데러오면서 '꼬꼬'는 노예시장에 내다판다. 그리고 울라는 아기를 낳는데, 피부색이 다르다. 그 아이는 마리아가 사모하던 '루까스'의 아이였다.

 

이 책 <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는 아주 특별하다. 대농장주의 외동딸인 마리아가 쓴 일기는 일상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그냥 사실 그대로를 적고 있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잔인하였다. 단지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있을 뿐, 어떤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고, 의도도 뚜렷하지 않다. 그런데 충격적이면서, 내 안의 악녀를 발견하게 된다. 오히려 순진함이 더욱 악녀스럽게 비춰지고, '무지'하다는 변명조차 통하지 않을 듯한 '마리아'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반성하게 된다.

 

어느 초등학생 아이가 피살되었다. 그런데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주변의 무관심이 또 다른 '피의자'가 되었다. 나 역시 단지 내 생활에 만족하면서, 주변에 무관심하고, 사회에 무관심한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았다. 분명 반성해야 할 일이다. 내 안의 악녀가 사라지도록 항상 경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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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 향기나는 여왕 선덕
이적 지음 / 어문학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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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27대 왕인 선덕여왕에게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혹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지도자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르지만,

……

여왕은 시대의 굴레를 또 여자라는 굴레를, 고귀한 모란의 자태와 향기로 살아갔다. 여왕은 인생이라는 주제를 어떨 때는 굴레로, 어떨 때는 모란으로 변주하면서 시대를 이끈 것이다."  (5)

 

 

지난 달, 소설 <선덕여왕, 한소진, 해냄>을 흥미롭게 읽었다. 선덕여왕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에, 기존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뒤로 미룬 채, 흥미로운 전개에 바쁘게 읽었다. 그리고 tv드라마를 통해 '선덕여왕'을 만났다. 그런데 책과 드라마의 설정이 확연하게 다르다. 드라마는 천명과 덕만 두 자매가 쌍둥이로 나온다. 하지만, 소설 속에선 천명이 언니로 나온다. 그런데 <삼국유사>, <삼국사기>와 같은 역사서에는 덕만이 맏딸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허구와 흥미 위주의 소설, 드라마로 인한 역사적 왜곡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고는 하지만, 허구적 상상력의 범위가 무한정 확대된 것이 나에게 혼란을 주었고, 이렇게 '역사가의 눈으로 본' 선덕여왕을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선덕여왕, 이적, 어문학사>는 선덕여왕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역사적 사료와 유적을 통해 선덕여왕의 시대와 인물들을 규명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선덕여왕의 실체, 즉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고자 노력한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팩션과 학술 논문의 결합을 꿈꾼다고. 그래서일까? 기존에 읽었던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들과 맞물리면서,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도식화되고 점점 뚜렷하고 생생하게 그려졌다. 선덕여왕과 미실에 중점을 두고 읽었기에, 다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부족하다 여기던 찰라에, 여왕을 중심으로 한 시대와 주변 인물들이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소설에서 다소 아쉬웠던 부분들(특히, 선덕여왕 시대의 삼국관계, 그리고 수많은 전쟁)도 또한 많이 해소되었다.

 

많은 설화(모란꽃설화, 천사옥대설화, 도화랑설화, 대세와 구칠설화, 여근곡설화)들을 소개하면서, 역사적 사실, 그리고 정치, 사회적 역학관계를 규명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모란꽃설화라 할 수 있다. 부제 '향기나는 여왕 선덕'과 표지의 그림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소설에서도 이야기가 전개된지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 당에서 보낸 그림 속 모란꽃을 보면서 나비가 그려지지 않은 것은 자신을 비하한 것이라며, 향기가 나지 않는 모란은 선덕여왕 그 자신이라며, 크게 화를 내던 장면의 이야기가 모란꽃설화로 실제 그 의도를 여러 방면에서 나타내고 있었다.

 

" …… 신라나 고려의 백성들은 부처님의 보호를 빋으며 살아가는 희망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선택할 수 없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힌 백성들이 오로지 기댈 수 있던 것은 누구도 빼앗지 못할 희망 그것이었다." (219)

 

선덕여왕 시대의 김춘추와 김유신은 내게 별개의 인물들이었다. 선덕여왕의 시대를 꽃피는 신귀족세력인 김춘추김유신의 이야기, 그리고 분황사, 황룡사 9층 목탑, 첨성대, 자장과 통도사 등등 그 시대의 역사적 유물들을 소개하면서 그 속에 감춰진 많은 의도, 의미를 파헤치고 있었다. 신라 불국토화의 정치적 의도가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은 극한의 어려움에 처하면 으레, 종교에 마음을 쏟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 개인뿐이 아니라, 한 나라도 역시 마찬가지가 보다. 삼국의 혼란기였던 선덕여왕의 시대, 잦은 전쟁 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왕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왕권강화의 방안은 역시 '불교'라는 종교적 힘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던 힘없는 백성이 있었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불교인도에 대한 것도 많이 알 수 있었다.

 

" …… 여왕과 지지자들이 여왕을 신성화하는 과정에서 여자이라는 불리함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적극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 설화의 창조자들은 당시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여왕의 자질에 신라 고유의 여성관과 토착신앙이 스며 있는 불교관을 더해 여왕의 예언가적 능력을 강조하였다." (269)

 

역사적 왜곡을 정확히 파악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면서, 소설과 드라마를 즐기고 싶다. 그런 점에서 소설<선덕여왕, 한소진, 해냄>의 근거를 알 수 있어 다행이었다. 소설 속 이야기는 필사본 <화랑세기>에 근거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사료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 그리고 부정적 견해들이 우세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고 이야기를 떠올리니, 오히려, 선덕여왕을 만난 것이 더욱 행복해졌다.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또한 흥미롭고 쉽게 역사에 다가가고, 또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면, 금상천화가 아닐까? 그래서 역사가의 눈으로 본 향기나는 여왕 <선덕여왕, 이적, 어문학사>이란 역사서를 읽은 동안 너무도 즐거웠다. 물론 많은 숙제들도 또한 남겨졌지만, 또다른 책을 통해, 차차 해결되리라~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중에 하나는 선덕여왕이 아니더라도 잊혀져 가는 진설을 찾아내어 전하는 것이다. 그 전설이 아직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더라도 후대 어느 순간에 역사로 되살아나 우리의 역사를 되살리고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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