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나선 -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DNA를 발견한 이야기 궁리하는 과학 1
제임스 D. 왓슨 지음, 최돈찬 옮김 / 궁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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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 된 수많은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곰팡이에서 우연히 발견된 페니실린부터 유럽의 근대사를 뒤바꾼 드레퓌스 사건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들 삶의 조건은 숙명을 가장한 우연이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나비효과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원인과 결과가 반복되는 원인은 거슬러 또 다른 원인의 결과였을 것이고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과학적 발견이거나 철학적 성찰이거나 마찬가지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끝없는 열정,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는 집요한 탐구, 전혀 다른 방식의 창조적 상상력, 타인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독창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건들이 지금 이 순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숱한 씨줄과 날줄이 모여 현재를 만들고 미래의 토대를 마련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과학은 철학에서 출발한다. 모든 것의 기원을 찾고 사물을 바탕을 찾으려는 욕망이 과학자의 자세이다. ‘왜’라는 의문부호를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 과학자의 운명은 아닌지 모르겠다. 군대를 가지 않아 인생에서 가장 명민한 시절을 학문에 몰입할 수도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불과 23세의 나이로 코펜하겐을 거쳐 캠브리지에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제임스 왓슨 선택받은 조건을 갖춘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일반인들 머릿속에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 크릭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은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과학적 성취에 대한 실명 소설처럼 읽힌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1953년 4월 25일 <네이처>에 DNA 구조를 밝힌 짧은 논문을 발표하며 생명과학 분야에 놀라운 발자취를 남겼다. 제임스 왓슨은 이 과정을 다룬 『이중나선』은 딱딱한 과학 이론서가 아니다. 과학자들의 연구 과정과 개인적인 일상사가 그대로 드러난 이 책은 흥미진진한 과학사로 읽어도 무방하고 1950년대 캠브리지를 중심으로 한 과학자적 성과로 읽어도 좋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연구 분야에도 불구하고 DNA 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끊임없는 토론 과정은 학문을 대하는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미국의 폴링과 경쟁하는 장면은 흥미진진한 소설을 보는 재미도 있다. 과학 용어와 상식이 부족하지만 간단한 이론적 설명이나 그림이 삽입되어 있고 지루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아 읽는데 큰 지장은 없다.

짧은 분량의 이 책은 추천사를 쓴 최재천의 말대로 과학자에게 왜 글쓰기가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축적된 연구 성과와 역할로 볼 때 프랜시스 클릭이나 노벨상 공동수상자인 윌킨스에 비해 제임스 왓슨이 더 명성을 떨치게 된 이유는 대중을 상대로 한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 능력 덕분이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연구 성과를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사회적 관심과 연구 지원 등 다양한 혜택으로 돌아왔고 그것은 또 다시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순환고리의 역할을 해냈다. 과장된 포장이 아니라 1968년에 출간된 이 책이 고전으로 자리잡은 이유를 헤아리며 읽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전달되는 유전정보를 담은 분자들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들의 화학적 특징은 무엇일까. 이러한 생명의 비밀과 신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어 DNA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의 이야기는 어떤 SF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생존 인물들이 보여주는 과학과 과학자들의 세계 그리고 1950년대 영국과 유럽의 일상까지 읽어낼 수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과한 몇 권의 책에서 시작된 책읽기가 종횡무진 계속되겠지만 왓슨의 호기심을 불꽃처럼 타오르게 했다는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로 이끌어준다. 형이상학적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들만큼이나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어느 한 분야도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고 인류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노력해야 하는 분야가 많겠지만 생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과학을 넘어 철학적 관점으로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과학은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줄 수도 없고,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도 없다. 하지만 무지한 인간에게 아주 작은 앎의 기쁨을 느끼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너와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중나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11110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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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물학 대논쟁 통섭원 총서 2
최재천 지음 / 이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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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계

어떤 개별적 존재가 자신이 소속돼 있는 집단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제3자의 입장에서 개별적 존재를 관찰하고 집단 전체를 분석하는 것에 비해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개별자로서의 의미를 타인과의 관계와 집단의 상황에 비추어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것은 객관적으로 설명 가능한 대상인가. 왜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철학은 이미 수천 년 동안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과정에서 불가해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종교를 발명했다. 중세를 넘어 ‘근대’ 이후에는 해결의 주도권이 과학에 넘어온 듯하다. 150여 년 전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인간에 대한 개념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이것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이행만큼이나 충격적인 선언이었으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 존재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논의를 추동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며 세계를 이해하는 근본적 진실을 드러냈을까.

전체 > 부분의 합

생명은 설명될 수 없는 존재라는데 동의한다면 인간을 탐구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그런 이유로 인간에 대한 모든 철학과 종교와 과학은 단지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틀을 제공할 뿐이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사회생물학’을 바라보자. 이 시대의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인 최재천은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 놓여있다. 『사회 생물학 대논쟁』은 바로 이러한 논의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책으로 손색이 없다. ‘통섭, 에드워드 윌슨, 진화심리학, 데이비드 버스, 이기적 유전자, 밈, 빈 서판, 털 없는 원숭이……’ 등과 익숙하거나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반드시 거쳐야 할 만큼 중요하다.

인간은 유기체다. 세포와 뼈의 결합체가 아니다. 다윈주의적 환원주의가 인간 존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장대익의 분류대로 다윈주의적 반환원주의, 비다윈주의적 환원주의, 비다윈주의적 반환원주의로 사회생물학이나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가. 사회생물학을 주도한 윌슨의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최재천의 ‘통섭統攝’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이 생물학을 중심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학문간 통합과 다른 개념으로 설득될 수 있는 것인가.

끝없는 의문과 호기심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되며 『이기적 유전자』, 『털 없는 원숭이』, 『욕망의 진화』, 『오래된 연장통』이 뒤섞여 정리되지 못한 우둔한 머릿속이 조금은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분과학문 영역 사이의 장벽이 만리장성보다 견고한 국내의 학문 풍토에서 학문간 통합을 넘어 ‘컨실리언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학문적 토대의 척박함과 문화적 바탕을 간과한 과욕은 아닌가. 만 16세가 되면 문과와 이과로 나누고 그 벽을 뛰어넘는 일이 과장하자면 성별을 바꾸는 것만큼 힘든 상황에서 최재천의 노력과 인문, 사회학자들의 논쟁은 더할 수 없이 값지고 귀하게 여겨진다.

주목할 만한 글 몇 편

이 한 권의 책은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과 이화여대 통섭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심포지엄 “부분과 전체 : 다윈, 사회생물학, 그리고 한국”의 결과물이다. 여덟 명의 무림의 고수가 펼치는 진검 승부가 흥미진진하다. 그 중에서도 이병훈의 ‘한국에서는 사회생물학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 도입과 과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귀한 글이다. 또한 김동광의 ‘한국의 통섭 현상과 사회생물학’은 국내의 ‘통섭 현상’에 나타난 특징과 문제점을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어 균형적인 시각을 갖는데 일조하고 있다.

무엇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의 시작은 작은 관심과 호기심이거나 우연한 마주침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딱딱하고 이론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일반인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넓이와 깊이를 한 번에 꿸 수 기회를 제공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인간’이란 존재가 ‘동물’과 구별되는 지점, 세상을 해석하고 원인과 결과를 밝히고 싶은 욕망, 미래의 학문이 지향해야 할 부분에 대한 질문들이 시작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은 끝없는 질문의 연속이다. 모든 독자는 나름의 방식대로 그 답을 구하기 위해 힘을 얻고 또 다른 길을 찾기에 나서는 수고로움을 즐거움으로 치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논쟁은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논쟁을 낳는다. 이 책은 논쟁의 단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논의된 ‘사회생물학’에 대한 일목요연한 정리이며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깊은 고민의 시작이다. 길은 끝난 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자유로운 사유의 유목,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질문, 나와 너의 관계 양상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방법과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111013-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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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 살아남은 동물들의 비밀
최형선 지음 / 부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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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동물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우리가 아는 것처럼 고도의 발달된 언어의 사용과 소통 능력,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 등 문명을 이룩한 원동력은 생각보다 작은 차이에서 출발한다. 다른 동물들도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습성과 능력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조금 더 지혜로워질 필요가 있다.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삶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조건이 된 현대 사회에서 생태학적 상상력은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되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거론할 필요가 있을까. 그 자연 속에는 다른 동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늘과 나무와 숲과 강과 맑은 공기뿐만 아니라 그 안에 생태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들의 진화과정은 인간의 진화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최형선의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는 새겨 읽을 만한 책이다. 단순히 동물들의 생태를 쫓아 그 습성과 특징을 관찰한 결과를 기록한 글이 아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들이 하나의 숭고한 생명체로 태어나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진지한 자세로 기술되어 있다. 필자가 이 책을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서술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 많다.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에 빗대기도 하고 인간 삶의 조건들과 대조하기도 하는 부분들은 이 책 곳곳에서 발견되다.

깊은 성찰과 철학적 관점으로 동물들의 생태를 관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습성에서 인간의 삶을 반성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다른 동물들의 신체적 특징과 속성은 바로 인간을 돌아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환경에 맞게 진화하고 살아남은 동물들의 모습은 오래된 시간의 역사를 보여준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중생대와 고생대로 거슬러 올라가 동물들의 조상을 상상해 보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순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겨우 백 년도 안되지 않은가.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기는 하다. 짧은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경쟁과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눈물겹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다른 동물을 먹잇감으로 삼아야 하는 연쇄 작용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인 삶을 상징하는 것 같다. 치타의 사냥법, 줄기러기의 이동, 낙타의 사막행, 일본원숭이의 배려, 박쥐의 기회주의, 캥거루의 지나친 모성, 코끼리의 여유, 바다로 간 고래 등 이 책에서는 익숙하면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야생 동물들의 생태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재까지 살아남은 대표적인 동물의 비밀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랜 시간을 견뎌내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나름의 비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인간의 드라마틱한 삶보다도 더 극적인 적응력과 자연선택을 통해 살아남은 동물들의 슬픔을 읽어낸 것은 나만의 독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인간이 짊어진 고독이라는 운명처럼 우리는 다른 동물들의 숙명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 볼 필요가 있겠다. 그 큰 덩치를 이끌고 생존 경쟁에서 ‘인내’ 하나만을 미덕으로 삼아 사막으로 걸어 들어가는 낙타의 당당함을 보라. 포유동물이면서 당황스런 상상력으로 바다로 뛰어든 고래는 또 어떤가. 우리는 삶의 불가해함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동물인들 그렇지 않은가. 대자연 속의 인간은 그저 한없이 초라해 보일 뿐이다.

험한 환경 속에서 고통을 이겨 내면 삶의 자세가 진중해진다. 낙타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설치는 짓을 하지 않는다. 늘 심오하고 조신해 보인다. - 79쪽

이 책의 제목처럼 낙타가 왜 사막으로 갔는지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생태적, 환경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뻔한 답보다도 조금 더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인간의 삶이 보인다. 우리는 왜 때때로 낙타나 고래 혹은 줄기러기와 박쥐와 코끼리와 치타처럼 행동하는지 돌아보자. 왜 그런가?

동물의 생태를 관찰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얄팍한 지혜를 얻기 위해 다른 동물을 관찰하고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본질적인 호기심과 다른 종의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미덕이 아닐까 싶다.

동물생태학 책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하이에나는 우유배달부!』처럼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에서 너무 심각하게 밑줄을 그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책과 지식과 정보는 내 삶에 대해 화두를 던질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타인에 삶을 통해 나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듯이 다른 종을 통해 인간의 생을 성찰할 수 있게 된다.

데스몬드 모리스의 말처럼 인간은 『털없는 원숭이』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인간들의 슬픔을 다른 동물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오늘도 내일도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모든 종(種)들을 위하여!!!


11051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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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나무 아우또노미아총서 12
움베르토 마투라나.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최호영 옮김 / 갈무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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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처음 이메일을 사용할 무렵 아이디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을 알 수 있었다. 뒤에 붙어있는 숫자로 나이나 생일까지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의 닉네임과 아이들로 개인의 정체성과 관심분야 그리고 전공이나 직업까지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식의힘’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인 것이다.

어떤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안다’는 것을 넘어 형이하학적 세계와 분리된 아닌 형이상학적 영역에 대한 깨달음은 아닐까 싶었다. 나를 넘어서 타인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삶의 비밀을 읽어내고 싶은 욕망이며 세상의 진실을 포착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끝없는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졌고 난삽하고 계통없는 잡식성 독서로 출발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고민으로 이어졌다. 나는 누구이며 세상은 어떤 곳인가.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었고 그렇게 움직이는 모든 것, 행위의 근본질서가 궁금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영원에 대한 도전만큼이나 부질없는 노력은 아닐까 싶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걷다 보면 길이 생길지도 모르고 가보지 않은 길로 접어들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또 길이 아니면 어떤가.

이웃 블로거 소나기님이 보내준 책을 읽었다.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에 이어 『앎의 나무』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또 다른 나의 정체가 되어버린 ‘인식의힘’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책을 왜 읽는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함이 곧 앎이며 앎이 곧 함이다.
말한 것은 모두 어느 누가 말한 것이다. - P. 33

이 책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우리가 인식하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는 세상의 모든 대상을 의심하게 한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굳건하게 믿어왔던 세계에 대한 불안과 혼란으로부터 우리들의 지식과 정보와 인식방법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전체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하나의 견고한 구조물과 같다. ‘인간 인지능력의 생물학적 뿌리’라는 부제가 잘 말해주듯이 ‘앎’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결국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고민하는 책이다. 일상경험의 관찰과 행위가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어 자기생성과 증식, 섭동작용을 거쳐 개통 발생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어떻게 인식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문화현상 언어적 영역으로 확산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결국 거대한 ‘앎의 나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책은 거대한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고 생물학적 차원에서 인식의 과정에 대한 탐구이며 ‘앎’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다.

칠레 태생의 두 학자가 쓴 이 책은 아우또노미아총서 중 하나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에 대한 심오한 성찰과 과학적 분석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알기 쉽고 간명하게 ‘앎’의 영역을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접했다는 생각보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성장하는 과정의 비밀을 깨닫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 과정에 따라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는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들은 섬세하고 정교한 흐름으로 앎의 나무를 설명한다. 처음부터 시작되는 고정관념과 타성에 젖은 의식 깨트리기는 신선한 충격이다. 하지만 무언가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과 달리 책의 대부분은 생물학에 기반한 인간의 의식과 인식과정을 탐구하고 있어 조금 지루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기초적인 지식과 자세한 설명으로 어렵지 않게 풀어내고 있지만 책 전체가 씨줄과 날줄처럼 조직돼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한 번 읽고 저자의 의도를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어려움의 핵심은 바로 앎을 잘못 아는 데, 앎을 모르는 데 있다. - P. 279 

결국 이 책은 우리가 이제까지 확실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한 의심을 통해 가장 인간다운 것 중의 하나인 ‘앎’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책이다. 새로운 관점과 세계인식으로부터 또 다른 미래가 펼치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이 세상 너머의 세상과 나와 우리를 넘어 선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1030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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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 - 잘못된 과학 정보를 바로 가려내는 20가지 방법
셰리 시세일러 지음, 이충호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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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신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에 아주 조심해야 한다. 한번 들어간 것은 다시 꺼낼 수 없을 테니까. - 토머서 울지(Thomas Wolsey, 1471~1530)

책은 우리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 확인시켜 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과 새로운 호기심, 끊임없는 질문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셰리 시세일러의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은 최소한 객관적 지식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흔히 밥을 먹거나 술자리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와 달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모두가 동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믿었던 것들 예를 들면 ‘폭력 범죄 발생 건수 증가 추세’나 ‘교통사고 사망 건수 감소’ 등의 뉴스는 일시적인 통계 수치일 수 있지만 그것이 의미 있는 변화인지 확인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과학’에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과학 논문 ⇨ 보도 자료 ⇨ 신문 기사 ⇨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 ⇨ 라디오 청취자나 텔레비전 시청자’ 과학이나 건강에 관한 정보는 이렇게 다양한 경로를 거치게 된다. 원래 정보의 출처는 사라지고 가공되거나 왜곡되거나 일부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우리는 들은 것을 부정확하게 추측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객관적 사실은 존재하고 과학적 지식과 이론들이 새롭게 발견되거나 만들어진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태도와 자세가 문제라고 본다. 저자는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열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1. 과학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하며, 왜 과학자들의 의견이 가끔 엇갈리는지 이해한다.
2. 어떤 쟁점에 이해가 걸린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입장은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3. 어떤 결정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모두 자세히 파헤쳐 본다.
4. 트레이드오프를 평가하기 위해 적절한 맥락에 대안을 대입해 본다.
5. 인과관계와 우연의 일치를 구분한다.
6. 어떤 연구에서 얻은 결론을 얼마나 넓게 적용할 수 있는지 파악한다.
7. 숫자의 마술을 꿰뚫어본다.
8. 과학과 정책 사이의 관계를 구분한다.
9. 논리를 비켜 가기 위해 만든 계략들을 돌파한다.
10.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위해 정보를 찾고 분석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전문 서적이 아닌 경우 통상적으로 몇 가지 단계나 원칙들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다. 이 책도 유사한 방법을 제시하지만 뻔한 자기계발서 종류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 중심으로 우리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를 지적하고 그것이 왜 잘못된 판단인가를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심리학과 결합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예를 들면,

확증 편향은 아주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즉,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정보에는 큰 관심을 보이는 반면, 어긋나는 증거는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확증 편향은 완고한 것과는 다르며, 사람들이 확고한 의견을 갖고 있는 문제에만 국한해 나타나지도 않는다. - P. 17

『거짓말의 진화』라는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를 이 책에서 다시 만나다. 결국 과학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새빨간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과학적 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자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과학을 이용해서 거짓말을 하든 우리 스스로가 자기 최면에 걸리듯 확증 편향을 갖고 잘못된 과학 상식을 길러가든 그것은 모두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열 가지 방법으로 모든 거짓말이 밝혀지거나 오해하고 잘못 해석된 사실들이 바로잡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그것은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마찬가지다. 맹목적인 믿음이나 일방적인 관점으로는 다양한 사유 방식으로 신선하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관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발상의 전환을 위한 사유 방식의 훈련을 위해서도 저자의 이야기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실증적인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잘못된 상식과 새빨간 거짓말에 속으며 하루를 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일이 그러할 수 있을까? 사람 혹은 사건?


11013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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