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 이후 헌책방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1980년대의 이념서적들.헐값으로 사들여서 이 책 저 책 읽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는 사구체 논쟁을 다룬 책도 있었죠..가장 화제가 되던 책은 역시 이진경<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아침 1986)이었는데(이하 사사방으로 약칭) 일명 사사방.하지만 이 책을 실제로 끝까지 독파한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힘겹게 정독했습니다.지금 그 책을 보니 줄도 긋고 여백에 이것 저것 써놓고 한 흔적이 있구만요.읽은 당시의 느낌으로는 박현채의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이나 종속이론은 맑시즘의 아류이고 역시 진짜 정통파는 소련이라고 주장하고 있군...하는 정도였습니다.이 책의 각주도 꽤 열심히 읽은 기억이 나는데 각주에 소개된 책 중 가장 읽고 싶었던 것이 변증법 논리학의 핵심범주인 모순론을 깊이 파고든 슈틸러<모순의 변증법>이었습니다.이 책과 슈틸러의 또다른 저서인 <사회발전의 변증법>은 2000년 넘어서 헌책방에서 찾아내서 샀습니다.

  사구체 논쟁 중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과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차이는 워낙 명확하니까 그 대립각이 분명히 이해되었지만, NDR(민족민주 혁명)-CA(제헌의회)그룹과 PD파는 왜 대립되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둘다 식민지 반봉건 및 주변부 자본주의론을 비판하는 입장이었는데요.제가 NL 쪽의 주장에 그다지 공명하기 않았기 때문에 헌책방에서도 먼저 산 것은 PD파의 무크<현실과 과학>과 NDR의 무크<노동해방문학>이었습니다.몇 권 나왔는데 학습용으로 한 권 씩만 샀지요.역시 이 양파의 차이점은 잘 모르겠더군요.그러다가 다시 이진경의 사사방을 읽었는데 윤소영을 되게 비판한 것이 눈에 들어왔어요.알튀세 주의자라는 거죠."이상하다...윤소영은 <현실과 과학>쪽 아닌가...그런데 왜 같은 편을 이진경은 비난했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PD파 출판사인 벼리에서 낸 책 중 주체사상 비판서인 <주체사상 비판>두 권을 산  며칠 뒤 역시 그 출판사에서 나온 <민족자본가 논쟁>을 헌책방에서 읽다가 갑자기 민족자본가 문제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그래서 산 책이 조기준<한국자본주의 성립사론>.이 책에선 김성수 일가의 기업을 민족자본으로 봤습니다.이진경은 물론이고 NL파에서도 김성수를 민족자본가라고 보지는 않조.그래서 사실은 중국 쪽의 논쟁을 알아보려고 산 책이 김용석 편<식민지 반봉건 사회론 연구>(아침 1986)과 김대환 외 <중국사회성격 논쟁>(창작과 비평 1988)이었습니다.특히 이 책은 모택동 사상이 정통파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이론투쟁이 있었는지에 초점을 두고 읽었습니다만 역시 어렵더군요.단 말로만 듣던 중국 트로츠키 주의자 중 최고 논객이라는 엄영봉의 논문을 읽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또 제가 신간회 운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 사회성격 논쟁>에 나온 도진순의 논문이 1920년대 코민테른의 민족_식민지 문제 논쟁을 다루고 있어서 열심히 읽은 기억이 납니다.쿠시넨이니 로이니 하는 이름은 지금도 생각나네요.그뒤로 도진순은 이승만과 김구 관련 저술을 해서 저도 최근에 열심히 읽었습니다.

  민족자본가 논쟁을 좀 더 심도 깊게 공부하기 위해 종속이론 계열 책과 그 해설서를 봤는데 유아사 타케오<제 3세계의 경제구조>는 트로츠키를 깊이 있게 다루어서 인상이 깊었습니다.이 책을 통해서 이진경 류의 이론에서 좀 멀어졌다고 할까요.프랭크나 아민이 유통주의자이고 (물론 브로델이나 왈러스타인도 그렇습니다만)그러니 트로츠키주의자다...그러므로 정통이 아니다...하는 식의 논법이 왠지 탐탁치가 않게 되었습니다.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역시 유아사<민족문제의 사적구죠>조용범 역 (한울1985)를 읽었는데 베버,트로츠키는 물론 독일의 프리드리히 리스트,독일 사민당의 룩셈부르크,카우츠키,베른슈타인 논쟁은 물론 그 후의 프란츠 파농 및 제 3세계 민족주의까지 다루어 감탄을 연발했습니다.특히 이 책을 통하여 다카시마 젠야를 알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다카시마의 민족과 계급의 변증법은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학설이었고 특히 그는 경제학을 사회사상 속에 용해하여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상과 경제사를 함께 다루어서 그 웅장함에 매료되었지요.

  NL 쪽 이야기도 해봅시다.이 계열의 무크는 <녹두서평>이 있는데 이상하게 이 곳 광주 광역시 헌책방에선 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대신 조진경<민족 자주화 운동론>은 최근에도 보이더군요.10년전엔가 김영환의 <강철서신>이 복사본으로 헌책방에 나왔는데 좀 새삼스럽더군요.그땐 저자인 김영환은 이미 우익으로 전향하여 조갑제와 함께 북한민주화운동인가를 하고 있었을 때이니까요.김씨는 지금은 뉴라이트 계간지인 <시대정신>편집인이 되어 있습니다.이번 주 위클리 경향2008년 11월 25일자에 사회구성체 논쟁 특집기사가 나왔습니다.사사방이 최근 개정증보판이 나와 마련한 기사인 듯합니다만 여기에 정철영(조진경의 본명)씨가 "나는 개인적으로는 최민 등 제헌의회 쪽과 가까웠지 NL진영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는 내용이 있네요.그리고 정씨는 NL론의 이론적 공급처가 한국민족민주전선이라고 밝혔습니다.저도 그런 이야기는 들었는데 직접 그런 고백을 들으니 맞는 소문인것 같습니다.거 예전에 구국의 소리 방송이라는 게 있었다고 했죠.김영환 씨도 그 녹취록으로 공부했다고 하더군요.정 씨에 따르면 남한의 신식민지 국각독점자본론에 대한 북한의 비판이 한민전을 통해 나왔고 이것이 NL의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으로 정리되었다고 합니다.그래서 이론적 치밀함에서는 좀 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솔직히 말해서 북한에서 나온 책을 보면 인문사회과학 수준이 좀 거시기하더라구요.국수주의에다가 수령님 만만세 위주고요.

 헌 책방에서 제가 산 NL계의 책으로는 대동,힘 등의 출판사에서 나온 것입니다.북한냄새가 나고 주체사상 해설서도 몇 권 있지요.조선통사 등의 역사책도 북한원전 붐을 타고 나왔던 것이 헌 책방에 나돌아다니기에 샀습니다.제가 과도한 존칭 쓰는 관행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지  북한에서 쓰는 교시하시었다는 둥 하는 표현을 안 좋아합니다.통혁당 관련 문건도 북한 쪽 것은 확실히 다르더군요.요즘 문근영 씨의 외조부가 통혁당 장기수 출신이라서 통혁당에 대한 관심이 반짝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한때 통혁당 사건에 관심이 있어서 헌책방에서 이것 저것 사모았습니다.통혁당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합시다.

 북한에서 나오는 역사책에서 김일성 찬양하는 건 좀 지겨워서 남한연구가가 쓴 김일성 전기를 몇 권 샀는데 그 중 NL계인 이재화<근현대 민족해방운동사>(백산서당)이 괜찮았습니다.특히 이 책의 앞편에는 남한의 김일성연구서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상당히 치밀한 연구를 한 흔적이 보이더군요.이재화 씨는 요즘 뭐하는지 궁금했습니다.이 씨는 소련에서 나온 레닌 전기를 번역하기도 했지요.

  광주서점가에도 사사방 개정판이 깔렸더군요.20년 전 나온 내용은 그대로고 그 뒤편에 논문이 몇편 딸려있네요.어느 정도 화제를 모을까요.제가 위에서 소개한 책 거의 대부분은 이제 헌책방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개정판 사사방의 생명은 언제까지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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