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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를 말하기 -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김하나 지음 / 콜라주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3년 전 나는 제현주, 금정연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의 애청자였다. 매회 한 분야의 기술자가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의 기술을 소개하는 포맷의 팟캐스트였는데, 마지막 회에 '힘 빼기 기술자'로 출연한 게스트가 김하나 작가였다. '힘 내기 기술자'가 아니라 '힘 빼기 기술자'라는 것도 신기했지만, 기술을 소개하러 나온 김하나 작가의 목소리와 발음이 전문 성우처럼 좋아서 홀딱 반했던 기억이 있다(참고로 나는 목소리 좋은 사람한테 무지무지 약하다.)
얼마 후 예스24에서 새로 제작하는 팟캐스트의 진행자로 김하나 작가가 발탁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예스24 팟캐스트 제작진이 사람 볼 줄 아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조만간 김하나 작가의 세상이 열리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 예상대로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은 잘 되어서 무사히 3주년을 맞이했고, 김하나 작가는 요즘 출판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이 정도면 나, 자리 깔아야 할까 ^^
김하나 작가의 신작 <말하기를 말하기>는 말하기보다 읽기, 쓰기, 듣기를 즐겨 했던 저자가 말하기로 밥벌이를 하게 된 과정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어릴 적에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무척 힘들어하는 편이었다. 집에서는 조잘조잘 말을 잘하는 아이였지만, 학교에서나 몇 년에 한 번 만나는 친척들 앞에서는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부산 출신인 저자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언어생활의 전기를 맞았다. 다소 거친 느낌이 없지 않은 부산 사투리보다는 부드럽고 세련된 느낌의 서울말이 자신에게 더 잘 맞는다고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말하기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저자에게 인생의 경로를 바꾼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대학 졸업 후 광고 회사에 들어간 저자는 촬영을 위해 만난 전문 성우로부터 "목소리가 참 좋으시네. 성우를 한 번 해봐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서 정말로 회사를 그만두고 방송사 아카데미 성우반에 등록해 성우 시험을 준비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지만, 1년간 성우 공부를 하고 훈련하면서 말하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목소리에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거나 말 잘한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고, 이는 경력과 연봉에도 도움이 되었다.
팟캐스트 진행자가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지금은 자신에게 주어진 마이크를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잘 활용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자신처럼 더 많은 여성들이 마이크가 주어졌을 때 거절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말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생겼다. 남자들은 마이크를 주지 않아도 떠드는데 여자들은 마이크를 줘도 입을 다물거나 손사래를 치며 거부한다. 이는 여성에게 겸손하고 정숙하라고 가르친 사회의 탓이기도 하지만, 여성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낮추어 생각하고 자신의 공을 드러내길 부끄러워하는 탓이기도 하다.
여성이고, 말하기가 두렵거나 부끄럽다면,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남자가 할 거라는 생각을 떠올리자(이건 사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ㅠㅠ).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 청소년, 질병을 앓는 사람 등등 약자, 소수자의 목소리가 지금보다 더 많이 들려야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더욱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멋진 저자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