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 일중독 미국 변호사의 유럽 복지사회 체험기
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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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앞에 자유가 붙이려고 목숨 거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하여 자유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정체로 삼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언제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할 것인가. 과연 21세기형 빨갱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민주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사회 민주주의로 양분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가치가 아니라 제도에 불과하다.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의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이전에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정치 제도를 실험해왔다. 현재까지 검증된, 가장 인간적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정치제도는 민주주의. 하지만 이 제도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변형된 형태를 띠며 변화해왔다. 정치 제도는 시대적 가치를 반영하며 변증법적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제도에 최선은 없다. 정치권력의 부침과 선택에 따른 결정일 뿐이다. 우리는 현재 어떤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있으며 그것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 100년간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낡은 이념대립의 시대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라고? 바보야 문제는 안보야!’라는 헤드라인을 단 인터넷 신문이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첫 화면에 걸리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이것은 좌우의 대립이 아니라 안철수식으로 말하자면 상식의 문제다. 자괴감이 드는 이유는 모든 갈등과 대립이 이념의 문제로 환원되는 대한민국 사회의 단순성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 때문이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볼 때 미국은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웃한 일본과 중국과는 또 다른 이미지의 나라를 떠올려 보자. 가깝게 한미FTA’를 위시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제도와 문화의 기준은 미국이 아닌가.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현재 진행형의 꿈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의 준거집단 미국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미국은 가장 선진적이고 완전한 사회라고 볼 수 있을까. 가장 잘 사는 나라, 완벽한 안보를 갖춘 나라, 민주주의가 완전하게 실현된 나라가 미국일까. 미국 시카고의 노동 전문 변호사로 하버드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토머스 게이건의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는 우리에게 미국에 대한 선입견을 수정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를 제공한다. 한국의 사회학자의 미국 비판, 한국 유학생의 유럽 이야기 등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서양 이야기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콤플렉스로 비춰지기 십상이지만 미국 사람이 이야기하는 미국 이야기는 어떤가. 그것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지구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로 생각하는 하버드대학 출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하버드 교수가 아니었다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했을까라는 의심어린 눈초리는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의 변호사가 전하는 미국과 유럽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들을만하지 않은가 말이다.

 

이 책은 미국 사람이 이야기하는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초점은 유럽에 맞춰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독일에 집중되어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통일되면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모델이 될 만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일의 통일과정과 이후의 상황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을까. 미국 변호사 토머스 게이건은 미국식 삶과 유럽식 삶을 적나라하게 비교한다. 그간 수많은 책들을 통해 끝없이 비교해 왔던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통계적인 방법으로 계량적 접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책보다도 가장 적나라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미국과 유럽을 비교체험 할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하게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미국과 유럽을 비교하는 1부를 앞세워 베를린에서 직접 체험한 일들을 통해 구체화 시킨다. 개인의 직접 체험을 일반화시키는 오류는 이 책의 한계일 수 있지만 피상적인 현상에 머물지 않고 문화적 바탕과 인문학적 사유를 토대로 한 비교 체험은 작가의 주장에 신뢰를 부여한다. 미국과 유럽, 아니 미국과 독일은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의 비교 체험이다. 1%를 위한 나라와 99%를 위한 나라, 선택은 잔인하지만 우리는 번번이 상식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

 

부나방처럼 모든 국민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생각,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이기심,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초법적 욕망, 노동자를 무시하는 풍토, 직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는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점검해 보는 것은 긍정적인 마인드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성공 신화에 목매는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관점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 사람에 의한 미국 사회에 대한 심각한 경고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은 건강한가를 물어야 한다.

 

죽지도 않은 강을 살려야 한다며 수십조를 쏟아 붓는 대통령은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려줄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이 선택했다. 자기 수준에 맞는 정치 지도자를 갖게 마련이라지만 우리에겐 지나치게 가혹하다. 한미 FTA, 인천공항 매각, KTX 민영화 추진 등 그들이 추진하는 경제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우리는 곰곰이 따져 본 적이 있는가.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미국식인가 유럽식인가, 아니 미국식인가 독일식인가. 그것은 가치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냉정한 현실의 문제이며 우리들 삶의 문제이다. 선택은 잔인하고 결과는 참혹하다. 우리에게 미쿡은 과연 무엇인가. 미국은 우리의 미래인가, 반면교사인가.

 

 

12012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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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운동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2
이성재 지음 / 책세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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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 1968(68혁명) 1부 - 주동자가 없는 시위(http://home.ebs.co.kr/servlet/wizard.servlet.admin.program.vodaodListServlet?client_id=jisike&command=vodplayer&charge=E&program_id=BP0PAPB0000000009&step_no=0001&seq=1178012&type=A&vodseq=241620)

세계화의 물결은 시간과 공간을 개념을 확장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획일적이고 몰개성적인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구촌이라는 이름으로 이웃나라를 넘다들고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화폐 통합이 이루어지는 세상은 유럽공동체의 이상과 꿈이 아니라 자본의 폭력과 브레이크 없는 무한 경쟁의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다. 부자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하루 이틀의 문제도 아니지만 구조적인 모순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지고 그들만 행복한 세상이 지속될 거라는 가당찮은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역사는 인류에게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주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다.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고 사회는 유기체처럼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순간 ‘혁명’은 불가피한 것이 되고 만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국가를 점령했던 박정희의 군사 구테타를 혁명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폭적이고 평화로운 혁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구 곳곳에서 혁명은 언제나 그렇게 조용히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968년 5월은 유럽에서 혁명이라 부를 만한 역사적 변곡점을 맞이했지만 띠동갑인 1980년 5월 대한민국에서는 혁명이 되지 못한 채 군인들에 의해 시민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대한 대응방식은 각 국가와 민족의 정치와 역사적 전통 그리고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또다시 18년이 흘러 2008년에 불붙기 시작한 ‘촛불’은 드디어 시위가 놀이로 치환되고 물대포에 웃음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세대의 또 다른 열망으로 드러났다. 배후를 언급한 구세대의 음모론 그들의 프레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스타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중학생부터 유모차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변화의 요구와 과거로의 회귀를 거부하는 욕망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월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1대99 거부 운동은 어떤가.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위 0.1%의 생활수준과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등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의 기본 조건에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고 ‘저들’은 침묵하는 다수의 심중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표를 준 대한민국 국민들 스스로의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오로지 ‘경제’와 ‘돈’이 신앙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불행한 이유를, 희망과 웃음의 의미를 이제라도 조금씩 생각해 보아야 할 때는 아닌가.

책세상의 열두 번째 개념사 시리즈 『68운동』은 유럽문화의 또 다른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던 1968년 전후를 조망하고 있다. 우리와 무관한 시공간에서 벌어진 사회적 변혁운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독자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모순과 당시 유럽의 상황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진 변화 양상을 살펴가며 읽는다면 왜 현재진행형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열망은 단순히 ‘친북좌파’와 ‘보수꼴통’의 싸움이 아니다. 건강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친북좌파식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매도했던 부유세, 일명 ‘버핏세’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 변화는 그들도 친북좌파식 공산주의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다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접근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치는 사람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노무현은 권력은 이미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고 했지만 가장 큰 도둑에게 가장 관대한 우리들의 의식이 더 큰 문제는 아닌가. 각종 편법과 불법으로 상속된 재산으로 기업을 지배하고 그 돈은 세상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무소불위의 기업으로 성장 중인 대학의 부패,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과 등록금, 세대간의 갈등과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 등 나열하기도 힘든 수많은 사회 문제들이 단 하나의 처방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지금 다시 왜 1968년을 돌아보아야 하는지의 문제는 우리의 현실 속에 답이 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촉발된 68운동 돌아보고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과 영국의 전개 양상을 살펴본다. 이후에 68운동은 무엇을 남겼을까. 교육, 노동, 정치, 여성,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전근대적 요소를 바꾼 계기가 된 이 운동은 점진적인 변화 요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이기도 하다. 가만히 앉아 손가락을 빨고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이다. 『88만원 세대』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요구했던 저자들의 목소리는 이런 맥락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68 운동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아직도 레드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선거용 카드로 사용하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사회 변혁 운동은 ‘불온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대학거부 선언이 이어지고 고용 없는 기업의 성장, 보편적 복지 대책 없는 고령화 사회, 사회안전망이 허술한 미래, SNS까지 검열과 심의의 욕망을 드러내는 정권 등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이 시기에 68운동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모든 역사는 현재적 유용성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학문적 지식과 이론적 틀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역사는 언제나 우리들의 삶을 성찰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살펴야 할 대한민국의 진지한 표정이어야 한다. 가볍게 개념을 확인하고 보다 깊고 다양한 책들을 만나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아도 좋겠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여기’의 좌표를 읽어내려는 작은 노력의 시작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지식채널 1968(68혁명) 2부 - 실패한 혁명(http://home.ebs.co.kr/servlet/wizard.servlet.admin.program.vodaodListServlet?client_id=jisike&command=vodplayer&charge=A&program_id=BP0PAPB0000000009&step_no=0001&seq=1178017&type=A&vodseq=2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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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 -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 악셀 호네트 선집 1
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이현재 옮김 / 사월의책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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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심리적 기초를 형성하는 데 비해, 권리 인정은 자신이 모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 230쪽

대한민국 정치사에 전례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2011년 10. 26 서울시장 재보선 결과는 1979년 10. 26에 버금가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지만 그 방향과 흐름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은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현 상황을 해석하며 검찰의 칼날을 들이밀거나 이후의 추동세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지리멸렬해질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권력이 시민에게 넘어왔다’는 당선자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것을 정치권과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앞으로 남은 사회적 상황과 정치적 지형 변화는 어떤 스포츠보다 즐거운 게임으로 즐길 수도 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만 아니라면.

프랑크푸르트학파 계보의 3세대로 평가받는 악셀 호테트는 『인정이론』을 통해 선배들의 ‘비판이론’을 한발 넘어서고 있다.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가 주도한 1923년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한 분파로 발전했고 하버마스는 이들의 뒤를 이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변동의 성격과 결과를 분석하는데 주력했다. 이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변동과 갈등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에 내재하는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권력 투쟁’과 ‘계급 투쟁’을 넘어 ‘인정 투쟁’이라는 말로 인간의 삶과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권력 투쟁은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다.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전통적인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갈등의 기본 원인으로 보는 관점이다. 그것은 단위사회의 크기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만을 보여줄 뿐 가장 궁극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이 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희미해진 개념 중 하나가 계급이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상하위 소득수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소득의 재분배나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권력의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계급투쟁은 모든 갈등의 원인을 ‘돈’으로 돌리려는 환원주의가 될 우려가 있지만 가장 분명하고 즉물적인 현재적 관점의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해 달라는 많은 사람들의 말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면 일한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이다. 지나친 소득격차, 자녀양육, 대학입시, 학벌주의, 주택문제, 노후대책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경제 문제로 환원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 먹고 사는 문제가 궁극적인 사회적 갈등의 근본원인일까. 호네트는 ‘인정투쟁’의 이념이 매우 오래된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근대 사회철학의 토대가 되는 헤겔과 미드의 이론을 철저하게 분석하며 인정투쟁의 이론을 검증한다. 두 철학자가 주장한 이론적 틀이나 저작을 꼼꼼하게 읽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확실한 개념이 자리 잡지 않은 상태의 독서는 무의미한 공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인정의 개념은 인간의 본능에서 연유한다. 어머니와의 분리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에는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정받지 못하면 분노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이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갈등과 다양한 투쟁의 근본적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정욕구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사랑, 권리, 연대’라는 상호주관적 인정의 유형들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인정관계가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결국 폭행이나 권리의 부정 더 나아가 가치의 부정은 자기 정체성을 무시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장 극단적인 좌절과 분노를 가져온다. 인간은 돼지가 아니기 때문에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정’이 필요한 것이다.

전체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마지막 사회철학적 조망에서 이 책의 부제가 된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을 펼치고 있다. 마르크스와 소렐, 사르트르의 전통을 더듬고 ‘무시와 저항’이라고 하는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논리를 살펴본다. 이렇게 부지런히 일했고 이정도로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주어진 현실과 삶의 조건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도덕과 윤리적 개념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적 갈등의 원인은 권력과 자본 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인정’은 삶의 가장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조건이며 이유가 아니겠는가. 호네트가 그것을 어떻게 분석하고 증명하고 있든 그것을 인정하는데서 우리의 고민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새로운 가치 있는 속성은 인정 행위를 통해 확인됨으로써 인간 주체의 자주성 능력을 향상시키게 되며, 이것이 바로 문화적 변동이라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진보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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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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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다

1. 어떤 일이나 대상 따위가 가까이 다다르다.
2.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앞에 나타나거나 눈에 띄다.

사전적 의미와 달리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여러 말 하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닥치다. 일상생활에서 비속어로 사용되는 이 말이 주요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1, 2위에 오른 책의 제목으로 등장한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리고 『닥치고 정치』는 시대를 반영한다. 이 책들이 시간을 견디고 고전으로 남을 것인가의 문제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왜 사람들은 이런 책들에 열광하는지가 문제다.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스스로 출연을 자청할 만큼 가공할 파괴력을 가지게 된 ‘나는 꼼수다’를 들어보면 이 책이 왜 시대적 상황을 가장 적확하게 드러내는지 알게 된다. 삶이 팍팍해지고 희망은 사라지고 스트레스는 많아지는 이유를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일까.

정치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치 혐오증을 가지고 있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국가를 운영하고 민주적 질서와 가치를 실현해야 하는 ‘정치’를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는 곧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다.

서울시장 재보선 때문에 SNS는 뜨겁다. 방송과 신문이 독점하던 현장성과 신속성, 정보의 정확성은 이미 그 본질적 권력을 인터넷과 SNS에게 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중동이 전해주는 기사에만 고개를 끄덕이는 바보도 없고 극단적인 이념대결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정치는 그 변화 속도가 감지되지 않는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닥치고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걸까

김어준과 지승호

『닥치고 정치』와 ‘나는 꼼수다’은 김어준이 있기에 가능하다. 「딴지일보」에 들어가기 위해 마우스로 똥침을 해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어준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 가리고 덧붙이지 않고 날것 그대로, 솔직하고 경쾌한 김어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나라에 왜 정상적인 우익이 없는지 좌파의 문제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의 말이 길이요 빛이요 진리라는 말은 아니다. 정치적 당파성을 띠지 않고 기계적 중립을 표방하지도 않는다. 예의를 갖추거나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말끝마다 ‘씨바’를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이, 모든 언론에서 철저하게 외면했음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에 오를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시작된 대선과 정치와 무관하게 살수 없다는 사실은 닥치고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다. 선거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좌우의 이념 문제도 아니다. 정치는 생활이고 삶이며 미래이다. 상식과 합리, 이성과 논리, 자유와 평등, 나눔과 배려...듣기 좋고 이상적인 가치를 외치는 헛된 구호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된 세상을 말하고 있는 김어준의 이야기는 점점 더 큰 울림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가장 신뢰할 만한 인터뷰어 지승호와의 만남은 반말로 낄낄거리는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도하며 시원하고 통쾌하게 묵은 체증을 씻어준다. 수없이 등장하는 현실정치인에 대한 평가도 차기 대통령 후보에 대한 이야기도 대한민국과 사람에 대한 주장도 모두 철저하게 개인적인 김어준의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김어준은 김어준이다. 점점 더 깊어가는 내공과 ‘나는 꼼수다’에 대한 자신감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이 책은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앞으로도 김어준은 강력하게 외칠 것 같다. 정치는 사람이다,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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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지음, 이상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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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게 된 인간들은 지금까지 어느 시대에도 그러했던 바와 같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 15쪽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은 시간을 견뎌낸 글이다. 우리는 보통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로 이름값에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모든 고전에 내게로 다가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 고전이라는 농담이 있다. 개인의 필요와 배경지식 그리고 호기심에 따라 고전은 때에 따라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김찬호의 『돈의 인문학』 등 돈에 관한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책이 바로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였다. 아마도 『시뮬라시옹』을 읽고 미뤄 두었기 때문인지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무렵인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쨌든 오래 맴돌던 책을 들고 조금씩 정독했다.

알랭 드 보통처럼 대중적인 소설 형식이나 가벼운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내지 않는다면 프랑스 철학자들의 책은 난해하다. 그런 편견 때문인지 이 책은 첫 장부터 집중하고 긴장하며 읽기 시작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다른 책에서 여러 번 접했고 인용된 부분들도 보았으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보드리야르가 당대를 읽어내고 해석하는 방식이 궁금했을 뿐이다.

40여 년 전, 1970년에 나온 『소비의 사회』는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간파한 역작이라고 할 만하다. 산업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파생된 무수한 사태들에 대해 단순히 자본주의의 검은 그림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로 명명했다. 사진과 영화의 등장을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예리한 논문으로 당대 사회를 분석한 발터 벤야민처럼 광고의 홍수 속에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인간의 욕망을 간파한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의 심리와 자본의 속성을 적절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적확하게 해석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여전히 소비의 사회를 살아간다. 고(故) 전우익 선생의 말씀대로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사서 버리고 또 사고 버리는 패턴을 반복하다가 죽는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말처럼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경쟁하고 불행해한다. 현대사회의 거대한 소비 시스템은 점점 견고해지고 거역할 수 없는 틀이 되어버렸다.

이 책이 나온 이후 세계 경제는 신자유주의 물결과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에 휩쓸려가고 있다. 각국의 경제 블록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무국적 거대자본은 부유하는 자본주의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반성과 남미의 도발적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복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소모적 정치 논쟁으로 비화시키고 있다.

이 책은 사물의 형식적 의례, 소비의 이론, 대중매체, 섹스 그리고 여가 등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중세 기사의 한 벌의 갑옷과 투구를 뜻하던 ‘파노플리’가 어떤 의미를 뜻하는지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해서 악마와의 계약 이야기로 끝난다. 각장은 현대 사회 상품과 사물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과 다양한 분석을 통해 ‘소비’가 갖는 다양한 의미를 풀어 놓는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를 키워드로 삼는다면 수많은 이론과 분석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 책이 의미를 갖는 것은 시대를 통찰하는 폭넓은 시야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보드리야르의 관심과 현대사회에 대한 분석이 어떤 변화를 보였고 이후에 어떻게 비판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더 깊이 있는 관심과 독해가 필요할 것 같다.

이 책은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읽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고 현대 사회를 본질적으로 성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견하는 자연스런 흐름은 한 권의 책으로 얻을 수 없다. 하지만 꾸준한 관심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책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알고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들이 모두 의심스러워 보인 적은 없는가. 우리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지만 소비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는 없을까.

소비는 하나의 신화다. 현대사회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하는 말(parole), 우리 사회가 스스로를 말하는 방식, 그것이 소비다. - 328쪽


110515-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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