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는 1992년에 유고로 출간되었다. 빛바랜 누런 책표지는 책꽂이 한 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세월을 감내하고 있다. 그 시절이 생각나면 가끔 꺼내 뒤적여 보는 책이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쓴 김현의 일기 형식의 글을 책으로 출간했다. 책날개에 어딘가를 응시하는 선생의 표정이 여유롭다. 48세의 나이로 작고한 선생의 글을 좋아했다.

장정일의 <공부>는 그가 펴냈던 <독서일기> 7권에 해당한다. <공부>라는 제목과 주제별로 묶인 제목들은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가당찮은 제목은 씁쓸하기만 하다. 인문학이 고사 위기라는 이야기가 심각하게 대두되었고, 인문학 교수들이 위기 선언을 할만큼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풍토가 척박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책 한권으로 부활이 가능한가? 그렇다 치더라도 부활 프로젝트와 거리가 멀고 그저 개인의 내면적 고백과 ‘공부’ 과정일 뿐이다. 상업적인 냄새가 나는 수식어와 선정적인 제목에 알러지 반응이 있는 나로서는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냥 <독서일기 7>이면 어떤가? 물론 이전의 책과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면 그 특성을 책의 내용과 편집에서 살리면 그뿐이다.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심히 불쾌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장정일에 대한 개인적인 호의와는 무관하게 책 한 권이 주는 느낌은 각양각색이겠지만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기분 나쁘다.

한겨레의 고명섭 기자가 쓴 <지식의 발견>이 이 책과 유사하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대표적인 저작을 중심으로 작가들의 상이한 관점을 비교하고 하나의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작년에 읽은 책 중에서 기억에 남는 좋은 책이다. 이 책도 유사한방식과 관점을 지니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객관적이고 분석적인데 비해 이 책은 보다 주관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보다 친근하며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설득력은 떨어지고 핵심이 없이 책 내용의 요약과 설명으로 그치는 경우도 있다.

책 한 권 전체가 유기적인 관계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고 그간의 독서이력에 대한 정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장정일의 내밀한 감성도 느낄 수 있고 역사와 사회에 대한 견해도 엿볼 수 있으며 정치와 세상에 대한 의견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다. 책의 본문에서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는 하이데거의 존재자를 설명하지만 실천으로 육화되지 못하고 인식에 대한 방편으로 그친다. 예를 들어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노당을 찍지 못했다는 고백은 실소를 자아낸다.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지만 자신의 경험과 고백들은 그가 인식한 세상과 책의 내용과 뒤섞이지 못하고 행간에서 불협화음을 이룬다. 나만의 느낌일까?

이 책의 목적이 인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에 호소하는 것이라면 반쯤 성공했고, 반쯤 실패한 것으로 본다. 얼 쇼리스의 책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최근 출간된 그의 책은 미국에서 노숙인에게 삶의 희망과 메시지를 전하고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을 전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했던 실천가의 책이기 때문에 관심이 간다. 인문학 자체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우리들 삶과 연결된 생생한 경험담이나 실천적 모습들이 더 필요하다. 그냥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면 공허한 울림으로 그치고 만다.

역사와 철학을 통해 세상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대학에서 보다 철저하게 인문학적 자연과학적 교양을 섭렵할 수 있도록 하고 고교 과정에서도 테크닉 위주의 논술이 아니라 비판적인 안목과 다양한 독서를 통해서만 수행할 수 있는 논술 문항의 개발도 필요하다. 공부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과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한 목적과 의도로 책 제목을 정했으리라는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감동적인 책을 만났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조금 아쉽다.

<나비와 전사>에서 고미숙이 절규했던 것처럼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방법과 과정들을 소개하는 책과 프로그램들이 보다 많이 제시되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제도권 교육에서부터 평생 교육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공부하기엔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거나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목마르게 기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공부는 학생이나 하는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할 수 없지만 ‘철학아카데미’나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다양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문학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어쨌든 장정일의 <공부>를 읽고 다같이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중학교 중퇴라는 객관적 학력과 무관하게 내공을 연마하며 공부하는 그의 태도에는 늘 부러움과 응원의 감정이 깔려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만난 그가 통렬하게 비판하는 시인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김수영의 시를 인용하며 글을 쓰지 말고 시와 시인에 대한 독설을 멈추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했다.

생각나는 대로 떠드는 이런 종류의 리뷰도 장정일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함께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는 독자의 애정 어린 투정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다. 장정일도 나도 열심히 공부하는 일만 남았다. 여전히,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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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2006-12-0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문> 장정일이 2002년 대선 때 이회창을 찍었다는 말이 '공부' 몇 페이지에 나오나요???

           아무리 봐도 없던데...?

           님의 오독이거나 아님 상상?

 

 


sceptic 2006-12-0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한글 미해득? 잘 찾아보세요. 안가르쳐 드립니다. 분명히 나오니까 다시 읽어보세요. 별 쓰잘데 없는 내용을 가지고...오독이나 상상? 우습네요. 논쟁거리가 될만한 얘기를 하세요...

다시 읽고 못 찾았다면 정중하게 요구하시죠. 그러면 정확한 페이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햄릿 2006-12-0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하지 않은 말을 지어내서 한다면 충분히 논쟁거리가 되죠.
제가 아무리 정중하게 부탁해도 님은 페이지를 적시하지 못할 겁니다.
장정일을 한권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장정일이 이모씨를 찍었으리란 상상은 하지 못할 텐데...

sceptic 2006-12-0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중하게 말씀하시니 저도 예의를 갖춰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햄릿님은 <공부>를 읽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페이지를 적시하지 못할거라는 확신을 하시는지...책이 집에 있습니다. 오늘을 넘기지 않고 정확한 페이지와 장정일의 글을 그대로 올려 놓겠습니다. 장정일의 성향을 아는지라 저도 놀랐습니다. 장정일을 제대로 한 권이라도 읽은사람이라면 누구도 좀 놀라겠지만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은 그리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햄릿님이 기분나쁜신게

1. 책에 없는 말을 제가 올려놨다고 생각하시는건지,
2. 장정일이 이회창을 찍은건지,
3. 책에 대한 부정적 리뷰인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소모적인 논쟁은 이쯤에서 접어주시죠.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sceptic 2006-12-05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 191페이지, 197페이지, 260페이지 참조.

2002년 대선에서 장정일이 이회창을 찍었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이에 햄릿님(장정일님으로 추정되나 어떤 분인지 알수 없어 궁금함)께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리뷰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1. '부서진 손잡이'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개혁과 민주를 미끼로, 개혁과 민주를 열망하는 대중의 표를 도둑질해 가는, 제도 정당이다! 부르주아 정당이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표를 찍는 나의 어리석은 투표양식이다! - 본문 191페이지

2. 이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앞으론 반드시 고려하겠다. - 197페이지

3. 탄핵 정국 속에서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필자는 민주노동당을 찍지 못했다. - 260페이지

1번 내용으로 미루어 2002 대선에서 이회창이나 노무현을 찍었을 거라는 암시를 제가 '노무현'이 아닌 '이회창'으로 표현한 것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그러나 3번 내용에서 보듯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민노당을 찍지 못했다는 장정일의 글을 보고 자연스럽게 '부르주아 정당'인 한나라당과 연결시킨 것은 저의 오독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제 변명입니다.

직접 표현하지 않은 부분을 리뷰에 올린 것은 저자에게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풋내기 시인이었던 시절부터 애정을 가지고 읽어왔던 장정일의 글들과 내가 미루어 짐작했던 정치적 성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실망감의 표현이었습니다. 민노당스러운(?) 작가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불평으로 쓴 글입니다. 민노당이 아닌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은 당명만 다를 뿐이라는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장정일씨.

햄릿 2006-12-05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 우리당도 부르주아 당이죠...
장정일의 글을 좋아하는 애독자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