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64살이 되면 딸아이는 34살이 되니 운이 좋으면 손주들을 무릎에 앉히고(무릎에 앉아주기를 바란다) 책을 읽어줄 수도 있겠다. 비틀즈의 <when I'm 64>에는 이십 대의 폴 매카트니가(실제 이 노래를 만든 때는 십 대라고 하니 놀랍다. 누가 감히 열다섯 살 때 자신이 환갑이 넘은 상황을 상상하고 싶겠는가? 비틀즈는 그래서 위대하다) 미래의 손자들을 등장시킨다. 베라, 척, 데이브. 그리고 비틀즈와 전혀 상관없는 릭 게코스키의 이 책은 그들에게 헌정된다. 하필 이 책을 쓸 때의 릭 게코스키의 나이는 64살이다. 아쉽게도 아직 손주는 없다.

 

 

   

                                                                  

 

이런 책은 수없이 많다. 책은 넘치고 그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책들은 더욱 넘친다. 읽는 행위는 살아가는 행위와 분리될 수 없다. 나의 삶은 언제나 나에게 가장 다이나믹한 서사이다. 그러니 내가 읽은 책의 갈피짬에 나의 삶을 끼워넣는 행위는 당연하기도 하고 가장 조심스러워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내가 읽은 책이 나의 삶 속에서 용해되고 해체되어 전혀 다른 곳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혼자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만천하에 공개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의 허락을 득하지 않은 철저한 오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 때에는 일말의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어야 한다. 진실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릭 게코스키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워릭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이것은 과거형의 고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자신이 교수가 되기로 선택한 것을 하나의 실책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적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은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의 나약한 내면과 강력한 자아의 결핍을 의미한다고 고백한다. 두 아이의 가장은 이윽고 종신고용이 보장된 안정적이고 명예로운 직책을 던지고 덜 지적인 인간이 되기로 결심하고 '희귀본 거래상'으로 전업한다. 침대맡에서 닥터수스를 읽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의 읽기는 사춘기 시절 아버지의 성애도서를 읽는 것으로 확장되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콜필드를 거쳐 엘리엇, 예이츠로 확장되었다 로날드 달의 <마틸다>로 돌아온다. 그의 성장과 그의 퇴행은 책에 대한 탐닉, 집착, 외면, 재회의 과정과 만난다. 릭 게코스키라는 인간은

 

나는 이론에 회의적이고 본질을 믿지 않으며 특수성을 숭배하고, 관념이 아니라 텍스트에 신경 쓰기를 좋아한다.
-p.398

 

이 독서 편력의 기사는 책을 찬미하지 않는다. 30년간의 결혼생활을 마감하고 아파트와 그 부속물을 전부인에게 주기로 약속한 후 큰 집을 얻으면 돌려받기로 한 그의 책을 한 권도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릭은 길길이 날뛰었지만 한편 시원해하기도 한다.(이 대목은 정말 코믹하다) 책을 좋아하고 항상 무언가 읽을 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는 남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생각을 때로 한다. 특히 시련 앞에서는 오히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보다 덜 담대하고 더 호들갑이다. 그래서 절망했는데 여기에서 동지를 발견한다. 물론 이 대목은 불편하고 뼈아프다. 모두가 맞다고 고개를 주억거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게 되면 너무 비참하니까.

 

나는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쓰는 행위가 실생활의 감정적 시련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 거북스럽고 정신적으로 나약하며 융통성 없고 언어와 허구에 빠지고 이기적이고 정신이 산만한 인간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p.198

 

책에서는 시련을 간접경험하게는 하지만 그것을 이겨나가게끔 단련을 시켜주지는 않는다. "인생은 똥이야."라는 유언을 남기고 고개를 돌려버렸던 어머니의 임종 앞에서 릭 게코스키는 독서의 무용함을 절감한다. 수많은 간접경험은 직접경험에 대한 면역이 아니라 내성에 약한 항생제 처방 정도인 것도 같다. 릭은 여기에 '역설'이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타인의 정신'을 쐬지 않고서는 세계관을 형성할 수 없으면서도 그렇게 함으로써 간접적이 되고 진정성을 잃을 위험을 갖게 된다.

-p.77

 

어렸을 때  이광수가 변절을 합리화했고 우리의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전장에 나가도록 독려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이문열이 가부장적인 사고를 부덕으로 미화하는 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전작주의를 시도하며 그들에게 경도되었었다. 아직 어렸고 이야기 안에 교묘하게 삽입된 그들의 세계관이 나에게 두서없이 들어와 나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사랑했던 사람을 지금에 와서야 바보 같은 놈이었다고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이미 그와 나눈 교감과 시간 그 자체를 통해 나까지 부정하게 되는 상실이다. 위험했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그리고 그들의 편린이 나의 내부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다음에는 더 나은 사람을 더 나은 방식으로 사랑하게 되는 가능성으로의 전진이 아닐까. 릭 게코스키도 수긍해 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bookman은 책을 욕해대면서 책에 대해 얘기하여 어떤 결론을 내린 걸까. 그는 이 책에서 "여기에서 되풀이되는 주제는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탐색"이라고 고백한다.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사랑의 본질을 찾아헤매려 했던 편력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릭은 덧붙인다. "모든 면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통해서만 배우게 된다."고

 

빛이 사라지고 밤이 드리워질 때까지 더는 책을 읽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책을 읽게 되리라.
-p.404

 

자, 나는 다시 64살이 된다. 노안이 오겠지. 하지만 더 천천히 아주 경미하게 오기를 바란다. 여전히 종이로 만든 책이 꽂혀 있는 서점과 도서관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이 들었다고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아이들이 선뜻 나에게 다가와 무릎에 앉아 내가 읽어주는 책을 들어주기를 바란다. 책은, 독서는 많은 맹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장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베라, 척, 데이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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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9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9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2-06-29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64는 오겠지요. 그런 날을 상상해 보는 일은 어려워요.
어떤 일이 올지 알 수 없으니 막막하기도 하고요.
'타인의 정신'을 쐬는 일에 대한 저 문장은 참 모순이면서도 맞다싶은 말이네요.
그래도 늘 읽을 거리 찾아 두리번거리겠지요, 저도요.^^
블랑카님 이 리뷰도 늘 그렇듯 너무 좋아요.^^

blanca 2012-06-29 22:3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는 지금의 나이도 사실 제가 경험하게 될 줄 미처 몰랐답니다.^^;; 이젠 마흔도 쉰도 환갑도 될 수 있다는 것이 때로 두렵기도 하고 대체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잘 그리지도 못하겠어요. 그래도 건강했으면 좋겠고 읽는 일은 여전히 저를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2012-06-2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안이 오면, 오디오북을 이용할까? 생각했어요. ㅎㅎ
내가 64살 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문장이 맘에 듭니다. 눈물 많고 정 많은 블랑카님의 것이라 또한 그 애정이 느껴지는 문장이구요.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려면, 아무래도 노안은, 오디오북만으로는 안 되겠군요.^^

미래의 손주들의 이름을 너무 사랑스럽게 지었는걸요. 폴 메카트니는. 왠지 그의 노래 특유의 낭만적인 멜로디가 그의 성격을 반영한 것 같은 느낌. 아, 저 노래 좋아요.

게코스키 얘기도 재밌고, 이광수와 이문열과의 옛사랑에 대한 블랑카님의 성찰도 재밌어요.

blanca 2012-06-29 22:35   좋아요 0 | URL
섬님, 저희 엄마가 자꾸 그러시더라고요. 책을 읽고 싶은데 읽을 수가 없다고. 그 얘기가 너무 슬프더라고요. 엄마에게 노안이 빨리 왔거든요. 오디오북이 서양에서는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다면서요. 그래도 이 활자 중독은 꼭 눈으로 읽어야 치유가 되는데^^;; 나이 들면 더 좋은 기술들이 나오겠지요?

2012-06-29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9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anne_Hebuterne 2012-07-0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젊을 때, 하루에 영화를 다섯 편까지도 보고 밤이면 커피를 마시며 밤새 책을 읽어도 좋았는데."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 재작년 함께 공연장에 갔을 때 눈이 부셔 힘들다며 약 세 시간 동안 눈을 감고 계셨어요.

"엄마, 십 년 만에 그 동네 문방구점에 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너무 늙으셔서 놀랐어."

"너희 엄마도 그만큼 늙었단다."

이런 대화.


blanca 2012-07-06 22:38   좋아요 0 | URL
쥬드님, 저도 느껴요. 벌써 제 나이도 삼십 대 중반인 걸요. 마음은 중학생인데. 어쩔 수 없는 세월의 격랑에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하고 뭉클함도 느끼고 아직 배워야 할 것들 투성이인데 풍경은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