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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투쟁 -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 ㅣ 악셀 호네트 선집 1
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이현재 옮김 / 사월의책 / 2011년 8월
평점 :
사랑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심리적 기초를 형성하는 데 비해, 권리 인정은 자신이 모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 230쪽
대한민국 정치사에 전례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2011년 10. 26 서울시장 재보선 결과는 1979년 10. 26에 버금가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지만 그 방향과 흐름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은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현 상황을 해석하며 검찰의 칼날을 들이밀거나 이후의 추동세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지리멸렬해질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권력이 시민에게 넘어왔다’는 당선자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것을 정치권과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앞으로 남은 사회적 상황과 정치적 지형 변화는 어떤 스포츠보다 즐거운 게임으로 즐길 수도 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만 아니라면.
프랑크푸르트학파 계보의 3세대로 평가받는 악셀 호테트는 『인정이론』을 통해 선배들의 ‘비판이론’을 한발 넘어서고 있다.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가 주도한 1923년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한 분파로 발전했고 하버마스는 이들의 뒤를 이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변동의 성격과 결과를 분석하는데 주력했다. 이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변동과 갈등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에 내재하는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권력 투쟁’과 ‘계급 투쟁’을 넘어 ‘인정 투쟁’이라는 말로 인간의 삶과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권력 투쟁은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다.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전통적인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갈등의 기본 원인으로 보는 관점이다. 그것은 단위사회의 크기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만을 보여줄 뿐 가장 궁극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이 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희미해진 개념 중 하나가 계급이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상하위 소득수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소득의 재분배나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권력의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계급투쟁은 모든 갈등의 원인을 ‘돈’으로 돌리려는 환원주의가 될 우려가 있지만 가장 분명하고 즉물적인 현재적 관점의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해 달라는 많은 사람들의 말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면 일한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이다. 지나친 소득격차, 자녀양육, 대학입시, 학벌주의, 주택문제, 노후대책 등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경제 문제로 환원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 먹고 사는 문제가 궁극적인 사회적 갈등의 근본원인일까. 호네트는 ‘인정투쟁’의 이념이 매우 오래된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근대 사회철학의 토대가 되는 헤겔과 미드의 이론을 철저하게 분석하며 인정투쟁의 이론을 검증한다. 두 철학자가 주장한 이론적 틀이나 저작을 꼼꼼하게 읽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확실한 개념이 자리 잡지 않은 상태의 독서는 무의미한 공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인정의 개념은 인간의 본능에서 연유한다. 어머니와의 분리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바탕에는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정받지 못하면 분노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이다. 앞서 언급한 사회적 갈등과 다양한 투쟁의 근본적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정욕구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사랑, 권리, 연대’라는 상호주관적 인정의 유형들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인정관계가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결국 폭행이나 권리의 부정 더 나아가 가치의 부정은 자기 정체성을 무시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장 극단적인 좌절과 분노를 가져온다. 인간은 돼지가 아니기 때문에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정’이 필요한 것이다.
전체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마지막 사회철학적 조망에서 이 책의 부제가 된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형식론’을 펼치고 있다. 마르크스와 소렐, 사르트르의 전통을 더듬고 ‘무시와 저항’이라고 하는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논리를 살펴본다. 이렇게 부지런히 일했고 이정도로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주어진 현실과 삶의 조건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도덕과 윤리적 개념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적 갈등의 원인은 권력과 자본 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인정’은 삶의 가장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조건이며 이유가 아니겠는가. 호네트가 그것을 어떻게 분석하고 증명하고 있든 그것을 인정하는데서 우리의 고민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새로운 가치 있는 속성은 인정 행위를 통해 확인됨으로써 인간 주체의 자주성 능력을 향상시키게 되며, 이것이 바로 문화적 변동이라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진보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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