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결정짓는 7가지 힘 - 관용·동시대성·결핍·대이동·유일신·개방성·해방성
모토무라 료지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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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명문 와세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저자는 학생들이 학업 성적이나 어학 실력에 비해 교양 면에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글로벌스탠더드로서의 교양이란 '고전'과 '세계사'이다. 그중에서도 세계사는 자국의 역사는 물론 현실 정치와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 교양이다. 


세계사를 공부하는 것이 어렵다면, 당장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 위주로 배우는 것도 괜찮다. 이를테면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의 사례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식이다. 참고로 저자는 로마가 엄청난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로 '관용'을 든다. 예컨대 로마는 속주에 라틴어 사용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속주의 종교와 문화, 관습 등을 인정했다. 반대로 속주에 라틴어 사용을 강제하고 속주의 종교와 문화, 관습을 억압하기 시작했을 때, 로마는 쇠퇴와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세계사를 공부하다 보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비슷한 성격의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한과 로마다. 기원전 202년 로마는 제2차 포에니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지중해 패권을 장악해 제국의 초석을 다졌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항우와 유방이 마지막 결전인 해하전투를 벌였고, 이 전투에서 승리한 유방은 훗날 한 제국을 세웠다. 비슷한 성격의 두 사건이 같은 해에 일어난 것은 아마도 우연이겠지만, 두 사건의 공통점을 찾다 보면 그 과정에서 다양한 역사 지식과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난민 유입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로 민족 대이동이 일으킬 수 있는 변화를 든다. 일례로 16세기까지 네덜란드의 국교는 가톨릭이었다. 하지만 종교 혁명의 여파로 프로테스탄트 중에서도 칼뱅파가 네덜란드로 대거 밀려들면서 가톨릭과 칼뱅파 인구 비례가 역전되었고,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대표적인 칼뱅파 국가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난민 유입에 의해 종교가 바뀌거나 인구 구성이 바뀌면 사회 문화와 관습, 제도 등이 차례로 바뀔 것이다. 세계사를 배우면 이런 안목을 갖추기가 한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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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이 그림 여행 - 화가의 집 아틀리에 미술관 길 위에서 만난 예술의 숨결
엄미정 지음 / 모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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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사태로 인해 가장 아쉽게 여겨지는 것 중 하나가 여행 아닐까. 일 년에 한두 번 여행하는 게 고작이었던 나조차도 요즘은 입만 열면 "여행 가고 싶다." 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상황이 나아져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제일 먼저 좋아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실물로 보러 떠나고 싶다. 아마도 이 책이 좋은 가이드북이 되어주겠지. 


<후회 없이 그림여행>의 저자 엄미정은 대학에서 사회학,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고, 졸업 후 출판사에서 예술서 편집자로 일했다. 이 책은 저자가 흠모하는 화가들이 실제로 거쳐간 장소들을 직접 찾아가 본 결과물이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에 이르는 긴 여정을 꼼꼼히 담았다. 뒤러, 페이메이르, 클림트, 조토, 앙귀솔라, 카라바조, 엘 그레코, 모네, 고흐, 세잔, 시냐크, 마티스 등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부터 근대의 화가들까지 두루 다뤘다. 


이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앙귀솔라다. 소포니스바 앙귀솔라(1535~1625)는 르네상스 최초의 여성 화가이자 이탈리아 피렌체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앙귀솔라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그림을 배웠고, 스페인의 펠리페 2세 궁정에 초대되어 왕비의 그림 선생으로, 궁정의 초상화가로 일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여성 화가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 <아르테>가 생각나 찾아보니 <아르테>의 실제 모델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앙귀솔라를 롤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여행지는 카라바조가 거쳤던 모든 곳들이다. 바로크 시대의 회화를 대표하는 카라바조는 생전에 엄청난 명성을 누렸지만 그만큼 사건사고도 많이 일으킨 인물이다. 때로는 병 때문에, 때로는 추문 때문에, 때로는 사람을 죽여서 아시시에서 로마로, 나폴리로, 시칠리아로 끝 모르고 떠다녀야 했던 카라바조. 그가 남긴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은 유독 풍파가 많았던 그의 인생을 반영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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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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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을 통해 몰랐던 역사를 알아간다.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헤르타 뮐러의 소설 <숨그네>를 읽으며 나는 그동안 존재조차 몰랐던 역사의 어두운 한 페이지를 알게 되었다. <숨그네>는 1945년 소련이 "나치에 의해 파괴된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이로 인해 루마니아에 살던 17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이들 중에는 헤르타 뮐러의 어머니와 레오폴드의 모델인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있었다. 


<숨그네>의 배경은 1945년의 루마니아. 17세 소년 레오폴드는 어느 날 갑자기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이때부터 시작된 고강도의 노동과 극한의 굶주림.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었지만, 레오폴드는 집을 떠나기 직전 할머니가 해준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말을 부적처럼 여기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제목인 <숨그네>는 허공을 떠도는 그네처럼 삶과 죽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인간의 존재를 의미한다. 수용자들은 내일도 이렇게 굶주린 채로 일할 바에는 오늘 죽는 게 낫겠다고 한탄하지만, 막상 그들 중 누군가가 죽으면 시체의 옷을 챙기고 그의 몫으로 예정된 빵을 탐낸다. 그렇게 동료가 버린 삶으로 하루를 번다. 


현실이 아무리 비참해도 언젠가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레오폴드에게 가장 큰 시련을 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고향에 있는 레오폴드의 가족들이다. 레오폴드가 집을 비운 동안 가족들이 '새 식구'를 맞이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자, 레오폴드는 돌아갈 곳이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수용소에서 풀려난다 한들, 수용소 밖의 사람들은 수용소에서의 일에 관심도 없고 알아도 이해해 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회의를 품는다. 실제로 독일계 루마니아인들이 소련으로 강제 이송된 일은 <숨그네>가 발표되기 전까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무지와 무관심도 절망의 이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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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유지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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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는 두 분야를 한 권의 책으로 접할 수 있다니. 이 기획을 생각해낸 사람도 대단하고, 이 기획을 이루어낸 저자들도 대단하다. 물리학자 김상욱과 그래픽디자이너,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인 유지원이 공저한 이 책은 과학과 예술, 더 정확히는 물리학과 타이포그래피의 관점에서 다양한 학문과 예술을 조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야기, 소통, 유머, 편지, 시, 결, 자연스러움, 죽음, 감각, 보다, 가치 등 추상적인 주제가 대부분인데, 각각의 큰 주제를 각자의 학문 분야로 풀어내는 솜씨가 놀라웠다. 


초현실주의와 양자역학은 어떻게 연결될까. 김상욱의 글 <원자가 실재라면 꿈은 현실이다>에 그 내용이 나온다. 1920년대 유행하기 시작한 초현실주의는 쉽게 말해 꿈을 그리는 미술이었다. 이는 당시 유행한 프로이트의 이론과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이성이 몰락하고 무의식의 중요성이 강조된 사회 분위기가 관련이 있다. 공교롭게도 1925년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뉴턴의 물리학 체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초현실주의가 이성으로부터 도피하고자 꿈을 그렸다면, 양자물리학자들은 원자의 세계가 초현실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자는 이러한 '대전환'이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 밖에도 물리학과 현대미술의 관계를 분석한 글이 다수 실려 있어서 흥미로웠다. 


타이포그래피 연구자는 이상의 시를 어떻게 볼까. 유지원의 글 <이상은 '오감도 시제 4호'를 어떻게 제작했을까?>에 그 내용이 나온다. 이상이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한 이 시의 일부는 1930년대 신문 인쇄 기술로는 구현하기 힘든 방식으로 인쇄되어 있다. 저자는 1930년대 신문 인쇄 기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직접 소장하고 있는 활자들을 이용해 이상이 사용했음직한 방식을 구현한다. 저자는 이상이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은, "인쇄술로 표상되는 '근대적 기계 문명'의 병리적인 이면"을 드러내고 "'정상과 비정상의 관념이 끊임없이 역전되는 활판의 앞면과 뒷면'"을 통해 자아 분열을 암시한 것으로 짐작한다. 이상의 시를 문학이나 사회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은 많이 봤지만 타이포그래피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은 본 적이 없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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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0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보고싶어서 보관함에 넣어두었는데 키치님 글을 보니 더더욱 관심증가입니다. 키치님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복도 듬뿍 받으세요. 그리고 좋은 책 소개도 많이 해주시고요. ^^

키치 2021-01-06 08: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
 
빅니스 - 거대 기업에 지배당하는 세계
팀 우 지음, 조은경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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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팬데믹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지만, 고통의 정도는 작고 약한 존재들에게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거래가 늘면서 인터넷 쇼핑, 카드사 등 일부 대기업들은 '팬데믹 호황'을 누리는 반면, 오프라인 거래 중심인 영세 소상공인들은 매출이 급감해 폐업 위기에 몰린 것만 봐도 그렇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팀 우의 책 <빅니스>는 이러한 격차가 생긴 원인과 결과를 분석한다. 


지난 30년 동안 독점과 과점은 전보다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농업, 금융업, 제약업 등 분야를 막론하고 그렇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술 플랫폼 기업이 전 세계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고, 아마존,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이 그 뒤를 이으며 일부 글로벌 기업에 의한 전 세계적인 독점, 과점 현상을 심화하는 추세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경제와 정치 모두에 큰 해악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분석한다. 


독과점이 일반적인 시장의 형태로 자리 잡으면 소비자 가격이 인상되고 경쟁이 사라져서 기술 혁신이 늦춰진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전 세계에서 1,2위를 다투는 기술 강국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통상산업성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기술 계획을 실시하고 일본전신전화회사(NTT)를 독점 기업으로 키우면서, 그전까지 잘 나갔던 소니, 도시바, 타이토, 닌텐도 같은 기업들이 맥을 못 추게 되었다. 그 결과 기술 혁신이 늦춰지고 경쟁에서 밀리면서 이후 이동전화, 인터넷 등의 업계에서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너무도 적은 소수에게 너무도 큰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한다. 집단해고당한 청소노동자의 1표와 대기업 회장의 1표는 과연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가. 민주국가가 보장하는 노동권과 인권은 왜 대기업의 자장 안에만 들어가면 사라지는가. 부의 편중이 심해지면서 중산층이 무너지는 현상 또한 간과해선 안 된다.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사라진 데 대한 실망한 민중의 불만과 분노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등 약자에게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거대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는 산업 형태가 지속되면 포퓰리즘, 민족주의, 파시즘, 군국주의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예측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정책과 글로벌화, 디지털화에 힘입은 거대 기업의 출현과 세계 각지에서 우익 정부, 정당이 출현하고 있는 상황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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