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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다윈혁명 - 우리 사회 지성 19인이 전하는 다윈 혁명의 현장
최재천 외 18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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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념이 가득한 자, 자신이 정의롭다고 확신하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이 가득한 자를 신뢰한다.” - 김훈

  무슨 책인지 잡지인지 알 수 없지만 소설가 김훈의 한 마디가 사무쳤다. 잘 적어 놓은 걸 보니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실천에 대해 고민이 있었나보다. 어떤 글이든 사람이든 ‘때’를 만나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좋은 사람, 훌륭한 글을 읽어도 마음에 닿지 않는 때가 있고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인연이지만 평생 함께하는 인연이 되기도 하고 평범한 한 줄의 글이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는 것은 ‘언제’인가가 중요하다.

  짧은 생이지만 돌아보면 무수한 사람들과 만났고 헤어졌으며 많은 책을 읽고 잊어버렸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듯 잊고 싶지 않은 문장과 구절들이 이제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새삼스러운 이유는 나이 탓이 아니라 기억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망각의 힘은 위대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고백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고 사는지.

  굳은 신념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이제 겨우 150년이 흘렀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 때문에 다윈을 찾는 것은 아닐까? 과연 다윈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준다고 믿는 이 많은 사람들의 맹목은 또 다른 종교적 광신은 아닐까? 하지만 왜 여전히 다윈을 기억해야 하는지 우리는 가만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류에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죽음은 한 존재의 망각으로 완성된다고 한다면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은 불멸의 존재가 되어 누구보다도 열심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다윈이다. 불과 150년 전인 1859년 11월 24일 영국 런던의 존 머레이 출판사가 <종의 기원>을 내 놓는다. 초판 1,170권은 당일 매진됐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에 코페르니쿠스적 충격을 가한 이 책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우리들의 고전이 되었다.

  특정 시기에 특정인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상징이 만만치 않게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밝혀주고 있다. 이념을 넘어 다윈의 생각은 시대의 반역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회와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는 생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변화도 발전도 즐거움도 없는 것은 아닐까?

  평생 병마와 싸우며 어린 딸을 잃고 신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싶었던 불행한 남자의 책은 작가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명의 탄생이 우연이라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말을 뱉어버리고 싶은 다윈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점점 지질학부터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학문을 넘나들며 그 명백한 증거들 앞에서 진실을 외친 다윈은 행복했을까?

  개인의 행복과 불행을 넘어 인류의 지적 토대 자체를 뒤흔든 대지진이 벌어진다.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함께 20세기를 뒤흔든 지구인 3명 중 하나인 다윈의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건네며 살아있다. 다만 우리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귀를 막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뿐이다. <21세기 다윈 혁명>은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과 세계화를 통한 금융위기, 민주주의의 위기와 인문학의 위기, 환경 문제와 미래 사회를 내다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최재천을 비롯한 19명의 각 분야의 교수들이 21세기의 전망을 다윈코드에 맞춘다. 하나의 키워드로 이렇게 다양한 학문 분야를 섭렵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기만하다. 철학, 과학, 윤리학, 종교, 사회과학, 심리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 인류학, 성, 문학, 미술, 음악, 지질학, 환경, 의학, 공학, 복잡계과학이 그것이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판 150주년을 맞은 올 해 기념식처럼 출간된 이 책은 최재천의 기획과 주도로 이루어졌다. 제목만 들어도 토할 것 같은 쓰레기 신문에 연재되었지만 김지하와 박홍을 들러리 세우는 신문에 실렸던 모든 글이 다 나쁠 수는 없다. 다윈을 통한 지식 백화점을 둘러본 느낌이다. 새로운 미래 사회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각 분야에서 다윈은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학문을 통섭하는 다윈의 힘은 단순해서 아름다운 진화이론에서 나온다.

  그것은 고정 불변의 진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고 즐겁게 춤출 수 있는 혁명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변화와 새로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 책도 다윈도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아니라 새로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따라 뛸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윈보다 다윈의 생각이 낳은 결과와 여전히 창조론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함께 생각했다. 진리는 각자 마음 속에 간직하면 그뿐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생각조차 영원히 변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09092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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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네모북)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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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 입는 원숭이들은 오늘도 안녕하신가? 인간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말로 들리는 이 인사가 흑인들의 “What's up?"처럼 지구 인류 문명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들릴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은 지나친 비관주의일까?

  어떤 어려움과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생존해 왔으며 진화하고 있다는 믿음은 굳건하다. 교에 기대든 과학기술에 의존하든 이 믿음은 영원히 유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잠시 빌려 쓰는 행성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종족이 멸종하지 않고 지속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 가운데 유일하게 털이 없는 원숭이인 인간에 대한 본질은 무엇일까?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다면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는 인간에 대한 주관적 해석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물학이라는 학문적 관점에서 인간을 하나의 동물로 간주하고 관찰하자면 문명사에서 위치를 지워버려야 한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관점을 가지고서는 이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다.

  결국, 언어를 사용하며 정교한 손을 사용할 줄 알며 이성이 발달했다는 몇 가지 특성을 제외하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털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평가는 정확해 보인다. 1967년에 출판될 당시의 논란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가 인간에 대한 모독이며 신성 모독이라는 평가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 같은 한 동물학자의 도발적 발언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본질이다.

  21세기에 <털없는 원숭이>를 털없는 원숭이는 숭고함을 느낀다. 아무리 미사여구와 화려한 수사로 포장해도 인간은 한 마리 원숭이에 불과하다. 본능에 내재한 숨겨진 동물적 속성들은 당연한 것이면서도 충격적인 사실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는 숲에서 도대체 몇 발짝이나 벗어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인간에 대한 필독서 1위에 오를 만하다. 지금까지 인간의 영혼 혹은 지적 영역에서 다루어진 우리들의 본질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동물학적 인간론은 너무나 적나라하고 솔직하며 기발하고 자극적이다. 독창적인 관점과 놀랄만한 호기심으로 인간을 관찰하고 있는 듯 한 이 책은 비범한 종인 인간의 모든 것을 해부한다.

  인간의 편견은 무섭다. 문화와 종교, 관습과 규범들에 의해 사회가 유지된다고 하지만 비판적 관점 없이 살다보면 털 있는 원숭이들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저자는 편견이라는 거인의 잠을 깨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시도하는 용기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놀랍기만 하다. 무자비한 진보를 외치며 친척 동물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심지어 같은 인간끼리도 이유 없이 학살하는 유일한 종에 대한 반성은 이 책 영역 밖의 일이지만 생각의 갈피는 끝없이 뻗어나간다.

  기원, 짝짓기, 기르기, 모험심, 싸움, 먹기, 몸손질,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 등 전체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 <인간 동물원>과 3권 <친교 행동> 등 3부작으로 마무리 된 이 시리즈는 철저하게 인간을 동물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또 다른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그 내용과 관점은 인간에 대해 고찰한 어떤 책보다 그 한계를 뛰고 넘고 있다.

  지구의 역사를 12시간으로 본다면 인류의 역사는 11시 59분에 시작됐다는 비유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짧은 시간동안 그만큼 비약적으로 진화한 인간에 대한 고찰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최근 진화생물학에 대한 관심으로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라는 걸출한 역서를 만난 적이 있지만 이 책을 놓쳤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현대 사회의 복잡한 관계와 긴장감 속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사람은 천천히 이 책의 책장을 넘겨보아야 할 것이다. 심리학에 대한 관심만큼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호기심은 지속될 것이다. 보다 솔직하고 다양한 관점의 책들이 여럿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내용만큼 직접적이고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정받은 책들은 헛된 이름만을 전하는 법이 없다. 수많은 책들 속에서 옥석을 가리고 탁월한 저서들을 골라내고 소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쉽지 않고 만만치 않지만 안목은 저절로 생기지 않고 읽는다고 모두 내것이 되지는 않는다. 왜, 어떻게,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본다.

  한 마리 털 없는 원숭이는 오늘도 스스로가 원숭이인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뭔가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 책장을 넘기고 있으며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그 허망한 생이 지속되고 있다. 시니컬한 비관주의로 인도하는 책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고 난 아주 사적인 상념일 뿐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주 좁은 관계들을 돌아보고 주변의 모든 인간들을 털 없는 원숭이의 관점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있다.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어린 시절의 창의성과 호기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이 많다. 이들이야말로 인류가 계속 진보하고 팽창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 P. 168

08110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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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없다면! 생각이 자라는 나무 12
꿈꾸는과학.정재승 지음, 정훈이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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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실천적 동력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보다 ‘이카루스의 날개’가 먼저였고, 잠수함보다 ‘해저 2만리’가 먼저 쓰였다. 상상은 창조의 원동력이고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큰 힘을 발휘된다는 사실은 우리는 과학을 통해 확인해 왔다. 예술적 상상력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력과 결합될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은 미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몽사이(夢-sci)'라는 이름으로 ‘꿈꾸는 과학’을 실천하는 모임이 그간의 결과물을 책으로 묶었다. <과학콘서트>를 시작으로 과학의 대중화에 열중하고 있는 정재승이 이끄는 미래의 창조적 과학그룹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팀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상상하는 모든 것은 과학적 토론을 통해 이론적으로 점검된다. 얼마나 행복한 상상들인가? 놀이와 상상력은 과학의 무한한 자양분을 제공한다. 딱딱하고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기본적인 원리와 합리적 사고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러한 이유를 찾아간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한 상상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말도 안되는 상상,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웃음 가득한 여행이다. 하늘에서 주스비가 내린다면? <찰리와 초콜릿 공장>처럼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상상했던 이야기이다. 눈이 아니라 빵이나 떡가루가 내리고 비대신 하늘에서 주스가 쏟아지면 어떨까? 과학적으로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확인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점검한다. 현재 과학수준에서 어떤 원리로 그것이 가능한지 점검하는 과정은 토론이 아니라 상상의 향연이다.

  꿈을 캠코더로 찍을 있고, 개가 입에서 불을 뿜는다는 생각은 기가 막히다. 사람에게 뿔이 나고 입이 배꼽 옆에 붙어 있다면 어떨까. 혀가 두배로 길어지고 손가락이 없어진다면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방귀에 색깔이 있고 아기가 나무에서 열리는 상상은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배낭로켓을 타고 날아다니고, 태양이 두 개인 세상이지만 밤에는 가로등이 없다. 기발하고 엉뚱하고 희한하며 놀라운 상상력은 롤러코스트처럼 정신이 없다.

  마치 만화책을 보듯 황당하지만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없는 상상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듯 하다. 젊은 과학도들과 이런 놀이를 즐기고 있는 저자가 부럽기만 하다. 이 사람들이 어디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돌겠는가? 도대체 흥분되고 재밌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가득해야 할까라고 묻는 것 같은 이들의 상상력은 분명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되리라 믿는다.

  아무리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생각도 끝없는 도전과 열망으로 현실이 된다. 우리는 그 과정을 과학의 발전이라 불렀고 창조적 상상력이라 명명했다. 이 책은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를 외우고 1점을 위해 목숨 거는 공부가 아니라 영혼을 다해 즐기고 행복해지는 공부가 가능한 방법은 이런 방법으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작지만 위대한 실천과 노력의 결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먼 훗날 우리의 미래에 조금씩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이공계 대학생들의 상상 프로젝트는 지속되어야 한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은 인간을 위한 이기적 욕망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들로 가득할 것이라는 희망이라고 믿고 싶다.

  글쓰기 공동체로 독서와 토론을 통해 일궈낸 결과물들이라는 데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공부의 마지막은 글쓰기이다. 과학을 대중화시켜 인간의 오만함을 자랑하고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자연의 경이로움과 이를 밝혀내는 과학의 즐거움을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공동체의 목표라는 데 누가 반대할 것인가.

  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토론하고 글쓰는 과정이 자연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인간을 위한 과학이 되길 바랄 뿐이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세계로 떠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확인한다. 과학이 아니라 다른 주제와 목적들로 실천하는 공동체도 생겨나고 책읽고 토론하며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배가 되는 자생적 공부 모임들이 늘어가는 상상을 해본다.

  어떻게 사느냐는 결국 무엇을 위한 과정일 수도 있다. 결과가 목적이 아닐 수 있는 삶이라면 얼마나 즐거운가. 정재승과 ‘몽사이’의 행복한 상상여행이 현실이 될 때까지 흥미진진한 놀이를 지켜보고 싶다. 아니 나도 과학이 아닌 그 무엇으로라도 즐거운 공동체에 참여하고 싶다. 한 번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08090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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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1 2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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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 외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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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속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사랑’이라는 말을 대하면 떠오는 사람, 사물 그리고 감정을 생각해 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늦은 사춘기를 보내던 시절 읽었던 김수영의 시가 먼저 떠오른다. 김수영에게 ‘너’는 연인일 수도 조국일 수도 있었겠지만 사춘기 소년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이 시는 ‘어둠’과 ‘불안’으로 기억되었다.

  이성에 대한 사랑이든 가족에 대한 사랑이든 감정을 분석하려는 헛된 욕망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 그러나 이제 그 욕망은 실현 단계에 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을 위한 과학>은 정신분석가, 생물학적 심리치료사의 만남으로 과학의 대상이 되었다. 사랑과 과학의 만남이라니, 일단 뜨악한 표정을 바꾸기 어려웠다. 가능하다는 믿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놀랍다.

  심리학적 접근이나 정신 분석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인식되던 시대도 이제는 옛 추억이 될 수 있겠다. 뇌과학의 발달로 신비스런 인간의 마음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나는지 왜 변화하는지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은 진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왜 그런 ‘사랑’이 생기는지 말해 줄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진지한 고민과 방법에 대해 이 책은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정신 영역과 뇌의 역할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과학이 사랑을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는 딱딱하지도 감상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믿어 왔던 사랑에 대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사랑에 대해 과학적으로 말하고 있다.

  사랑은 가슴이 아니라 머릿속에 숨어 있다.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왔고 방법을 찾아 헤매 왔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별하고 나서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이 책은 그것에 관해 과학적으로 말하고 있다. 아이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이며 인간에게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책장을 덮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삶에 대한 기본적인 회의까지 다양한 질문들만 남겨진다. 결국 과학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다. 작다는 표현은 의미가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어쩔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반응, 행동과 수용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겨진다. 다만 그것을 위한 준비단계를 우리는 과학에게 기대야 할 지 모르겠다.

  암흑처럼 어둡고 불안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작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그 만남의 우연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결코 운명이 아니라 복권 당첨보다 작은 우연으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이 우리에겐 때로 전부가 되어 버리고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게 만들기도 한다. 그 신산스런 과정이 삶은 아닐런지.

  저자는 정신분석이나 심리학에서 잘못 다루어진 ‘사랑’에 대해 과학의 잣대로 비판하고 정확한 설명을 시도한다. 신피질과 변연계라는 물질이 존재하는 포유류의 '사랑‘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파충류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랑의 신경 네트워크에 오류가 생겨 파충류의 뇌로 전환하기까지는 인간의 숙명이다. 사랑은.

  ‘A General Theory of Love사랑에 관한 일반 이론'이라는 정내미 떨어지는 원제를 가지고 있지만 오로지 과학의 입장에서 사랑을 논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정신 영역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하며 오히려 이성과 과학이 보여줄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결국 인간에게 사랑은 생명이며 삶의 원천이라는 자명한 이치와 만난다. 그런 감정이 본능적인 것인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이 책은 그 호기심에 대한 충실한 답안지에 해당된다. 상황에 따라 조언과 충고를 해주고 어줍잖은 판단과 분석을 해주는 연애 상담과는 한참 거리가 멀지만 객관적으로 자신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참고서가 된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서도 ‘사랑’이 무엇인지 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기억할 것.


08081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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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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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만들어 나아갈 방향과 목적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자연은 동물과 식물의 삶과 죽음을 말한다. 인간도 물론 여기에 포함되며 누구보다도 먼저 문명을 만들어 왔고 문화를 이룩해 온 특이한 종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진화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지만 진보와 진화의 개념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보다 편리하고 안정된 생활을 위한 생존의 욕망에서 비롯된 인간의 물질 문명과 사회 구성 원리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게 통제할 수 없는 유전자들과 개체와 집단 전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기만 하다.

  1859년에 나온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세상을 바라보는 틀 자체에 대한 반성과 회의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저자의 관점이 아니라 그 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말한다. 폭풍과 해일처럼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끊임없이 수정되었으며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 종교에 까지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공산주의와 마르크스, 정신분석학과 프로이트의 영향만큼 세상을 온통 뒤흔든 사건이었다. 중세적 사고와 가치에서 근대로의 이행기에 인류가 만난 이 세 사람은 아직까지도 유령처럼 우리 곁은 떠날고 직간접적으로 생활 깊숙한 곳까지 손길과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1976년에 출판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다윈의 <종의 기원>만큼 충격이었던 같다. 전공과 무관하게 생물학이나 동물생태학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는 것은 당연한 충격과 후유증을 동반했을 것이다. 종이나 집단 수준의 이타주의와 행동 양태들이 연구되던 무렵에 개체 중심의 ‘유전자’를 앞세운 진화론은 새로운 과학에 해당한다.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지적했던 정상과학의 붕괴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된 것이다. 불멸하는, 이기적 유전자의 대한 도킨스의 철저한 분석과 논증이 이 책의 골간을 이루고 있다.

  생물들 사이에서 수없이 목격되었던 이타적 행위와 행동 방식들을 새로운 해석과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분명히 낯선 일이다. 하지만 타당하고 적절한 논리와 일관성 있게 하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쉽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어 보인다. 그 이후에도 꾸준한 연구와 노력들이 이어졌을 것이고 새로운 사실과 방법들이 나타났겠지만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알을 까고 태어난 새처럼 저자는 진화의 원리에 새로운 이정표를 새웠다.

  전체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잘 다듬어져 있고 전체의 내용과 구성 체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앞부분에서 제기된 문제점과 논의들이 책의 서술과정에서 조금씩 반론을 제기하고 이론을 설명한다. 뒤부분에서 그것들이 일관성 있는 하나의 틀로 조목조목 바뀌어간다. 생존기계인 모든 생명체에 대한 이타성은 유전자 단위의 이기적인 태도에서 출발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래서 타당성을 얻고 긍정적이고 설득적인 주장으로 독자들을 이해시킨다.

  과학의 심층부분을 이해하는 것은 낯선 이론과 수학적 통계와의 싸움이며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접근하기는 더더욱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논증의 욕망을 잘 통제하고 있어 학문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넓고 깊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알고 새로운 지식과 진화의 큰 틀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 이 책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만이 만들어 놓은 ‘문화’에 대한 유전 가능성은 존재하는가? 새로운 자기 복제자인 ‘밈meme'의 개념을 제시하며 인간의 특이성을 설명하는 11장은 이 책의 또 하나의 가치가 아닌가 싶다. DNA 유전자와 밈의 유기적 관계는 책을 통해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가 없고 세계의 전 역사를 통해 과거에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교육하는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서 조립되었지만 밈 기계로서 교화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들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는 것이다. - P. 349

  밈은 인간이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이기적인 생존기계라는 저자 스스로의 주장에 대한 유일한 희망일까? 재미있는 가설이지만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지닌, 문화를 지닌 이기적인 개체인 인간의 특성을 나타내는 유일한 단서일까? 로빈 베이커의 <정자전쟁>에서 보여주었던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미시적 욕망도 <이기적 유전자>에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생명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고 유전하는 과정에 대한 새로운 눈을 빌릴 수 있었다. 30여 년간 지속되었을 이야기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듣고 싶어졌다. 인간은 얼마나 단순하며 또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가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이기적인 유전자보다 ‘밈’에게 관심이 간다. 인간의 미래, 아니 생명의 미래는 여전히 오늘의 모습 안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07082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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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3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질러서 엊그제 받았습니다.
근데 책이 쌓여서 독서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는...ㅠㅠ
늘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추천꾹!

sceptic 2007-08-23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천히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읽을 수 있는 계절이 오네요...벌써 처서라니...
행복하게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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