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두 번 다시 결혼하지 않았지만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수많은 친구와 풍요롭고 고귀한 우정을 나누었다. 또한 계속해서 여러 편의 소설과 단편소설을 썼으며, 그 대부분이 걸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921년에는 <순수의 시대>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서문> 신시아 그리핀 울프

 

 

 

 

 

 

 

 

 

 

 

 

 

 

 

 

어제 이 책을 다 읽었다. 어찌나 더운지 몸 속까지 뜨거운 열기가 들어와 하루 종일 멍했다. 어떤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계속 나빴다. 더위와 이 책 때문에 기분이 저조했던 것같다. 이 책의 서문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그리고 서문의 곳곳에 나오는 이 소설의 인물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서문의 저자 신시아의 얘기에 쉽게 동조하기는 힘들었다. 이 책의 서문은 그러니 책을 다 읽고 되짚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스포일러는 무언가를 각오하게 한다. 삶에서 고통에 면역이 되지 않는 것처럼 비극적인 결말도 미리 안다고 해서 덜 충격을 받거나 조금 슬프고 마는 것은 아니다. 다 읽고 나면 저절로 힘이 빠지는 이야기다.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이디스 워튼의 사진을 보면 흑백 사진 속에서 코르셋으로 잔뜩 죈 것 같은 허리를 가진 대단히 아름다운 여인이다. 어떤 그녀의 작품이라도 그 주인공의 용모로 대입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책 날개에는 이디스 워튼이 1862년 유서 깊은 전통을 지닌 뉴욕의 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적혀 있다. 요즘말로는 엄친딸이었던 모양이다. 뉴욕의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이 책 <기쁨의 집>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사실 그녀가 몸담고 있었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 '내가 사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주제'였다고 고백한다. 작가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세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하면 그 이야기보다 독자들의 적절한 몸풀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닫힌 이야기처럼 빗장을 열기 시작한 이야기는 이윽고 실타래처럼 풀리면서 독자의 시공간을 장악하게 된다. 그것은 한정되고 근시안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정밀하고 농축된 지점으로 누군가를 이끌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지대가 된다. 그래서 정치 사회적인 비판의식, 원대한 가치에 대한 탐사가 없더라도 우리는 제인 오스틴과 이디스 워튼에게 기꺼이 굴복하게 된다.

 

결혼 적령기를 살짝 넘긴 릴리 바트라는 미모의 여자가 있다. 안락하고 사치스러운 것에 익숙하고 고상하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쉽게 느껴지도록 자라온 그녀는 정작 조실부모하고 깐깐한 고모의 집에 얹혀 사는 처지이다. 작가의 말처럼 세속적인 이상주의자인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에 근원적인 환멸을 느끼면서도 정작 그 세계를 벗어나 갈 곳을 알지 못한다. 수많은 유혹과 간계들 앞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좌절하고 주변부로 밀려나가게 된다. 이런 몰락에는 그녀가 정작 추구했던 것들을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았음을 알려주는 방증일런지도 모른다. 그녀의 속물적인 배우자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로렌스 셀던이 일깨워 주었던 것들은 그녀를 불편하게 했지만 그녀를 가장 그녀답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작가 이디스 워튼은 릴리 바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슬몃 자신의 고민들을 끼워 넣었던 것 같다. 자신이 몸담은 세계의 가치 기준과 자신의 내면에서 숙성된 미덕이 상충할 때 불행해지기란 그냥 내리막길을 달리는 것과도 같다.

 

릴리 바트는 너무 인간적이고 생생해서 도저히 소설 속 주인공으로만 납득할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릴리가 9월의 어느 화창한 날 눈부신 모습으로 로렌스 셀던과 만났던 그 날로부터 걸어나와 초라하고 추레한 방에서 숨을 거두고 뒤늦게 달려온 로렌스 셀던에게 대답을 줄 수 없었을 때 그래서 나는 바보처럼 울고 말았다. 이건 단지 이야기일 뿐이야, 릴리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얼러 주어야 했다.  누구의 마음 속에도 릴리 한 명쯤은 살고 있기에 그래서 릴리의 몰락에 울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 들이대는 가치 기준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삶은 이상이다. 오늘도 밥을 먹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면 우리는 그 세속적인 기준, 속물적인 욕망에 어느 정도 동참하고 스스로를 물들여야 한다. 그것은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다분히 작위적인 일이기도 하다. 때로 완전히 세상이 등을 돌릴 때가 있다. 어떤 욕했던 세계에서 완벽하게 쫓겨나게 될 때도 있다. 릴리처럼 이 세계를 경멸하기는 쉬웠지만 머물 만한 또다른 세계를 찾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 죽을 때까지 아말 그럴 것이다.

 

이디스 워튼에게는 다행히도 머물 만한 또다른 세계가 있었다. "도대체 내가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어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는지 기억할 수조차 없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그녀는 여저히 행운의 별자리를 타고 난 것 같다. 그럼에도 자신이 몸담았던 안락하고 사치스러웠던 세계를 등지고 비판하고 세세하게 이야기로 그려낼 수 있었던 그녀의 용기는 고귀하다. 누구나 다분히 속물적이지만 속물이 안 되고 싶고 속물을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한다는 그 자체가 소중한 것 같다. 좀 덜 속물적이고 좀 더 이상적인 것이 철이 덜 든 것이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이라고 폄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릴리 바트는 끝까지 돈을 추구했고 돈의 위력 앞에서 벌벌 떨었지만 그 앞에서 온전히 자신을 방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몸부림을 쳤다. 그런 모습을 차마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던 남자에게 꼭 기억하게 하고 가고 싶었던 마음이 이디스 워튼의 결이 고운 문체로 너무나 처절하게 그려져 있다. 지글거리는 주변 공기가 갑자기 시렵게 느껴진다. 편안하고자 하는 마음,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 이기고자 하는 마음, 그래도 좀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 힘든 사람을 보면 손을 잡아주고 싶은 마음, 그러한 것들이 다 한데 모인 곳이 인간이다. 그래서 사는 것은 때로 참으로 힘겹고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견딜 만하고 고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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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7-28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에 근원적인 환멸을 느끼면서도 정작 그 세계를 벗아나 갈 곳을 알지 못한다, 이 문장에 크게 공감해요.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속물이 되기를 선택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른 세계를 꿈꾸고. 생각하면 할수록 인생은 모순덩어리 같아요. 꿈을 꾸는게 참 다행스럽다가도 이게 무슨 소용이냐며 시들시들해질 때가 수천 수만번 지나가니 말이에요. <순수의 시대> 민음사판에 실린 이디스 워튼의 사진을 보고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녀의 글은 어떨지 또 궁금해지네요. blanca님 서재에 오면 불현듯 잊고 있던, 그리고 새롭게 읽고 싶어지는 책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

blanca 2012-07-29 22:56   좋아요 0 | URL
살면 살수록 제가 성숙하고 있는 건지도 도통 모르겠어요. 아직 시행착오는 계속되고 후회는 많고 그래요^^;; 이디스 워튼의 책들은 기본적으로 일단 재미있어서 저는 이번에 또 이디스 워튼 책들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랍니다.아, 정말 너무 더워서 재미없는 책은 참고 읽을 수 없을 것 같아요.

2012-07-2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우리는 이디스 워튼처럼 이야기를 쓸 순 없으니, '머물 만한 또 다른 세계'가 '이야기를 읽는 것'일까요. 이야기는 우리를 구해줄런지요?!
2. "릴리 바트는 끝까지 돈을 추구했고 돈의 위력 앞에서 벌벌 떨었지만 그 앞에서 온전히 자신을 방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몸부림을 쳤다. 그런 모습을 차마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던 남자에게 꼭 기억하게 하고 가고 싶었던 마음이 이디스 워튼의 결이 고운 문체로 너무나 처절하게 그려져 있다." 이 말만 읽어도 마음 아픈 책입니다.

-- 이디스 워튼이란 작가를 마음 속에 담게 되는 페이퍼네요. 항상 블랑카님이 소개하는 책은 다 읽고 싶어요.^^

blanca 2012-07-29 23:01   좋아요 0 | URL
섬님, 이 책은 가벼운 여자에 대하여 쓴 책인 척 하지만 사실은 너무 가슴 아프고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릴리 바트가 죽기 전에 사랑했던 남자에게 가서 자기가 끝까지 어떤 중심을 잃지 않으려 했던 모습을 얘기하는 장면이 너무 가슴 아프더라고요. 저는 이야기가 우리를 구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머물 만한 또 따른 세계를 꿈꾸게 하고 그려볼 수 있게 한다는 것으로 작은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싶어요. 섬님이 소개해 주신 책들 중 저는 아직도 조셉 캠벨의 책들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LAYLA 2012-07-2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서 저도 무척 기진맥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굳이 해피엔딩까진 아니더라도 순수의 시대 정도로 마무리를 해줄줄 알았거든요. 힘들게 산 제인 오스틴이 드리미한 사랑을 그리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산 이디스 워튼이 이리 잔인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리다니 인생은 정말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blanca 2012-07-29 23:03   좋아요 0 | URL
라일라님, 그렇죠! 저도 이 책 결말이 정말 너무... 소설 읽고 이렇게 다운되기도 한다는 게 참 놀라웠어요. 원래 달달한 책이 읽고 싶어 시작한 건데 다 읽고 나니 가슴이 저릿해지더라고요. 이디스 워튼의 자서전이 그래서 읽고 싶어졌는데 번역이 안 되어 있더라고요.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