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조정자 - 보수와 혁신의 경계를 가로지른 한 지식인의 기록
남재희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를 하고 책을 봤는데, 중복되는 내용이 너무 많은 칼럼집 모음입니다.

그래도 합리적인 사고를 하시는 드믄 보수정치인의 ‘회고록’으로 생각했는데 그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었습니다.

글이 대부분 칼럼이나 인상기로 2010년대 후반에서 2022년까지 집필된 것입니다.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정치권 이면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오히려 기자/ 논설위원 생활을 하신 1960-1980년대 글을 집중적으로 모았으면 의미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많은 글을 써오고 기고하신 걸로 아는데 초기 글이 전혀 없어 놀랐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은 두번째로 읽은 도쿄대 가토 요코 (加藤陽子)교수의 저작입니다.

첫번째로 읽은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서해문집,2018)‘이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 전까지 다룬 책이라면 본서는 중일전쟁과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태평양 전쟁을 다룹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 원고를 기반으로 집필된 책입니다.

책 내용은 제국 일본의 위정자(爲政者)들이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45년 8월 제2차세계대전에 패전할 때까지 세번의 ‘세계의 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복기합니다.

이 책은 역사책이면서 제국일본의 국책을 결정한 고위관료들과 정치가들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정보를 가지고 어떤 협상과정을 거쳐 어떤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의 영향력이 현재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의합니다.

세번의 결정이란

첫째 만주사변이 발발한 이후, 중국과 일본을 타협의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작성된 리튼 조사단(Lytton Commission )의 보고서 즉, 중일 분쟁 조사단 보고서; Report of the Commission of Enquiry into the Sino-Japanes,1932)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결정을 내렸는지

두번째, 제국일본은 왜 독일 이탈리아와 1940년 9월 삼국동맹( Tripartite Pact)을 맺었는지이고

마지막은 미국과 협상을 진행한 미일교섭(1941.4-11월)입니다. 주미일본대사관과 일본 외무성은 미 국무성과 미일 정상회담을 포함한 교섭을 진행하였으나 결렬되고 이후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Pearl Harbor)을 공격하고 태평양 전쟁이 시작됩니다.

일본은 영국의 외교관 리튼이 주도로 서방열강이 중재한 중국과의 화해협상안을 거부했고 이후 1937년 본격적인 중일전쟁이 발발합니다. 러시아의 남하를 두려워하며 중국의 자원과 시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제국 일본의 수뇌부는 강경한 육군세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중국과의 화평중재안을 거부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이 삼국동맹을 맺은 이유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패전한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식민지를 독일의 간섭없이 일본의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함이고 프랑스령 그리고 내덜란드령 인도차이나 지역의 풍부한 자원이 일본이 이 지역을 탐낸 이유입니다. 1940년 당시 일본의 군부 식자층 가운데 독일의 전쟁 승리를 상정하고 전쟁이후의 세계질서를 이미 고려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일교섭 역시 위에서 언급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은 일본이 북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까지만 오고 남방으로 내려오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이미 중일전쟁으로 중국내 미국의 이권이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꺼지 진출해 미국의 이권이 걸린 필리핀 등을 위협하는 걸 두고 볼수는 없었습니다.
일본은 이 지역의 석유채굴권을 가지고 있는 영미 회사들이 일본에 석유금수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미국이 인도차이나의 공정한 자원분배를 약속하는 미끼를 던졌지만 일본은 거부했습니다.

본질적으로 이 책애서 보여주는 일본 외교의 치밀한 준비성은 2023년 현재도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자 가토요코 교수는 일본의 전쟁사 그 중에도 1930년대를 전공하신 분이고 따라서 일본의 전쟁에 대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책이 출판된 당시인 2016년 일본에서 전후 미군정에 의해 탄생한 평화헌법이 극우 아베정부가 개정을 시도하는데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일본의 침략으로 중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전몰자(戰歿者) 숫자가 천만명을 넘는데, 이런 전쟁범죄( War Crime, 戰爭犯罪)를 저지르고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과거의 범죄에 대해 사과도 배상(賠償)도 않고 다시 전쟁을 수행할 권리를 가지겠다는 건 현재 일본을 지배하는 과거 죠슈번벌(長州藩閥)의 후예들의 후안무치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 일본총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는 작년 총격을 당해 사밍한 아베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파벌로 알려진 인물로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이 망치고 온 강제징용 문제, 일본의 조선 지배의 불법성 부인 등의 외교 행위는 대통령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더구나 기시다 총리는 박근혜 정부가 졸속으로 추진한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의 외무대신 이었습니다.

이걸 알고도 이렇게 외교를 망쳤다면 대통령의 역사관이 ‘식민사관’에 오염되어 심각한 자기비하에 빠진 것이고 이걸 몰랐다면 역사에 너무 무지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외교행위애서 의전(儀典)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하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왜 외교 안보 전쟁에 대해 고찰하게 되면 역사를 뒤돌아 보는지 윤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외교문외한인 일반국민의 입장에서 윤대통령은 외교행위와 사교(社交)행위를 착각하는 걸로 보입니다. 정부에서 통제한다고 하는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모습이 이 정도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한국 외교가 걱정스러운 건 그들이 상대해야 할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등 여러 열강에 비해 한국의 전문 외교관들이 정말 이들 열강과 협상다운 협상을 할 능력이 있는가입니다. 일본의 경우 세계 외교무대에 나간지 100여년이 이미 넘었고 외교전은 물론 전쟁에서도 이겼다는 자부심이 대단하고 서구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들을 논리와 협상으로 깰 능력을 보유하고 있나요? 과거와 다르게 한국은 분명 가지고 있는 게 많은 나라고 전략적으로 활용가치가 있는 자산이 많은 나라입니다. 더이상 미군에게 쵸콜렛 받아먹던 가난한 나라로 생각 안했으면 합니다만 이나라 상층부의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노년층은 아직 일본이 심어놓은 자학적 세계관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습니다.

다른 쪽은 모르겠으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이 선진국이었던 때는 디지털로 세상이 변하기 전인 1990년대까지입니다.

심지어 과거 장점이었던 장인정신이 지금은 일본경제발전에 족쇄가 된다는 분석도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도장찍어 결제하고 플로피 디스크가 쓰이는 사회이니 뒤쳐저도 한참 뒤쳐진 겁니다. 일본이 너무 자랑하는 오래된 음식점들 , 즉 노포(老鋪) 중에 신용카드 결제를 할 수 없는 곳이 허다합니다.

선진국 중 레스토랑에서 신용결제가 불가능한 유일한 나라입니다. 10여년전 도쿄에 여행가서 직접 경험한 것이라 더 실감이 납니다. 시골이 아니라 도쿄의 번화가 긴자(銀座)에서 겪은 일이라 매우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일본은 그렇게 선진적인 나라가 더이상 아닙니다.


현재 세계는 30여년 동안 신자유주의 광풍이 휩쓸고 그로인한 이상 저금리가 지난 30여년 지속되어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있고 중앙은행이 제구실을 못하는 지극히 비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 주도의 달러패권이 얼마나 지속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이번에 파산한 SVB는 안전자산이라고 하던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 망했습니다. 이자율 인상에 따른 국채가격 하락을 감당하지 못해서입니다.

미국이 왜 중국을 못잡아먹어서 난리일까요? 이 현상은 미국이 더이상 세계를 일극채제로 끌고갈 수 없다는 상황과 맞닿아 있습니다.

러시아와 별개로 중국의 경제력과 영향력은 이미 미국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무시를 못하니 체제경쟁하고 인종적 편견이 가득한 레토릭으로 중국을 무시하는 겁니다. 중국이 미국을 단숨에 따라잡긴 어려워도 분명 위협적이긴 하단 말입니다.

아무튼 이 책을 보고 뉴스를 보면서 윤석열 정부가 외교와 경제정책에 뭔가 오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학자 김기혁씨의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중국사 중에서도 ‘마테오 리치’를 공부하신 분이고 물리학을 공부하다 역사학으로 돌아선 이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여러 면에서 정통 역사학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분입니다.

이책도 전통적인 중국사 해석법을 떠나 새로운 시각에서 중국사를 보려는 시도입니다.

책은 오랑캐라는 중국 변방의 민족들이 역사에 따라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글이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 내지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글입니다. 즉 오랑캐라는 소위 미개한 자들로 알려진 중국 변방의 민족이 중국과 동아시아 그리고 멀리 유럽까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대부터 근대시기까지 살핍니다. 당연히 처음 나오는 질문은

오랑캐들은 정말 미개한가? 입니다. 즉 유목문화가 과연 농경문화보다 뒤처진 것이 맞나? 하는 질문입니다.

이 책은 아니라고 답하고 저도 동감합니다. 단지 주류로 인식되지 않았고 그래서 저를 포함해 유목민족에 대해 무지한 것일 뿐입니다.

동일한 민족의 사람들을 중국과 중앙아시아 러시아와 유럽이 각기 달리 부릅니다. 이런 상황이 중국 주변의 유목민족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한 요인이죺 ㅠ


따라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저자가 바라보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에 더 무게가 실립니다.

그런 면에서 독특한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책의 독특한 점 하나는 중국사와 유목제국사 등과 관련해 영미권의 연구서를 많이 인용한다는 점입니다. 중국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주로 중국과 일본 연구서를 많이 인용하는 경향에 비추어 이 책이 다른 점입니다.

책은 중국의 전통적인 화이론(華夷論)적 관점을 설명해서 시작하지만 이론적인 틀은 주로 토마스 바필드의 ‘위태로운 변경( The Perilous Frontier,1989)’에서 가져옵니다.

즉 중화제국이 북방의 오랑캐들을 상대할 때 어떤 전략을 썼는가에 관한 토마스 바필드의 틀(Framework)이 전체를 관통합니다. 그 두가지 전략이란 농경사회 외부에 존재하며 농경사회로부터 부차적 이득을 취하는 외경전략( outer frontier strategy) 그리고 농경사회인 제국 내부에 들어와 군사력으로 활동하는 내경전략( inner frontier strategy) 입니다(pp11-12).

중화제국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처음 오랑캐라고 불려던 장강 이남의 나라들은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차츰 중화제국에 동화되어 갔지만 북방의 오란캐들은 나름의 생산성이 있는 목축과 교역을 통해 농경사회와 다른 그들만의 문명으루만들어간 것입니다.

이 책이 농경사회에 비해 유목사회가 뒤떨어졌다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고 이런 시각은 중국사에서도 문한연구가 아닌 고고학적 발굴과 인류학적 연구성과로 유목사회에 대한 편견이 중국사 서술에서 개선되고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근대 역사학 서술에 만연한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을 극복 대상으로 봅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으로 대항해시대 이후 지속된 교역( 노예무역 포함)의 이득 그리고 이후 산업혁명이후인 18세기부터이기 때문이고 중국의 경우 15세기까지 이미 경제력과 문화수준이 유럽을 능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직되게 유럽의 발전을 동아시아가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럽이 동양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된 건 13세기 몽골의유럽침략 때문으로 특히 일칸국과 킵치크 한국이 유럽의 중세에 미친 영향은 상당합니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동양을 비하하는 말로 타타르 혹은 훈(The Hun) 과 같은 말을 쓰고 있고 돌궐 계통의 튀르키예가 세운 오트만 제국의 경우 동로마제국인 비잔틴의 유산을 물려 받았는데도 영미권에서 아직도 야만적인 국가라고 폄훼를 당하는 상황입니다.

영국이 오트만 제국과 연합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했던 크림전쟁 당시를 설명해 주는 자료를 보면 영국인들이 튀르키예인들을 얼마나 인종적으로 멸시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에 대한 서술이 모호합니다. 중국에 비해 일본이 지킬 전통이나 유산이 없어 서양식 근대화에 빠르게 적응한 건 맞지만 제가 보기엔 일본에 대한 서술이 너무 모호합니다.

그리고 일제가 아시아 지배를 위한 목적으로 만든 본국사, 동양사, 서양사 분류를 아직까지 무분별하게 수용하는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께서 쓰신 최근작을 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일본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사회평론 아카데미,2022)

한국과 일본만 쓰고 있는 이러한 역사분류체계를 현재 한국의 상황과 과거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분류체계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근현대사 관련해서는 좀더 세부적으로 학문체계가 정리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분명히 일제의 ‘자학사관’과 ‘식민지근대화론’을 배제하고 새로운 분석틀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을 대표하는 고전학자 중 한분인 정민교수님의 한국천주교회사 책을 읽었습니다.

한국 한문학(漢文學)관련된 책을 여러권 내신 분인데도 여태 인연이 닿지 않아 이분의 책을 한권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022년 내신 이 책을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교회사는 물론이고 인문학 책을 통틀어서 근래 나온 국내 저자의 책 중에 본문만 778쪽에 달하는 책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본문이외 주석과 참고문헌 그리고 색인까지 포함하면 이책은 총 901쪽에 달합니다.

총 12부로 이루어진 본문은 각각 8개장으로 이루어져 총 96장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최근에 보기 힘든 ‘벽돌책’이라서 책의 체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꺼운 책이지만 이 책은 조선 정조때 조선에 전해진 서학( 西學), 즉 천주교의 조선포교에 대한 글이며 특히 초기1780년대부터 정조가 죽은 이후 순조원년인 1801년에 일어난 신유박해(辛酉迫害)까지만 다룹니다.

따라서 한국천주교회사에서도 아주 초기부분만 다룹니다. 범위가 이렇게 특정된 이유는 저자인 정민교수님이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을 연구하시는 분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조선의 18세기, 특히 정약용을 비롯해 주로 남인(南人) 중심의 조선의 후기 지성사를 연구하신 분이기 때문에 정조 재위 당시 남인과 얽혀 있던 초기 조선 천주교의 연구까지 이르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주로 19세기 후반과 일제강점기를 보면 저도 덕분에 그 전반기인 18세기 말 세도정치 전야에 벌어진 조선 지식층의 동요와 서학의 영향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다 말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고 몇가지 사항만 간추립니다.

첫째, 한국 천주교에서 최초의 영세자라고 추앙(推仰) 받는 이승훈(李承薰)이라는 인물은 문제적입니다. 첫 영세자이면서도 천주교를 버린다는 배교(背敎) 선언을 세번이나 합니다. 석연치가 않은 면이 있습니다.

둘째, 정약용은 초기 조선 천주교의 핵심이었지만 정조의 총애와 본인의 천재성 그리고 배교선언으로 신유박해에서 목숨을 건졌지만 천주교와 인연을 끊지 않았고 최초로 조선에 온 청나라 신부 주문모의 도피를 돕는 등 배후에서 보이지 않게 활약했습니다. 정약용의 강진 유배는 그가 정치적으로 패배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정조가 당시 중용한 남인 재상 채제공( 蔡濟恭)과 남인 세력에게 천주교는 관리를 해야하는 중요한 대상이었습니다. 반대파인 노론(老論)은 물론이고 남인 내에서도 천주교를 배격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하지만 당대의 천재라고 불리던 정약용을 비롯해 황사영(黃嗣永) 뿐만 아니라 노론의 정통가문 출신으로 17세기 병자호란 당시 척화(斥和)를 주장했던 노론의 거물 김상헌( 金尙憲)의 후손인 김건순(金健淳)까지더 천주교를 믿게된 것입니다.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과 김건순은 천주교를 떠나서도 천재라고 소문이 자자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초기 조선천주교의 이론적 기반을 만들어 놓습니다.

넷째, 천주교가 조선을 파고든 이유는 조선의 사회구조의 모순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정조 사후의 세도정치기로 가는 길목으로 사대부 양반들이 평민을 착취하는 구조가 점점 공고해지는 시기로 19세기 민란의 시기를 앞둔 시점입니다. 공고한 신분질서로 사람대접을 못받았던 평민 노비 계층이 천주교에 호응이 있었고 천주교의 ‘평등’사상과 죽어서 천당을 갈 수 있다는 교리가 하층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천주교는 더구나 국가전복을 기도하던 정감록(鄭鑑錄)과 접점을 가지면서 폭발력이 더욱 커졌습니다.

정조라는 임금은 흔히 개혁군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자신 다른 유학자들을 압도하는 학자군주로서 대단히 보수적인 성리학자입니다. 그가 체제공으로 대표되는 남인을 중용해서 그의 재위 당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크지 않았을 뿐 그가 천주교를 용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청나라 신부 주문모를 체포하기 위해 비밀리에 일을 진행했는데 청나라와 외교문제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정조 사후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순조의 수렴첨정(垂簾聽政)을 하면서 척사의
기치를 내걸고 천주교를 탄압하는 신유박해를 일으킵니다. 초기 조선천주교 지도부들은 대부분 참수(斬首)를 당해 죽었습니다.

이들이 참수당한 이유는 공고한 성리학적 지식체제와 조선후기의 신분제를 그 기반부터 흔들리게 할 수 있었던 폭발력때문이었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예를 최고로 아는 근본주의적 보수 성리학자들 입장에서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기를 거부하는 천주교도들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400 여년을
이어온 조선 사대부들의 기득권을 흔들수도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황사영이 백서를 써서 서양의 군함을 불러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 일이 폭발력을 가진 것은 왕권에 외세를 불러들여 도전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대역죄(大逆罪)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되어 참수가 아니라 능지처참( 陵遲處斬)에 처해지게됩니다.

조선의 보수적 성리학적 질서는 이미 청나라에 16세기부터 예수회 신부를 비롯한 서양인들이 교류를 하고 있었는데도 19세기가 다 되도록 소중화(小中華)인식에 깊이 침잠해 조산에서 활동하던 천주교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경제적인 기득권과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공고히 결합된 것입니다.

끝으로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사료비판에 대해 언급합니다.

주목할 것은 천주교에서 금과옥조로 받들어지는 이승훈이 쓴 것으로 알려진 ‘만천유고’이 위서(僞書)라는 사실과 초기 천주교 지도자 이벽이 쓴것으로 알려진 ‘성교요지(聖敎要旨)‘가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마틴(William A F Martin, 1827-1916)이 쓴 상자쌍천(常字雙千)을 그대로 베꼈다는 것입니다.

자료의 대조를 통해 검증한 것이므로 논란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천주교계를 둘러싼 과거사료의 집착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천주교에서 쓰는 용어들이 기독교에서 쓰는 용어들로 근거없이 바뀌어 있는데도 선학이 자료를 오독내지 오해했거나 무지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상황을 상식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19세기에 산 미국인의 책이 18세기에 죽은 조선 천주교 지도자의 책으로 바뀐 것이니 더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이 책에 나온 인물 중 김건순과 관련하여 이 인물에 얽힌 또 다른 선비 강이천에 대한 책을 소개합니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푸른역사,2011)

이책은 ‘정감록’과 천주교의 영향 뿐만 아니라 문체(文體, Style)을 둘러싼 보수적 철학군주 정조와 천재 김건순 그리고 강이천의 문화투쟁을 다룬 글입니다.

재미도 있고 정민교수도 이책을 실제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정조의 경우 한동안 개혁군주로서 조선의 후기 문화를 꽃피운 임금으로 서술되다가 보수적 철학군주로 그리고 서도세자의 아들로서의 면모가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가 지니치게 뛰어난 성리학적 철학군주였기 때문에 그리고 갑작스러운 죽음때문에 후대 임금들이 외척의 세도정치에 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조는 본인만이 감당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만들어 놓았지 본인보다 못한 임금은 감당이 안되는 제도적 결함을 만들어 놓은 체 죽은 겁니다.

최근에 읽은 정조의 통치에 대해서는

정조평전 (민음사,2018)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분야의 책 중에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진화론인데 특히 인간의 진화의 역사나 19세기 사회사상에 영향을 미친 다윈의 진화론,즉 적자생존 ( Survival of the Fittest) 원리는 그 광범위한 영향력 때문에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분야죠.

오늘 소개할 책은 200쪽 가량의 작은 책으로 이미 한국어판이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디플롯,2021)

책 제목대로 개와 침팬지, 그리고 보노보를 연구해온 진화인류학자이자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적자생존’의 진화적 생존을 넘어서 다정한 생물들이 지속적으로 살아나는다는 주장을 합니다.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앞세워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것이 생존에 더 필요할 것 같지만 과학적인 증거들은 상대방과 공존을 위해 협력(cooperation)하고 공생하는 경우가 생물들의 생존에 더 유리하다고 설명합니다.

공식직함이 진화인류학자(evolutionary anthropologist )이지만 저자는 연구초기 개가 어떻게 늑대에서 진화해서 사람과 같이 공생하게 되었는지를 연구했었고, 러시아에서 야생에서 자라던 여우를 몇세대에 걸쳐 개처럼 사람과 같이 공생하게 하는 소위 가축화(domestication)관찰 실험을 참관하고 공동연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가장 놀라운 부분으로 위에서 본 가축화된 야생늑대는 생리학적으로 사람과의 공생을 위해 호르몬 변화가 나타나고 겉모습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같이 살면서 야생에서 필요한 위장을 위한 보호색이나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 등이 눈에 잘 띄는 얼룩무늬색으로 바뀌고 송곳니가 작아지는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실험이 약 90여년에 걸쳐 일어난 것이기에 시간의 푹이 더 넓은 진화의 경우 신체변화가 더 뚜렷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책은 또한 다정함의 반대성향 즉 폭력성(violence)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다정함은 폭력성이 줄어들어야 나타날 수 있고 적대적 감정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다정함의
이면(裏面)과 같은 폭력성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차별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가고 미국의 흑백갈등과 흑백분리과정, 백인들이 흑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인종적 편견(prejudice)을 이야기합니다.

미국에서 많은 백인들이 흑인들을 유인원과 비슷하고(Ape-like) 또 백인보다 진화가 덜 된 인종으로 생각하고 차별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죠.

심지어 경찰들은 흑인 청소년들의 나이를 실제보다 높게 보아 미성년인데도 체포되는 비율이 같은 또래 백인 청소년들보다 높다는 조사결과도 보여줍니다.

이미 미국에서 사회문제가 된 흑인들에 대한 미국 경찰들의 무자비한 폭력적 진압과 그로인한 연속적 사망 사건을 보면 검은 피부를 가지고 미국사회에 사는 건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미국에서 죄없는
흑인 청소년들이 경찰의 과인진압과 과도한 폭력 그리고 총기사용으로 죽는다니 그들의 민주주의가 백인 주류층만을 위한 민주주의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책을 쓴 저자가 책 말미에 2016년 첫 초고를 썼지만 절반 이상 폐기하고,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과 그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여과없이 보여준 백인우월주의와 혐오발언을 보면서 잘 모르는 정치학 사회학 분야를 공부해가며 2년을 더 집필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폭력성과 가축화된 동물과의 관계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연구자이지만 현재 사회에 나타는 인간 사이의 적대감이나 혐오발언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 발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봅니다.

저는 영국판으로 이 책을 보았는데 대중독자를 위한 연구해설서 성격도 있어 글 내용은 상당한 깊이가 있으나 매우 쉽게 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 책 저자의 멘토인 분의 책 한권을 소개합니다. 남성의 폭력성에 대한 책인데 저도 따로 읽어볼 예정입니다.

Harvard에서 유인원과 남성의 폭력성의 기원을 연구한 Richard Wrangham의 책입니다.


Demonic Males: Apes and the Origins of Human Violence (Mariner books,1997)

오래된 책이지만 특히 남성의 폭력성에 대해 그 진화적인 기원을 밝힌 책이라서 읽어볼 가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