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고려왕조실록 -상
한국인물사연구원 지음 / 타오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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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은 극히 주관적일 때가 아주 많다. 특히 고려사는 더더욱 그러하다. 외침을 맞이하여 기록 자체가 소실되기도 했을 뿐더러

훗날 다시 편찬되는 과정에서 기득권을 쥔 왕조의 이해에 맞게 역사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118쪽, 역사는 오늘도 말이 없다)
 


 

너무도 익숙한 "조선왕조실록"에 비해 "고려왕조실록"은 너무도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임진왜란 때, 이미 "고려왕조실록"이 소실되었다고 하니, 고려에 대한 많은 역사는 "고려사""고려사절요"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한다. 불에 타고 없어진 고려 왕조의 역사가 <이야기 고려왕조실록>으로 재탄생되었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의 반가움과 설렘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조선 중심의 편중된 역사때문인지 새롭게 알게 되는 옛 역사와 만나는 것은 언제나 새롭고 항상 기대감에 들뜬다. 이 책은 나의 그런 기대감을 한층 더 부응해주었다. 고려의 역사, 그 잃어버린 역사의 큰 흐름을 꿰뚫고 이해할 수 있었다.

 

고려를 크게 태조왕건을 시작으로 하여, 광종, 성종, 문종 중심의 고려 기틀을 다지는 시기와 무신집권기, 그리고 몽고 침략 후의 원간섭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이 책 <이야기 고려왕조실록 上>권은 태조왕건을 시작으로 예종에 이르기까지 총 16대 왕들을 순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 두해 정도 집권했던 병약한 양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도 하지 않아 별로 기억에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들을 가깝게 만날 수가 있다. 업적 중심의 역사를 생각할 때, 소홀할 수 있는 많은 왕들이 이 책을 통해 살아난다. 그리고 왕들의 즉위 과정, 피의 역사와도 만나고,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들의 앞뒤 배경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조의 서경천도의 내막, 왕규의 난과 경종의 타락, 강조의 변 등등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권력을 둘러싼 암투 속, 굳건하게 고려의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광종, 숙종, 예종과 만나면서, 그들의 또다른 면모에 놀랐다. 왕들의 관계, 즉위 배경, 그리고 재위기간의 치세들을 매끄럽게 물 흐르듯 설명하고 있어, 끊어져 있던 흐름과 역사의 맥을 집을 수가 있었다.

 

업적 중심, 단편적 사건 중심의 역사에 치우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 역사적 사건의 내막 그리고 역사적 의의을 알게 되는 것이 너무도 흥미로웠다. 그 과정 속 인간적 면모가 드러나기도 하면서 역사의 고리가 일관성있게 연결되어, 고려의 역사를 좀 더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었다.  고려가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이야기 고려왕조 실록 下>권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무신집권기의 왕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원간섭기 시절, 왕들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 숨어있을지? 자뭇 기대된다.

 


 

 "듣건대 새 도낏자루를 다듬을 때에는 헌 도낏자루를 표준으로 삼으며 뒤 수레는 앞 수레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교훈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대개 지난 시기의 흥망이 장래의 교훈으로 되기 때문에 이 역사서를 편찬하여 올리는 바입니다."

(8쪽, '고려사'전문의 내용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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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공책 - 부끄럽고 아름다운
서경옥 지음, 이수지 그림 / 시골생활(도솔)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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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생활의 정겨움과 '엄마'라는 포근함에 쉽게 책을 집어들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소박한 삶의 모습, 시골생활의 바지런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또한 옛것의 아름다움이 절로 묻어나오는 책이었다. 참으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삶이 담겨있다.  부끄럽지만 아름답다는 '엄마의 공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은근한 기대감과 함께 내 엄마의 공책을 들추는 듯한 묘한 느낌이 교차하는 책이다. 옛스러운 재봉틀과 항아리, 골무의 색그림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지만, 책 속에는 더 많은 그림들로, 색연필, 크레파스의 정겨움이 한 가득한 딸(이수지)의 그림이 참으로 따스하다.  

 

책을 후트루~ 들쳐보면서, 참으로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책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그림책' 때문이었다. 차례를 보기 전에 그림책을 보면서 '참 이상스런 편집이구나' 싶었다. 그 이상함이란 낯설음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다가 들었던 많은 아쉬움이 저자의 딸 '이수지'의 그림책을 통해 많이 해소되었다. 즉 엄마의 이야기를 읽다가, 남편의 찢어진 바지에 놓았던 에델바이스 자수, 딸의 책을 자수로 옮겼던 바다와 소녀, 그리고 손주에게 만들어진 헝겊조각이불, 저자의 보물 반닫이들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지만, 내가 상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들이 그림책 속에 놓아있어, 너무도 포근하고 따스하게 다가왔다.

 

별스런 삶의 이야기가 오롯이 정성스레 씌여있다. 참으로 따스하고 정겨움이 가득한 책이었다. 병든 시어머니를 시작으로, 자신의 친정어머니, 그리고 이젠 친정엄마가 된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딸, 남편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새와 개(래시)들의 이야기, 요리 이야기, 바느질, 가야금, 음악회 이야기 등등 참으로 여유롭고, 즐거운 삶의 이야기가 한 가득이다.

찢어진 바지에 수를 놓아달라는 남편의 이야기, 밥 다 해 놨다는 남편의 이야기, 오토바이 타고 함께 여행하자는 남편의 이야기 등은 참으로 부럽다고 해야할까? 남편 자랑이라 해야할까? 내가 결혼을 하고, 함께 늙어간다면, 이들 두 부부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딸이 보고 싶어 찾아간 미국에서 미술관을 관람하려다 생긴 일, 그 일로 인해 딸이 전시회를 열게 된 이야기,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우연같은 이야기속, 애뜻함이 가득 묻어 있는 이야기가 있다. 더불어 엄마의 이야기, 엄마의 엄마 이야기, 엄마가 된 딸 이야기, 딸의 엄마 이야기, 계속되는 엄마의 이야기는 나의 할머니,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하면서, 내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고향 시골 마을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되었다.

 

참으로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나의 엄마도 역시 지금도 열과 성의를 다해 삶을 살아내고 있으시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듯한 나의 모습을 또 반성하면서, 가야금을 배우고, 판소리를 배우고, 동양자수를 배우고, 제빵기계를 충동구매하며, 빵을 굽는 이야기 등등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아'라는 소제목에서 느낄 수 있지만서도~ 곳곳에서 그녀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나, '배움의 열정'이란 단어를 가슴에 새겨보았다. 또한 옛것의 소중함,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정취 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참으로 따스한 책 <엄마의 공책>이었다. 참으로 여운이 오래가는 책, 아랫목에서 할머니가 옛이야기 들려 주는 듯한 포근함이 한 가득한 책이다.

 

 

 그러다가 내가 살고 싶었던 바깥세상은 나와 동떨어져 있는 바깥이 아니라 바로 이 자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헤매고 방황하던 '이게 아닌데'가 아니라 '바로 이게 그것'이라고 말이야. 어딘가로 가고 싶은 것,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을 세상 밖이라고 늘 동경했지만 이제야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이 세상 밖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주부로 살며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들, 그러나 감당해야만 했을 때 회피하려는 마음의 표현이 세상 밖으로 사라지고 싶은 욕구로 전이된 것은 아닐까? (엄마의 세계 中 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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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운의 우리 땅 과학 답사기 - 30억 년 한반도의 자연사가 살아 숨 쉬는 우리 땅의 비밀을 찾아 떠난다! 손영운의 우리 땅 과학 답사기 1
손영운 지음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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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자연의 얼굴이다. 자연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땅에 새겨진 구름과 상처들은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간 살아온 삶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땅도 이와 마찬가지다." (134)

 

'과학답사기'라는 제목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산천을 누비며, 그 곳에 숨어 있는 과학적 사실, 특히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던 지식(물론, 거의 잊어버렸다.)들, 지질학적 접근만을 생각했다. "30억 년 한반도의 자연사가 살아 숨 쉬는 우리 땅의 비밀을 찾아 떠난다!" 라는 부제를 통해서도 이 책의 성격을 파악할 수가 있다. 하지만 방심을 금물이다. 첫 번째 '경기도 연천'편에서 한 방 제대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책을 대하는 마음자세 또한 다시 잡았다. '연천 전곡리 선사 유적지'의 역사적 의의가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한반도의 자연사 뿐만이 아닌, 생생한 삶의 현장, 역사와 문화사까지 아우르고 있는 책이라 정말로 깜짝 놀랐다. 그렇다. 이 책, <손영운의 우리땅 과학답사기>는 과학적 접근에만 그쳐 딱딱한 지식 전달이 아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의 삶의 전반적인 고리를 연결하면서, 과학적 지질학적 의의뿐이 아닌, 우리 역사, 우리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명의 유래와 같은 것을 시작으로, 지형적 생태, 특색을 통해 쉽게 과학에 접근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시화호'의 그 부정적 이미지가 이 책을 통해 호기심 가득한 장소로 변했다. 사진 속 풍경에서 위대함과 웅장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강화도 장화리 갯벌'의 의의와 중요성을 깨달으며, 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상북도 청송'을 만났다. 다른 책을 통해 만났던 '청송'의 인상적인 '주왕산', '백석탄'과 '꽃돌'의 지질학적 의미, 그 탄생의 비밀을 이 책을 통해 풀었다. 그 오랜 세월이 빚어낸 자연풍광이 더욱 소중해지면서 한없이 멋스럽게 느껴진다. 지금껏 우리 산천의 배경을 소개했던 책을 만나면서, 그 아름다움에만 심취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더 나아가 그 아름다움 속에 숨은 많은 비밀들을 토해내고 있어,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극명한 이유들로 더욱 애뜻해지고 사랑스러움이 넘치는 우리 땅으로 만든다. 물론 우리 땅에 대한 저자의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지구의 오랜 시간, 그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무게를 새삼 느낀다. 우리 눈에 변하지 않는 듯, 그대로의 자연인 듯하다가도, 또한 변화무쌍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숙연했던 마음과 함께 깊은 미안함도 느껴졌다. 요즈음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로 인해 많은 자연이 훼손되고 파괴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앞으로도 더욱 그럴 것이고, 그러하기에 이 책은 정말 유익했다. 살아 숨쉬는 자연을 만나면서, 그 숨쉼을 헤아릴 줄 아는 여유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게으름과 귀차니즘을 멀리하고, 맛있는 공기 찾아, 멋들어진 풍경들을 찾아 나 역시 떠나고 싶었다. 단, 흔적은 최소한으로 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아름다움에 빠지면서도 그 속에 숨어있는 많은 과학적 지식을 만났다. 더나아가 '손영운의 과학지식'란을 통해 풍부하고 깊은 과학 지식을 쌓게 될 것이다. 또한 추상적인 지식이 아닌, 내 기억 속 풍경들과 함께 겹쳐지면서 '아~ 그것이 바로 이거였구나'하면서, 지형적, 지리적 특색을 쉽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수가 있었다. 지금 중학교 1학년 1학기 과정에서 지구(지구의 내부, 지표)에 대해 배우면서 암석에 대해서 배운다. 달달 외우기 바빴던 그 암석들의 특징을 책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즉 아이들 학습 자료로도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던 책이다.  

 

교직은 그만두고 시작한 꿈, 그 꿈의 실현이 바로 <손영운의 우리땅 과학답사기>이다. 또한 이 책은 '우리땅 답사기'의 첫 번째 시리즈이다. 지구과학 전공자 답게 과학자의 눈을 통해 우리땅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 학창시절 지구과학시간과 겹쳐지면서 또다른 추억에 젖기도 하였다. 우리 땅 곳곳의 많은 흙덩어리, 돌덩어리들, 그냥 마냥 지나쳤던 것들이 점점 살아있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나 우리 땅을 돌아다녔다면, 지구인으로 태어났으니 다른 나라의 땅도 가 보야 한다고 생각한다(5)'는 그의 열렬한 소망에 뜨거운 응원을 보내며, 그 꿈의 열매들을 고스란히 맛나게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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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에밀 부르다레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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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은 어쩜 이리도 섬뜩할까? 왜?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아는 이를 만난 기분,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나에 대해 속속들이 꿰뚫고, 간파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파란눈의 이방인에게 비친 조선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궁금증이 생겼다. 기존의 여러 책들을 익히 들어보긴 했지만, 선뜩 손에 집히지는 않는 부류의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는 단연 압권이다. 정말이지 너무도 낯선 모습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주 나의 호기심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한, 이 사진 한 장은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에밀 부르다레'라는 프랑스인은 1900년 초 조선을 방문하여 4년간의 조선생활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탐사록, 견문록 형식의 이 책은 20세기 조선 관련 책 중에서는 널리 읽혔다는 점도 흥미롭다.

 

 

일본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그는 부산, 서울, 평양, 금강산, 목표, 제주에 이르기까지 대한제국 곳곳을 누비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곱씹으며, 조선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에 절로 감탄한다. 또한 통찰력 있는 그의 안목에 놀라는데, 일본 제국주의의 그 노골적인 침략의도를 간파한 그의 눈엔 무너져가는 대한제국의 모습이 너무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의 "세세하고 치밀한 묘사"는 이내 몰랐던 조선 아니, 버리고 잊어버린 과거, 전통과 마주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생생하게 옛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들, 풍습, 주변환경, 제도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깊이 파헤치고 있는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은 우리의 옛모습을 만나다는 설렘, 반가움과 함께, 뜻밖의 이야기에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가물가물 잊혀진 역사, 풍습, 제도와 만나며, 근대화 과정 속 변화무쌍함과 더딤이 빚어진 우리의 일면을 상세하게, 아니, 아주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너무 무관심했다. 아니, 눈 감고 귀 막은 채 오히려 알기를 두려워한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지난 역사 속 우리의 모습이 이젠 너무도 생경해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장례식과 결혼식 풍경들,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절차에 대한 에밀의 상세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생생한 묘사 다음으로 흥미로운 것은 "사진"이었다. 사진만 먼저 훓으며 그 낯섬과 마주하였다.  사진 속 인물과 풍경들은 너무도 생소해 당혹스러웠다. 이방인에 대한 조선인의 호기심은 이방인의 사진 속에 듬뿍 담겨있어, 오히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또한 무너져가는 성벽, 기와은 대한제국의 앞날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 너무도 애잔하게 가슴을 친다. 

 

나는 멀리 떨어져, 한참 거리를 두고 조선을 만나려 했었다. 하지만 '에밀'은 그렇지가 않았다. 물론 악취, 미신 등과 같은 몇 개를 제외하면, 조선의 것을 아주 열린 마음으로 마주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에밀은 만나게 된다. 과연 난 지금 그처럼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을까? 편협함과 편견들로 무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파란 눈의 사내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알고 돌아가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어찌 고맙지 않을까? 하지만 참으로 창피한 일이기도 하여, 씁쓸함도 깃든다. '에밀 부르다레'의 눈에 비친 대한제국, 그 최후의 숨결을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면서도 또한 새롭게 활기를 불러일으킨다.

 

 

"백의민족의 옷도 머지않아 끝이 날지 모른다. 그날이 오면 이 나라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

흥미로운 일이다. 이 정부에서는 항상 큰 개혁은 옷으로 하려니 말이다. 옷이 중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잊은 정부인 것을(이 말은 조선인의 속담 아니던가)! 옷보다는 해묵은 제도를 개혁해야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과거에 주민에게 담뱃대 길이를 줄이라고 강요한 적이 있었다. 너무 건방져 보인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다음에는 옷소매를 줄이라고 했다. 또 그 뒤에는 모자의 챙을 줄이라고 했다. 도대체 어느 것까지 줄이라고 할지...... 오늘날은 색에 집착한다. 내일은 형태에 집착하리라. 하지만 정부는 불행하게도 극단적이며 낭비적인 관료제에 계속 사로잡혀 있을 듯하다."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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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도둑 - 김주영 상상우화집
김주영 지음, 박상훈 그림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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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김주영 작가의 책이 나왔다. 극도의 흥분과 반가움 속에 냉큼 손에 집었다. 얼마전에 읽은 <똥친 막대기>의 잔잔한 감동을 또렷이 기억하면서 <달나라 도둑>이야기에 빠졌다. 상상우화집! 그 상상의 세계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지는 않았다. 왜, 우화집은 늘상 잔혹함(너무 과장되나?) 속, 기상천외한 이야기, 엉뚱하고 슬픈 이야기들로 가득찬 것일까? 그럼에도 뜻모를 훈훈한 감동이 밀려오는 것은 또 어찌된 영문일까? 정말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실상에서는 외면하고픈 많은 것(배고픔, 외로움, 남루함 등등)들이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아름답게 채색되고, 잔잔한 미소와 훈훈한 감동이, 가슴 찡한 그 이상의 것이 내 마음 속에 넘실거린다.

 

<달나라 도둑>은 5가지 화두(길, 소년과 소녀, 이야기, 인생, 꿈)속, 62개의 우화로 꾸며져있다. 각각의 우화들은 2장 정도를 넘지 않는다. 짧은데 몹시 뒤가 켕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매번 조마조마한 마음이 움찔거린다. 우리의 아픈 일상과 풍경(사라지는 골목길의 풍경), 굵직한 사건(기름유출사건)들도 잔잔한 이야기로 엮어 있다.

 



'길 위의 작가'에 걸맞는 길이란 화두가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의 아둔함과 마주하였다. 사막 속 오아시스를 찾아 여행을 떠난 나그네, 모래위 없어진 도로를 찾아 헤매는 그는 바로 나였다. 단지 한 발 내딛으면 되는 것을. 이야기 속 아찔함에 숨이 턱허니 막혔다. 외로움이 짝을 찾아 떠났다. 세계 곳곳을 헤매며, 외로움이 만났던 크레인 속 사나이, 미루나무, 괘종시계와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훈훈함을 느끼며, 외로움이 남겨준 훈훈함에 깜짝 놀랐다.

 

소년과 소녀

풋풋하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풍경이 되살아났다. 단돈 50원을 손에 꼭쥐고 구멍가게를 찾던 그 신났던 발걸음이 개구쟁이 한 소년을 통해 생생하게 될살아났다. 몰래 훔친 돈으로 사먹은 사탕이 너무 많아 오도가도 못하는 개구쟁이 소년, 걱정이 많은 아이의 황당한 걱정들,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을 퍼올리는데 열을 올리는 소년, 뜨개질 달인 소녀의 비극적 이야기를 통해 두려움의 허상을 보고 말았다.

 

이야기

기상천외한 이야기 속, 아찔함을 경험하였다. 유쾌한(?) 곰쥐의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자신이 쥐라는 것을 잊어버려 겪게된 변고는 곰쥐만큼이나 '아불싸!'를 외치며, 그 익살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상형을 찾은 유명운동선수의 이야기, 인간과 동물의 전쟁, 그 사소한 잔인한 속, 동물들의 유쾌한 전투가 시작된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 속 작은 감정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콕콕 나의 심장을 찌른다.

 

인생

외롭고 음산한 그리고 굴곡진 우리들의 삶이 한 가득이다. 일만 하고 욕만 먹는 송아지, 꽃에 갇힌 가족들, 신의 은총이 담긴 딸기 바구니를 둘러싸고 벌이는 동물들의 쟁탈전, 실연 후 반쪽 인생을 사는 그녀의 기구한 삶 속, 씁쓸함이 빚은 기발한 이야기들은 한 가득 삶의 지혜를 풀어놓는다.

 



기상천외한, 아니 허무맹랑한 꿈, 그리고 꿈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의지을 엿볼 수 있는 황당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가닥의 희망과 잔잔한 미소를 퍼진다. 인어를 꿈꾸는 그녀, 개구리의 등에 엎힌 족제비, 여우와 곰, 대도시 한 복판에 자리한 시들어가는 나무와 그 속에 둥지를 둔 소쩍새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꿈을 떠올려본다. 

 

기발한 상상의 세계 속 아찔하고 섬뜩한 이야기들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움찔움찔 놀라면서 나의 어리석음과 마주하다보니, 공허했던 나의 일상에 살며시숨통을 열어주었다. 잔인한 익살 속, 엉뚱하고 천진난만한 이야기들을 게걸스럽게 토해놓고 있는 <달나라 도둑>은 나의 폐허와 같은 마음을 훔쳐가버렸다. 어찌 고맙지 않으랴~ 길 위의 작가 '김주영', 그의 다음 작품들이 또다시 기다려진다. 벌써부터 설레니, 이를 어쩐담~

 

 

체질에 맞지 않는 약을 복용했을 때 부작용이 나타나듯이, 우리가 올곧은 삶과 어긋나는 길을 갈 때 거울은 사뭇 삼엄하고 뼈저린 언어도 꾸짖어줍니다. 신의 어깨를 기대지 않고도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래서 거울을 보는 일뿐입니다. 우리 인류가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성찰할 수 있는 수단인 거울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크나큰 행운인지요. (124쪽 거울에 비친 고해성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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