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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평점 :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 老子 第25章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때때로 삶이 답답하고 그 해답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무엇이 목표인지도 모른채 달리다가 어느날 문득 아득해지는 그 느낌에 대한 해결 방법은 없다. 먼저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그것이 삶이라고. 아무도 누구도 그 해답을 줄 수 없기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그게 삶이다라는 무책임한 말을 던져 놓고 떠나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수많은 동양 고전들이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그 인간이 관계맺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들을 전해 들을 수 있는 귀는 자신에게 있다. 켜켜이 먼지 앉은 수천년 전 성현의 말씀을 육화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방식과 자세에 따라 달라진다.
이십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내신 신영복선생님의 글은 어쩌면 그것이 올가미가 된다. 개인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읽게 된다. 그것은 옥살이 한 사람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 시간들에 대한 숙연함이다.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에 걸쳐 방대한 동양고전을 500페이지 책 한권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기 시작했다. 서론 부분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의 화두는 '關係論'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하여 사람과 사물, 자연,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가 이 책의 내용을 풀어가는 실마리가 된다.
周公曰 鳴呼 君子 所其無逸 군자는 무일(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서경에서 단 한 편을 고른것이 바로 이 周書의 '無逸'편이다. 깨어있는 자는 결코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알을 깨고 나오는 자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날개를 얻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데미안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는 각 고전 전체의 내용을 전부 읽고 해석을 달고 뜻을 풀이하는 주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관계론'이라는 화두를 통해 각 고전들이 전하고 있는 의미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신영복선생님의 말대로 각 고전이 태어난 시대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배경과 사상사를 무시한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 있게 한다는 의미로 읽히는 無逸을 내 생활의 반성으로 읽어도 좋겠지만.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입니다.
평소 개인의 변화와 노력으로 이 사회가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의 이 말에 무릎을 치며 공감한 것도 바로 사회의 변화와 미래에 대한 관점의 탁월함때문이다. 무심코 던지는 이 질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으며 지금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이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부끄러운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내 안의 변화로부터 오다는 믿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의 변화를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은 좀처럼 풀기 어렵다. 알고 있더라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論語에서 말하고 있는것처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知는 知人이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과 인간에 대한 앎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말은 바로 공자의 말은 인간 관계에 대한 변하지 않는 진리로 여겨진다. 평소 나도 즐겨사용하는 말이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얼마나 당연한 말인가.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기업을 하는 사람이나 평소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지켜지기만 한다면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실천 방법이다. 하지만 쉬울수록 더 지키기 어려운 것이야 말해 무엇하랴마는.
목표의 올바름을 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盡善盡美라 합니다. - 周易
觀於海者難爲水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한다 - 孟子
한 권의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들에 공감하고 감탄하며 부끄러워하다가 끄덕이다가 한숨 쉬다가를 반복하는 일은 드물다. 그것이 만화책이나 소설책이 아닐 경우는 더욱 그렇다. 신년벽두에 참 좋은 책을 만나 새해를 즐겁게 시작한다. 내가 서 있는 이 사회와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도 내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인식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많은 방법들과 만났다. 또 생에 대한 또다른 시선과 사유방식을 경험하며 이 책을 놓는다. 조금 더 깊이있는 독서와 사유를 통해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해야 겠다. 노자의 좋은 구절 하나를 마지막으로 떠올린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다 - 老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