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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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봤다.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키운 아들이 반항을 일삼다 끝내 살인을 저질러서 고통받는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였다. 처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괴롭히는 아들이 미웠는데, 영화를 볼수록 아들을 대하는 엄마의 태도에서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아들을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일종의 양육 '대상'으로 보고 자신의 의무 또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느낌이었달까.


정이현 작가의 2018년작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에도 엄마가 나오는데, 이 엄마는 <케빈에 대하여>에 나오는 엄마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한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지만, 그런 엄마조차 딜레마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려진다. 


세영에게는 지방에서 호텔을 경영하는 남편과 중학생 딸 도우가 있다. 도우가 반대표라서 자동적으로 학부모회 임원이 된 세영은 어느 날 학폭위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는다. 세영은 도우를 위해서라면 학폭위에 참석하는 것이 맞지만, "남의 인생에 그렇게까지 개입하고 싶지 않"아서 답변을 피한다. 결국 세영이 불참한 학폭위에서 가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피해자 학생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진다.


세영은 이 모든 일이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괴롭다. 세영은 도우를 사랑하지만, 도우의 엄마 역할을 수행하는 일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정확히는 '사회가 기대하는' 도우의 엄마 역할. 만약 세영이 도우의 엄마가 아니었다면 학교로부터 학폭위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자신과 무관한 학교 폭력 사건에 책임감을 느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이런저런 말을 듣는 입장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친구의 장례식에 가겠다는 딸을 말리는 (나쁜) 엄마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세영이 본의 아니게 나쁜 엄마가 되는 동안, 세영의 남편은 사회로부터 그 어떤 책임도 추궁당하는 일이 없다. 세영도 약사로 일하면서 가정을 부양하는데 학'부'모회 연락은 엄마인 세영에게만 간다. 세영이나 세영의 남편이나 학부모회에 참석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은 세영만 비난하고 세영의 남편은 비난하지 않는다. 자책하는 세영과 달리, 세영의 남편은 인터넷 게시판에 악플이나 달 뿐이다. 나쁜 엄마는 누가 만드나. 이런 남편, 이런 사회가 나쁜 엄마를 만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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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 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클라우드 5
유윤종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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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좋아한다. 한 사람의 생애를 오롯이 파고들면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고 여행하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어서 좋아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푸치니>도 그랬다.


이 책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오페라의 제왕으로 불리는 음악가 푸치니의 삶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내로라하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당시만 해도 음악에 관심이 없어서 주변 어른들의 속을 썩였던 청소년기를 비롯해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청년기, 유럽을 넘어 아메리카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중장년기의 일들이 자세히 나온다.


당시 오페라는 지금처럼 일부 팬들만 즐기는 예술 장르가 아니라 오늘날의 영화나 뮤지컬처럼 일반 대중이 즐기는 예술 장르였다. 그래서 푸치니는 비평가들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대중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했다. 푸치니라고 해서 늘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때로는 흥행에 성공해도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기도 했다. 


푸치니로서는 힘든 일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는 곡들이 탄생될 수 있었고, 오페라 하면 푸치니의 이름이 떠오를 만큼 강력한 아우라를 지니게 된 것이 아닐까. 마침 비도 오니 오랜만에 푸치니의 곡들을 찾아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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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이다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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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매기스 플랜>의 원작자 캐런 리날디의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행복해지고 싶다면 잘하는 일만 하지 말고 못하는 일에 도전하라고 했다. 잘하는 일만 하고 싶어 하는 건 조금의 실패도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 때문이므로, 완벽주의를 버리려면 일부러라도 못하는 일에 도전하면서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는데, 나야말로 잘하는 일만 하고 싶어 하는 완벽주의자의 전형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그동안 읽지 않았던 장르나 취향이 아니라고 여겼던 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책도 그중 하나다. 사실 2018년 10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다른 책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그 책이 지나치게 난해하고 장황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책은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신간이 나오자마자 읽은 건, 그때의 생각이 틀렸을지 모른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읽어보니 여전히 난해하고 장황하지만, 그만큼 작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고, 작가가 보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총 다섯 편의 글이 실려 있다. 1993년 저자의 고향인 일리노이주에서 열리는 축재를 취재하고 쓴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를 비롯해 미국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촬영 현장을 방문하고 쓴 <데이비드 린치, 정신머리를 유지하다>, 미국의 작가 존 업다이크의 소설 <시간의 종말을 향하여>를 읽고 쓴 <무엇의 종말인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종말인 것만은 분명한>, 수학에 관한 두 권의 장르 소설을 읽고 쓴 <수사학과 수학 멜로드라마>, <2007년 미국 최고 에세이> 선집의 서문으로 쓴 <결정자가 된다는 것> 등이다.


이 중에 가장 좋았던 글은 <시간의 종말을 향하여>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미국의 국민 작가 반열에 오른 존 업다이크의 소설에 대해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평가가 극명하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모 세대는 존 업다이크의 소설이 가식적이지 않고 솔직하다고 열광한 반면, 자식 세대는 냉소적이고 위선적이라고 비판했다. 저자는 이러한 차이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특성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본다. 정상 가족 신화가 건재하던 시대에 성장기를 보낸 부모 세대에게는 불륜이나 이혼 같은 주제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윗세대에 대한 반발이자 '쿨한' 행동으로 보인 반면, 정상 가족 신화가 해체되는 와중에 성장기를 보내고 있는 자식 세대는 불륜이나 이혼 같은 주제가 자신들의 안정과 생존을 위협하는, 결코 '쿨하지 못한' 행동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필리베르트 스호흐트의 <천재와 광기>,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의 <그가 미친 단 하나의 문제, 골드바흐의 추측>을 읽고 두 작품을 비교해 쓴 서평도 인상적이었다. 이 글에서 저자는 고등수학에 대해 많은 지식이나 경험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일반 독자들이 이런 작품들에 열광하는 현상이 재미있다면서,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고등수학 자체가 아니라 '고등수학을 연구하는 기분'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 작품들에 등장하는 수학적 용어나 개념들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고. 이 밖에도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이 여럿 실려 있다. 마냥 쉽지만은 않은, 그만큼 읽는 보람이 있는 에세이를 찾는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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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 맡긴다는 것 - 리더가 일 잘하는 것은 쓸모없고, 일 잘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CEO의 서재 23
아사노 스스무 지음, 김정환 옮김 / 센시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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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는 사람이 남에게 공부를 잘 가르치는 건 아니듯이, 일 잘하는 사람이 남에게 일을 잘 시키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일을 잘하는 방법과는 별개로 남에게 일을 잘 시키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 일본의 인사 전문가 아사노 스스무의 책 <일을 잘 맡긴다는 것>에 자세한 방법이 나온다.


일을 맡기는 데 서툰 리더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조직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한 나머지 자신이 모든 일을 통솔하려고 하고 부하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 부하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져서 업무 소통이 안 되고 사기가 크게 저하될 수 있다. 둘째는 자신의 일만 챙기고 부하 직원들을 챙기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방임형 리더'인데, 이런 리더를 둔 부하 직원들 역시 리더와 협력적으로 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조직의 시너지가 저하된다.


반대로 부하 직원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책에는 다양한 유형의 부하 직원들에게 효과적으로 일을 맡기는 방법이 자세히 나온다. 무슨 일이든 상사나 타인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부하 직원에게는 작은 일이라도 끝까지 해내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좋다. 자기 일만 챙기고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부하 직원에게는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식으로 비난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업무 분담 지시를 내리는 것이 좋다. 일처리가 늦은 직원에게는 최종 마감일을 일찍 알리고 중간중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도 나온다. 첫째는 부하 직원이 완수할 수 있는 업무를 주는 것이다. 그 직원이 완수할 수 없는 업무를 줄 경우, 직원의 사기 저하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의 생산성이 저해된다. 둘째는 부하 직원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왔어도 영어 회화를 못한다거나 발표를 잘 못한다거나 하는 단점이 있을 수 있다. 좋은 리더라면 부하 직원의 단점을 자극하기보다는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업무를 배분하는 것이 좋다.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부하로 일하는 것도 힘들지만 누군가의 리더로 일하는 것도 어지간히 힘들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최근에는 워라밸, 주 52시간 근무제, 밀레니얼 세대의 출현 등으로 인해 조직 문화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리더의 고민도 점점 더 커지고 다양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 그러한 리더들의 고민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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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은 뉴요커 - 60만 유튜버 홍세림의 뉴욕 한 달 살기
홍세림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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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아마도 향후 몇 년 동안은 해외 여행을 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미리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운지. 이 책의 저자도 그렇다. <이번 달은 뉴요커>의 저자 홍세림은 60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다. 저자는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정했는데, 서로 스케줄을 맞추다 보니 원래는 일주일 정도로 계획한 일정이 한 달로 늘어났다. 과연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는데, (여행을 하기 힘든) 지금 돌아보면 무조건 잘한 일인 듯.


저자는 기왕 뉴욕에서 한 달이나 여행을 하기로 했으니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소소한 버킷리스트를 한꺼번에 다 해보기로 정했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작성한 위시리스트에는 뉴욕행 비행기에서 노래 듣기, 록펠러 센터에서 크리스마스 맞기, 에어비앤비 살아보기, 브로드웨이 뮤지컬 보기, 현지인처럼 영어 해보기, 타임스퀘어에서 새해 맞기 등이 있다. 이중에는 뉴욕이 아니면 해볼 수 없는 일들도 있고, 한 달 정도로 오래 머무르지 않는 한 시도하기 힘든 일들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거 좋다!' 싶었던 위시리스트는 한복 입고 인생 사진 찍기와 문구 투어 다니기였다.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일을 하는 저자는 뉴욕에 간 김에 한국에서는 찍기 힘든 특별한 영상 또는 이미지를 제작하고 싶었다. 그러다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뉴욕의 길거리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여행 전에 미리 생활 한복을 구입해 가져갔다. 책에는 초보자를 위한 셀프 스냅사진 준비물과 촬영 팁 등 자세한 조언이 나온다. 스마트폰 카메라나 똑딱이 카메라밖에 없어도 삼각대와 약간의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싶은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다니 신기하다.


저자는 유튜버 외에 문구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스티커나 굿즈 같은 문구류를 무척 좋아해서 문구점 사장이 되고 싶었던 어릴 적의 꿈을 이룬 셈이다. 저자는 뉴욕 여행에서도 자신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문구류를 빼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뉴욕의 유명한 문구점을 미리 알아봤고, 여행 중 하루를 문구 투어의 날로 정해서 집중적으로 돌아봤다. 이렇게 자신의 관심사가 반영된 여행을 하면 여행이 훨씬 더 즐겁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밖에도 기발하고 실용적인 팁이 많이 나온다. 책 구성이 아기자기하고 만화도 실려 있어서 소장해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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