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
고칸 메구미 지음, 오시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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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에서 나는 무엇을 소망하거나 후회할까. 16년간 요양 병동에서 일하며 1000명이 넘는 환자의 마지막을 직접 배웅한 일본의 간호사 고칸 메구미의 책 <천 개의 죽음이 내게 말해준 것들>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그동안 병원 안팎에서 만난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대체로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한 상태로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실제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평온한 상태로 죽음을 맞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만난 환자들 중에는 죽기 직전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사람도 많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살아있을 때 적극적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가까운 사람들과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준비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책에는 자신 또는 가족의 죽음에 대비해 미리 생각해 보고 준비하면 좋을 것들이 자세히 나온다. 그중 하나가 '연명치료'다. 연명치료의 정의는 의사마다 다르다. 심폐소생술도 연명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사를 통한 인공영양, 인공투석, 인공호흡 등 자발적이지 않은 모든 과정이 연명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사전에 연명치료의 의미를 통일해두면 좋다. 환자에 따라서는 병원이나 요양 시설이 아닌 자택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원하는 죽음의 형태에 따라 치료의 목적이나 방식이 달라질 수 있으니 환자 본인과 가족, 의료진 간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동양권 국가에서는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원래 이 말은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 가장 큰 불효다'라는 뜻으로, 부모가 죽는 순간에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아닌지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면 너무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의 시간 동안 부모를 떠올리고 추억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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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4 - 헨델, 멈출 수 없는 노래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4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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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와 헨델은 같은 해(1685년) 같은 나라(독일)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둘의 생애와 음악 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바흐는 고향 주변의 좁은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반면, 헨델은 독일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영국 등을 누비며 활동했다. 바흐는 평생 두 번 결혼해 열세 명의 자식을 보았고, 헨델은 단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다. 음악적으로는 둘 다 종교에 기반하지만, 바흐는 주로 교회 예배 때 쓰일 음악을 작곡한 반면, 헨델은 왕 앞에서 선보일 연주곡이나 오페라를 작곡했다. 요약하자면, 바흐가 성실하고 모범적인 가장의 삶을, 헨델은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셀럽의 삶을 살았달까. 


그러다 보니 헨델의 생애에는 왕이나 대공 같은 높은 신분의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독일 하노버 공국과 영국 왕실 사이에서 벌어진 소동이다. 헨델은 원래 하노버 공국의 악장이었는데, 런던에서의 인기가 높아지자 영국 왕실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잠시 머물다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런던에서 하는 공연마다 큰 성공을 거두자 영국 왕실에서 헨델을 놓아주지 않았고 헨델도 하노버 공국으로 돌아갈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이때 영국의 앤 여왕이 급사하고, 하필 하노버 공국의 게오르크 루트비히 선제후가 영국의 왕 조지 1세로 즉위했다. 자신을 미워할 게 분명한 조지 1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만든 음악이 헨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수상 음악>이라고. 


바흐가 사후로부터 한참 지나서야 주목을 얻고 인정받은 것과 달리, 헨델은 생전에도 사후에도 한결같이 최고의 음악가로 인정받았다. 특히 오페라 분야에서 그렇다. 헨델은 평생 50여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 시절 오페라는 오늘날의 영화나 뮤지컬처럼 음악, 미술, 연극, 패션 등 다양한 예술 분야가 한데 어우러진 종합 예술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헨델의 오페라 하면 영화 <파리넬리>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아리아 <울게 하소서> (조수미가 부른 버전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가 포함된 <리날도>가 유명하고, 최근에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에 배경음악으로 삽입해 화제가 된 <로델린다>도 잘 알려져 있다. 


헨델은 '여성은 노래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깬 인물로도 유명하다. 중세 때부터 교회에서는 "모든 교회 공동체의 집회에서 여자들은 침묵해야 한다."라는 성서의 구절을 근거로 여성의 노래를 금지했다. 이로 인해 고음 성부를 부르게 할 목적으로 변성기 이전의 남자아이를 거세해 '카스트라토'로 만드는 문화가 오랫동안 있었고, 이 문화의 폐단은 영화 <파리넬리>에도 잘 나온다. 헨델은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게 실력 있는 여성 소프라노를 적극 기용했고, 그 결과 여성 음악가의 지위도 높이고 자신의 작품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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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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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시리즈물'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서울대 작곡과 민은기 교수님이 쓰신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이다. 모차르트, 베토벤에 이어 이번에는 바흐 편을 읽었는데, '음악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왜 맞고 틀린 지부터(바흐는 그렇다 쳐도 헨델은 왜 '음악의 어머니일까? 둘이 부부도 아닌데) 바흐의 전 생애와 음악적 특징, 음악사에서 가지는 위치 등에 대해 체계적이고도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무척 유익했다. 


바흐는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위상을 지니는 예술가이지만, 정작 바흐 자신은 스스로를 예술가로 인식하지는 않은 것 같고,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그런 식의 대접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 대대로 음악가를 배출해온 집안에서 태어난 바흐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의 집에서 자랐다. 십 대 시절에 교회 연주자로 취직해 이후에도 주로 교회에서 봉직한 바흐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기보다는 종교인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바흐는 음악을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의 신비한 원리를 소리로 표현하고 죄 많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일종의 수단으로 여겼다. 


그래서일까. 종교를 가지지 않았는데도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주변이 신성해 보인다. 인간이 만든 음악이라기보다는 자연의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소리를 조화롭게 배치한 것 같다. 어쩌면 이는 바흐의 작곡 방식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바흐의 대표곡 중 하나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개념을 구현한 작품이다. 변주곡들의 첫 음을 살펴보면 3번 변주곡은 1도 간격, 6번 변주곡은 2도 간격 하는 식으로 차례차례 간격이 멀어져 27번 변주에 이르면 9도 간격까지 멀어진다. 언뜻 보면 수학을 응용한 것 같기도 한데, 수학 역시 단순한 질서로 우주의 원리를 규명하는 학문이므로 음악과 무관하지 않다. 


바흐가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멘델스존의 공이다. 1829년, 당시 떠오르는 신예 음악가로 한창 주목받고 있던 멘델스존이 베를린 징 아카데미에서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초연한 것이다. 멘델스존은 <마태 수난곡> 악보를 할머니에게 선물 받았는데, 그전까지 이 곡은 극소수의 음악계 인사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만약 멘델스존의 할머니가 멘델스존에게 바흐의 악보를 선물하지 않았다면, 멘델스존이 바흐의 악보가 지닌 가치를 몰라봤다면, 음악의 역사는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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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투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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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계 캐나다 작가 킴 투이의 소설 <만>은 작가의 전작인 <루>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다. 주인공 '만'이 베트남 출신 여성이고 캐나다에 와서 살고 있는 건 같지만, 만이 캐나다에 온 건 먼저 보트피플로 캐나다에 와서 자리를 잡은 남편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고, 만이 식당을 운영하는 건 남편이 식당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루>의 주인공 '안 띤'은 어릴 때 가족들과 보트피플로 캐나다에 왔고, 법대 졸업 후 변호사로 일하다가 식당을 개업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쥘리다. 쥘리는 만의 식당에 자주 찾아와 만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주고 사업을 더 크게 벌이도록 자극한다. 나중에는 만의 동업자가 되어 만의 식당을 널리 홍보하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베트남 식당이 되게 한다. 만의 남편과 애인이 만의 삶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 한편 부정적인 영향도 준 것과 달리, 쥘리는 만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쥘리가 만의 인생에서 조연에 머무르다니. 쥘리가 남성이었다면 일찌감치 만의 남편이나 애인 자리를 꿰차지 않았을까. 


연인과 대화를 나누며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는 오래전에 읽은 샤올루 구오의 소설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아시아계 여성이 백인 남성과 연애하면서 외국어를 배우는 내용이다.) 이 소설을 통해 베트남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베트남 음식에 새우젓갈 아니면 멸치젓갈이 들어간다는 것은 한국과 비슷하고, 베트남 북부에선 치아를 검게 물들여야 미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사랑하는 연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의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것은 일본과 비슷해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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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투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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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 붐이 불기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전쟁'이 아니었을까. <루>의 작가 킴 투이는 베트남 전쟁 생존자다. 1968년 베트남 사이공(현재는 호치민)에서 태어난 작가는 10살 때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베트남을 떠나 난민으로 지내다 1979년 말 캐나다에 정착했다. 이후 몬트리올 대학교에서 번역학, 법학 학위를 받고 변호사로 일하다 현재는 '루 드 남'이라는 베트남 식당을 운영하며 작가로 활동 중이다. 


킴 투이의 첫 책 <루>는 작가의 실제 경험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킴 투이가 아니라 '응우옌 안 띤'이지만, 작가와 안 띤 모두 베트남의 상류층 출신이고, 전쟁을 피해 보트피플로서 캐나다에 왔고, 정착에 성공해 변호사가 되었고 음식점을 차렸다. 심지어 작가의 둘째 아들도 안 띤의 둘째 아들 앙리처럼 자폐아라고 하니 이 소설의 어디까지가 작가의 실제 경험이고 허구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안 띤이 변호사가 되어 베트남을 다시 찾은 후에 겪은 일들이다. 베트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안 띤을 베트남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안 띤이 피해서 달아난 전쟁을, 그들은 그 자리에서 온몸으로 겪었고 지금도 그 고통을 감내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비록 부모의 뜻이었지만, 안 띤이 배를 타고 베트남을 떠났을 때, 안 띤은 더 이상 베트남 사람들과 '한 배'를 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떠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한때는 같았으므로 언젠가 다시 만나면 비슷해질 수도 있지만 영원히 예전처럼 같을 수는 없게 되는 것. 


열 살 때부터 난민 신분으로 망망대해를 떠돌아야 했던 안 띤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엾지만, 안 띤을 그렇게 만든 안 띤의 부모가 가진 재산이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 정부에 부역해 축적한 것임을 생각하면 떨떠름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로 바꿔 말하면,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에 부역해 만든 재산을 들고 외국으로 간 친일파의 자손이 외국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안 띤이 겪은 고생과 고통을 폄하할 건 아니지만, 편한 마음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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