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의 올림픽을 성공리에 마친 한국인들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면서 일종의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습니다.약간의 우월감도 이때 나타났지요.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그러한 사고방식이 자신을 객관화하거나 역지사지하는 데에까지는 나가지 못했습니다.재일학자로서 한국인의 대외관을 연구하는 정대균 씨가 <1992년 L.A.폭동에 관한 한국매체들의 보도 및 논평의 특징>이라는 글을 썼는데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많습니다.그는 세가지로 당시 우리나라 매체들의 특징을 추렸습니다.
첫째.폭동에는 흑인 뿐이 아니라 히스패닉 계나 백인들도 참가했는데 굳이 흑인들만을 강조하여 흑인폭동이라고 했다.이는 흑인들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차별을 드러낸 것이다.
둘째.한국상점들이 집중적으로 약탈과 방화의 대상이 된 것은 한국상인들이 평소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 손님들에 대해 차별하거나 지역사회를 착취한다는 사실에 대한 보복적 성격이 있는데 이를 미국매체들은 지적했지만 한국매체들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
세째.미국에서 교포들이 정착해서 성공하면 우리 민족이 우수하다는 증거라고 한다.폭동 직후 교포들의 단합대회 모습을 방영하면서 "한번도 남을 짓밟거나 침략해 본 적이 없는 민족답게 울분을 누르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보도했다.여러 민족이 사는 곳이므로 다른 민족과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이해하고 유대를 맺을 수 있을까를 논해야 하는데 자민족 중심주의나 민족우월감을 내세웠다.실정이 어떻다고 바른 말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권위주의와 집단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실을 말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서머싯 모옴은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남겼습니다.그 중 우리나라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매우 재밌는 중편인 <아우트 스테이션>이 있습니다.모옴 특유의 맵고 톡 쏘는 풍자가 일품인데,여기엔 말레이지아에 온 한 백인 남자가 나옵니다.그는 현지인들과 어울릴 생각도 안하고 그들을 못난 이들로만 봅니다.그가 주인공(작가인 모옴의 분신)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에이...저 검둥이들..."그러자 주인공이 점잖게 지적합니다."저들은 흑인이 아니라 아시아인입니다."그러자 거기에 대한 답은."흑인이나 아시아인이나 검둥이잖아요..."이었습니다.그런데 이런 반응은 단지 백인의 우월주의라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요.저는 주변에서 동남아인들을 검둥이나 흑인이라고 지칭하는 경우를 상당히 많이 봤습니다.제가 어릴 때만 해도 동남아인들을 특별히 얕보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그땐 아예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는 일 자체가 드물었으니까요.동남아 인들을 우습게 보고 방송에서 희화화하는 회수가 늘기 시작한 것은 그 쪽 출신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일입니다.그래서 언제부턴가 동남아 스타일이란 말은 촌스럽고 빈상으로 생겼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특히 젊은 여성에게 이 말은 언제부터인가 모욕적인 느낌을 주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한쪽이 동남아인인 경우 그 아이들이 우리나라 학교에서 놀림 받을 때 "야. 이 검둥아.아프리카로 가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만 살이 거무스름하면 우선 아프리카를 연상하고 아프리카 하면 미개와 야만을 연상합니다.이미 초등학교 정도 들어갈 나이가 되면 이제 그런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죠.마치 모옴의 소설에 나온 그 백인남자와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이건 오리엔탈리즘도 아니고,백인우월주의도 아니고,뭘까요?
아직도 L.A.흑인폭동이라고 흑인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면 이제는 흑인이라는 말은 뺍시다.그냥 L.A.폭동이지요.방송에서도 동남아인들을 비하하는 말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사람 개인 개인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는 국격이 있다고 합니다.한국이라는 나라가 국격을 갖춘 나라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인종비하 발언을 삼가는 관행을 뿌리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