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운동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2
이성재 지음 / 책세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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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 1968(68혁명) 1부 - 주동자가 없는 시위(http://home.ebs.co.kr/servlet/wizard.servlet.admin.program.vodaodListServlet?client_id=jisike&command=vodplayer&charge=E&program_id=BP0PAPB0000000009&step_no=0001&seq=1178012&type=A&vodseq=241620)

세계화의 물결은 시간과 공간을 개념을 확장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획일적이고 몰개성적인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구촌이라는 이름으로 이웃나라를 넘다들고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화폐 통합이 이루어지는 세상은 유럽공동체의 이상과 꿈이 아니라 자본의 폭력과 브레이크 없는 무한 경쟁의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다. 부자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하루 이틀의 문제도 아니지만 구조적인 모순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지고 그들만 행복한 세상이 지속될 거라는 가당찮은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역사는 인류에게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주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다.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고 사회는 유기체처럼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순간 ‘혁명’은 불가피한 것이 되고 만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국가를 점령했던 박정희의 군사 구테타를 혁명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폭적이고 평화로운 혁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지구 곳곳에서 혁명은 언제나 그렇게 조용히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968년 5월은 유럽에서 혁명이라 부를 만한 역사적 변곡점을 맞이했지만 띠동갑인 1980년 5월 대한민국에서는 혁명이 되지 못한 채 군인들에 의해 시민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대한 대응방식은 각 국가와 민족의 정치와 역사적 전통 그리고 문화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또다시 18년이 흘러 2008년에 불붙기 시작한 ‘촛불’은 드디어 시위가 놀이로 치환되고 물대포에 웃음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세대의 또 다른 열망으로 드러났다. 배후를 언급한 구세대의 음모론 그들의 프레임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스타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중학생부터 유모차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변화의 요구와 과거로의 회귀를 거부하는 욕망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월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1대99 거부 운동은 어떤가.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위 0.1%의 생활수준과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등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의 기본 조건에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고 ‘저들’은 침묵하는 다수의 심중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표를 준 대한민국 국민들 스스로의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오로지 ‘경제’와 ‘돈’이 신앙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불행한 이유를, 희망과 웃음의 의미를 이제라도 조금씩 생각해 보아야 할 때는 아닌가.

책세상의 열두 번째 개념사 시리즈 『68운동』은 유럽문화의 또 다른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던 1968년 전후를 조망하고 있다. 우리와 무관한 시공간에서 벌어진 사회적 변혁운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독자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모순과 당시 유럽의 상황 그리고 그 이후에 벌어진 변화 양상을 살펴가며 읽는다면 왜 현재진행형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열망은 단순히 ‘친북좌파’와 ‘보수꼴통’의 싸움이 아니다. 건강한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친북좌파식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매도했던 부유세, 일명 ‘버핏세’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 변화는 그들도 친북좌파식 공산주의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다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접근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치는 사람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노무현은 권력은 이미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고 했지만 가장 큰 도둑에게 가장 관대한 우리들의 의식이 더 큰 문제는 아닌가. 각종 편법과 불법으로 상속된 재산으로 기업을 지배하고 그 돈은 세상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무소불위의 기업으로 성장 중인 대학의 부패,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과 등록금, 세대간의 갈등과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 등 나열하기도 힘든 수많은 사회 문제들이 단 하나의 처방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지금 다시 왜 1968년을 돌아보아야 하는지의 문제는 우리의 현실 속에 답이 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촉발된 68운동 돌아보고 독일과 이탈리아, 미국과 영국의 전개 양상을 살펴본다. 이후에 68운동은 무엇을 남겼을까. 교육, 노동, 정치, 여성,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전근대적 요소를 바꾼 계기가 된 이 운동은 점진적인 변화 요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이기도 하다. 가만히 앉아 손가락을 빨고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법이다. 『88만원 세대』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라고 요구했던 저자들의 목소리는 이런 맥락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68 운동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아직도 레드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선거용 카드로 사용하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사회 변혁 운동은 ‘불온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대학거부 선언이 이어지고 고용 없는 기업의 성장, 보편적 복지 대책 없는 고령화 사회, 사회안전망이 허술한 미래, SNS까지 검열과 심의의 욕망을 드러내는 정권 등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이 시기에 68운동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모든 역사는 현재적 유용성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학문적 지식과 이론적 틀을 연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역사는 언제나 우리들의 삶을 성찰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살펴야 할 대한민국의 진지한 표정이어야 한다. 가볍게 개념을 확인하고 보다 깊고 다양한 책들을 만나기 위한 징검다리로 삼아도 좋겠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여기’의 좌표를 읽어내려는 작은 노력의 시작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지식채널 1968(68혁명) 2부 - 실패한 혁명(http://home.ebs.co.kr/servlet/wizard.servlet.admin.program.vodaodListServlet?client_id=jisike&command=vodplayer&charge=A&program_id=BP0PAPB0000000009&step_no=0001&seq=1178017&type=A&vodseq=2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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