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사회과학 - 우리 삶과 세상을 읽기 위한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 너 그리고 우리. 자아의 확장 과정은 곧 타인과의 관계망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나와 너를 구별하고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이 인류의 역사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성은 조금씩 발달해 왔다. 나와 너를 넘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바로 사회과학이 아닌가. 사회와 과학이라는 어색한 개념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우리 시대의 코드를 읽어내는 다양한 방식 중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 경제다. 불합리한 인간의 경제 행위, 수많은 생각의 오류, 비이성적인 사회 현상을 우리는 끊임없이 분석하고 논쟁한다. 각자의 관점이 다르고 해법도 여러 가지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현재의 모든 순간을 통해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그곳에 뭐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과거와 현재의 결과로서.

『88만원 세대』로 촉발된 세대 논쟁을 넘어 이제는 현실적인 삶의 질과 희망의 문제가 심각해 지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했던 시절은 얼마나 낭만적이었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극렬한 논쟁과 장하준의 당돌한 비판적 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온몸으로 이 시대를 체감한다. 살인적인 등록금을 비롯한 비정규직과 양극화의 문제는 주택 구입, 사교육 심화, 직업의 안정성, 조세 형평성, 사회 안전망 등 무엇 하나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우리의 목을 조른다. 우리는 훌륭한 국가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우석훈의 신간을 망설이다 손에 들었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은 우석훈의 스타일대로 써 놓은 비체계적 인문서에 가깝다. 사회과학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철학과 역사를 경제학으로 버무려 놓은 느낌이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단계별로 사회과학의 중요성을 말하고 사회과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것의 방법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충돌하면서 융합된다.

따라서 우석훈의 강의를 들으며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저자의 생각과 의미를 읽어내기에는 조금 난삽하다.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사회과학의 구체적 사례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낸 책이 아니라 이론서에 가까운 책이기 때문에 공감과 울림이 적다. 지금까지 우석훈이 보여준 다른 책들과 비교해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강의 자료와 수강생들과의 소통 과정이 드러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책에 담겨 전해질 때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 책은 그 점을 간과했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떤가. 각 장에서 정리된 내용이나 쟁점들 하나하나는 버릴 것이 없다. 하나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고 생각해 볼 문제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게다가 짤막한 글쓰기 연습을 통해 다음 장과 연결시키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시도한 장점이다. 읽기와 글쓰기가 한데 어우러진 책은 글쓰기 책이 아니면 찾아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속적인 흐름에서 이야기의 맥을 짚고 통일성 있게 전개시키지 못한 아쉬움은 기존의 이론서에 익숙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사회과학은 결국 ‘현실’을 다루는 과학이다. 가설은 가능하지만 실험은 불가능한 사회과학은 다른 학문과 성격이 다르다. 예측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인간들의 생각과 행동과 역동적인 변화 과정을 담아낼 수 있는 이론은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사회과학이 왜 필요한 것인지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독자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명쾌하고 분명한 현상과 이론적 잣대가 아니라 우리들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과학적 접근방법이 있기는 한 것인지 모르겠다. 인류가 축적해 온 수많은 지식과 과학적 탐구 방법이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밝혀주지는 못한다. 다만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성하는 정도가 아닐까. 망각의 동물인 인간에게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정글을 탐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책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틀을 제공하고 사회과학적 접근 방식에 대한 고민을 풀어 놓은 책이다. 대면 상황에서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저자의 이야기가 스토리 텔링으로 구체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저자 특유의 맛깔스럽고 담백한 전달 방식과 분명한 목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어서 계속 그의 책을 기다리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110429-0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개념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지 못하면 그것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라는 리처드 파인만의 말은 새겨 둘만하다.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지식을 얻는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명료한 시선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그것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며 개념화시키지 못한다. 지식과 정보의 양보다 질을 따져야 한다. 독선적이지 않은 범위 안에서 자신만의 범주와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고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앎의 세계를 넓혀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유시민은 두 얼굴의 사나이다. 지식인과 정치인. 이제 어떤 사람으로 분류하느냐는 그의 향후 행보에 달려있거나 국민의 선택에 달려있다. 스스로 걷는 길도 중요하지만 공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면 공인의 선택도 그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지식 소매상으로 자처하며 글을 써 온 유시민은 정치적 수사보다 그의 수많은 글을 통해 먼저 만났다. 노무현과 함께 떠오르는 정치인이 되어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을 거쳐 이제는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되었다.

면바지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유를 받던 청년 유시민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린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양복에 넥타이를 맨 공장에서 찍어낸 어른들의 모습과 달랐기 때문이다. 평생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한 벌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학교에 출퇴근했던 아버지처럼 유시민의 아버지도 학교 선생이었단다. 명민했을 어린 시절의 모습, 똘망똘망한 눈으로 책을 들여다보는 귀여운 모습이 떠오른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그가 웃음 많은 장난꾸러기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들고 나온 책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적어도 내게 각인된 유시민의 이미지다. 차가운 철창 안에서 ‘항소이유서’를 쓴 20대의 청년, 경제와 역사와 철학을 넘나드는 지식 소매상, 유려한 문장과 명쾌한 논리로 설득력 있게 독자를 사로잡는 베스트셀러 작가, 진보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차세대 대권주자가 된 정치인.

『국가란 무엇인가』는 지난 겨울부터 그의 트위터를 통해 집필 소식을 언뜻언뜻 알게 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큰 틀에서 이전에 유시민이 쓴 책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양한 지식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인류가 쌓아온 지적 토양을 자양분 삼아 2011 대한민국의 현실을 짚어 볼 수 있도록 일곱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으로 시작되어 박상훈의 『정치의 발견』에 이르는 지적 성찰의 과정이다. 대략 40 여권의 책을 인용하고 분석하며 현재 대한민국을 이루고 있는 정치, 사회적 토대를 정치하게 살펴보는 유시민의 안목은 명료하다. 파인만의 말을 적용하자면 개념 있는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던진 일곱 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이끌어 냈던 책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국가란 무엇인가?
- 홉스, 『리바이어던』
- 버트런트 러셀, 『사람들은 왜 싸우는가』
- 카야노 도시히토, 『국가란 무엇인가』
- 마키아벨리, 『군주론』
- 존 로크, 『시민정부론』
- 애덤 스미스, 『국부론』
- 데이비드 흄, 『도덕감정론』
-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정부에 대한 저항」
- 마르크스, 엥겔스, 『공산당 선언』
-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2. 누가, 어떤 사람이 다스려야 하는가?
-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 플라톤, 『국가』
- 맹자, 『논어』
3.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 피히테, 『독일 국민에게 고함』
- 톨스토이, 『국가는 폭력이다』
- 에르네스트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
-다카하시 데쓰야, 『국가와 희생』
4. 혁명이냐, 개량이냐?
- 헤롤드 J. 라스키, 『국가란 무엇인가』
- 카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Ⅰ, Ⅱ』
- 케인즈, 『고용, 이자 및 화페의 일반이론』
- 하이에크, 『노예의 길』
5.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 김상봉, 박명림, 『다음 국가를 말하다』
- 이남곡, 『진보를 연찬하다』
- 막스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 프랑수아-자이에 메랭, 『복지국가』
6.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 라인홀트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적 사회』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7.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
-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실천이성비판』
-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
-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민당의 과제』
-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 박상훈, 『정치의 발견』

맺음말
- 프랜시스 후쿠야마, 『강한 국가의 조건』

이 책들 중 대략 삼분의 일을 읽었고 하이퍼링크 책읽기를 통해 읽어야 할 책 몇 권이 목록에 추가되었다. 인용한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가 전무한 사람에게 이 책은 인류의 정치 사상사를 소개받는 책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어찌됐든 책은 책을 부르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개념과 논쟁을 촉발하는 역할을 하기 바랄 뿐이다.

용산참사 이야기를 통해 ‘국가’의 의미와 역할을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결국 진보자유주의를 주창하는 유시민의 생각과 주장들이 곳곳에 배어 있다. 자유와 정의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예약본 표지에 선명하게 손글씨로 인쇄된 ‘시민은 자유롭게 국가는 정의롭게’가 이 책을 웅변한다. 진보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생각은 ‘국가’에 집중된다. 국가의 역할과 의미를 생각하며 정부와 국가의 관계를 짚어보고 도대체 어떤 정부를 가져야 우리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그것은 정치인 유시민의 바람이 아니라 바로 모든 사람의 꿈과 희망이다. 하지만 현실은 책 속의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다. 바란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이 책에의 핵심은 ‘진보정치’에 있다. 쉽게 말하자면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의 연합을 제안하는 것이다. 실제 선거에서 막강한 파괴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논의되기도 하지만 사람의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산을 옮기는 것보다 어렵다. 향후 유시민의 정치적 행보와 정치 현실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의 의미가 새로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이 책을 지식인 유시민의 책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정치인의 책으로 볼 것인가. 내용의 갈피들을 살펴보면 유시민의 정치적 이상과 포부 그리고 개인적 고뇌를 읽어낼 수 있다. 독자들의 판단과 행동은 물론 책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현실적인(?) 힘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사유과정과 지식 소매상으로서 안내자 역할을 기대해 본다. 그가 앞으로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 바람은 순진한 독자의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인류의 지적 자산을 섭렵하고 현실 정치에 대해 고민해 보는 기회로 삼는다면 충분하다. 책과 현실, 그것은 영원한 애증의 관계이다. 지식은 실천이지만 현실을 위한 도구로만 볼 수 없고, 책 속에만 갇힌 지식 또한 무의미할 뿐이다.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이고 나는 또 어떤 현실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바로 나의 생각과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110424-0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긍정’ 신드롬. 컵에 물이 반쯤 남아 있으면 반밖에 안 남은 게 아니라 반이나 남아 있다고 생각하라는 가르침. 어려서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왔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그 거짓된 신화로부터 잠을 깨는 일은 쉽지 않다.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비난. ‘넌 왜 그렇게 부정적이야?’, ‘왜 매사에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지?’, ‘그래서 대안이 뭔데?’, ‘왜 빨간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거야?’, ‘그래봐야 네게 득 될게 없잖아?’, ‘왜 인생을 그렇게 살아?’, ‘좋은 게 좋은 거 아냐?’, ‘세상 모나게 살지 마’, ‘적을 만들어서 좋을 거 없잖아?’ 주변에서 흔히 들어본 이야기거나 남에게 충고한 말들이 아닐까?

연초에 일본인 작가가 쓴 『긍정의 심리 스위치』에 대해 혹평을 하자 담당 편집자가 덧글을 남겼다. 읽지 말라고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맞는 말이다. 침묵하고 외면하면 내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고, 적어도 적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택은 잔인한 법.

우리는 평생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교육받는다. 어느 교실 책상 이름표마다 ‘positive mind’라고 써있다. 담임선생님이 권유하는 생각의 방식이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만 ‘비판적으로 사고하라’는 주문은 교육과정이나 국어교과서에서 ‘비판적으로 읽기’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든 단어다. 여기에 주의해야 할 것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긍정’이 ‘희망’으로 치환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암묵적으로 긍정적이라는 말은 희망적이라는 말로 전환되며 비판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이라는 뉘앙스로 인식된다. 과연 그럴까?

유방암 판정을 받고 온통 미국식 긍정주의를 경험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은 너무 늦게 나온 책이다. 알맹이 없는 『생각버리기 연습』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은 사람들에게 치열하고 깊은 고민 대신 운명에 순응하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세상사를 외면하며 내 마음의 평화를 찾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이다.

끝없이 확대 재생산 되는 ‘긍정주의’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용기를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보았기 때문에 생긴 용기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긍정’은 일종의 자기최면이나 마약에 비유한다. 정말 마음이 달라지면 현실도 달라질까? 냉정한 자기 분석과 합리적인 상황파악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준비와 계획조차도 ‘긍정’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것일까.

『시크릿』,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마시멜로 이야기』 종류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나로서는, 네가 마음먹기에 달렸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며 스스로 조금만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고 성공이 보장된다는 믿음이 마치 또 하나의 종교처럼 보인다. 손해 볼 건 없으니 어차피 똑같은 결과라면 마음이라도 편안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왜 나쁜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 불안과 공포에 기댄 긍정이 과연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놓고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저자는 미국의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현실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토론과 창의성을 키우는 대신 오지 선다와 정답을 요구하는 수능시험. 획일적 사고와 체제 순응적인 교육의 틀은 다양성을 억압하고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인 문제제기를 ‘버릇없음’, ‘교사에 대한 권위 도전’, ‘삐딱한 시선’ 등으로 치부한다.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문화적 환경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정작 가르쳐야 할 것은 잘못을 외면하고 나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아니라 객관적인 판단력과 냉정한 비판의식 그리고 스스로 움직이는 실천의지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낙관주의의 어두운 뿌리를 들여다본다. 역사적 배경을 통해 불평을 금지하고 긍정심리학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기업, 종교, 학계에서 이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산업화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동전의 양면처럼 모든 일에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적당한 판단은 미뤄두고 어떤 현상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해 보자. 우리는 비합리적인 마음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뇌’는 늘 거짓말을 하고 생각은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낙관과 긍정의 힘이 인간의 삶을 오히려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의 말미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가 종교처럼 받들고 있는 돈의 힘, ‘경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한 권의 책이 어떻게 신화처럼 굳어진 긍정과 낙관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인지, 문제가 있는 것인지 논란과 의심의 대상으로 만들어 주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말대로 ‘긍정적 사고는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의무가 되었다’(140쪽)고 생각하는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이 책은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거꾸로 문제의식을 갖거나 왜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게 아닐까. 나의 성공과 이익을 위해 긍정과 낙관으로 무장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고통스런 현실을 잊기 위한 방편으로 혹은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희망으로 자신을 내모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가슴이 아닌 머리가 하는 이야기도 들어보자. 머리로만 살 수 없어도 맹목적으로 가슴만 따라갈 수는 없지 않은가.


110419-030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독자들은 이렇게 읽었다! -
    from 도서출판 부키 2011-04-26 16:52 
    긍정의 배신 독자 리뷰 모음 독자들은이렇게 읽었다! 긍정? 혹은 부정? 편집자 주 : 책이 출간되면 가장 기다려지는 건 독자들의 반응입니다.긍정의 배신의 경우판매량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독자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내심 애를 태우기도 했습니다.왜긍정의 배신은 독자 리뷰가많지 않은 거지? 하며간단한 논의를 하기까지 했어요
 
 
 
십대답게 살아라 - 내 삶에 태클 거는 바이러스 퇴치법
문지현 지음 / 뜨인돌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그 시절을 겪었지만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시절이 바로 청소년기이다. 생각은 봄꽃이 흐드러지듯 만개하여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이성에 대한 관심,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하지만 상황과 능력은 아직 준비가 덜 되어 불면의 밤이 깊어만 가던 시절이다. 모든 감각은 예민해져 있고 그 어떤 사소함도 그대로 넘기지 못하는 나이가 십대다. 그래서 십대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고 가장 고통스런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치열한 경쟁과 답이 없는 미래를 향해 오늘도 달리고 있다. 실업계든 인문계든 내가 마음먹은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아이들은 다양한 직업과 삶의 형태를 꿈꾸지 못한다. 좌절과 패배의식을 먼저 경험하고 한 줄서기에 익숙해져 있다. 스스로 서고 혼자서 걷는 연습이 부족하며 생각하고 토론하는 힘은 더 미흡하다.

그래도 늘 ‘희망’이라는 이름의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 웃고 떠들고 낄낄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먹고 마시고 잠자고 뛰는 시간이 즐거워 보인다. 그렇게 밝고 건강한 모습들로 행복한 하루하루가 십대의 특권이며 무기이고 장점이다.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권리!

하지만 그들이 늘 그렇게 즐겁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초중고를 거치면서 네모난 틀에 담겨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살펴보자. 모두가 조금씩 다르게 생겼고 조금씩 생각이 다르며 취향과 능력 또한 제각각이다. 현실에서는 몇 가지 주어진 길 안에서 그 다양한 빛깔들을 담아내려니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많이 아프다. 다치고 상처받고 좌절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십대는 십대에 맞는 생각과 행동과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는 없을까? 어른들의 눈과 기준으로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그들의 모습은 별로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생각과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그렇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어른들의 과거가 떠오르고 아이들의 미래가 조금 보일지도 모른다.

정신과 전문의 문지현의 『십대답게 살아라』는 청소년들의 아픈 마음의 갈피를 잘도 짚어낸다. 수많은 갈등과 고민은 현실에서 문제 행동으로 드러나고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그 원인들은 당연히 청소년들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다. 심리적인 원인은 다시 외부적인 충격이나 자극에서 찾을 수 있다. 다양한 문제 상황들을 저자는 ‘바이러스’라고 이름 붙인다.

낮은 자존심 바이러스에서 게으름 바이러스, 분노, 아웃사이더, 염려, 완벽주의, 편견, 의존, 투덜이 바이러스 등 다양한 문제들을 실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실제 심상과정에서 터득한 경험들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실생활에서 바로 적용하고 조금만 노력하면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들을 쉽고 간단한 설명과 더불어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십대가 겪는 여러 가지 문제 행동과 심리를 치유할 수 지침서이다. 간결한 분량과 쉬운 설명이 또 하나의 장점이다. 중학교 1학년 정도의 눈높이에서 접근할 수 있는 난이도와 시원한 편집으로 책이 줄 수 있는 답답함을 덜어냈고 사례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추상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는 내용을 친근하게 잘 전달하고 있는 책이다.

십대를 위한 책이긴 하지만 십대를 둔 부모와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 등 십대와 함께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길을 찾고 함께 걸어가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일지도 모른다. 먼저 공감과 치유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문제 한가지씩은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그것이 콤플렉스가 되어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을 뿐이다. 언제나 시작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십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며 우리 사회의 미래라고 말한다. 늘 그들의 교육과 진로를 고민하지만 그들의 겪는 아픔과 고통과 상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너희들이 뭐가 부족해서……라고 말하는 순간 대화는 단절되고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이 책은 기성세대와 십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어른들은 아이들 몰래 이 책을 뒤적이며 그들의 고민과 상처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알면서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몰라서 화내고 짜증내지는 않았는지 먼저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십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미래가 달라진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과거 십대를 보낸 시간의 결과물이다. 그러니 십대에게 어른을 요구하지 말고 십대는 십대답게 살라고 주문하자. 아니, 어른들이 십대답게 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 한 발자국씩 움직여 보자. 거기,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가 있다.


110406-0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회적 원자 - 세상만사를 명쾌하게 해명하는 사회 물리학의 세계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적 모방은 정보 수집 면에서 이득이 있지만 상식을 포기하게 하기도 한다. - P. 131

인간의 삶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와의 본능적인 관계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타인과의 관계와 사회제도, 규범, 문화의 틀 안에서 의식이 형성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존재가 인간이다. 본능적 자아에서 사회적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거쳐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되고 내면화된 습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과 태도를 배우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을 익히며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가치관의 혼란을 겪기도 하고 견고한 사회적 편견에 좌절하기도 하며 인생관이 바뀌기도 한다. 큰 흐름, 보수적 질서에 편입되는 과정을 우리는 어른이 된다고 말한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 따지고 상식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하면 피곤한 사람으로 낙인 찍힐 우려가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에 맞서 제도와 시스템을 고쳐나가려는 노력은 외롭고 힘겨운 싸움이 되기도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 한 작은 모래 한 알 움직일 수 없을 때도 있다. 그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힘과 삶의 태도의 문제다.

인간 개개인은 전체 사회에서 볼 때 작은 원자에 불과하다는 놀라운 발상.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는 물리학의 잣대로 인간과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개인적인 삶의 태도와 결합되어 읽는 내내 색다른 감동을 안겨준 책이다. 객관적인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을 얻고 사유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다르고 사회 현상에 대한 견해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은 독특한 관점이나 주관적 견해가 아닌 경우가 많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가의 문제와 나에게 어떤 이익이 주어지는가의 문제가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물질세계는 명쾌하게 해명되었을까? 과학자들은 여전히 원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불규칙한 움직임과 알 수 없는 흐름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단지 물질세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을 하나의 원자로 본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차피 사회라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인간은 나름의 법치과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름대로 그들의 생각과 행동과 변화의 패턴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리학으로 사회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충격적일 만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절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사람들의 경제 행위와 예측 불가능하고 불합리한 심리,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인을 모방하고 자신의 판단을 미루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오직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론 물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물리학의 복잡한 이론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물리학의 원리가 사회를 해석하고 인간을 분석하는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치밀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결국 인간에 대한 물리학적 평가에 불과하다. 인간은 사회적 원자다. 수많은 사회 현상들을 토대로 그것이 어떤 패턴을 가지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사람들의 오래된 관심사이다. 이 책은 그것을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분석한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물리학자의 사회학 들여다보기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 현상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고 거꾸로 사회적 원자인 인간을 통해 사회를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사람이 아니라 패턴을 통해 인간의 심리와 행동 그리고 사회의 흐름을 해석하는 과정이 어떤 인문학 서적보다도 흥미롭다. 저자의 통찰력은 실제 사례를 통해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물리학의 세계에 견주어 분석하는 데서 얻어진 듯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심리학, 철학, 사회학, 문학의 주제로 다루어졌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아질 수도 있고 다양한 모습으로 파생될 수도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모든 인간과 사회의 비밀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 노력들이 작은 결실을 맺고 그것이 또 다시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진지한 성찰과 고민만으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에 열광했던 독자라면 이 책은 본격적으로 물리학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 보기 위해 반드시 읽고 싶어질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진실’을 이야기한다. 세상의 진실, 사회의 진실 그리고 개인의 진실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 그리고 패턴과 흐름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과거의 지혜’를 되살려 흄과 스미스의 시대 사람들이 높이 쳐들었던 횃불을 이어받아, 진실이 무엇이든 그 진실을 찾을 수 있다는 낙관과 확신으로 세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P. 255

독일의 극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78)이 1778년에 남겼던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계속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정직한 노력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사람의 힘을 늘리는 것은 소유물이 아니라 진리 탐구이며, 이것을 통해서만 인간의 완성에 끝없이 다가갈 수 있다. - P. 255


110227-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